짧은글 긴여운 – 황필상박사의 생전 컬럼

황필상박사가 우리의 이웃과 후손을 위해 남기신 컬럼을 실었습니다. 고인의 평소 바램대로 우리는 모두가 훌륭한 인격체로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튼실한 기둥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구원장학재단은 고인이 되신 황필상박사님의 뜻을 계승하여 우리의 젊은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지지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첫번째

방법은 언제나 있다.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위대한 유산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독과 꿀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자기부터 행하자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행복한 가정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내 탓이오!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평생의 묘약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행동하는 철학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고귀한 인내심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각자의 할 일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두번째

관용의 보답

사마천의 사기에 있는 이야기다. 초나라 장왕이 어느 날 신하들을 모아 놓고 연회를 베풀며 말했다.
“오늘 밤은 신분이나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마음껏 즐겨 보자!”
좀처럼 얻기 힘든 격식 없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므로, 군신이 모두 한껏 마시며 즐겼다. 그런데 어디서 바람이 불어와 갑자기 모든 불이 꺼졌고, 주위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칠흑같이 깜깜해졌다.
이 때, 이것을 기회로 왕의 애첩을 희롱한 신하가 있었다. 이에 애첩이 놀라 신하의 갓끈을 잡아 당겨 갓끈이 끊어졌다. 애첩은 장왕에게 그대로 보고했다. “어떤 사람이 저를 희롱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갓끈을 끊어 놓았으니 이제 불을 켜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애첩의 얘기를 들은 장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오늘밤은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즐기는 주연이다. 우리 모두 갓끈을 잘라버리고 계속 마음껏 즐기자.”
이리하여 참석자 모두의 갓끈이 잘렸고 이 날의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수년 후, 초나라는 막강한 진나라와 싸우게 되었다. 그런데 한 용사가 있어, 항상 선두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다. 그 용사의 맹활약에 힘입어 초나라 군사의 사기는 충천했고 결국 강력한 진나라를 물리칠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장왕이 그를 불렀다.
“그대 같은 훌륭한 용사를 내 미처 몰라 보았으니 심히 부끄럽구나. 그런 용맹이 어디에서 나온단 말이냐?”
하고 물었다. 이에 그 용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벌써 죽었던 몸입니다. 술에 취해 폐하께 큰 죄를 지었는데도 폐하께서 저를 살려주셨기에, 저는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 뿐 입니다. 그날 밤 갓 끈을 뜯긴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너그러운 마음씨로 감싸 준다면 언젠가는 몇배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면, 이 사회는 화해와 사랑이 가득 찬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원인 제공의 죄

한 노인이 허기진 배를 참으며 빵가게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갓 구워낸 기름진 빵이 유난히도 맛있어 보여 노인의 식욕을 당겼다. 노인은 끝내 참지 못하고 덥석 빵 하나를 잡고는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광경은 곧 주인의 눈에 띄었다. 주인은 이내 달려가 할아버지를 붙잡았고, 왜 그런 짓을 했느냐는 질책과 함께 경찰서로 넘겨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노인은 재판을 받게 되었다. 재판관이 노인에게 물었다.
“어째서 남의 가게 물건을 훔쳤습니까?”
그러자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 날 나는 아침을 굶고 그 가게 앞을 지나고 있었는데, 워낙 허기가 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빵을 움켜잡고 말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재판관은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법을 어긴 그 할아버지를 그냥 용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할아버지의 처지는 매우 딱합니다만 법을 어기셨으니 2만 센트의 벌금을 내셔야 합니다.”
말을 마친 재판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호주머니에서 2만 센트의 돈을 꺼내어 할아버지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는 자리에 참석한 방청객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이 할아버지가 빵을 훔치지 않으면 안되는 이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도 벌금을 내야 합니다. ”
이렇게 하여 할아버지가 법정 문을 나설 때는 15만 센트라는 적지 않은 돈을 호주머니에 넣게 해 줄 수가 있었다.
재판관의 이 판결 내용을 보면, 우리는 빵을 훔친 할아버지의 범죄행위만 죄가 되는 것이 아니고, 알게 모르게 빵을 훔치도록 만든 원인 제공자에게도 얼마의 죄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록 그것이 도덕적인 것이라고는 해도….

창조적인 행위

뉴욕에서 조그맣게 목재상을 하던 사람이 짧은 기간 내에 부자가 되었다. 동종 업계에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는데도, 그 사람만 유독 수백만 불의 수입을 올린 것이었다. 이에 기자들이 몰려가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매일 캄캄한 방에 홀로 앉아, 앞으로 10년 동안 목재 업계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를 깊이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떠오른 생각들을 열심히 ‘기록’ 했으며, 10년을 기다리지 않고 즉시 그때 그때 ‘실천’ 해 왔습니다. 이렇게 ‘계속’ 해 온 것이 전부입니다.”
이 목재상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간단히 요약 될 수 있다.
즉, 생각-기록-실천-또 생각-또…..
사실, 이러한 행위는 창조적인 행위다. 많은 창조성에 관한 책들은 한결같이 이와 같은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이 목재상이 창조적인 행위를 계속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준비보다는 하루 하루의 결과에만 신경을 써 왔고 그래서 그들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또 목재상은 이러한 행위를 계속하는 중에 “경쟁하지 말자, 창조하자!” 라는 비결을 터득했다고 한다.
사실, 성공의 기회는 어디에도 있고, 누구에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원하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공의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성공의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어떠한 위치에서도, 어떠한 순간에서도, 성공의 기회를 포착할 수가 있다. 지금도 우리 주위를 조금만 눈여겨 살펴보면, 이른 아침에 괘종시계와 함께 일찍 일어나 ‘생각’ 하기 시작하며, 뉴스와 라디오를 들으면서 ‘기록’ 하고 있으며, 샤워와 면도를 하면서 ‘실천’ 하는 창조적인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람은 하루가 끝나는 밤이 되면 벌써 놀랍게 성장해 있으며, 그 행위를 매일 ‘계속’ 하는 동안 목재상과 같은 큰 성공을 예약하고 있는 것이다.

야무진 끝마무리

얼마 전, 모 회사의 사원모집 광고 내용에서 ‘진취적인 기상, 적극적인 사고방식, 그리고 야무진 끝마무리’ 라는 내용의 문구를 읽은 적이 있다. 앞의 두 구절은 흔히 보아 온 것이라 해도, 맨끝의 ‘야무진 끝마무리’ 라는 문구는 이채로웠다.
사실, 최근 빈번히 발생했던 각종 대형 사고들도 따지고 보면 이 야무진 끝마무리가 약해서 생겨난 일들이다.
야무진 끝마무리의 중요성은 이런 사회 문제 뿐만 아니라, 학문 분야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배우는 ‘주기율표’ 에 얽힌 에피소드도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교과서에서는 주기율표가 1869년 러시아의 D.I.멘델레예프에 의해 고안되었다고 적혀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 4년 전 1865년에, 영국의 J.A.R. 뉼랜즈라는 화학자가 이와 유사한 내용을 발표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뉼랜즈의 발표 내용에서 사소한 문제를 트집 잡아 시비를 걸자, 뉼랜즈는 의기소침하여 이 발표를 포기했고 그 업적은 멘델레예프에게 넘어갔던 것이다. 끝까지 마무리를 짓지 못하여 실패한 경우이다.
반면에, 1825년 ‘증기 기관차’를 발명한 G. 스티븐슨의 경우는 끝마무리에 성공한 경우라 하겠다. 그가 증기 기관차를 처음으로 발명했을 때도 뉼랜즈와 비슷한 비난이 이어졌다. 당시 스티븐슨이 발명한 기관차는 무게가 90톤이나 되는데다, 시속 16-19km밖에 주행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기관차의 속도는 말보다도 느리면서, 소리는 수천 필의 말보다 요란하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스티븐슨은 이러한 비난에도 물러서지 않고 연구를 거듭하여, 4년 후인 1829년에 객차 하나까지 끌고도 최대 시속46km로 달릴 수 있는 기관차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성공의 마지막 단계까지도 시련이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 마지막 시련까지 극복할 수 있는 야무진 끝마무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 준 예라 하겠다. 우리도 방심하지 말고 야무진 끝마무리를 해야 할 것이다.

완전한 믿음

한 쌍의 정다운 부부가 배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다. 남편은 무사로서 대담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아내는 상냥한 여인이었다. 얼마를 가니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쳐 파도에 배가 몹시 흔들렸다.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긴급한 상황이었다. 아내는 불안한 표정으로 남편을 살펴보았으나 남편은 태연히 앉아만 있었다.
아내가 끝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이 대담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꿈쩍 않는단 말이에요?”
그래도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내가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남편은 갑자기 자기의 칼을 빼내여 아내의 목에 들이댔다. 그러나 아내는 오히려 웃으며,
“아니, 당신은 이럴 때 장난까지 할 수 있단 말이에요?” 하며 무시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남편은,
“지금 당신 목에 칼이 와 있는데도 당신은 웃음이 나온단 말이오?” 하고 말했다.
이에 아내는,
“만일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놀랐겠지요. 그러나 당신이니까 무섭지 않네요.”
하고 대답했다. 무사는 칼을 도로 칼집에 넣으며,
“그렇소, 폭풍도 마찬가지라오. 폭풍도 내가 믿는 신의 손 안에 있는 것이요. 그런데 내가 왜 두려워 하겠소.” 했다는 것이다.
완전한 믿음이 있으면 어떠한 불안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종교 얘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확신을 가지라는 말이다. 우리의 생활 중에 만나는 걱정거리나 불안의 실체는, 40%는 절대로 생기지 않는 것이요, 30%는 아무리 걱정한다 해도 변화시킬 수 없는 과거사에 관한 것이요, 12%는 우리의 건강에 쓸모없는 것이요, 10%는 사소한 걱정이요, 오직 8%만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진정한 걱정거리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런데 왜 걱정하는가?
오직 8%의 진짜 걱정거리만 걱정하자. 12일 중에서 1일만 진짜로 걱정하고, 나머지 11일은 걱정 없이 살아가자.

마지막 교훈

퇴계 이황 선생, 조선조 중기의 대학자로서 만인에게 칭송을 받던 분이었고 중종ㆍ명종ㆍ선조의 지극한 존경도 받았으며, 특히 명종은 여러 번 소명을 내리면서까지 선생을 불렀건만, “신은 몸이 늙고 병들어 그 같은 높은 벼슬을 받아들일 수가 없사오니 거두어 주옵소서. 신은 학자로서 학문에만 전념해 후진을 양성하겠습니다.” 고 하셨던 퇴계 선생. 선생의 고결한 삶에 걸맞는 마지막 모습을 소개한다.
때는 1570년 11월, 선생은 병석에 누워 임종을 맞이하고 계셨다. 곁에는 임종을 염려한 여러 가족과 친지 그리고 제자들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밖의 날씨는 쌀쌀했지만 청명한 하늘에 기러기떼가 한가로이 날고 있었다. 방안에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가구 몇 점과 그 위에 매화분이 보일 뿐이었다.
선생은 평소와 다름없는 평안한 표정으로 주위 사람을 둘러본 뒤, 매화분 앞에서 눈길을 멈추었다. 그리고 선생은 옆의 아들에게 이르기를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 하고 이르셨다.
다시 얼마가 지나 저녁 무렵이 되었다. 누워 있던 선생은 조용히 말하기를, “자리를 정리하라!” 고 하셨다. 아들과 제자가 자리를 정리하자, 꼿꼿이 않은 자세를 취하시고는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이것이 선생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우리는 동서고금을 통하여, 위대한 인물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기는 최후의 명언을 많이 알고 있다. 허나, 선생처럼 명언 아닌 명언을 남기신 분도 그리 흔하지 않다. 항상 책과 더불어 갈고 닦으신 고결한 인품에 걸맞는 운명이 아닌가 한다.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 는 말에서 선생의 생명에 대한 깊은 애정을, “자리를 정리하라!”고 하신 말씀에서 끝까지 고결한 인품을 잃지 않는 경건함을 느끼게 된다. 그야말로 학문에만 뜻을 두고, 한 평생 보내신 진실한 사람에게는 ‘죽음도 두려운 것이 아니다’ 라는 교훈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우리 모두 선생이 남기신 마지막 교훈, ‘진실하게 살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 는 뜻을 받들어 성실한 삶을 살아야겠다.

긴(?) 이별

옛날 프랑스 어느 마을 입구에서, 파리행 마차가 손님 몇 분을 태우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어떤 형제 둘이 마부에게 다가왔습니다. 형은 15세, 동생은 10세 남짓한 귀엽게 생긴 얼굴들이었습니다. 형의 어깨에는 무거워 보이는 큰 가방이 메어져 있었고, 동생은 다리를 몹시 절었습니다.
형이 마부에게 물었습니다.
“내 동생이 파리까지 가야 하는데 빈 자리가 있습니까?”
“그래, 아직 저기에 몇 좌석이 남아 있단다. 원하는 자리에 앉도록 해라.”
“예, 고맙습니다.”
하고 말하며, 형은 주머니에서 동생의 요금을 지불했습니다.
동생이 마차에 오르자 형은 무거운 가방을 마차 위에 올려놓고 미소를 띄우며 동생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소 근심스런 표정의 동생은 맨 끝자리에 서서,
“형, 괜찮겠어?”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형은,
“걱정 말아라. 나는 건강하잖니?”
하며 어깨를 으쓱이며 동생을 안심시키려는 듯 과장스런 태도까지 보였습니다.
마차가 출발했습니다.
마차 안 맨 끝자리에 서있던 동생은, 여전히 형과 헤어진 뒤쪽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차 안의 사람들은 이 다정한 형제의 작별 순간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잠시면 끝날 줄 알았던 동생의 태도가,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습니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동생의 모습은 변화가 없습니다. 여전히 뒤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마차 뒤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형이 마차를 따라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람들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형제의 뜨거운 이별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그리고도 얼마를 더 달렸습니다. 시간이 꽤나 흘렀습니다. 마차를 따라오던 형이 이제는 지쳤는지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습니다. 형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러나 마차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습니다. 이때까지 맨 뒤에서 형의 따라오는 모습을 지켜보던 동생이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한 부인이 동생에게 나직하게 말했습니다.
“얘야, 너의 형은 이제 집으로 돌아갈 거야.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그러자 동생이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우리는 돌아 갈 집이 없어요.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지금 우리는 할아버지가 계시는 파리로 가고 있는 중이에요. 그러나 차비가 한 사람 몫밖에 없기 때문에, 형은 내가 탄 이 마차를 따라오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형이 지쳐서 못 따라오고 있어요. 내가 발이라도 정상이라면 대신 뛰어…….”
하더니 말을 마치지도 못하고 소리 내어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이 말을 손님과 함께 듣고 있던 마부가 즉시 마차를 세웠습니다.
손님들은 함께 동생의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마부는 돈을 받지 않고 형을 태워 주었으며, 손님들은 이 의좋은 형제에게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얼마의 돈이 모아져, 이 대단한 형제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이 기특한 형제는 마차에 올라 긴(?) 이별 끝에 다시 만난 재상봉의 기쁨에 활짝 웃었습니다.
프랑스 동화인 이 아름다운 얘기가, 얼어붙은 이 대지를 그리고 메마른 인정과 형제애를 한껏 녹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유배달 예찬

“건강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신선한 우유를 받아 마시는 사람보다, 그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 라는 말이 있다.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일하면서 건강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절묘한 보상’ 이라 부르고 싶다.
많은 사람이 건강의 중요성을 느끼고 또 그것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절묘한 보상의 원리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매일 아침 집에서 우유를 받아 마시던 일을 우유배달로 바꾸어야 한다. 다른 일이 많기 때문에 그럴 시간이 없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옳은 얘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건강보다 우선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명언이 이를 말해 준다.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 잃는 것이다.” 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라도 하루를 24시간 이상이나 또는 그 이하로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이것은 양적인 의미이다. 질적으로는 차이를 낼 수 있다. 또 바쁘다는 사람도 건강을 염려하고 있고 나름대로 그것을 위해 시간을 쓰고 있다. 골프 ,조깅, 헬스클럽 등으로.
우유배달을 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 새벽에 일어나 걷고, 뛰고, 층계를 오르내리다 보면 하루에 필요한 적당량의 운동을 저절로 하게 되기 때문이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정신건강에도 더 좋다. 똑같은 시간 중에 남보다 한 가지 일을 더하는 즐거움도 있다. 없는 시간에도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야 말로 정말 건강한 사람이다.
건강을 위해 우유를 배달하자!
신문을 돌리자!
그러면 별도의 운동이 필요 없다. 이렇게 아침부터 일하면 튼튼한 다리를 얻는다. 튼튼한 다리는 건강에 자신감을 불러 일으킨다. ‘건강한 육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생긴다.’ 고 말했다.
우리는 우유배달로부터 건강한 육체뿐만 아니라 건강한 정신까지 얻을 수 있다. 이것이 건강의 비결이요, 절묘한 보상의 원리인 것이다.

틀린 시계

어느 작은 마을에서 어떤 남자가 매일 아침 출근길에 시계방을 지나쳤는데, 그 때마다 잠시 멈추어 서서 시계방의 시계를 보며 자기의 시계를 맞추었다. 일요일도 휴일도 없이 일년 내내 변함없이 똑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이에 시계방 주인이 궁금해서 물었다.
“당신은 매일 아침 우리 상점 안에 있는 시계를 보고 당신의 시계를 맞추는데 어디서 무얼 하는 분이 십니까?”그러자 그 남자가 대답했다.
“예, 저는 소방서에 근무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매일 정오가 되면 큰 나팔을 불어 마을 사람에게 알려 줍니다. 사람들이 일손을 멈추고 점심식사를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시계방 주인은 당황했다. “아, 그러세요. 그러나 참 우스운 일도 다 있군요. 나는 여러 해 동안 그 나팔 소리를 듣고 상점 안의 시계들을 고쳐 왔거든요.”하고 말했다 한다.
참으로 어이없고 한심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와 똑같은 일은 아니라 해도 비슷한 일은 있을 수 있다. 잘못된 지식이 무조건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와 같다. 잘못된 소문이 퍼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
좀더 냉철한 비판의식을 가져야 한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은 이제 버려야 한다. 어릴 때부터 사물을 점검하는 버릇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사실로 입증될 때까지 쉽게 믿지 말아야 한다. 틀린 시계를 보고 우리의 시계를 고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가난한 자들은 행복하고, 부유한 자들은 부정직하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만도 않다. 부유한 자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가난한 사람도 부정직한 사람이 있다. 물론 가난한 자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부유한 사람도 부정직한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또 자기하기 나름인 것이다.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정직하게 살아가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다. 행복과 부정직의 문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시간 약속

인도의 간디는 인도가 대영 제국의 지배하에 놓여 있을 때, 무저항주의로 독립 운동을 펴서 세계적인 성인으로까지 추앙받는 사람이다.
어느 날, 회의에 일부 의원들이 늦게 참석하여 회의가 예정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시작되게 되었다. 회의가 시작되면서 간디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몇 사람의 의원이 게으름을 피우는 바람에 우리조국의 독립이 30분 늦어 졌소.”
몇몇 사람이 지각을 했다는 사실에 대한 질책이기도 하거니와, 그 보다도 반세기에 걸친 독립의 숙원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와 같은 게으른 국민성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때 우리 나라에도‘코리아 타임’이라는 말이 있었다. 약속시간에 20,30분 늦는 것에 대해 전혀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우리를 보고, 외국인이 만들어낸 가시 돋힌 힐난이었던 것이다. 궂이 외국인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시간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다섯 사람이 기다리는 약속장소에 1분이 늦으면 자기만의 1분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1분×5사람=5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버린 1분도 60명과 관계가 될 때는 1시간이 되고 나아가 하루도 될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우리 모두 약속시간에 충실한다면 이 사회는 믿음이 가득찬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세번째

마음 먹기

대학의 로젠달 교수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그는 학생들을 3그룹으로 나누어, 각 그룹마다 몇 마리의 흰쥐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먼저, 첫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여러분은 행운아들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실험할 쥐들은 천재 쥐다. 따라서 여러분의 실험 결과는 대단히 좋을 것이다.”그리고 두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여러분은 보통 쥐를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보통의 결과가 예상된다.”그리고 마지막 그룹의 학생들에게는“여러분은 운이 없다. 여러분이 받은 쥐는 바보쥐들이니 별로 기대할 것이 없겠다.”
그 후, 학생들은 자기들이 받은 쥐를 가지고 6주 동안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실험 결과가 로젠달 교수가 말한 그대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즉, 첫 번째 쥐들은 천재같은 반응을 보였고, 두 번째 쥐들은 보통의 반응을, 그리고 마지막 쥐들은 바보같은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런데 로젠달 교수가 그들에게 준 쥐들은 사실은 똑같은 쥐들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교수가 학생들에게 보낸 암시와, 그 말을 믿고 거기에 준하는 실험만을 한 학생, 또 그 준하는 실험에 맞게 행동했던 쥐들의 적응력 때문인 것이다.
결국, 천재 쥐라고 믿었던 학생들은 천재 쥐들이 보일 수 있는 행동을 유도했고, 또 그 쥐들은 그 행동에 걸맞는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보통 쥐와 바보 쥐도, 그들이 받는 대우만큼 반응을 보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 실험 결과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우리의 마음 자세가 어떠냐에 따라 우리의 과정과 결과는 물론 상대방의 과정과 결과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든 우리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바로 우리의 자세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마음의 눈

도술을 배우는 하산이 물 위를 걷는 방법을 알게 되자, 자기의 도술을 자랑하고 싶어 위대한 여인인 라비아를 찾아갔다.
“라비아! 우리 물 위에 올라가 도담이나 나눕시다.”
그러자 라비아가 답하기를 “물위에서요? 그건 시시하니까 구름 위에서 유유히 떠돌며 도담을 나누는 것이 더 낫지 않겠어요?”하고 제안했다. 그러자 하산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아직까지 구름 위로 올라가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는데요.”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라비아는“나도 마찬가지에요. 나는 아직 물 위로 걷는 방법을 모른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물 위를 걷자고 하잖아요. 지금 여기서도 얼마든지 도담을 나눌 수 있는데 말이에요.”하고 말했다 한다.
진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기적이나 신통력에 연연하지 않는다. 또 허세와 과시에도 관심이 없다. 오히려 경솔한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추구하고 따라다닌다. 도는 기적이나 신통력과 관계가 없는 조화이고 자연스러움이다.
“무슨 병을 고친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공중에 뜬다.”하는 것들을 믿는 사람이 의외로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믿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마음은 내세울 게 하나도 없다. 남에게 보이는 것보다 자신을 알차게 하는 것, 그것이 참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도록 진실된 삶에 충실해져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곳이 천국이 되는 것이오, 우리가 머무르는 곳이 극락이 되는 것이다.
기적이 나타난다 해도, 현상학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음의 눈’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 마음의 눈으로 보면, 눈 앞에 보이는 만물이 모두 신비롭고 아름답다. 그래서 천국이요, 극락인 것이다

진짜 효도

옛날 어느 마을에 선비 하나가 있어, 늙은 부모님을 정성껏 모시며 살았다.
그는 부모님을 더욱더 공경하고자, 이웃 마을의 소문난 효자집을 찾아 나섰다. 늙은 홀어머니와 살고 있는 효자집은 보잘것이 없었고, 소문난 효자는 마침 산에 나무하러 가 홀어머니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얼마를 기다리니 저 멀리 나뭇짐을 진 아들이 나타났다. 그러자 늙은 어머니가 나뭇짐을 받아 드는 것이었다. 선비는 이 의외의 광경에 놀랐다. ‘효성이 지극하다는 효자가 어머니에게 그런 일을 시키다니’하며 실망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는 또 한번 놀랐다. 나뭇짐을 내려놓은 어머니가, 이번에는 대야에 물을 떠서 아들의 손과 발을 씻기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 아들은 가만히 있으니 선비는 ‘내가 아마 집을 잘못 찾아왔나 보다’하고 돌아서려는데, 그제서야 아들이 인기척을 듣고 물었다.
“손님께서는 어떻게 오셨는지요?”“누가 이 집에 소문난 효자가 있다기에 왔는데, 아마 내가 잘못 찾아왔나 봅니다.”“부끄럽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데 남들이 그렇게 부른답니다.”“당신을 모르고 그렇게 불렀지, 어디 당신하는 짓을 보면 효자라 하겠소?”“예, 손님. 저는 효도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저는 다만 어머님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려야겠다고만 생각하고 그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무거운 짐을 들게 하는 것도, 발을 닦게 하는 것도, 어머님께서 그렇게 하셔야 즐거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 못하시도록 말릴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선비는 크게 깨달았다. 진짜 효도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던 것이다. 요즈음 우리는 부모님을 봉양한답시고, 부모님의 참뜻과는 관계없는‘아무 일도 못하시게 한다’든가, ‘호화 아파트에 모셔 놓고 손자 손녀도 없는 쓸쓸한 생활’을 강요하고 있지나 않는지 모르겠다. 부모님을 모시면서, 부모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진짜 효도인 것이다.

변화의 시대

어떤 실험결과를 놓고, 우리는 몇 가지 응용을 할 수 있다. 그 실험은 몇 마리의 벌과 같은 수의 파리를 잡아 빈 병에 각각 넣고, 병의 바닥이 창가 햇빛을 향하게 하여 쓰러뜨려 놓은 뒤, 그 결과를 관찰하는 실험이다. 물론 병마개는 떼어놓는다.
그러면 벌은, 밝은 병바닥쪽으로 모여 출구를 찾아보려고 애를 쓰다가 지쳐 죽는다. 그러나 파리의 경우는, 2분도 채 안되어 반대쪽의 병입구로 모두 빠져나간다고 한다.
이 실험은 벌이 갖는 획일성 .밝은 쪽에 출구가 있다는 생각의. 이, 파리의 무계획적인 다양성보다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해서, 벌의 논리성보다 파리의 의외성이 어떤 문제에서는 더 적합하다는 얘기다.
이 실험을 한 학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벌과 파리의 실험결과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논리성과 더불어 시행착오, 임기응변, 의외성 등의 다양한 요소도 동원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실험에서 벌은 논리성으로, 파리는 유연성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창의성에 관한 책을 저술한 로버트 올슨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창의성(Creativity)이란 유창성(Fluency)과 유연성(Flexibility)의 조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유창성이란 어떤 문제에 대해 수많은 대안을 빠르고 거침없이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고, 유연성은 상식을 뛰어 넘는 비상한 생각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말뜻은 창조적인 사람들은 수평적 사고라 할 수 있는 순발력, 기지 등의 유창성과, 수직적 사고라 할 수 있는 융통성, 의외성 등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실, 21세기를 몇 년 앞둔 지금, 많은 학자들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단어중에 하나로‘변화’를 꼽는다. 그만큼 최근의 변화속도는 과거의 그 어느 때 보다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살아 가려면, 정론화된 단순논리로서는 불확실한 것이며 융통성도 반드시 함께 필요한 것이다. 벌의‘논리성’과 파리의‘융통성’이 모두 필요한 것이다.

교활한 상인

미국 시카고 어느 길가에 자리잡은 남성복 가게는, 귀머거리를 가장한 교활한 방법으로 여덟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대학까지 교육시켰다고 한다. 이 가게는 두 명의 동업자로 운영되었는데, 고객이 찾아오면 그 중 한 사람이 손님에게 자기들 상품의 우수성과 이옷 저옷의 장단점을 장황스럽게 설명하곤 했다. 그러다가 손님이 “그럼 이 옷의 가격은 얼마입니까?”하고 물으면, 그 판매원은 손님의 입 가까이 귀를 갖다대면서 큰 소리로“뭐라고요?”하고 되묻는다. 그러면 손님이 큰 소리로 “가격이 얼마냐구요?”하고 말하면 판매원은 다시“뭐라고요?”하고 또 묻는다. 이에 고객이 “옷 값이 얼마냐구요?”하고 소리를 크게지를 때, 이제서야 알아들었다는듯“오, 가격이요, 나는 잘 모르니 사장님께 물어볼께요.”하고 말한 다음, 저편에 있는 다른 동업자를 향하여 큰 소리로“사장님, 아름다운 바닷물빛 단추가 두 줄로 달린 옷의 가격이 얼마입니까?”하고 소리치는데 이 때 사장은 “48달러야!”하고 답하면, 판매원은 “들으셨죠. 사장님께서 28달러라고 말씀하시는데요”라고 말한다고 한다. 그러면 손님은 젊은이든 노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얼른 28달러를 지불하고 재빠른 발걸음으로 급히 문을 나선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약점을 노리는 그들의 교활한 상술을 알게됨과 동시에, 인간이 자기의 이익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하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들 동업자의 교활한 상술도 얄밉지만, 자기의 작은 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래서 보다 큰 것을 잃고 마는 무지 또한 안스럽기만 하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으로 대변되는 힘의 논리보다, ‘상부상조’나 ‘옥석동체’의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그립기만 하다.

자녀교육

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의미있는 판결문이 있어 소개한다.
6세 미만: 그냥 놀아도 됨. 아무것도 안 해도 됨.
6~10세: 설거지, 청소, 슈퍼마켓 심부름 등 잔일을 도와야 함.
10~14세: 설거지, 잔디 깍기, 유리창 닦기.
14~16세: 부모의 자동차 세차, 잔디 깍기.
16~18세: 전기시설 고치기, 가구 수리, 바닥 닦기, 집안 청소 등.
이상의 내용은 독일 부루크 시의 지방법원에서 어떤 판사가 내린 판결문의 구체적 내용이다. 판사는 이러한 판결을 선언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서론을 얘기했다.
“부모의 설거지나 잔디 깍기 등을 도우려 하지 않는 자녀들은 그가 비록 미성년자라 할지라도, 그는 우리 독일의 수백 년 전통을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녀들에 대해서는 부모가 법에 호소해서라도 올바른 자녀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며, 또 반항적인 자녀들에게는 부모가 강제로 노동을 명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말한 다음, 앞의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지난해 우리는‘박한상 사건’, ‘지존파 사건’, ‘온보현 사건’, ‘장교탈영 사건’등 어처구니 없는 인륜파괴 행위와 사회기강 해이의 헛점을 들어냈다. 그 분야의 많은 전문가들은 그 가장 큰 원인으로 가정에서의‘자녀교육 부재’를 들고 있다. 자녀교육 부재가 한 가정은 물론, 사회에도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제 자녀교육의 필연성은 심각한 현안으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선각자들의 다음과 같은 말을 명심하면서 우리 모두 긴 안목을 갖고, 자녀교육에 적극 나섰으면 한다.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안창호) “한 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의 청년교육에 달려 있다.”(아리스토 텔레스) “그 나라의 젊은이를 내게 보여 달라. 그러면 나는 그 나라의 장래를 점칠 수 있다.”(서양의 어느 시인)

시작의 의미

모짜르트는 음악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 다른 곳에서 음악을 배운 적이 있습니까?” 만일 학생이 “예, 배운 적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모짜르트는 “그럼 수업료를 두 배로 내십시오.”라고 말했다 한다. 그러나 이전에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수업료를 반만 내십시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한 제자들은 모짜르트에게 항의를 했다. “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수강료의 반만 받으면서 우리처럼 10년이나 음악공부를 해 온 사람에게는 오히려 두 배나 받으시니 도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이에 모짜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당연한 이유가 있지요. 음악을 배웠던 사람이 오면, 이미 잘못 길든 습관 때문에, 그 습관을 뜯어 고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이 일은 아무 것도 배우지 않은 사람을 가르치는 것보다 두 배도 더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배우는 사람은 그냥 가르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첫 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모짜르트의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주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잘못 배운 지식, 잘못 길든 습관, 잘못 산 인생들은 잘못 그 자체 보다 그 잘못으로 인해 파생되는 후유증이 더욱 심각한 것이다.
잘못 배운 지식은 우리의 판단을 그릇되게 하고, 잘못 길든 습관은 우리의 행동을 어렵게 한다. 또, 잘못 산 인생은 우리를 후회스럽게 만든다. 처음부터 깊이 생각하고 멋진 답안지를 작성한다는 것은, 보기 좋다는 것 이외에도 잘못에서 오는 이러한 오류들을 막을 수 있는‘최선과 최고의 선택’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마지막 단추도 잘 끼울 수 있다는 말을 명심하자.

뻐꾸기의 적응력

인간은 자연계로부터 무한한 섭리를 배울 수 있다. 뻐꾸기를 통해 한번 배워 보자.
뻐꾸기:두견이과의 새. 두견이와 비슷하나 훨씬 큼. 몸 빛깔은 검은빛을 띤 회색. 개개비 따위의 다른 새 둥지에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며, 주로 곤충류를 잡아먹고 삶.(이하 생략). 국어사전에 풀이된 뻐꾸기 내용이다.
국어사전에 풀이된 바와 같이, 뻐꾸기는 남의 둥우리에 알을 낳는다. 이러한 행위는 뻐꾸기 특유의 게으름이나 얌채짓 때문이라고 알려져 왔으나, 그 얌채짓이 특정 독성에 중독된 현상 때문이라고 조류학자들이 밝혔다. 즉, 뻐꾸기가 주로 먹는 나방의 에벌레에 정신을 혼몽시키는 독성이 있어 수십, 수만 년 계속되는 도중에 중독이 된 일종의 마비현상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초(?)의 환경오염 피해 동물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그 이유를 알고 보면, 뻐꾸기의 그 얌채짓에도 다소나마 동정이 간다. 독성이 모성애마저 앗아간 것이니까.
그러나 모성애는 잃었지만, 최후의 본능인 종족번식의 강한 집념은 남다른 면이 있다. 뻐꾸기는 산란기가 되면 우선 그 위탁 대상의 새를 찾는다. 다른 새가 포란하기 위하여 둥지를 틀면 뻐꾸기는 즉시 교배를 하고 수정을 한 후, 그 대상의 새가 알 낳기를 기다린다. 종족 번식의 집념이 자연 본능의 알 낳는 시기까지 조정하는 것이다. 대상의 새가 드디어 알을 낳아 둥지를 비우면, 얼른 그 둥지로 날아가 자기의 알을 낳고 다른 알을 하나 떨어뜨린다. 이러한 작업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뻐꾸기의 등에는 움푹 패인 곳이 있다 한다. 적자생존, 용불용설이 그대로 적용된다 하겠다.
만일 새가 알을 낳고 둥우리를 떠나지 않으면 기막힌 대안이 있다. 이럴 때는 암수 모두 합동작전을 벌이는데, 숫놈이 둥지 위로 날아가 매의 날개짓 흉내를 내어 새가 둥지를 떠나도록 한다는 것이다. 무서운 집념으로 목적을 달성한다.
놀랄 일은 아직도 계속된다. 이렇게 해서 가짜 어미새로부터 부화되는 새끼 뻐꾸기는 다른 알보다 1~2일 먼저 부화하여 (자기의 신분이 발각될까봐?) 다른 알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짜 어미새로부터 20~23일간 먹이를 받아 먹고 성장하다가 둥지를 떠난다는 것이다. 뻐꾸기 나름대로의 적응력에, 신비감과 경이로움 그리고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성공의 공식

여러분은 성공에도 공식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미국의 방송 컬럼니스트인 얼 나이팅게일의 성공의 공식을 들어 보자.
그는 이 공식을 얘기하기에 앞서, 우리가 갖고 있는 잘못된 생각 하나를 먼저 지적했다. 그는“우리가 갖는 의외의 잘못된 생각 중에 하나는 성공이 행운의 문제요, 한탕주의, 부자로 태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잘못된 생각으로 보는 이유는 성공이란 1+2=3처럼 간단하고 확실한 것인데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계산하다가 실패를 거듭한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그가 제시하는 성공의 공식을 알아보자.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면 이렇다.
“일평생은 년, 월, 주 그리고 날들로 구성된다. 일평생의 기본 단위는 하루다. 그리고 우리의 생애 중 하루는 각자의 어떤 행동으로 이루어지고 또 엮어지고 있다. 하루를 성공적인 날이 되게 하려면, 우리의 각 행동은 성공적이어야 한다. 성공적인 날을 일평생 동안 반복하면, 당신은 일평생의 성공을 맛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위대한 것을 위해서 이리저리 뛸 필요도 없다. 당신이 얼마나 많이 행동하느냐가 문제다. 내주의 일을 오늘 하려고 노력하지 마라. 오늘의 일을 가능한 최대로 하라. 그리고 내일의 일은 내일로 미루어 하라. 한 번에 하나씩하라.”
이것이 그가 말하는 성공의 공식이다. 얼마나 명쾌한 설명인가! 사실, 얼 나이팅게일의 이 설명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성공에 대한 얘기를 많이 알고 있다. 그것들 모두는 하나도 신비로운 것이 없다. 우리가 성공을 위해 매일매일 얼마나‘행동’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성공은 수학적으로 예측되고 또 계산될 뿐이다. 그러니 오늘부터 성공의 공식대로 우리의 하루 행동을 성공적으로 엮어 보자.

참 행복

어떤 부유한 상인이 생가이 대사에게‘자기 가족의 번영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좋은 말’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대사는 붓과 먹을 가져온 후 다음과 같이 말을 적었다.
“할아버지가 죽는다. 아버지가 죽는다. 아들이 죽는다.” 이렇게 불길한(?) 얘기가 적힌 종이를 받은 상인은 매우 화가 나서 대사에게 즉시 따지고 물었다. “도대체 내용이 이게 뭡니까? 우리 가족을 위해 겨우 이 말씀을 적어 주십니까?”이에 대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말은 나쁜 말이 아닐세. 오히려 그대에게 가장 큰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말일세. 들어보게나, 나는 그대 집안 사람들이 모두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살라는 뜻을 적은 것일세. 또 이 말은, 할아버지보다 먼저 죽는 아들이나 손자가 한명도 없기를 바란다는 뜻일세. 만일 그대 가족이 이와 같이 순서대로 죽지 않는다면, 집안에 이 보다 큰 불행이 어디 있겠나? ‘집안의 진실한 행복’은 이와 같이 순서대로 태어나서 순서대로 죽는 것이네.”
이 말을 듣고 상인은 “옳은 말씀이십니다.”하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처럼, 듣고 보니 말은 된다. 우리는 항상 행복을 원하며, 또 그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참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행복은 돈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권력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순응하며 아무 문제없이 사는것, 그것이 어쩌면 가장 의미있는 행복 일 수 있는 것이다.

네번째

포기하지 마라!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인물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우리도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자식 교육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환경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현왕과 명신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이해하다’의 말뜻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단 하나뿐인 목숨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1류 국가, 1류 국민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분발력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다섯번째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사마천의 사기에 있는 이야기다. 초나라 장왕이 어느 날 신하들을 모아 놓고 연회를 베풀며 말했다.
“오늘 밤은 신분이나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마음껏 즐겨 보자!”
좀처럼 얻기 힘든 격식 없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므로, 군신이 모두 한껏 마시며 즐겼다. 그런데 어디서 바람이 불어와 갑자기 모든 불이 꺼졌고, 주위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칠흑같이 깜깜해졌다.
이 때, 이것을 기회로 왕의 애첩을 희롱한 신하가 있었다. 이에 애첩이 놀라 신하의 갓끈을 잡아 당겨 갓끈이 끊어졌다. 애첩은 장왕에게 그대로 보고했다. “어떤 사람이 저를 희롱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갓끈을 끊어 놓았으니 이제 불을 켜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애첩의 얘기를 들은 장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오늘밤은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즐기는 주연이다. 우리 모두 갓끈을 잘라버리고 계속 마음껏 즐기자.”
이리하여 참석자 모두의 갓끈이 잘렸고 이 날의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수년 후, 초나라는 막강한 진나라와 싸우게 되었다. 그런데 한 용사가 있어, 항상 선두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다. 그 용사의 맹활약에 힘입어 초나라 군사의 사기는 충천했고 결국 강력한 진나라를 물리칠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장왕이 그를 불렀다.
“그대 같은 훌륭한 용사를 내 미처 몰라 보았으니 심히 부끄럽구나. 그런 용맹이 어디에서 나온단 말이냐?”
하고 물었다. 이에 그 용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벌써 죽었던 몸입니다. 술에 취해 폐하께 큰 죄를 지었는데도 폐하께서 저를 살려주셨기에, 저는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 뿐 입니다. 그날 밤 갓 끈을 뜯긴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너그러운 마음씨로 감싸 준다면 언젠가는 몇배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면, 이 사회는 화해와 사랑이 가득 찬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언쟁하지 말자

한 노인이 허기진 배를 참으며 빵가게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갓 구워낸 기름진 빵이 유난히도 맛있어 보여 노인의 식욕을 당겼다. 노인은 끝내 참지 못하고 덥석 빵 하나를 잡고는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광경은 곧 주인의 눈에 띄었다. 주인은 이내 달려가 할아버지를 붙잡았고, 왜 그런 짓을 했느냐는 질책과 함께 경찰서로 넘겨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노인은 재판을 받게 되었다. 재판관이 노인에게 물었다.
“어째서 남의 가게 물건을 훔쳤습니까?”
그러자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 날 나는 아침을 굶고 그 가게 앞을 지나고 있었는데, 워낙 허기가 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빵을 움켜잡고 말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재판관은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법을 어긴 그 할아버지를 그냥 용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할아버지의 처지는 매우 딱합니다만 법을 어기셨으니 2만 센트의 벌금을 내셔야 합니다.”
말을 마친 재판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호주머니에서 2만 센트의 돈을 꺼내어 할아버지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는 자리에 참석한 방청객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이 할아버지가 빵을 훔치지 않으면 안되는 이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도 벌금을 내야 합니다. ”
이렇게 하여 할아버지가 법정 문을 나설 때는 15만 센트라는 적지 않은 돈을 호주머니에 넣게 해 줄 수가 있었다.
재판관의 이 판결 내용을 보면, 우리는 빵을 훔친 할아버지의 범죄행위만 죄가 되는 것이 아니고, 알게 모르게 빵을 훔치도록 만든 원인 제공자에게도 얼마의 죄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록 그것이 도덕적인 것이라고는 해도….

작은 것과 큰 것

뉴욕에서 조그맣게 목재상을 하던 사람이 짧은 기간 내에 부자가 되었다. 동종 업계에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는데도, 그 사람만 유독 수백만 불의 수입을 올린 것이었다. 이에 기자들이 몰려가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매일 캄캄한 방에 홀로 앉아, 앞으로 10년 동안 목재 업계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를 깊이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떠오른 생각들을 열심히 ‘기록’ 했으며, 10년을 기다리지 않고 즉시 그때 그때 ‘실천’ 해 왔습니다. 이렇게 ‘계속’ 해 온 것이 전부입니다.”
이 목재상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간단히 요약 될 수 있다.
즉, 생각-기록-실천-또 생각-또…..
사실, 이러한 행위는 창조적인 행위다. 많은 창조성에 관한 책들은 한결같이 이와 같은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이 목재상이 창조적인 행위를 계속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준비보다는 하루 하루의 결과에만 신경을 써 왔고 그래서 그들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또 목재상은 이러한 행위를 계속하는 중에 “경쟁하지 말자, 창조하자!” 라는 비결을 터득했다고 한다.
사실, 성공의 기회는 어디에도 있고, 누구에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원하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공의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성공의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어떠한 위치에서도, 어떠한 순간에서도, 성공의 기회를 포착할 수가 있다. 지금도 우리 주위를 조금만 눈여겨 살펴보면, 이른 아침에 괘종시계와 함께 일찍 일어나 ‘생각’ 하기 시작하며, 뉴스와 라디오를 들으면서 ‘기록’ 하고 있으며, 샤워와 면도를 하면서 ‘실천’ 하는 창조적인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람은 하루가 끝나는 밤이 되면 벌써 놀랍게 성장해 있으며, 그 행위를 매일 ‘계속’ 하는 동안 목재상과 같은 큰 성공을 예약하고 있는 것이다.

세심한 배려

얼마 전, 모 회사의 사원모집 광고 내용에서 ‘진취적인 기상, 적극적인 사고방식, 그리고 야무진 끝마무리’ 라는 내용의 문구를 읽은 적이 있다. 앞의 두 구절은 흔히 보아 온 것이라 해도, 맨끝의 ‘야무진 끝마무리’ 라는 문구는 이채로웠다.
사실, 최근 빈번히 발생했던 각종 대형 사고들도 따지고 보면 이 야무진 끝마무리가 약해서 생겨난 일들이다.
야무진 끝마무리의 중요성은 이런 사회 문제 뿐만 아니라, 학문 분야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배우는 ‘주기율표’ 에 얽힌 에피소드도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교과서에서는 주기율표가 1869년 러시아의 D.I.멘델레예프에 의해 고안되었다고 적혀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 4년 전 1865년에, 영국의 J.A.R. 뉼랜즈라는 화학자가 이와 유사한 내용을 발표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뉼랜즈의 발표 내용에서 사소한 문제를 트집 잡아 시비를 걸자, 뉼랜즈는 의기소침하여 이 발표를 포기했고 그 업적은 멘델레예프에게 넘어갔던 것이다. 끝까지 마무리를 짓지 못하여 실패한 경우이다.
반면에, 1825년 ‘증기 기관차’를 발명한 G. 스티븐슨의 경우는 끝마무리에 성공한 경우라 하겠다. 그가 증기 기관차를 처음으로 발명했을 때도 뉼랜즈와 비슷한 비난이 이어졌다. 당시 스티븐슨이 발명한 기관차는 무게가 90톤이나 되는데다, 시속 16-19km밖에 주행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기관차의 속도는 말보다도 느리면서, 소리는 수천 필의 말보다 요란하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스티븐슨은 이러한 비난에도 물러서지 않고 연구를 거듭하여, 4년 후인 1829년에 객차 하나까지 끌고도 최대 시속46km로 달릴 수 있는 기관차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성공의 마지막 단계까지도 시련이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 마지막 시련까지 극복할 수 있는 야무진 끝마무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 준 예라 하겠다. 우리도 방심하지 말고 야무진 끝마무리를 해야 할 것이다.

백락과 천리마

한 쌍의 정다운 부부가 배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다. 남편은 무사로서 대담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아내는 상냥한 여인이었다. 얼마를 가니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쳐 파도에 배가 몹시 흔들렸다.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긴급한 상황이었다. 아내는 불안한 표정으로 남편을 살펴보았으나 남편은 태연히 앉아만 있었다.
아내가 끝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이 대담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꿈쩍 않는단 말이에요?”
그래도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내가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남편은 갑자기 자기의 칼을 빼내여 아내의 목에 들이댔다. 그러나 아내는 오히려 웃으며,
“아니, 당신은 이럴 때 장난까지 할 수 있단 말이에요?” 하며 무시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남편은,
“지금 당신 목에 칼이 와 있는데도 당신은 웃음이 나온단 말이오?” 하고 말했다.
이에 아내는,
“만일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놀랐겠지요. 그러나 당신이니까 무섭지 않네요.”
하고 대답했다. 무사는 칼을 도로 칼집에 넣으며,
“그렇소, 폭풍도 마찬가지라오. 폭풍도 내가 믿는 신의 손 안에 있는 것이요. 그런데 내가 왜 두려워 하겠소.” 했다는 것이다.
완전한 믿음이 있으면 어떠한 불안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종교 얘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확신을 가지라는 말이다. 우리의 생활 중에 만나는 걱정거리나 불안의 실체는, 40%는 절대로 생기지 않는 것이요, 30%는 아무리 걱정한다 해도 변화시킬 수 없는 과거사에 관한 것이요, 12%는 우리의 건강에 쓸모없는 것이요, 10%는 사소한 걱정이요, 오직 8%만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진정한 걱정거리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런데 왜 걱정하는가?
오직 8%의 진짜 걱정거리만 걱정하자. 12일 중에서 1일만 진짜로 걱정하고, 나머지 11일은 걱정 없이 살아가자.

기름 장수의 교훈

퇴계 이황 선생, 조선조 중기의 대학자로서 만인에게 칭송을 받던 분이었고 중종ㆍ명종ㆍ선조의 지극한 존경도 받았으며, 특히 명종은 여러 번 소명을 내리면서까지 선생을 불렀건만, “신은 몸이 늙고 병들어 그 같은 높은 벼슬을 받아들일 수가 없사오니 거두어 주옵소서. 신은 학자로서 학문에만 전념해 후진을 양성하겠습니다.” 고 하셨던 퇴계 선생. 선생의 고결한 삶에 걸맞는 마지막 모습을 소개한다.
때는 1570년 11월, 선생은 병석에 누워 임종을 맞이하고 계셨다. 곁에는 임종을 염려한 여러 가족과 친지 그리고 제자들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밖의 날씨는 쌀쌀했지만 청명한 하늘에 기러기떼가 한가로이 날고 있었다. 방안에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가구 몇 점과 그 위에 매화분이 보일 뿐이었다.
선생은 평소와 다름없는 평안한 표정으로 주위 사람을 둘러본 뒤, 매화분 앞에서 눈길을 멈추었다. 그리고 선생은 옆의 아들에게 이르기를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 하고 이르셨다.
다시 얼마가 지나 저녁 무렵이 되었다. 누워 있던 선생은 조용히 말하기를, “자리를 정리하라!” 고 하셨다. 아들과 제자가 자리를 정리하자, 꼿꼿이 않은 자세를 취하시고는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이것이 선생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우리는 동서고금을 통하여, 위대한 인물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기는 최후의 명언을 많이 알고 있다. 허나, 선생처럼 명언 아닌 명언을 남기신 분도 그리 흔하지 않다. 항상 책과 더불어 갈고 닦으신 고결한 인품에 걸맞는 운명이 아닌가 한다.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 는 말에서 선생의 생명에 대한 깊은 애정을, “자리를 정리하라!”고 하신 말씀에서 끝까지 고결한 인품을 잃지 않는 경건함을 느끼게 된다. 그야말로 학문에만 뜻을 두고, 한 평생 보내신 진실한 사람에게는 ‘죽음도 두려운 것이 아니다’ 라는 교훈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우리 모두 선생이 남기신 마지막 교훈, ‘진실하게 살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 는 뜻을 받들어 성실한 삶을 살아야겠다.

충격의 반사 이익

옛날 프랑스 어느 마을 입구에서, 파리행 마차가 손님 몇 분을 태우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어떤 형제 둘이 마부에게 다가왔습니다. 형은 15세, 동생은 10세 남짓한 귀엽게 생긴 얼굴들이었습니다. 형의 어깨에는 무거워 보이는 큰 가방이 메어져 있었고, 동생은 다리를 몹시 절었습니다.
형이 마부에게 물었습니다.
“내 동생이 파리까지 가야 하는데 빈 자리가 있습니까?”
“그래, 아직 저기에 몇 좌석이 남아 있단다. 원하는 자리에 앉도록 해라.”
“예, 고맙습니다.”
하고 말하며, 형은 주머니에서 동생의 요금을 지불했습니다.
동생이 마차에 오르자 형은 무거운 가방을 마차 위에 올려놓고 미소를 띄우며 동생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소 근심스런 표정의 동생은 맨 끝자리에 서서,
“형, 괜찮겠어?”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형은,
“걱정 말아라. 나는 건강하잖니?”
하며 어깨를 으쓱이며 동생을 안심시키려는 듯 과장스런 태도까지 보였습니다.
마차가 출발했습니다.
마차 안 맨 끝자리에 서있던 동생은, 여전히 형과 헤어진 뒤쪽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차 안의 사람들은 이 다정한 형제의 작별 순간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잠시면 끝날 줄 알았던 동생의 태도가,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습니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동생의 모습은 변화가 없습니다. 여전히 뒤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마차 뒤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형이 마차를 따라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람들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형제의 뜨거운 이별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그리고도 얼마를 더 달렸습니다. 시간이 꽤나 흘렀습니다. 마차를 따라오던 형이 이제는 지쳤는지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습니다. 형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러나 마차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습니다. 이때까지 맨 뒤에서 형의 따라오는 모습을 지켜보던 동생이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한 부인이 동생에게 나직하게 말했습니다.
“얘야, 너의 형은 이제 집으로 돌아갈 거야.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그러자 동생이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우리는 돌아 갈 집이 없어요.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지금 우리는 할아버지가 계시는 파리로 가고 있는 중이에요. 그러나 차비가 한 사람 몫밖에 없기 때문에, 형은 내가 탄 이 마차를 따라오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형이 지쳐서 못 따라오고 있어요. 내가 발이라도 정상이라면 대신 뛰어…….”
하더니 말을 마치지도 못하고 소리 내어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이 말을 손님과 함께 듣고 있던 마부가 즉시 마차를 세웠습니다.
손님들은 함께 동생의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마부는 돈을 받지 않고 형을 태워 주었으며, 손님들은 이 의좋은 형제에게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얼마의 돈이 모아져, 이 대단한 형제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이 기특한 형제는 마차에 올라 긴(?) 이별 끝에 다시 만난 재상봉의 기쁨에 활짝 웃었습니다.
프랑스 동화인 이 아름다운 얘기가, 얼어붙은 이 대지를 그리고 메마른 인정과 형제애를 한껏 녹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상황 파악

“건강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신선한 우유를 받아 마시는 사람보다, 그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 라는 말이 있다.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일하면서 건강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절묘한 보상’ 이라 부르고 싶다.
많은 사람이 건강의 중요성을 느끼고 또 그것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절묘한 보상의 원리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매일 아침 집에서 우유를 받아 마시던 일을 우유배달로 바꾸어야 한다. 다른 일이 많기 때문에 그럴 시간이 없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옳은 얘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건강보다 우선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명언이 이를 말해 준다.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 잃는 것이다.” 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라도 하루를 24시간 이상이나 또는 그 이하로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이것은 양적인 의미이다. 질적으로는 차이를 낼 수 있다. 또 바쁘다는 사람도 건강을 염려하고 있고 나름대로 그것을 위해 시간을 쓰고 있다. 골프 ,조깅, 헬스클럽 등으로.
우유배달을 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 새벽에 일어나 걷고, 뛰고, 층계를 오르내리다 보면 하루에 필요한 적당량의 운동을 저절로 하게 되기 때문이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정신건강에도 더 좋다. 똑같은 시간 중에 남보다 한 가지 일을 더하는 즐거움도 있다. 없는 시간에도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야 말로 정말 건강한 사람이다.
건강을 위해 우유를 배달하자!
신문을 돌리자!
그러면 별도의 운동이 필요 없다. 이렇게 아침부터 일하면 튼튼한 다리를 얻는다. 튼튼한 다리는 건강에 자신감을 불러 일으킨다. ‘건강한 육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생긴다.’ 고 말했다.
우리는 우유배달로부터 건강한 육체뿐만 아니라 건강한 정신까지 얻을 수 있다. 이것이 건강의 비결이요, 절묘한 보상의 원리인 것이다.

편견이 주는 교훈

어느 작은 마을에서 어떤 남자가 매일 아침 출근길에 시계방을 지나쳤는데, 그 때마다 잠시 멈추어 서서 시계방의 시계를 보며 자기의 시계를 맞추었다. 일요일도 휴일도 없이 일년 내내 변함없이 똑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이에 시계방 주인이 궁금해서 물었다.
“당신은 매일 아침 우리 상점 안에 있는 시계를 보고 당신의 시계를 맞추는데 어디서 무얼 하는 분이 십니까?”그러자 그 남자가 대답했다.
“예, 저는 소방서에 근무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매일 정오가 되면 큰 나팔을 불어 마을 사람에게 알려 줍니다. 사람들이 일손을 멈추고 점심식사를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시계방 주인은 당황했다. “아, 그러세요. 그러나 참 우스운 일도 다 있군요. 나는 여러 해 동안 그 나팔 소리를 듣고 상점 안의 시계들을 고쳐 왔거든요.”하고 말했다 한다.
참으로 어이없고 한심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와 똑같은 일은 아니라 해도 비슷한 일은 있을 수 있다. 잘못된 지식이 무조건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와 같다. 잘못된 소문이 퍼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
좀더 냉철한 비판의식을 가져야 한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은 이제 버려야 한다. 어릴 때부터 사물을 점검하는 버릇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사실로 입증될 때까지 쉽게 믿지 말아야 한다. 틀린 시계를 보고 우리의 시계를 고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가난한 자들은 행복하고, 부유한 자들은 부정직하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만도 않다. 부유한 자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가난한 사람도 부정직한 사람이 있다. 물론 가난한 자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부유한 사람도 부정직한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또 자기하기 나름인 것이다.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정직하게 살아가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다. 행복과 부정직의 문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시간 살림꾼

인도의 간디는 인도가 대영 제국의 지배하에 놓여 있을 때, 무저항주의로 독립 운동을 펴서 세계적인 성인으로까지 추앙받는 사람이다.
어느 날, 회의에 일부 의원들이 늦게 참석하여 회의가 예정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시작되게 되었다. 회의가 시작되면서 간디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몇 사람의 의원이 게으름을 피우는 바람에 우리조국의 독립이 30분 늦어 졌소.”
몇몇 사람이 지각을 했다는 사실에 대한 질책이기도 하거니와, 그 보다도 반세기에 걸친 독립의 숙원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와 같은 게으른 국민성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때 우리 나라에도‘코리아 타임’이라는 말이 있었다. 약속시간에 20,30분 늦는 것에 대해 전혀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우리를 보고, 외국인이 만들어낸 가시 돋힌 힐난이었던 것이다. 궂이 외국인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시간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다섯 사람이 기다리는 약속장소에 1분이 늦으면 자기만의 1분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1분×5사람=5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버린 1분도 60명과 관계가 될 때는 1시간이 되고 나아가 하루도 될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우리 모두 약속시간에 충실한다면 이 사회는 믿음이 가득찬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여섯번째

대화술의 중요성

대학의 로젠달 교수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그는 학생들을 3그룹으로 나누어, 각 그룹마다 몇 마리의 흰쥐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먼저, 첫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여러분은 행운아들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실험할 쥐들은 천재 쥐다. 따라서 여러분의 실험 결과는 대단히 좋을 것이다.”그리고 두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여러분은 보통 쥐를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보통의 결과가 예상된다.”그리고 마지막 그룹의 학생들에게는“여러분은 운이 없다. 여러분이 받은 쥐는 바보쥐들이니 별로 기대할 것이 없겠다.”
그 후, 학생들은 자기들이 받은 쥐를 가지고 6주 동안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실험 결과가 로젠달 교수가 말한 그대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즉, 첫 번째 쥐들은 천재같은 반응을 보였고, 두 번째 쥐들은 보통의 반응을, 그리고 마지막 쥐들은 바보같은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런데 로젠달 교수가 그들에게 준 쥐들은 사실은 똑같은 쥐들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교수가 학생들에게 보낸 암시와, 그 말을 믿고 거기에 준하는 실험만을 한 학생, 또 그 준하는 실험에 맞게 행동했던 쥐들의 적응력 때문인 것이다.
결국, 천재 쥐라고 믿었던 학생들은 천재 쥐들이 보일 수 있는 행동을 유도했고, 또 그 쥐들은 그 행동에 걸맞는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보통 쥐와 바보 쥐도, 그들이 받는 대우만큼 반응을 보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 실험 결과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우리의 마음 자세가 어떠냐에 따라 우리의 과정과 결과는 물론 상대방의 과정과 결과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든 우리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바로 우리의 자세에 달려 있는 것이다.

3할6푼7리의 성공

도술을 배우는 하산이 물 위를 걷는 방법을 알게 되자, 자기의 도술을 자랑하고 싶어 위대한 여인인 라비아를 찾아갔다.
“라비아! 우리 물 위에 올라가 도담이나 나눕시다.”
그러자 라비아가 답하기를 “물위에서요? 그건 시시하니까 구름 위에서 유유히 떠돌며 도담을 나누는 것이 더 낫지 않겠어요?”하고 제안했다. 그러자 하산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아직까지 구름 위로 올라가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는데요.”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라비아는“나도 마찬가지에요. 나는 아직 물 위로 걷는 방법을 모른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물 위를 걷자고 하잖아요. 지금 여기서도 얼마든지 도담을 나눌 수 있는데 말이에요.”하고 말했다 한다.
진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기적이나 신통력에 연연하지 않는다. 또 허세와 과시에도 관심이 없다. 오히려 경솔한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추구하고 따라다닌다. 도는 기적이나 신통력과 관계가 없는 조화이고 자연스러움이다.
“무슨 병을 고친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공중에 뜬다.”하는 것들을 믿는 사람이 의외로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믿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마음은 내세울 게 하나도 없다. 남에게 보이는 것보다 자신을 알차게 하는 것, 그것이 참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도록 진실된 삶에 충실해져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곳이 천국이 되는 것이오, 우리가 머무르는 곳이 극락이 되는 것이다.
기적이 나타난다 해도, 현상학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음의 눈’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 마음의 눈으로 보면, 눈 앞에 보이는 만물이 모두 신비롭고 아름답다. 그래서 천국이요, 극락인 것이다

독서의 의미

옛날 어느 마을에 선비 하나가 있어, 늙은 부모님을 정성껏 모시며 살았다.
그는 부모님을 더욱더 공경하고자, 이웃 마을의 소문난 효자집을 찾아 나섰다. 늙은 홀어머니와 살고 있는 효자집은 보잘것이 없었고, 소문난 효자는 마침 산에 나무하러 가 홀어머니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얼마를 기다리니 저 멀리 나뭇짐을 진 아들이 나타났다. 그러자 늙은 어머니가 나뭇짐을 받아 드는 것이었다. 선비는 이 의외의 광경에 놀랐다. ‘효성이 지극하다는 효자가 어머니에게 그런 일을 시키다니’하며 실망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는 또 한번 놀랐다. 나뭇짐을 내려놓은 어머니가, 이번에는 대야에 물을 떠서 아들의 손과 발을 씻기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 아들은 가만히 있으니 선비는 ‘내가 아마 집을 잘못 찾아왔나 보다’하고 돌아서려는데, 그제서야 아들이 인기척을 듣고 물었다.
“손님께서는 어떻게 오셨는지요?”“누가 이 집에 소문난 효자가 있다기에 왔는데, 아마 내가 잘못 찾아왔나 봅니다.”“부끄럽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데 남들이 그렇게 부른답니다.”“당신을 모르고 그렇게 불렀지, 어디 당신하는 짓을 보면 효자라 하겠소?”“예, 손님. 저는 효도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저는 다만 어머님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려야겠다고만 생각하고 그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무거운 짐을 들게 하는 것도, 발을 닦게 하는 것도, 어머님께서 그렇게 하셔야 즐거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 못하시도록 말릴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선비는 크게 깨달았다. 진짜 효도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던 것이다. 요즈음 우리는 부모님을 봉양한답시고, 부모님의 참뜻과는 관계없는‘아무 일도 못하시게 한다’든가, ‘호화 아파트에 모셔 놓고 손자 손녀도 없는 쓸쓸한 생활’을 강요하고 있지나 않는지 모르겠다. 부모님을 모시면서, 부모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진짜 효도인 것이다.

서애 유성룡

어떤 실험결과를 놓고, 우리는 몇 가지 응용을 할 수 있다. 그 실험은 몇 마리의 벌과 같은 수의 파리를 잡아 빈 병에 각각 넣고, 병의 바닥이 창가 햇빛을 향하게 하여 쓰러뜨려 놓은 뒤, 그 결과를 관찰하는 실험이다. 물론 병마개는 떼어놓는다.
그러면 벌은, 밝은 병바닥쪽으로 모여 출구를 찾아보려고 애를 쓰다가 지쳐 죽는다. 그러나 파리의 경우는, 2분도 채 안되어 반대쪽의 병입구로 모두 빠져나간다고 한다.
이 실험은 벌이 갖는 획일성 .밝은 쪽에 출구가 있다는 생각의. 이, 파리의 무계획적인 다양성보다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해서, 벌의 논리성보다 파리의 의외성이 어떤 문제에서는 더 적합하다는 얘기다.
이 실험을 한 학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벌과 파리의 실험결과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논리성과 더불어 시행착오, 임기응변, 의외성 등의 다양한 요소도 동원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실험에서 벌은 논리성으로, 파리는 유연성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창의성에 관한 책을 저술한 로버트 올슨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창의성(Creativity)이란 유창성(Fluency)과 유연성(Flexibility)의 조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유창성이란 어떤 문제에 대해 수많은 대안을 빠르고 거침없이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고, 유연성은 상식을 뛰어 넘는 비상한 생각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말뜻은 창조적인 사람들은 수평적 사고라 할 수 있는 순발력, 기지 등의 유창성과, 수직적 사고라 할 수 있는 융통성, 의외성 등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실, 21세기를 몇 년 앞둔 지금, 많은 학자들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단어중에 하나로‘변화’를 꼽는다. 그만큼 최근의 변화속도는 과거의 그 어느 때 보다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살아 가려면, 정론화된 단순논리로서는 불확실한 것이며 융통성도 반드시 함께 필요한 것이다. 벌의‘논리성’과 파리의‘융통성’이 모두 필요한 것이다.

중산왕의 한탄

미국 시카고 어느 길가에 자리잡은 남성복 가게는, 귀머거리를 가장한 교활한 방법으로 여덟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대학까지 교육시켰다고 한다. 이 가게는 두 명의 동업자로 운영되었는데, 고객이 찾아오면 그 중 한 사람이 손님에게 자기들 상품의 우수성과 이옷 저옷의 장단점을 장황스럽게 설명하곤 했다. 그러다가 손님이 “그럼 이 옷의 가격은 얼마입니까?”하고 물으면, 그 판매원은 손님의 입 가까이 귀를 갖다대면서 큰 소리로“뭐라고요?”하고 되묻는다. 그러면 손님이 큰 소리로 “가격이 얼마냐구요?”하고 말하면 판매원은 다시“뭐라고요?”하고 또 묻는다. 이에 고객이 “옷 값이 얼마냐구요?”하고 소리를 크게지를 때, 이제서야 알아들었다는듯“오, 가격이요, 나는 잘 모르니 사장님께 물어볼께요.”하고 말한 다음, 저편에 있는 다른 동업자를 향하여 큰 소리로“사장님, 아름다운 바닷물빛 단추가 두 줄로 달린 옷의 가격이 얼마입니까?”하고 소리치는데 이 때 사장은 “48달러야!”하고 답하면, 판매원은 “들으셨죠. 사장님께서 28달러라고 말씀하시는데요”라고 말한다고 한다. 그러면 손님은 젊은이든 노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얼른 28달러를 지불하고 재빠른 발걸음으로 급히 문을 나선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약점을 노리는 그들의 교활한 상술을 알게됨과 동시에, 인간이 자기의 이익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하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들 동업자의 교활한 상술도 얄밉지만, 자기의 작은 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래서 보다 큰 것을 잃고 마는 무지 또한 안스럽기만 하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으로 대변되는 힘의 논리보다, ‘상부상조’나 ‘옥석동체’의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그립기만 하다.

계통적 사고방식

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의미있는 판결문이 있어 소개한다.
6세 미만: 그냥 놀아도 됨. 아무것도 안 해도 됨.
6~10세: 설거지, 청소, 슈퍼마켓 심부름 등 잔일을 도와야 함.
10~14세: 설거지, 잔디 깍기, 유리창 닦기.
14~16세: 부모의 자동차 세차, 잔디 깍기.
16~18세: 전기시설 고치기, 가구 수리, 바닥 닦기, 집안 청소 등.
이상의 내용은 독일 부루크 시의 지방법원에서 어떤 판사가 내린 판결문의 구체적 내용이다. 판사는 이러한 판결을 선언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서론을 얘기했다.
“부모의 설거지나 잔디 깍기 등을 도우려 하지 않는 자녀들은 그가 비록 미성년자라 할지라도, 그는 우리 독일의 수백 년 전통을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녀들에 대해서는 부모가 법에 호소해서라도 올바른 자녀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며, 또 반항적인 자녀들에게는 부모가 강제로 노동을 명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말한 다음, 앞의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지난해 우리는‘박한상 사건’, ‘지존파 사건’, ‘온보현 사건’, ‘장교탈영 사건’등 어처구니 없는 인륜파괴 행위와 사회기강 해이의 헛점을 들어냈다. 그 분야의 많은 전문가들은 그 가장 큰 원인으로 가정에서의‘자녀교육 부재’를 들고 있다. 자녀교육 부재가 한 가정은 물론, 사회에도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제 자녀교육의 필연성은 심각한 현안으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선각자들의 다음과 같은 말을 명심하면서 우리 모두 긴 안목을 갖고, 자녀교육에 적극 나섰으면 한다.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안창호) “한 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의 청년교육에 달려 있다.”(아리스토 텔레스) “그 나라의 젊은이를 내게 보여 달라. 그러면 나는 그 나라의 장래를 점칠 수 있다.”(서양의 어느 시인)

어머니의 편지

모짜르트는 음악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 다른 곳에서 음악을 배운 적이 있습니까?” 만일 학생이 “예, 배운 적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모짜르트는 “그럼 수업료를 두 배로 내십시오.”라고 말했다 한다. 그러나 이전에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수업료를 반만 내십시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한 제자들은 모짜르트에게 항의를 했다. “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수강료의 반만 받으면서 우리처럼 10년이나 음악공부를 해 온 사람에게는 오히려 두 배나 받으시니 도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이에 모짜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당연한 이유가 있지요. 음악을 배웠던 사람이 오면, 이미 잘못 길든 습관 때문에, 그 습관을 뜯어 고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이 일은 아무 것도 배우지 않은 사람을 가르치는 것보다 두 배도 더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배우는 사람은 그냥 가르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첫 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모짜르트의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주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잘못 배운 지식, 잘못 길든 습관, 잘못 산 인생들은 잘못 그 자체 보다 그 잘못으로 인해 파생되는 후유증이 더욱 심각한 것이다.
잘못 배운 지식은 우리의 판단을 그릇되게 하고, 잘못 길든 습관은 우리의 행동을 어렵게 한다. 또, 잘못 산 인생은 우리를 후회스럽게 만든다. 처음부터 깊이 생각하고 멋진 답안지를 작성한다는 것은, 보기 좋다는 것 이외에도 잘못에서 오는 이러한 오류들을 막을 수 있는‘최선과 최고의 선택’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마지막 단추도 잘 끼울 수 있다는 말을 명심하자.

아버지의 말씀 한 마디

인간은 자연계로부터 무한한 섭리를 배울 수 있다. 뻐꾸기를 통해 한번 배워 보자.
뻐꾸기:두견이과의 새. 두견이와 비슷하나 훨씬 큼. 몸 빛깔은 검은빛을 띤 회색. 개개비 따위의 다른 새 둥지에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며, 주로 곤충류를 잡아먹고 삶.(이하 생략). 국어사전에 풀이된 뻐꾸기 내용이다.
국어사전에 풀이된 바와 같이, 뻐꾸기는 남의 둥우리에 알을 낳는다. 이러한 행위는 뻐꾸기 특유의 게으름이나 얌채짓 때문이라고 알려져 왔으나, 그 얌채짓이 특정 독성에 중독된 현상 때문이라고 조류학자들이 밝혔다. 즉, 뻐꾸기가 주로 먹는 나방의 에벌레에 정신을 혼몽시키는 독성이 있어 수십, 수만 년 계속되는 도중에 중독이 된 일종의 마비현상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초(?)의 환경오염 피해 동물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그 이유를 알고 보면, 뻐꾸기의 그 얌채짓에도 다소나마 동정이 간다. 독성이 모성애마저 앗아간 것이니까.
그러나 모성애는 잃었지만, 최후의 본능인 종족번식의 강한 집념은 남다른 면이 있다. 뻐꾸기는 산란기가 되면 우선 그 위탁 대상의 새를 찾는다. 다른 새가 포란하기 위하여 둥지를 틀면 뻐꾸기는 즉시 교배를 하고 수정을 한 후, 그 대상의 새가 알 낳기를 기다린다. 종족 번식의 집념이 자연 본능의 알 낳는 시기까지 조정하는 것이다. 대상의 새가 드디어 알을 낳아 둥지를 비우면, 얼른 그 둥지로 날아가 자기의 알을 낳고 다른 알을 하나 떨어뜨린다. 이러한 작업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뻐꾸기의 등에는 움푹 패인 곳이 있다 한다. 적자생존, 용불용설이 그대로 적용된다 하겠다.
만일 새가 알을 낳고 둥우리를 떠나지 않으면 기막힌 대안이 있다. 이럴 때는 암수 모두 합동작전을 벌이는데, 숫놈이 둥지 위로 날아가 매의 날개짓 흉내를 내어 새가 둥지를 떠나도록 한다는 것이다. 무서운 집념으로 목적을 달성한다.
놀랄 일은 아직도 계속된다. 이렇게 해서 가짜 어미새로부터 부화되는 새끼 뻐꾸기는 다른 알보다 1~2일 먼저 부화하여 (자기의 신분이 발각될까봐?) 다른 알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짜 어미새로부터 20~23일간 먹이를 받아 먹고 성장하다가 둥지를 떠난다는 것이다. 뻐꾸기 나름대로의 적응력에, 신비감과 경이로움 그리고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모자르트의 성공 비결

여러분은 성공에도 공식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미국의 방송 컬럼니스트인 얼 나이팅게일의 성공의 공식을 들어 보자.
그는 이 공식을 얘기하기에 앞서, 우리가 갖고 있는 잘못된 생각 하나를 먼저 지적했다. 그는“우리가 갖는 의외의 잘못된 생각 중에 하나는 성공이 행운의 문제요, 한탕주의, 부자로 태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잘못된 생각으로 보는 이유는 성공이란 1+2=3처럼 간단하고 확실한 것인데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계산하다가 실패를 거듭한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그가 제시하는 성공의 공식을 알아보자.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면 이렇다.
“일평생은 년, 월, 주 그리고 날들로 구성된다. 일평생의 기본 단위는 하루다. 그리고 우리의 생애 중 하루는 각자의 어떤 행동으로 이루어지고 또 엮어지고 있다. 하루를 성공적인 날이 되게 하려면, 우리의 각 행동은 성공적이어야 한다. 성공적인 날을 일평생 동안 반복하면, 당신은 일평생의 성공을 맛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위대한 것을 위해서 이리저리 뛸 필요도 없다. 당신이 얼마나 많이 행동하느냐가 문제다. 내주의 일을 오늘 하려고 노력하지 마라. 오늘의 일을 가능한 최대로 하라. 그리고 내일의 일은 내일로 미루어 하라. 한 번에 하나씩하라.”
이것이 그가 말하는 성공의 공식이다. 얼마나 명쾌한 설명인가! 사실, 얼 나이팅게일의 이 설명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성공에 대한 얘기를 많이 알고 있다. 그것들 모두는 하나도 신비로운 것이 없다. 우리가 성공을 위해 매일매일 얼마나‘행동’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성공은 수학적으로 예측되고 또 계산될 뿐이다. 그러니 오늘부터 성공의 공식대로 우리의 하루 행동을 성공적으로 엮어 보자.

벤자민 플랭클린(1)

어떤 부유한 상인이 생가이 대사에게‘자기 가족의 번영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좋은 말’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대사는 붓과 먹을 가져온 후 다음과 같이 말을 적었다.
“할아버지가 죽는다. 아버지가 죽는다. 아들이 죽는다.” 이렇게 불길한(?) 얘기가 적힌 종이를 받은 상인은 매우 화가 나서 대사에게 즉시 따지고 물었다. “도대체 내용이 이게 뭡니까? 우리 가족을 위해 겨우 이 말씀을 적어 주십니까?”이에 대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말은 나쁜 말이 아닐세. 오히려 그대에게 가장 큰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말일세. 들어보게나, 나는 그대 집안 사람들이 모두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살라는 뜻을 적은 것일세. 또 이 말은, 할아버지보다 먼저 죽는 아들이나 손자가 한명도 없기를 바란다는 뜻일세. 만일 그대 가족이 이와 같이 순서대로 죽지 않는다면, 집안에 이 보다 큰 불행이 어디 있겠나? ‘집안의 진실한 행복’은 이와 같이 순서대로 태어나서 순서대로 죽는 것이네.”
이 말을 듣고 상인은 “옳은 말씀이십니다.”하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처럼, 듣고 보니 말은 된다. 우리는 항상 행복을 원하며, 또 그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참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행복은 돈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권력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순응하며 아무 문제없이 사는것, 그것이 어쩌면 가장 의미있는 행복 일 수 있는 것이다.

일곱번쩨

벤자민 플랭클린(2)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군자와 소인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책을 읽고 잔치를 열자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상과 현실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영감은 어떻게 얻는가?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알기도 어렵고 행하기도 어렵다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과거로부터의 행복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유머 감각이 필요하다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융통성과 평등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터졌다. 빨리 피하라!”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여덟번째

까다롭게 따지자!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도의 경지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질그릇에 담긴 술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올바른 평가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멋진 뿔, 가는 다리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큰 나무와 큰 사람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학력의 참뜻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물 한통의 기적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결정하자!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아홉번째

시작하자!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따끔한 야유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패기와 용기 그리고 너그러움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시간의 흔적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뿌린대로 거둔다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유명한 것, 훌륭한 것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죽어가는 시간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가득 채운 방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그냥 한 번 웃어보자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열번째

촛불 하나의 의미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가장 귀한 예물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돈독한 신뢰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직의 응답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빛과 어둠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이제 그만 내려가자!”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같아요’병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하기 어려운 세 가지 말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박사학위보다 값진 것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대통령을 보통사람처럼’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열한번째

두 인생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사랑의 씨앗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도사의 충고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청사우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아버지와 아들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법대로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제가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정직의 권위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장한 어머니 이원숙 여사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인물 고르기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열두번째

대학생이 되기 전에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개미와 나비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위기 속의 신화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맑을 확률 80%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나무 다루기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건강하게 사는 법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참다운 지혜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형식보다 내용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성공이란 과연 무엇인가?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최대 50%에서 최소 20%까지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열세번째

나만의 경험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생각에서 성공까지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에디슨 박사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인간 승리의 기쁨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응징과 아량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공짜는 없다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큰 죄와 많은 죄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단순한 행위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내조지현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확실한 행복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열네번째

한 달 그리고 두 달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성공전략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긴 안목이 필요하다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바보 이야기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진실, 사랑, 희망, 용기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성실한 생활태도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왜 내 마음이 달라졌을까?’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3파운드의 의미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첫번째 일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열다섯번째

덧셈과 뺄셈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피라미드 정상에……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바보 이야기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무모한 실험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하나라도 작지 않다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밀물 때는 반드시 온다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지식과 지혜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쇼의 익살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메기는 필요 없다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자전거 타기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열여섯번째

천하제일이 되려면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행복의 중심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만년청춘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어머니 공부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물질의 유해성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왜' 그리고 '언제'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관포지교(管鮑之交)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신사와 소년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불안의 확인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어느 사형수의 마지막 고백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열일곱번째

살아있는 가정교육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최고의 명약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아이들의 질문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썩은 사과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쫓고 쫓기는 세상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행복해질 수 있는 마음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알 때까지 읽으면, 문제가 쉬워진다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애도를 흠모로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사람의 머리값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사공과 학자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열여덟번째

행동하기 전에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돈으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조경의 충고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행동하기 전에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프로포즈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작은 일로 큰 불행 막기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신용의 척도가 그 사람의 인격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손기정 선수와 하퍼 선수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칼보다 강한 붓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열아홉번째

계승(!)의 세계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소진의 탄식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앞 마차의 뒤집힌 자국은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선물과 뇌물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아까운 능력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미결 서류가 문제?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멋진관리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초가집과 기와집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작은 계획은 세우지도 마라!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백만장자 연구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스무번째

애국의 선택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상길이와 박 서방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잘못된 제도 하나가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바람직한 해답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의지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청출어람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소문과 진실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운명을 바꾼다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붉은 대나무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제왕학과 민초학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스물한번째

촉매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철공 대통령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천사와 악마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안자의 냉소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신은 위대하다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즐겁게일하자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이항로의 항상심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못생긴 얼굴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유학가기 전에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정신적 유산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스물두번째

70 대 1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하나의 민족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문경지교의 교훈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두 배의 급여에는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부모의 현장 교육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스스로의 의지로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오십보 백보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죽은 말 사기, 산 말 빼앗기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공사와 고사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1류 촌장과 1류 장군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스물세번째

'아, 사람다운 사람은 없고'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참지식, 참사랑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3개월과 3백 년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어려움이 닥치면 기뻐했다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고집과 지조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내면에서 느끼는 감동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승률 50%의 승부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죽을 때 가지고 갈 재산은?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패배와 반성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아버지의 한숨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스물네번째

사업이 순조롭지 못할 때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고정관념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항해를 시작하라!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자신과의 철저한 약속 이행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우리가 더 행복하다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인물을 보는 조건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오늘의 의미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벼슬길에 나아가려면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유비무환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고언과 감언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스물다섯번째

이적지수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사람이라는 보물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기회란 만드는 것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자신 있는 하나의 답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낙관자가 되라!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독립심을 키워라!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자살!’과 ‘살자!’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지능을 응용하라!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국어 공부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선문답(禪問答)에서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스물여섯번째

당신이 부자라면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무심과 유심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낱말의 뜻’의 중요성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직서를 품고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북방에서 남방까지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오직 지도 하나만으로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데일 카네기의 결단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찾는가!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공포심을 없앤 사연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1=1+1’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스물일곱번째

‘왜’ 그리고 ‘어떻게’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생각을 먼저 많이 하고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먼저 가시죠!’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거절합니다!”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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