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여운 – 황필상박사의 생전 컬럼 1-6

황필상박사가 우리의 이웃과 후손을 위해 남기신 컬럼을 실었습니다. 고인의 평소 바램대로 우리는 모두가 훌륭한 인격체로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튼실한 기둥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구원장학재단은 고인이 되신 황필상박사님의 뜻을 계승하여 우리의 젊은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지지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첫번째

방법은 언제나 있다.

중국의 삼국시대, 조조가 손권으로부터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코끼리가 크구나, 무게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코끼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큰 동물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하 대신들은 난감한 표정만 지을 뿐 조조의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조조는 그 해결방법을 생각해 줄 것을 촉구했다. 신하들은 여전히 아무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조조의 아들 충(冲)은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이 난처한 질문에,
“그 문제를 제가 해결하겠어요.”
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조조의 질문에 난처했던 신하들은 어린 왕자가 나서자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먼저 코끼리를 배에 태워 수면에 닿은 배의 표면에 표시를 해 둡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은 돌들을 아까 코끼리를 태웠을 때의 눈금까지 싣습니다. 그래서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면 코끼리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이 명쾌한 해결을 들은 조조 이하 여러 신하들이 어린 왕자의 놀라운 지혜에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마다 우리는 문제의 어려움에 눌리어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럴 때에도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거나, 주위 사람에게 문제를 털어 놓을 때,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문제와 대결하는 적극적 자세가 바로 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위대한 유산

1977년 독일에서, 그 당시 제일의 부자가 죽으면서 그 많은 유산을 전부 사회단체에 기증했다.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넘겨 주지 않은 채.
그 많은 재산이 남은 다섯 명의 자식들이 아닌 사회단체에 전부 기증되었으므로, 의아하게 여긴 신문 기자가 그의 맏아들을 찾아가 물었다.
“당대 제일의 부자였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신들에게는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는데, 당신은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맏아들은 “저희들은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비밀리에 유산을 물려주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어떤 유산을 받았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 아들은 “나의 유산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의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 마저 잃은 외로운 고아 출신의 불행한 사람이었다. “내가 네게 줄 것은 여기 이 도시락 가방 하나밖에 없구나, 그러나 나는 네게 14년 동안 이미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주었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그 아버지는 그 동안 자기 자식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 왔던 것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식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도시락 가방 하나를 들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드디어 독일 제일의 부자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5남매를 위해 매일 기도해 왔고, 이것이 남은 5남매의 유산이었던 것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우리는 이러한 감동스런 이야기에서 ‘우리도 지금 자식을 위해 값진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식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그 사회 또한 건전해질 것이다.

독과 꿀

글자를 모르는 어느 한 유대인이 교회의 문지기 일을 지원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고용해 보려고 면접을 보는 도중, 그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고용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그 유대인은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행상을 시작했다. 그는 부지런히 일했고 검소와 절약을 한 끝에 말과 마차를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사업은 그 후에도 계속 번창하여 여러 곳에 상점도 경영하게 되어 상당한 재벌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은행에 대부받을 일이 생겨 은행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은행장은 그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면서 준비된 서류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단순히 ‘X’자로 기입을 했다. 이에 은행장은 그가 글자를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당신은 글자를 모르시는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예, 저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모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은행장은 속으로 크게 놀라, “그러시군요, 그러나 당신은 지금 남이 하기 어려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 만일 당신이 진작에 글자를 깨우쳤다면 더 큰 일을 하셨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정중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글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만일 제가 예전에 글을 알고 있었다면 저는 지금 교회의 문지기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어떤 상식이나 논리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이란 오묘한 일면이 있어, 우리 앞에 닥쳐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오히려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물을 가지고도 독사는 독을 꽃은 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우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비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자기부터 행하자

예언자 모하메드가 어느 날 한 여인의 방문을 받았다. 여인은 자기가 번 돈을 어린 아들이 대추야자를 사먹는 데 몽땅 써 버려서 늘 가난에 쪼들리고 있는 신세라며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메드는 35일 동안의 여유를 달라고 했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어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모하메드는 그녀의 아들에게 인자하게 타일렀다.
“너도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너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지. 어머님은 늙으셨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를 모시도록 해라. 너는 대추야자를 사먹느라고 어머니가 번 돈을 모두 써 버렸는데 이제는 그만두어라!“
소년은 모하메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을 깨우치면서,
“예. 이제 저는 전과 다른 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후 모하메드의 제자들이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35일 동안의 여유가 필요했습니까?“
그러자 모하메드는,
“나 자신도 대추야자를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고 있는데 어찌 어린소년에게 먹지 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선 나부터 35일의 여유를 갖고 대추야자 먹기를 금했다네. 이제 35일이 지나니 대추야자 먹고 싶은 마음을 억제할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소년에게도 대추야자를 먹지 말라고 했다네.”
우리가 주변을 보면 자기 스스로도 못 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범을 보이면서 자기부터 직접 행하면, 그것이 최고의 설득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동 없는 구호와 말의 성찬만이 요란한 요즈음, 우리의 모하메드가 많이 필요하다.

행복한 가정

어느 형제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는데, 동생 집에서는 식구들의 웃음이 그칠 날이 없건만, 형의 집에서는 일년내내 냉기만 감돌뿐이었다. 이에 형이 동생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너의 집에선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기에 그렇게 웃음이 그치질 않느냐?”
“예, 형님, 그것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형이 동생의 바지를 보니 길이가 짧아 무릎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 짧은 바지가 어떻다는 거냐?”
형의 말에 동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런 일이 있습지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사다가 애들 엄마에게 주면서 옷이 크니 좀 줄여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가 바지를 놓아두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그 사이 큰딸 아이가 엄마를 대신하여 바지를 줄여 놓았죠. 그 다음에 둘째가 이미 제 언니가 줄여 놓은 것도 모르고 또 줄여 놓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제 어미가 와서 또 줄여 버렸지 뮙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웃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집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형은,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일부러 큰 바지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주면서 줄여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형이 옷을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가 가져왔다. 그러나 바지는 전혀 줄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봐, 임자! 내가 어제 임자에게 바지를 줄여 달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내는 큰 딸을 향해, “애, 큰 애야, 너 아버지 바지를 줄여 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줄여 놓았니!“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은 큰딸은 도끼눈을 하고 옆의 제 동생에게, “야! 너 어제 내가 바지 줄여 놓으라고 한 말 까먹었어?”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생이, “엄마와 언니가 있는데 내가 왜 그바지를 줄여야 된단 말이야!”하며 소리치고 방을 휙 나서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 본 형은 그제서야 자기의 집에서는 왜 일년내내 냉기만 도는지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행복한 가정은 남의 일을 대신하려는 집이고, 냉냉하고 불행한 집은 자기 할 일을 남에게 미루는 집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일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인 것이다.

내 탓이오!

김약연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제하에서 식민통치를 받을 때, 간도로 망명하여 명동 중학교를 세우신 분이다. 선생이 보인 참된 교육자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의 어떤 처사에 불만을 품고 소동을 부렸다. 이에 선생은 단 위에 올라서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조용히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이사장이올시다.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모두가 이 사람의 부덕한 탓이니 다른 선생님들은 원망 마시기 바랍니다.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금, 우리 대한의 아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지도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본인은 여러분이 보시는 이 자리에서 벌을 받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약연 선생은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기 시작했다. 다리는 금새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 내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자 서있던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 곁으로 달려가 회초리를 빼앗으려 하였다.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십니까? 어서 회초리를 거두십시오.”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모든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제가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김약연 선생의 손에서 회초리를 빼앗았다. 그 때 학부모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제 자식의 지도에 소홀했던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습니다. 그러니 그 회초리를 제게 주십시오.”
하면서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
그러자 다른 학부모들도 너도 나도 나섰다.
“잘못은 저에게도 있습니다.”
“저도 맞아야 합니다.”
“저도요.”
이에 김약연 선생은 학부모들의 만류를 더 물리치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학교에서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학부모와 학생들은 선생의 높은 인격에 감동되어 크게 뉘우치게 되었다. 어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내 탓이오, 내가 벌을 받겠소.’하고 용기 있게 행동했기에 소동을 잠재우고 오히려 마음을 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이오, 나를 벌 주시오!’하는 제 2의 김약연 선생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불협화음은 화합의 아름다운 메아리로 답할 것이다.

평생의 묘약

미국의 백만장자 R.U. 다비의 “그만두어야 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명언은, 자기의 실제 체험에서 얻어낸 교훈적 얘기다.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미국의 서부가 한창 개척되고 있을 때, 그는 젊음을 밑천으로 하여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섰다. 산을 오르내리고, 말뚝을 박고, 삽과 곡괭이로 작업을 시작한 이래 몇 주 후, 드디어 그는 금광을 찾아 내었다. 기쁨에 들뜬 그는 찾아낸 금맥을 덮어 두고 그의 고향 메릴렌드로 돌아가 친척과 이웃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또한 무한히 기뻐하며 금광 채굴 작업에 기꺼이 투자할 것을 약속했으며, 각자의 재산을 처분해 금광 채굴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구입했다. 이리하여 1주일 뒤, 서부 아리조나에서는, 본격적인 금광채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예상했던 대로 그 금광에서 양질의 금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무지개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얼마의 금광이 터져 나오더니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던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지만 끝내 더 이상의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절망했고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채굴 장비를 헐값에 처분하고 고향인 메릴렌드로 돌아갔다.
한편, 헐값에 채굴 장비를 사 들인 고물상 주인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R.U. 다비가 버린 금맥과 채굴 장비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광산 기사에게 의뢰해 그 금광에 지층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조사에 따라 새로운 채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층변화는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고, R.U.다비가 곡괭이를 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 불과 3피트(약1미터) 위치에서 금광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수백만 불의 거부가 되었다.
한편, 금광 개발에 실패한 후 R.U. 다비는 고향의 생명보험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바로 “그만 둘 때가 시작할 때이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이러한 교훈을 가슴에 담고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일에 임해, 마침내 그도 백만장자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실패는 누구나 맛본다. 그러나 R.U. 다비와 같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내어 평생의 묘약으로 쓸 줄만 안다면, 실패하는 순간이야말로 오히려 성공의 첫 걸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성공의 전주곡이 되는 것이다.

행동하는 철학

독설가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우화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을 방문하여 성 베드로에게 물었다.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의 능력을 가졌던 사람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옆에 있는 천사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옛날 자기 집 앞에서 구두를 수선하던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방문객은,
“아니, 저 사람은 구두 수선공이 아닙니까? 나는 저 분을 잘 압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 베드로는,
“예,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이 주신 재능대로 장군이 되었더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소질과 능력도 개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꾸며서 말한 것이다.
이번에는 실화를 들어 보자.
미국의 대회사인 제너럴 모터스에 같은 날 형제가 도장 부문에 나란히 입사했다. 형은 도장 분야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을 하였으나, 동생은 도장 일을 하는 도중에 비즈니스 학교에도 다니고 경리 공부도 배워 경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재너럴 모터스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동생의 이름은 하로 카티스이다.
우리는 이들 두 형제의 삶을 쉽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그지글러의 말처럼, “우리 중에는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죽었다가 1994년에 매장되었다라는 내용의 비문을 새겨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생각만 있고 행동이 중단된 날 우리는 이미 죽은 것이고, 육체가 숨을 거둔 날은 그저 매장된 날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행동하는 삶은 2%뿐이고, 이들이 나머지 98%의 행동하지 않는 삶들을 지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죽은 철학이고, 행동하지 않는 능력은 죽은 능력인 것이다.

고귀한 인내심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중년 부인이 고아원을 차려 불쌍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했고, 그래서 직접 모금함을 목에 걸고 거리에 나가곤 했다.
어느 날, 그 날도 동전 몇 개만 겨우 모은 채, 부인은 어둠이 깔린 거리를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길가에 네온불이 화려하게 비추이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 안에는 많은 손님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흥청거리고 있었다.
부인은 한 손님에게로 다가가 상냥한 목소리로, “부모 없는 애들을 도와주세요. 작은 정성이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보탬이 된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잔뜩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뭐야, 귀찮게!” 하더니 느닷없이 마시던 맥주잔을 들어 부인의 얼굴에 획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홀 안에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곳으로 쏠렸고, 부인은 흐르는 맥주를 닦지도 않은 채 그 손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부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내 삭이더니 다시 상냥한 미소로, “손님, 손님께서는 저에게 맥주라도 주셨습니다만, 우리 딱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말이 끝나고 또다시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모금함에 넣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어 다른 손님들도 부인에게 다가와 역시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폭했던 그 손님도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부인 곁으로 다가와, 부인의 손에 자기의 지갑을 쥐어 주며, “부인, 부끄럽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하며 죄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부인이 모욕을 참았던 것은 오직 고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부인의 이러한 자기 감정을 억누른 값진 인내심이 끝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각자의 할 일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험상궂게 생긴 산도적들이 몰려와 소녀의 집으로 들이 닥쳤다. 도적들의 사나운 행동에 식구들은 벌벌 떨었지만, 이 착한 소녀는 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를 뒤지던 도적의 두목은 목이 마르던지, “야, 물 가져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녀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는 곧 우물가로 달려가 물을 한 바가지 떴다. 그리고는 물을 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동안 바가지 안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되었다.’ 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두목에게 걸어와 공손히 두 손으로 물을 바쳤다.
소녀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 두목은, “야, 너 왜 그런 수상한 행동을 했느냐, 혹시 이 물에 독이라도 넣은 건 아니냐?” 하고 물었다. 이에 소녀는, “아닙니다. 이 물 속에는 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물 속에 혹시 무엇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자세히 본 것 뿐입니다. 만일 나뭇잎이나 흙먼지가 들어 있으면 마실 수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러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 두목은, “너는 우리가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우리는 산도적이다. 너희 집 재산을 빼앗으러 온 산도적이란 말이다.” 하면서 실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매로, “예, 저는 여러분이 산도적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의 재산을 빼앗으러 온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적인 ‘여러분이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적이라 해도, 어쨌든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이기도 합니다. 저희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저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올린 물 한잔에도 저는 정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두목은 놀라, “너는 참 똑똑한 아이다. 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들 모습이 참 부끄럽구나. 나도 이제 이러한 짓을 그만 두고 내가 할 떳떳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부하들과 함께 돌아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많은 공직자들 때문에 짜증과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비난과 불평만 한다고 ‘우리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남의 일보다는 ‘자기의 할 일’에 충실하여 밝은 내일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두번째

관용의 보답

사마천의 사기에 있는 이야기다. 초나라 장왕이 어느 날 신하들을 모아 놓고 연회를 베풀며 말했다.
“오늘 밤은 신분이나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마음껏 즐겨 보자!”
좀처럼 얻기 힘든 격식 없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므로, 군신이 모두 한껏 마시며 즐겼다. 그런데 어디서 바람이 불어와 갑자기 모든 불이 꺼졌고, 주위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칠흑같이 깜깜해졌다.
이 때, 이것을 기회로 왕의 애첩을 희롱한 신하가 있었다. 이에 애첩이 놀라 신하의 갓끈을 잡아 당겨 갓끈이 끊어졌다. 애첩은 장왕에게 그대로 보고했다. “어떤 사람이 저를 희롱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갓끈을 끊어 놓았으니 이제 불을 켜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애첩의 얘기를 들은 장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오늘밤은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즐기는 주연이다. 우리 모두 갓끈을 잘라버리고 계속 마음껏 즐기자.”
이리하여 참석자 모두의 갓끈이 잘렸고 이 날의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수년 후, 초나라는 막강한 진나라와 싸우게 되었다. 그런데 한 용사가 있어, 항상 선두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다. 그 용사의 맹활약에 힘입어 초나라 군사의 사기는 충천했고 결국 강력한 진나라를 물리칠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장왕이 그를 불렀다.
“그대 같은 훌륭한 용사를 내 미처 몰라 보았으니 심히 부끄럽구나. 그런 용맹이 어디에서 나온단 말이냐?”
하고 물었다. 이에 그 용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벌써 죽었던 몸입니다. 술에 취해 폐하께 큰 죄를 지었는데도 폐하께서 저를 살려주셨기에, 저는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 뿐 입니다. 그날 밤 갓 끈을 뜯긴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너그러운 마음씨로 감싸 준다면 언젠가는 몇배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면, 이 사회는 화해와 사랑이 가득 찬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원인 제공의 죄

한 노인이 허기진 배를 참으며 빵가게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갓 구워낸 기름진 빵이 유난히도 맛있어 보여 노인의 식욕을 당겼다. 노인은 끝내 참지 못하고 덥석 빵 하나를 잡고는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광경은 곧 주인의 눈에 띄었다. 주인은 이내 달려가 할아버지를 붙잡았고, 왜 그런 짓을 했느냐는 질책과 함께 경찰서로 넘겨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노인은 재판을 받게 되었다. 재판관이 노인에게 물었다.
“어째서 남의 가게 물건을 훔쳤습니까?”
그러자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 날 나는 아침을 굶고 그 가게 앞을 지나고 있었는데, 워낙 허기가 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빵을 움켜잡고 말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재판관은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법을 어긴 그 할아버지를 그냥 용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할아버지의 처지는 매우 딱합니다만 법을 어기셨으니 2만 센트의 벌금을 내셔야 합니다.”
말을 마친 재판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호주머니에서 2만 센트의 돈을 꺼내어 할아버지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는 자리에 참석한 방청객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이 할아버지가 빵을 훔치지 않으면 안되는 이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도 벌금을 내야 합니다. ”
이렇게 하여 할아버지가 법정 문을 나설 때는 15만 센트라는 적지 않은 돈을 호주머니에 넣게 해 줄 수가 있었다.
재판관의 이 판결 내용을 보면, 우리는 빵을 훔친 할아버지의 범죄행위만 죄가 되는 것이 아니고, 알게 모르게 빵을 훔치도록 만든 원인 제공자에게도 얼마의 죄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록 그것이 도덕적인 것이라고는 해도….

창조적인 행위

뉴욕에서 조그맣게 목재상을 하던 사람이 짧은 기간 내에 부자가 되었다. 동종 업계에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는데도, 그 사람만 유독 수백만 불의 수입을 올린 것이었다. 이에 기자들이 몰려가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매일 캄캄한 방에 홀로 앉아, 앞으로 10년 동안 목재 업계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를 깊이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떠오른 생각들을 열심히 ‘기록’ 했으며, 10년을 기다리지 않고 즉시 그때 그때 ‘실천’ 해 왔습니다. 이렇게 ‘계속’ 해 온 것이 전부입니다.”
이 목재상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간단히 요약 될 수 있다.
즉, 생각-기록-실천-또 생각-또…..
사실, 이러한 행위는 창조적인 행위다. 많은 창조성에 관한 책들은 한결같이 이와 같은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이 목재상이 창조적인 행위를 계속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준비보다는 하루 하루의 결과에만 신경을 써 왔고 그래서 그들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또 목재상은 이러한 행위를 계속하는 중에 “경쟁하지 말자, 창조하자!” 라는 비결을 터득했다고 한다.
사실, 성공의 기회는 어디에도 있고, 누구에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원하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공의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성공의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어떠한 위치에서도, 어떠한 순간에서도, 성공의 기회를 포착할 수가 있다. 지금도 우리 주위를 조금만 눈여겨 살펴보면, 이른 아침에 괘종시계와 함께 일찍 일어나 ‘생각’ 하기 시작하며, 뉴스와 라디오를 들으면서 ‘기록’ 하고 있으며, 샤워와 면도를 하면서 ‘실천’ 하는 창조적인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람은 하루가 끝나는 밤이 되면 벌써 놀랍게 성장해 있으며, 그 행위를 매일 ‘계속’ 하는 동안 목재상과 같은 큰 성공을 예약하고 있는 것이다.

야무진 끝마무리

얼마 전, 모 회사의 사원모집 광고 내용에서 ‘진취적인 기상, 적극적인 사고방식, 그리고 야무진 끝마무리’ 라는 내용의 문구를 읽은 적이 있다. 앞의 두 구절은 흔히 보아 온 것이라 해도, 맨끝의 ‘야무진 끝마무리’ 라는 문구는 이채로웠다.
사실, 최근 빈번히 발생했던 각종 대형 사고들도 따지고 보면 이 야무진 끝마무리가 약해서 생겨난 일들이다.
야무진 끝마무리의 중요성은 이런 사회 문제 뿐만 아니라, 학문 분야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고등학교 화학 시간에 배우는 ‘주기율표’ 에 얽힌 에피소드도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교과서에서는 주기율표가 1869년 러시아의 D.I.멘델레예프에 의해 고안되었다고 적혀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 4년 전 1865년에, 영국의 J.A.R. 뉼랜즈라는 화학자가 이와 유사한 내용을 발표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뉼랜즈의 발표 내용에서 사소한 문제를 트집 잡아 시비를 걸자, 뉼랜즈는 의기소침하여 이 발표를 포기했고 그 업적은 멘델레예프에게 넘어갔던 것이다. 끝까지 마무리를 짓지 못하여 실패한 경우이다.
반면에, 1825년 ‘증기 기관차’를 발명한 G. 스티븐슨의 경우는 끝마무리에 성공한 경우라 하겠다. 그가 증기 기관차를 처음으로 발명했을 때도 뉼랜즈와 비슷한 비난이 이어졌다. 당시 스티븐슨이 발명한 기관차는 무게가 90톤이나 되는데다, 시속 16-19km밖에 주행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기관차의 속도는 말보다도 느리면서, 소리는 수천 필의 말보다 요란하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스티븐슨은 이러한 비난에도 물러서지 않고 연구를 거듭하여, 4년 후인 1829년에 객차 하나까지 끌고도 최대 시속46km로 달릴 수 있는 기관차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성공의 마지막 단계까지도 시련이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 마지막 시련까지 극복할 수 있는 야무진 끝마무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 준 예라 하겠다. 우리도 방심하지 말고 야무진 끝마무리를 해야 할 것이다.

완전한 믿음

한 쌍의 정다운 부부가 배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다. 남편은 무사로서 대담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아내는 상냥한 여인이었다. 얼마를 가니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쳐 파도에 배가 몹시 흔들렸다.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긴급한 상황이었다. 아내는 불안한 표정으로 남편을 살펴보았으나 남편은 태연히 앉아만 있었다.
아내가 끝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이 대담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꿈쩍 않는단 말이에요?”
그래도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내가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남편은 갑자기 자기의 칼을 빼내여 아내의 목에 들이댔다. 그러나 아내는 오히려 웃으며,
“아니, 당신은 이럴 때 장난까지 할 수 있단 말이에요?” 하며 무시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남편은,
“지금 당신 목에 칼이 와 있는데도 당신은 웃음이 나온단 말이오?” 하고 말했다.
이에 아내는,
“만일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놀랐겠지요. 그러나 당신이니까 무섭지 않네요.”
하고 대답했다. 무사는 칼을 도로 칼집에 넣으며,
“그렇소, 폭풍도 마찬가지라오. 폭풍도 내가 믿는 신의 손 안에 있는 것이요. 그런데 내가 왜 두려워 하겠소.” 했다는 것이다.
완전한 믿음이 있으면 어떠한 불안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종교 얘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확신을 가지라는 말이다. 우리의 생활 중에 만나는 걱정거리나 불안의 실체는, 40%는 절대로 생기지 않는 것이요, 30%는 아무리 걱정한다 해도 변화시킬 수 없는 과거사에 관한 것이요, 12%는 우리의 건강에 쓸모없는 것이요, 10%는 사소한 걱정이요, 오직 8%만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진정한 걱정거리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런데 왜 걱정하는가?
오직 8%의 진짜 걱정거리만 걱정하자. 12일 중에서 1일만 진짜로 걱정하고, 나머지 11일은 걱정 없이 살아가자.

마지막 교훈

퇴계 이황 선생, 조선조 중기의 대학자로서 만인에게 칭송을 받던 분이었고 중종ㆍ명종ㆍ선조의 지극한 존경도 받았으며, 특히 명종은 여러 번 소명을 내리면서까지 선생을 불렀건만, “신은 몸이 늙고 병들어 그 같은 높은 벼슬을 받아들일 수가 없사오니 거두어 주옵소서. 신은 학자로서 학문에만 전념해 후진을 양성하겠습니다.” 고 하셨던 퇴계 선생. 선생의 고결한 삶에 걸맞는 마지막 모습을 소개한다.
때는 1570년 11월, 선생은 병석에 누워 임종을 맞이하고 계셨다. 곁에는 임종을 염려한 여러 가족과 친지 그리고 제자들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밖의 날씨는 쌀쌀했지만 청명한 하늘에 기러기떼가 한가로이 날고 있었다. 방안에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가구 몇 점과 그 위에 매화분이 보일 뿐이었다.
선생은 평소와 다름없는 평안한 표정으로 주위 사람을 둘러본 뒤, 매화분 앞에서 눈길을 멈추었다. 그리고 선생은 옆의 아들에게 이르기를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 하고 이르셨다.
다시 얼마가 지나 저녁 무렵이 되었다. 누워 있던 선생은 조용히 말하기를, “자리를 정리하라!” 고 하셨다. 아들과 제자가 자리를 정리하자, 꼿꼿이 않은 자세를 취하시고는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이것이 선생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우리는 동서고금을 통하여, 위대한 인물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기는 최후의 명언을 많이 알고 있다. 허나, 선생처럼 명언 아닌 명언을 남기신 분도 그리 흔하지 않다. 항상 책과 더불어 갈고 닦으신 고결한 인품에 걸맞는 운명이 아닌가 한다.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 는 말에서 선생의 생명에 대한 깊은 애정을, “자리를 정리하라!”고 하신 말씀에서 끝까지 고결한 인품을 잃지 않는 경건함을 느끼게 된다. 그야말로 학문에만 뜻을 두고, 한 평생 보내신 진실한 사람에게는 ‘죽음도 두려운 것이 아니다’ 라는 교훈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우리 모두 선생이 남기신 마지막 교훈, ‘진실하게 살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 는 뜻을 받들어 성실한 삶을 살아야겠다.

긴(?) 이별

옛날 프랑스 어느 마을 입구에서, 파리행 마차가 손님 몇 분을 태우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어떤 형제 둘이 마부에게 다가왔습니다. 형은 15세, 동생은 10세 남짓한 귀엽게 생긴 얼굴들이었습니다. 형의 어깨에는 무거워 보이는 큰 가방이 메어져 있었고, 동생은 다리를 몹시 절었습니다.
형이 마부에게 물었습니다.
“내 동생이 파리까지 가야 하는데 빈 자리가 있습니까?”
“그래, 아직 저기에 몇 좌석이 남아 있단다. 원하는 자리에 앉도록 해라.”
“예, 고맙습니다.”
하고 말하며, 형은 주머니에서 동생의 요금을 지불했습니다.
동생이 마차에 오르자 형은 무거운 가방을 마차 위에 올려놓고 미소를 띄우며 동생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소 근심스런 표정의 동생은 맨 끝자리에 서서,
“형, 괜찮겠어?”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형은,
“걱정 말아라. 나는 건강하잖니?”
하며 어깨를 으쓱이며 동생을 안심시키려는 듯 과장스런 태도까지 보였습니다.
마차가 출발했습니다.
마차 안 맨 끝자리에 서있던 동생은, 여전히 형과 헤어진 뒤쪽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차 안의 사람들은 이 다정한 형제의 작별 순간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잠시면 끝날 줄 알았던 동생의 태도가,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습니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동생의 모습은 변화가 없습니다. 여전히 뒤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마차 뒤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형이 마차를 따라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람들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형제의 뜨거운 이별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그리고도 얼마를 더 달렸습니다. 시간이 꽤나 흘렀습니다. 마차를 따라오던 형이 이제는 지쳤는지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습니다. 형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러나 마차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습니다. 이때까지 맨 뒤에서 형의 따라오는 모습을 지켜보던 동생이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한 부인이 동생에게 나직하게 말했습니다.
“얘야, 너의 형은 이제 집으로 돌아갈 거야.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그러자 동생이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우리는 돌아 갈 집이 없어요.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지금 우리는 할아버지가 계시는 파리로 가고 있는 중이에요. 그러나 차비가 한 사람 몫밖에 없기 때문에, 형은 내가 탄 이 마차를 따라오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형이 지쳐서 못 따라오고 있어요. 내가 발이라도 정상이라면 대신 뛰어…….”
하더니 말을 마치지도 못하고 소리 내어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이 말을 손님과 함께 듣고 있던 마부가 즉시 마차를 세웠습니다.
손님들은 함께 동생의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마부는 돈을 받지 않고 형을 태워 주었으며, 손님들은 이 의좋은 형제에게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얼마의 돈이 모아져, 이 대단한 형제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이 기특한 형제는 마차에 올라 긴(?) 이별 끝에 다시 만난 재상봉의 기쁨에 활짝 웃었습니다.
프랑스 동화인 이 아름다운 얘기가, 얼어붙은 이 대지를 그리고 메마른 인정과 형제애를 한껏 녹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유배달 예찬

“건강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신선한 우유를 받아 마시는 사람보다, 그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 라는 말이 있다.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일하면서 건강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절묘한 보상’ 이라 부르고 싶다.
많은 사람이 건강의 중요성을 느끼고 또 그것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절묘한 보상의 원리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매일 아침 집에서 우유를 받아 마시던 일을 우유배달로 바꾸어야 한다. 다른 일이 많기 때문에 그럴 시간이 없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옳은 얘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건강보다 우선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명언이 이를 말해 준다.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 잃는 것이다.” 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라도 하루를 24시간 이상이나 또는 그 이하로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이것은 양적인 의미이다. 질적으로는 차이를 낼 수 있다. 또 바쁘다는 사람도 건강을 염려하고 있고 나름대로 그것을 위해 시간을 쓰고 있다. 골프 ,조깅, 헬스클럽 등으로.
우유배달을 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 새벽에 일어나 걷고, 뛰고, 층계를 오르내리다 보면 하루에 필요한 적당량의 운동을 저절로 하게 되기 때문이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정신건강에도 더 좋다. 똑같은 시간 중에 남보다 한 가지 일을 더하는 즐거움도 있다. 없는 시간에도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야 말로 정말 건강한 사람이다.
건강을 위해 우유를 배달하자!
신문을 돌리자!
그러면 별도의 운동이 필요 없다. 이렇게 아침부터 일하면 튼튼한 다리를 얻는다. 튼튼한 다리는 건강에 자신감을 불러 일으킨다. ‘건강한 육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생긴다.’ 고 말했다.
우리는 우유배달로부터 건강한 육체뿐만 아니라 건강한 정신까지 얻을 수 있다. 이것이 건강의 비결이요, 절묘한 보상의 원리인 것이다.

틀린 시계

어느 작은 마을에서 어떤 남자가 매일 아침 출근길에 시계방을 지나쳤는데, 그 때마다 잠시 멈추어 서서 시계방의 시계를 보며 자기의 시계를 맞추었다. 일요일도 휴일도 없이 일년 내내 변함없이 똑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이에 시계방 주인이 궁금해서 물었다.
“당신은 매일 아침 우리 상점 안에 있는 시계를 보고 당신의 시계를 맞추는데 어디서 무얼 하는 분이 십니까?”그러자 그 남자가 대답했다.
“예, 저는 소방서에 근무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매일 정오가 되면 큰 나팔을 불어 마을 사람에게 알려 줍니다. 사람들이 일손을 멈추고 점심식사를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시계방 주인은 당황했다. “아, 그러세요. 그러나 참 우스운 일도 다 있군요. 나는 여러 해 동안 그 나팔 소리를 듣고 상점 안의 시계들을 고쳐 왔거든요.”하고 말했다 한다.
참으로 어이없고 한심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와 똑같은 일은 아니라 해도 비슷한 일은 있을 수 있다. 잘못된 지식이 무조건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와 같다. 잘못된 소문이 퍼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
좀더 냉철한 비판의식을 가져야 한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은 이제 버려야 한다. 어릴 때부터 사물을 점검하는 버릇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사실로 입증될 때까지 쉽게 믿지 말아야 한다. 틀린 시계를 보고 우리의 시계를 고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가난한 자들은 행복하고, 부유한 자들은 부정직하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만도 않다. 부유한 자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가난한 사람도 부정직한 사람이 있다. 물론 가난한 자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부유한 사람도 부정직한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또 자기하기 나름인 것이다.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정직하게 살아가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다. 행복과 부정직의 문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시간 약속

인도의 간디는 인도가 대영 제국의 지배하에 놓여 있을 때, 무저항주의로 독립 운동을 펴서 세계적인 성인으로까지 추앙받는 사람이다.
어느 날, 회의에 일부 의원들이 늦게 참석하여 회의가 예정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시작되게 되었다. 회의가 시작되면서 간디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몇 사람의 의원이 게으름을 피우는 바람에 우리조국의 독립이 30분 늦어 졌소.”
몇몇 사람이 지각을 했다는 사실에 대한 질책이기도 하거니와, 그 보다도 반세기에 걸친 독립의 숙원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와 같은 게으른 국민성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때 우리 나라에도‘코리아 타임’이라는 말이 있었다. 약속시간에 20,30분 늦는 것에 대해 전혀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우리를 보고, 외국인이 만들어낸 가시 돋힌 힐난이었던 것이다. 궂이 외국인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시간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다섯 사람이 기다리는 약속장소에 1분이 늦으면 자기만의 1분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1분×5사람=5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버린 1분도 60명과 관계가 될 때는 1시간이 되고 나아가 하루도 될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우리 모두 약속시간에 충실한다면 이 사회는 믿음이 가득찬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세번째

마음 먹기

대학의 로젠달 교수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그는 학생들을 3그룹으로 나누어, 각 그룹마다 몇 마리의 흰쥐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먼저, 첫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여러분은 행운아들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실험할 쥐들은 천재 쥐다. 따라서 여러분의 실험 결과는 대단히 좋을 것이다.”그리고 두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여러분은 보통 쥐를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보통의 결과가 예상된다.”그리고 마지막 그룹의 학생들에게는“여러분은 운이 없다. 여러분이 받은 쥐는 바보쥐들이니 별로 기대할 것이 없겠다.”
그 후, 학생들은 자기들이 받은 쥐를 가지고 6주 동안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실험 결과가 로젠달 교수가 말한 그대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즉, 첫 번째 쥐들은 천재같은 반응을 보였고, 두 번째 쥐들은 보통의 반응을, 그리고 마지막 쥐들은 바보같은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런데 로젠달 교수가 그들에게 준 쥐들은 사실은 똑같은 쥐들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교수가 학생들에게 보낸 암시와, 그 말을 믿고 거기에 준하는 실험만을 한 학생, 또 그 준하는 실험에 맞게 행동했던 쥐들의 적응력 때문인 것이다.
결국, 천재 쥐라고 믿었던 학생들은 천재 쥐들이 보일 수 있는 행동을 유도했고, 또 그 쥐들은 그 행동에 걸맞는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보통 쥐와 바보 쥐도, 그들이 받는 대우만큼 반응을 보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 실험 결과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우리의 마음 자세가 어떠냐에 따라 우리의 과정과 결과는 물론 상대방의 과정과 결과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든 우리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바로 우리의 자세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마음의 눈

도술을 배우는 하산이 물 위를 걷는 방법을 알게 되자, 자기의 도술을 자랑하고 싶어 위대한 여인인 라비아를 찾아갔다.
“라비아! 우리 물 위에 올라가 도담이나 나눕시다.”
그러자 라비아가 답하기를 “물위에서요? 그건 시시하니까 구름 위에서 유유히 떠돌며 도담을 나누는 것이 더 낫지 않겠어요?”하고 제안했다. 그러자 하산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아직까지 구름 위로 올라가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는데요.”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라비아는“나도 마찬가지에요. 나는 아직 물 위로 걷는 방법을 모른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물 위를 걷자고 하잖아요. 지금 여기서도 얼마든지 도담을 나눌 수 있는데 말이에요.”하고 말했다 한다.
진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기적이나 신통력에 연연하지 않는다. 또 허세와 과시에도 관심이 없다. 오히려 경솔한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추구하고 따라다닌다. 도는 기적이나 신통력과 관계가 없는 조화이고 자연스러움이다.
“무슨 병을 고친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공중에 뜬다.”하는 것들을 믿는 사람이 의외로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믿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마음은 내세울 게 하나도 없다. 남에게 보이는 것보다 자신을 알차게 하는 것, 그것이 참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도록 진실된 삶에 충실해져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곳이 천국이 되는 것이오, 우리가 머무르는 곳이 극락이 되는 것이다.
기적이 나타난다 해도, 현상학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음의 눈’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 마음의 눈으로 보면, 눈 앞에 보이는 만물이 모두 신비롭고 아름답다. 그래서 천국이요, 극락인 것이다

진짜 효도

옛날 어느 마을에 선비 하나가 있어, 늙은 부모님을 정성껏 모시며 살았다.
그는 부모님을 더욱더 공경하고자, 이웃 마을의 소문난 효자집을 찾아 나섰다. 늙은 홀어머니와 살고 있는 효자집은 보잘것이 없었고, 소문난 효자는 마침 산에 나무하러 가 홀어머니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얼마를 기다리니 저 멀리 나뭇짐을 진 아들이 나타났다. 그러자 늙은 어머니가 나뭇짐을 받아 드는 것이었다. 선비는 이 의외의 광경에 놀랐다. ‘효성이 지극하다는 효자가 어머니에게 그런 일을 시키다니’하며 실망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는 또 한번 놀랐다. 나뭇짐을 내려놓은 어머니가, 이번에는 대야에 물을 떠서 아들의 손과 발을 씻기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 아들은 가만히 있으니 선비는 ‘내가 아마 집을 잘못 찾아왔나 보다’하고 돌아서려는데, 그제서야 아들이 인기척을 듣고 물었다.
“손님께서는 어떻게 오셨는지요?”“누가 이 집에 소문난 효자가 있다기에 왔는데, 아마 내가 잘못 찾아왔나 봅니다.”“부끄럽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데 남들이 그렇게 부른답니다.”“당신을 모르고 그렇게 불렀지, 어디 당신하는 짓을 보면 효자라 하겠소?”“예, 손님. 저는 효도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저는 다만 어머님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려야겠다고만 생각하고 그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무거운 짐을 들게 하는 것도, 발을 닦게 하는 것도, 어머님께서 그렇게 하셔야 즐거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 못하시도록 말릴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선비는 크게 깨달았다. 진짜 효도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던 것이다. 요즈음 우리는 부모님을 봉양한답시고, 부모님의 참뜻과는 관계없는‘아무 일도 못하시게 한다’든가, ‘호화 아파트에 모셔 놓고 손자 손녀도 없는 쓸쓸한 생활’을 강요하고 있지나 않는지 모르겠다. 부모님을 모시면서, 부모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진짜 효도인 것이다.

변화의 시대

어떤 실험결과를 놓고, 우리는 몇 가지 응용을 할 수 있다. 그 실험은 몇 마리의 벌과 같은 수의 파리를 잡아 빈 병에 각각 넣고, 병의 바닥이 창가 햇빛을 향하게 하여 쓰러뜨려 놓은 뒤, 그 결과를 관찰하는 실험이다. 물론 병마개는 떼어놓는다.
그러면 벌은, 밝은 병바닥쪽으로 모여 출구를 찾아보려고 애를 쓰다가 지쳐 죽는다. 그러나 파리의 경우는, 2분도 채 안되어 반대쪽의 병입구로 모두 빠져나간다고 한다.
이 실험은 벌이 갖는 획일성 .밝은 쪽에 출구가 있다는 생각의. 이, 파리의 무계획적인 다양성보다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해서, 벌의 논리성보다 파리의 의외성이 어떤 문제에서는 더 적합하다는 얘기다.
이 실험을 한 학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벌과 파리의 실험결과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논리성과 더불어 시행착오, 임기응변, 의외성 등의 다양한 요소도 동원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실험에서 벌은 논리성으로, 파리는 유연성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창의성에 관한 책을 저술한 로버트 올슨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창의성(Creativity)이란 유창성(Fluency)과 유연성(Flexibility)의 조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유창성이란 어떤 문제에 대해 수많은 대안을 빠르고 거침없이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고, 유연성은 상식을 뛰어 넘는 비상한 생각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말뜻은 창조적인 사람들은 수평적 사고라 할 수 있는 순발력, 기지 등의 유창성과, 수직적 사고라 할 수 있는 융통성, 의외성 등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실, 21세기를 몇 년 앞둔 지금, 많은 학자들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단어중에 하나로‘변화’를 꼽는다. 그만큼 최근의 변화속도는 과거의 그 어느 때 보다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살아 가려면, 정론화된 단순논리로서는 불확실한 것이며 융통성도 반드시 함께 필요한 것이다. 벌의‘논리성’과 파리의‘융통성’이 모두 필요한 것이다.

교활한 상인

미국 시카고 어느 길가에 자리잡은 남성복 가게는, 귀머거리를 가장한 교활한 방법으로 여덟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대학까지 교육시켰다고 한다. 이 가게는 두 명의 동업자로 운영되었는데, 고객이 찾아오면 그 중 한 사람이 손님에게 자기들 상품의 우수성과 이옷 저옷의 장단점을 장황스럽게 설명하곤 했다. 그러다가 손님이 “그럼 이 옷의 가격은 얼마입니까?”하고 물으면, 그 판매원은 손님의 입 가까이 귀를 갖다대면서 큰 소리로“뭐라고요?”하고 되묻는다. 그러면 손님이 큰 소리로 “가격이 얼마냐구요?”하고 말하면 판매원은 다시“뭐라고요?”하고 또 묻는다. 이에 고객이 “옷 값이 얼마냐구요?”하고 소리를 크게지를 때, 이제서야 알아들었다는듯“오, 가격이요, 나는 잘 모르니 사장님께 물어볼께요.”하고 말한 다음, 저편에 있는 다른 동업자를 향하여 큰 소리로“사장님, 아름다운 바닷물빛 단추가 두 줄로 달린 옷의 가격이 얼마입니까?”하고 소리치는데 이 때 사장은 “48달러야!”하고 답하면, 판매원은 “들으셨죠. 사장님께서 28달러라고 말씀하시는데요”라고 말한다고 한다. 그러면 손님은 젊은이든 노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얼른 28달러를 지불하고 재빠른 발걸음으로 급히 문을 나선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약점을 노리는 그들의 교활한 상술을 알게됨과 동시에, 인간이 자기의 이익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하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들 동업자의 교활한 상술도 얄밉지만, 자기의 작은 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래서 보다 큰 것을 잃고 마는 무지 또한 안스럽기만 하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으로 대변되는 힘의 논리보다, ‘상부상조’나 ‘옥석동체’의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그립기만 하다.

자녀교육

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의미있는 판결문이 있어 소개한다.
6세 미만: 그냥 놀아도 됨. 아무것도 안 해도 됨.
6~10세: 설거지, 청소, 슈퍼마켓 심부름 등 잔일을 도와야 함.
10~14세: 설거지, 잔디 깍기, 유리창 닦기.
14~16세: 부모의 자동차 세차, 잔디 깍기.
16~18세: 전기시설 고치기, 가구 수리, 바닥 닦기, 집안 청소 등.
이상의 내용은 독일 부루크 시의 지방법원에서 어떤 판사가 내린 판결문의 구체적 내용이다. 판사는 이러한 판결을 선언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서론을 얘기했다.
“부모의 설거지나 잔디 깍기 등을 도우려 하지 않는 자녀들은 그가 비록 미성년자라 할지라도, 그는 우리 독일의 수백 년 전통을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녀들에 대해서는 부모가 법에 호소해서라도 올바른 자녀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며, 또 반항적인 자녀들에게는 부모가 강제로 노동을 명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말한 다음, 앞의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지난해 우리는‘박한상 사건’, ‘지존파 사건’, ‘온보현 사건’, ‘장교탈영 사건’등 어처구니 없는 인륜파괴 행위와 사회기강 해이의 헛점을 들어냈다. 그 분야의 많은 전문가들은 그 가장 큰 원인으로 가정에서의‘자녀교육 부재’를 들고 있다. 자녀교육 부재가 한 가정은 물론, 사회에도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제 자녀교육의 필연성은 심각한 현안으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선각자들의 다음과 같은 말을 명심하면서 우리 모두 긴 안목을 갖고, 자녀교육에 적극 나섰으면 한다.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안창호) “한 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의 청년교육에 달려 있다.”(아리스토 텔레스) “그 나라의 젊은이를 내게 보여 달라. 그러면 나는 그 나라의 장래를 점칠 수 있다.”(서양의 어느 시인)

시작의 의미

모짜르트는 음악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 다른 곳에서 음악을 배운 적이 있습니까?” 만일 학생이 “예, 배운 적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모짜르트는 “그럼 수업료를 두 배로 내십시오.”라고 말했다 한다. 그러나 이전에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수업료를 반만 내십시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한 제자들은 모짜르트에게 항의를 했다. “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수강료의 반만 받으면서 우리처럼 10년이나 음악공부를 해 온 사람에게는 오히려 두 배나 받으시니 도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이에 모짜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당연한 이유가 있지요. 음악을 배웠던 사람이 오면, 이미 잘못 길든 습관 때문에, 그 습관을 뜯어 고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이 일은 아무 것도 배우지 않은 사람을 가르치는 것보다 두 배도 더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배우는 사람은 그냥 가르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첫 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모짜르트의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주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잘못 배운 지식, 잘못 길든 습관, 잘못 산 인생들은 잘못 그 자체 보다 그 잘못으로 인해 파생되는 후유증이 더욱 심각한 것이다.
잘못 배운 지식은 우리의 판단을 그릇되게 하고, 잘못 길든 습관은 우리의 행동을 어렵게 한다. 또, 잘못 산 인생은 우리를 후회스럽게 만든다. 처음부터 깊이 생각하고 멋진 답안지를 작성한다는 것은, 보기 좋다는 것 이외에도 잘못에서 오는 이러한 오류들을 막을 수 있는‘최선과 최고의 선택’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마지막 단추도 잘 끼울 수 있다는 말을 명심하자.

뻐꾸기의 적응력

인간은 자연계로부터 무한한 섭리를 배울 수 있다. 뻐꾸기를 통해 한번 배워 보자.
뻐꾸기:두견이과의 새. 두견이와 비슷하나 훨씬 큼. 몸 빛깔은 검은빛을 띤 회색. 개개비 따위의 다른 새 둥지에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며, 주로 곤충류를 잡아먹고 삶.(이하 생략). 국어사전에 풀이된 뻐꾸기 내용이다.
국어사전에 풀이된 바와 같이, 뻐꾸기는 남의 둥우리에 알을 낳는다. 이러한 행위는 뻐꾸기 특유의 게으름이나 얌채짓 때문이라고 알려져 왔으나, 그 얌채짓이 특정 독성에 중독된 현상 때문이라고 조류학자들이 밝혔다. 즉, 뻐꾸기가 주로 먹는 나방의 에벌레에 정신을 혼몽시키는 독성이 있어 수십, 수만 년 계속되는 도중에 중독이 된 일종의 마비현상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초(?)의 환경오염 피해 동물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그 이유를 알고 보면, 뻐꾸기의 그 얌채짓에도 다소나마 동정이 간다. 독성이 모성애마저 앗아간 것이니까.
그러나 모성애는 잃었지만, 최후의 본능인 종족번식의 강한 집념은 남다른 면이 있다. 뻐꾸기는 산란기가 되면 우선 그 위탁 대상의 새를 찾는다. 다른 새가 포란하기 위하여 둥지를 틀면 뻐꾸기는 즉시 교배를 하고 수정을 한 후, 그 대상의 새가 알 낳기를 기다린다. 종족 번식의 집념이 자연 본능의 알 낳는 시기까지 조정하는 것이다. 대상의 새가 드디어 알을 낳아 둥지를 비우면, 얼른 그 둥지로 날아가 자기의 알을 낳고 다른 알을 하나 떨어뜨린다. 이러한 작업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뻐꾸기의 등에는 움푹 패인 곳이 있다 한다. 적자생존, 용불용설이 그대로 적용된다 하겠다.
만일 새가 알을 낳고 둥우리를 떠나지 않으면 기막힌 대안이 있다. 이럴 때는 암수 모두 합동작전을 벌이는데, 숫놈이 둥지 위로 날아가 매의 날개짓 흉내를 내어 새가 둥지를 떠나도록 한다는 것이다. 무서운 집념으로 목적을 달성한다.
놀랄 일은 아직도 계속된다. 이렇게 해서 가짜 어미새로부터 부화되는 새끼 뻐꾸기는 다른 알보다 1~2일 먼저 부화하여 (자기의 신분이 발각될까봐?) 다른 알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짜 어미새로부터 20~23일간 먹이를 받아 먹고 성장하다가 둥지를 떠난다는 것이다. 뻐꾸기 나름대로의 적응력에, 신비감과 경이로움 그리고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성공의 공식

여러분은 성공에도 공식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미국의 방송 컬럼니스트인 얼 나이팅게일의 성공의 공식을 들어 보자.
그는 이 공식을 얘기하기에 앞서, 우리가 갖고 있는 잘못된 생각 하나를 먼저 지적했다. 그는“우리가 갖는 의외의 잘못된 생각 중에 하나는 성공이 행운의 문제요, 한탕주의, 부자로 태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잘못된 생각으로 보는 이유는 성공이란 1+2=3처럼 간단하고 확실한 것인데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계산하다가 실패를 거듭한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그가 제시하는 성공의 공식을 알아보자.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면 이렇다.
“일평생은 년, 월, 주 그리고 날들로 구성된다. 일평생의 기본 단위는 하루다. 그리고 우리의 생애 중 하루는 각자의 어떤 행동으로 이루어지고 또 엮어지고 있다. 하루를 성공적인 날이 되게 하려면, 우리의 각 행동은 성공적이어야 한다. 성공적인 날을 일평생 동안 반복하면, 당신은 일평생의 성공을 맛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위대한 것을 위해서 이리저리 뛸 필요도 없다. 당신이 얼마나 많이 행동하느냐가 문제다. 내주의 일을 오늘 하려고 노력하지 마라. 오늘의 일을 가능한 최대로 하라. 그리고 내일의 일은 내일로 미루어 하라. 한 번에 하나씩하라.”
이것이 그가 말하는 성공의 공식이다. 얼마나 명쾌한 설명인가! 사실, 얼 나이팅게일의 이 설명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성공에 대한 얘기를 많이 알고 있다. 그것들 모두는 하나도 신비로운 것이 없다. 우리가 성공을 위해 매일매일 얼마나‘행동’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성공은 수학적으로 예측되고 또 계산될 뿐이다. 그러니 오늘부터 성공의 공식대로 우리의 하루 행동을 성공적으로 엮어 보자.

참 행복

어떤 부유한 상인이 생가이 대사에게‘자기 가족의 번영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좋은 말’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대사는 붓과 먹을 가져온 후 다음과 같이 말을 적었다.
“할아버지가 죽는다. 아버지가 죽는다. 아들이 죽는다.” 이렇게 불길한(?) 얘기가 적힌 종이를 받은 상인은 매우 화가 나서 대사에게 즉시 따지고 물었다. “도대체 내용이 이게 뭡니까? 우리 가족을 위해 겨우 이 말씀을 적어 주십니까?”이에 대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말은 나쁜 말이 아닐세. 오히려 그대에게 가장 큰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말일세. 들어보게나, 나는 그대 집안 사람들이 모두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살라는 뜻을 적은 것일세. 또 이 말은, 할아버지보다 먼저 죽는 아들이나 손자가 한명도 없기를 바란다는 뜻일세. 만일 그대 가족이 이와 같이 순서대로 죽지 않는다면, 집안에 이 보다 큰 불행이 어디 있겠나? ‘집안의 진실한 행복’은 이와 같이 순서대로 태어나서 순서대로 죽는 것이네.”
이 말을 듣고 상인은 “옳은 말씀이십니다.”하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처럼, 듣고 보니 말은 된다. 우리는 항상 행복을 원하며, 또 그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참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행복은 돈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권력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순응하며 아무 문제없이 사는것, 그것이 어쩌면 가장 의미있는 행복 일 수 있는 것이다.

네번째

포기하지 마라!

서양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두 마리의 개구리가 동시에 우유통에 빠졌다. 한 마리는 거대한 우유통에 빠지게 된‘자신의 신세를 한탄’만 하다가 절망 속에서 죽어 갔다. 그러나 다른 한 마리는‘문제는 이 곳으로부터 빠져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지막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해 보기로 작정하고, 두 다리를 힘차게 저으며 계속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이 꽤나 흘러, 액체 상태의 우유가 점점 고체 상태로 변해 갔다. 얼마가 더 지나서 그 개구리는 굳어진 버터를 박차고 탈출에 성공했다는 얘기다.
어려움이나 불가능이 느껴지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방법을 찾아보라는, 그러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는 뜻의 이 우화는, ‘우연이나 행운도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 간다’는 파스퇴르의 말 그대로를 설명한 글이다.
그렇다!
비록 힘든 이기는 해도, 새벽 공기를 마시며 신문 뭉치를 들고 힘차게 뛰다 보면 가장 소중한 건강을 얻는다. 성장 과정이 불우하고 가난했기에, 남보다 적은 것이지만 자기가 가진 것으로 남보다 빨리 만족할 줄 아는 최고급의 지혜를 터득한 행복한 사람들! 남보다 열심히 깊은 밤까지 공부하며 학문의 최고 정상에까지 오른, 그래서 얻은 자신감으로 아직도 깊은 밤까지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진짜 학자들! 성공을 위해 남보다 더 부지런했고, 지금도 근면 성실하게 자기의 업무를 처리하여 보람 있는 하루를 엮어 가는 성공한 직장인들! 그외에도 무수히 많은 부류의 최고 정상을 지키는 예술가, 발명가, 요리사…….
이 모든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성공은 물론 건강, 자신감, 행복감까지 아울러 갖고 있으니,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최대의 보상이 아니겠는가!
우리 또한 이들로부터, ‘적극적 사고 방식’, ‘긍정적인 생각’, ‘나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값진 교훈을 배우며, 또 ‘나도 그렇게 되어야겠다!’라는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도 앞의 개구리들이 느꼈을 비슷한 절망감은 있었겠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두 다리를 힘차게 움직이며 그 절망을 헤쳐나갔을 테니까.

인물

우암 송시열은 효종 때 재상이었던 사람이다. 그가 어느 날 평상 복장을 하고 경기도 장단 고을을 향해 걸어 가게 되었는데, 갑자기 비를 만나게 되어 길가 조그만 주막집 사랑방에서 비가 그칠 때까지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문밖이 소란해지더니 무관 한 사람이 주막집으로 뛰어들어 왔다. 그 무관도 사랑방에 들어와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두 사람이 한 방에서 한참 동안 무료하게 앉아 있게 되자 무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장기쯤은 둠직한 첨지일세 그려. 어디 심심한데 한번 놓아볼까?”
송시열이 상대를 얕잡아 보는 말투에도 아랑곳없이 고운 말씨로 받아, 장기 한 판을 두고 나자 무관이 말했다.
“그런데 영감은 감투라도 썼던 모양인데 무슨 감투를 썼나? 보릿섬이나 좋이 없애고 보리동지했나?”
‘좋이’란‘꽤’란 뜻이고, ‘보리동지’란‘곡식을 바치고 명목만의 벼슬을 한 사람’을 조롱하여 이르던 말이다. 우암은 속으로 우스웠지만 시치미를 떼고 점잖게 대꾸했다.
“예, 벼슬이라고 해야 뭐 대수롭겠습니까?”
“성명은 뭔고?”
“예, 제 성은 송이옵고, 이름은 시열이라 합니다.”
“어?”
그는 단번에 안색이 변하더니 당황해졌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짜고짜 우암의 따귀를 후려갈겼다.
“이 고약한 첨지놈! 네 어찌 감히 우암 송시열 대감을 사칭하는고! 우암 대감으로 말하면 문장, 도덕, 식견으로 일세에 으뜸이신 분인데!”
말을 마치자 무관은 문을 박차고 나가더니, 말을 달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이에 우암은“실로 멋진 기지로다.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로다.”하며 주막집 주인을 통해 그의 신분을 알아내어, 그를 평안 병사에 임명했다 한다.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을 숭상하여, 국가의 동량까지 찾아낸 우암 송시열 선생의 높은 인격에 경의를 표한다

우리도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지도자는 태어나는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하는 문제는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대중을 이끄는 지도자들에게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나름대로의 매력과 철학, 그리고 사명감을 갖고 있다. 이러한 남다른 요인들은 선천적일까, 후천적일까? 논리적인 증명이 쉽지 않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지도자의 유•무능 여부를 말할 때는 그들이 행하는 여러 가지 행위와 그리고 그 결과라는 것이다. 즉, 결과가 좋으면 유능한 지도자가 되고, 결과가 나빠지면 무능한 지도자로 전락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우리는 지도자의 자질을 논할 때, 선천적인 요인을 무시하지 못한다. 소위 타고난 소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질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가? 최근 집단으로 생활하고 있는 원숭이에 대한 실험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이 소질과 관련이 있어 여기 적어 본다. 자연계란 과연 위대한 학습장인가 보다.
원숭이 실험결과는 이렇다. 무리지어 집단 생활을 하던 원숭이 중에, 어떤 원숭이가 우두머리가 되는 순간‘셀로토닌’이라는 물질이 2배 이상이나 갑자기 증가했다는 것이다. 셀로토닌이란, 환경이 변하면 몸 속에 있는 화학물질도 변하는데 이 화학물질의 양이 많고 적음에 따라 행동까지 달라지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을 말한다. 즉,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셀로토닌의 양이 변하고, 그 변화에 따라 성격과 행동이 변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와 비슷한 조건으로 인체실험을 했을 때도 실험결과는 동일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자질이라는 것도, 우리가 추측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환경과 상황에 좌우’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 된다.
그러니, 자기는 너무 평범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 앞에 주어진 환경을 오히려 적절히 이용하기만 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고 또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지도자란 처음부터 타고난 것은 아닌 것이다. 갖난 아이가 도대체 무엇이 다를 수 있겠는가? 위대한 지도자일수록 어려운 환경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환경을 이용해서 오히려 위대한 지도자가 된 것이다.
환경에 맞추어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일한다면, 우리도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가정에 더 많이 기여하여야 할 것이다.

자식 교육

조선조 초기, 명재상 황희는 세종 때 영의정이 되었는데 공사의 구별이 엄격하여 관원에서 추호도 국가의 재산을 낭비하지 못하게 하였고 공평 무사하여 청빈하게 지낸 분이다. 조선조 역대 명신 중 가장 청백한 재상이었다.
황희의 맏아들은 일찍이 벼슬이 참의에 이르러, 집을 크게 짓고 많은 친구들과 고관 대작을 초정하여 주연을 베풀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아버지 황희는, 돌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음식도 들지 않은 채 돌아가 버렸다.
“선비는 청렴하게 비가 새는 집에서 정사를 돌보아도 나라가 잘될지 의문스러운데, 이렇게 호화롭게 지낸다면 어찌 뇌물이 오가지 않을 수 있겠느냐! 나는 이런 집에 잠시라도 머무는 것이 부끄럽다.”이렇게 꾸짖었던 것이다.
둘째 아들은, 주색에 빠져 가사조차 돌보지 않았다. 황희는 여러 번 아들에게 훈계하였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황희는 둘째 아들이 집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문밖으로 나가 맞이하며 공손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주색에 빠져 부친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던 아들은, 부친의 이러한 태도에 놀라“아버님, 어찌된 일이옵니까? 의관 속대까지 하시고 저를 맞아 주시니 대체 어찌된 일이십니까?”하고 당황해했다. 그러자 황희는 여전히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면서“아비 말을 듣지 않는 자식이 어찌 내 집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고로 한 집안 사람이 아니니 내게는 손님이라, 이렇게 정중히 인사드려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둘째 아들은 크게 깨우쳐 새사람이 될 것을 맹세했다고 한다. 어렵기만 한 자식교육에 표본이 될 수 있는 이러한 이야기를 우리 모두 깊이 음미해야 할 것이다.

환경

이탈리아가 낳은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중에 <최후의 만찬>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이다. 그가 이 명작품을 완성하기까지에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다.
그는 이 <최후의 만찬> 작품을 구상한 후, 우선 예수의 모델을 찾는데 무척 애를 써야만 했다. 왜냐하면 예수로 표현되는 성스러움과 선함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찾고자 했던 적합한 인물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는 피에트로 반디네리라는 교회의 성가대원이었다.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고 있던 그는 성스럽게 살아가고 있었다.
따라서 예수의 모델로 발탁되었고 작품<최후의 만찬>은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로마로 음악공부를 하러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나쁜 친구와 어울리게 되어, 그만 방탕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예수의 모델이 될 만큼 고상했던 그의 얼굴은 어느덧 온데 간데 없어지고 악의 자취가 가득하게 나타나고 말았다.
한편, 예수의 모델을 얻음으로써 큰 진척을 보았던 <최후의 만찬>은 또 하나의 장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의 모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몹시 흉악하고 타락한 유다의 모델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민에 빠져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마침내 그렇게 찾아 헤매던 유다의 모델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 모델의 악독한 얼굴을 그려내어 마침내 <최후의 만찬>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림이 완성되고 난 후 알고보니, 그 가롯 유다의 모델이 된 사람이 다름 아닌 옛날의 예수 모델이 되었던 바로 그 피에트로 반디네리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같은 인간일지라도, 환경에 따라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하나의 같은 씨앗이라도 과정이 잘못되면 결과는 예수냐, 유다냐로 그렇게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된다는 의미심장한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현왕과 명신

고구려 제 9대 고국천왕(179~197재위?)은 선왕인 신대왕(165~179)이 죽은 후, 대신들의 추대를 받아 즉위했다. 그러나 왕위에 오를 당시에는 외척 세력들이 관직을 독점하여, 실력이나 덕망에 의하지 않고 재물이나 친분에 의해 매매되는 등, 기강이 문란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원성과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고, 이러한 틈을 타서 반란군까지 생겨 국가의 존망까지 위태롭게 하였다. 왕은 각처의 수령들을 동원하여 가까스로 반란군을 막아 냈다. 이 후, 왕은 자신의 미흡했던 통치력을 깊이 반성하여 각처 수령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방을 보냈다.
“짐이 그 동안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공평 무사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덕과 능력에 따라 승진시키지 못했음을 사과하노라. 이제라도 각 수령들은 현명한 인재를 천거하여 국력을 키우는데 이바지하도록 하라!”
이 명령이 나간 후, 안류하는 신하가 을파소를 추천했다. 당시 을파소는 뜻을 품은 학자였지만 바닷가에 은신하고 있었다. 왕은 을파소에게 중외대부에 우태라는 관직을 주었다. 그러나 을파소는 그 직책으로는 정사를 펴나가기에 부족한 벼슬이라고 사양했다.
그러자 왕은 을파소를 다시 국상으로 임명하면서, 을파소를 추천한 안류에게까지도 상을 내렸다. 이에 을파소는 자기의 뜻이 왕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다고 생각하고, ‘때를 못 만나면 숨고, 때를 만나면 벼슬을 하여 국가에 봉사는 하는 것이 선비의 상도라’ 하며 본격적으로 정사에 전념했다.
각료들을 바르게 이끌며 본을 보였고, 상벌을 원칙대로 행하여 질서와 기강을 세웠고, 공정한 업무 처리로 행정 사무를 능률화해서 하루가 다르게 변화했다. 우연일까? 매년 겪던 홍수와 가뭄 역병까지도 사라지니 백성의 칭송은 자자했고 태평성대를 맞게 되었다.
우연이나 행운도 준비하는 자에게 찾아가는 것이다. 현명한 왕이 있었기에 명재상이 탄생된 것이고, 명재상이 있었기에 또한 국가가 평안해진 것이다. 우리의 을파소를 기대해 본다.

‘이해하다’의 말뜻

우리는 조그마한 호기심으로도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 필자는 어느 날 ‘이해하다(사리를 분별하여 앎. 또는, 말이나 글의 뜻을 깨우쳐 앎.)’라는 말뜻을 조사한 바 있다.
잘 알다시피 한문으로는 ‘理解’라고 쓴다. ‘理’는‘이치(理致)’라는 뜻이고 ‘解’는 ‘푼다’는 뜻으로 사전에 적혀 있으니 ‘이해하다’는 뜻은 그 무엇에 대한‘이치를 알아낸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는 아직도 이해가 부족하다고 느낀 필자는 영어 단어를 생각 해보았다. 영어로는 ‘understand’이고 ‘under(∼의 밑에서)’와 ‘stand(서다)’의 합성어로써 그 말뜻을 합쳐보면‘밑에 서다’의 뜻이 될 것이다. “아! 그렇구나. 나의 위치에서 나의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위치로 내려가서 서는 것이 ‘이해한다’는 뜻이구나!”라고 생각되어‘이해하다’의 뜻을 조금은 알게 된 듯 싶었다.
이왕 내친김에 프랑스 말을 조사하니 ‘com(∼와함께)’과 ‘prendre(잡다)’의 합성어인 ‘comprendre’였다. 이 뜻은‘함께 잡는다’라는 뜻이니‘고통을 분담하자’는 뜻이‘이해하다’의 뜻이 되는 것이다. 힘든 물건을 함께 잡지 않고는 그 무게가 주는 부담을느낄 수 없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상대방의 주장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말이 주는‘이해하다’의 뜻도 이와 같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독일어를 조사하였다. ‘verstehen’인 바 역시 ‘ver(∼을 대신하여)’와 ‘stehen(서 있다)’의 합성어로써 그 뜻은‘대신 서 있다’의 뜻이었다. 이 뜻은 상대방의 입장이 된다는 뜻과 같은 의미이다. 이 뜻 역시‘남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뜻으로써, 그래야 말뜻 그대로의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대화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하나가‘이해하라!’일 것이다. 자기의 주장만 계속하면 대화는 계속되지 못한다. 상대방의 입장으로 내려가거나(영어), 같은 입장이 되어보거나(프랑스어), 대신 그 입장이 되어봄(독일어)으로써 우리는 대화를 원만히 진행할 수 있고, 또, 좋은 동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해하다’라는 말뜻 하나에 숨어 있는 이러한 이치를 알아냄으로써(한문), 우리는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더 밝고 아름다운 우리 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단 하나뿐인 목숨

미국의 독립전쟁이 치열할 때, 워싱턴 장군의 진중으로 해앨이라는 젊은 청년이 찾아와서 전투에 참가시켜 달라고 애원했다. 너무 어리다고 장군은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어떠한 일이라도 좋으니 저를 꼭 전투에 참가시켜 주십시오!”
장군은 그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이고, 어째서 그토록 전투에 참가하려 하느냐?”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예, 저는 대학생입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너의 목숨은 언젠가는 꼭 쓸데가 있을 것이니 소중히 아꼈다가, 바칠 때가 되면 아낌없이 바쳐라!’하셨습니다. 이제 나라의 독립을 찾는 이 전쟁에 어찌 저의 목숨을 아끼겠습니까?”
워싱턴 장군은 그 청년의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청년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너의 어머니와 너는 참으로 애국자이다.”하고 말하며 그의 전투 참가를 허락했다.
때마침, 워싱턴 장군은 적과 싸우면서 적진의 사정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위험한 적의 진영으로 보낼 마땅한 병사가 없어서 고심하던 중이었다. 청년의 나이가 어리니만큼 의심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어 청년에게 물었다. “너는 적진으로 들어가 정탐을 해보겠느냐? 아주 위험한 일이다.”그러자 청년은 대답했다. “네, 기꺼이 하겠습니다. 제게 주어지는 임무라면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해앨 청년은 빵 장수로 위장한 후, 얼마의 교육을 받고 적진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도중에 체포되고 말았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받았지만 끝까지 비밀을 지키다 결국은 사형장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총살형이 집행되기 직전 그는 이런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아, 원통하다! 내게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단 하나뿐이라는 것이.”지금도 그의 모교인 하버드 대학 교정에는 그 때의 총성과 함께 사라진 해앨의 동상이 있고 그 밑에는 이런 글이 쓰여져 있다 한다. “아, 원통하다! 내게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단 하나뿐인 것이.” 참으로 가슴 뭉클한 의미있는 글이 아닌가 한다.

1류 국가, 1류 국민

봄이 되자 아버지가 어린 아들과 함께 소를 몰고 밭갈이에 나섰다. 아버지는 익숙한 솜씨로 소를 몰았고, 어린 아들은 아버지의 밭가는 모습을 구경했다. 아버지가 잠시 쉬고 있을 때, 아들은 자기도 한번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승낙을 받은 아들이 소를 몰아 보니 멀리서 보기보다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메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아버지는
“소가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것은, 네가 가고자 하는 목표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선 너는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해야 한다.”라고 일러 주었다.
아들이 방향을 정하고자 앞을 보니, 소의 머리가 보였다. 아들은 이 머리를 목표로 하여 방향을 잡고 소를 몰았다. 그러나 소가 앞발을 내밀 때마다 머리가 흔들려 밭고랑은 역시 엉망이 되었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움직이는 것을 목표로 삼으니까 그런 것이란다. 움직이지 않는 확실한 목표를 잡아라! 그것은 가까이 있지 않고 먼 곳에 있다.”아들이 저 먼 곳을 바라보니 언덕 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그제서야 밭이 제대로 잘 갈렸다.
곁에서 보기에 쉬워 보이는 일도 직접 해보면, 어려움도 있고 또 비결도 있다는 이 이야기는 의외로 깊은 뜻을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어떤 분야의‘대가’들을 존경해야 한다. ‘장인’을 존경하고‘명장’과‘명인’을 존경해야 한다. ‘명창’도 마찬가지고‘애국자’도 그렇다. 하다 못해 ‘1류 요리사’도 그렇고 ‘1류 이발사’도 그렇다. 어떤 분야에서 1류란 생각처럼 운이나 재주 때문만으로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류는, 자기 일에 대해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다. 남보다 더 많은 정성과 노력을 한다. 그 분야에 1류가 되기 위해서 그들은 누구보다도 많은 땀을 흘렸고 시간을 받쳤다. 그 결과가 1류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모든 땀방울까지 존중하고 따를 줄만 안다면, 우리 또한 1류 국가, 1류 국민이 될 것이다.

분발력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가 젊었을 때, 친구와 함께 사냥을 갔다. 그런데 같이 간 친구가 다리에서 실족하는 바람에 늪에 빠졌다. 친구는 혼자 힘으로 늪에서 빠져 나오려고 애를 썼지만, 기대와는 달리 점점 깊이 빠져들어 갔다.
다급한 상황에 친구는 소리를 질렀고 비스마르크가 달려 왔다. “여보게, 나를 꺼내 주게. 혼자 힘으로는 나갈 수가 없네.”그러나 비스마르크는 친구를 바라보기만 할 뿐, 도와주지 않았다. 이에 친구는“여보게, 뭐하고 있나. 빨리 도와 주지 않고.”하며 화를 냈다. 그러자 비스마르크는 갑자기 옆구리의 총을 꺼내어 그 친구의 머리를 겨냥했다.
친구가 다급해서 소리쳤다. “이봐, 자네 미쳤어. 내게 총을 겨누다니!” 그러자 비스마르크는 친구에게 “자네는 지금 그 늪에서 나올 수 없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두면 심한 고통만 받다가 죽게 될 걸세. 친구인 나로서는 자네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나. 이제 죽더라도 나의 우정이나 잊지 말게나!”하며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그러자 친구는 너무도 분한 마음이 들어 비스마르크가 있는 곳으로 뛰듯이 달려 나왔다. 그리고는 비스마르크에게 덤벼들려 하였다. 그러자 비스마르크가 웃으며 말했다”이 친구야. 내가 겨눈 목표는 자네의 머리가 아니고, 자네의 분발력이었어. 자네의 힘만으로도 거뜬히 이렇게 나올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그렇게 애원을 했단 말인가.”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움에 부딪치게 된다. 그 때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을 무시하고 쉽게 좌절한다. 그리고는 남의 도움이나 기대하고 또 원망한다. 그것은 현명한 방법이 못된다.
분발력을 잘 이용하면, 평생 동안을 힘차게 살아갈 수가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평상시에도 가능한 것이다. “오늘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다.”라고 진지하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자기의 힘만으로도 성스럽고 고귀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다섯번째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로버트 풀검이 지은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관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유치원에서 배웠다. 지혜는 산꼭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치원의 모래성 속에 있는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말한다.
“내가 유치원에서 배운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무엇이든지 나누어 가져라! 정정당당하게 행동하라! 남을 때리지 마라!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놓아라! 네가 어지럽힌 것은 네가 깨끗이 치워라!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아라! 남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는 미안하다고 말해라! 밥 먹기 전에 손을 씻어라! 화장실 물을 아껴 써라!…….”
몇 가지 사항이 더 소개되고 있지만 지면상 생략한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많이 배운 사람들이 세상의 온갖 지식이나 지혜를 모두 갖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가 못 배웠다 하여 그들보다 부족한 것은 지식이지 지혜는 아닌 것이다. 지식은 대학 교수나 선생님들처럼 학생을 가르치는데 필요한 것이고, 인생을 살아가는데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과 지혜는 엄밀히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학교생활을 통해 배운 지식을 일상생활에서 모두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수학의 미적분 공식이나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안다. 또 설혹, 지식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리 염려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도 그렇고 뉴우턴도 그렇다. 적어도 지식의 세계에서는 그렇다.
어쨌든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각종 지식과 지혜는 이미 다 배웠다. 문제는 우리가 건망증이 심해서 이미 알고 있는 지식도 살리지 못해서 지혜롭게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과, 뻔히 알고 있는 지식조차도 외면하고 그대로 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우리는, 우리의 기억력을 되살리고, 또, 알고 있는 지식대로 행동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언쟁하지 말자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 언쟁을 하게 된다. ‘언쟁으로는 친구를 얻지 못한다.’는 말도 있지만 언쟁의 결과는 당연히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언쟁을 피하고 싶은 방법을 알고 싶으십니까?” 미국의 방송 컬럼니스트인 얼 나이팅게일의 해답을 소개해 본다. “질문하라! 따지지 말고 질문을 하라!”이다. 상호 이야기하는 주제에 관해서, 상대방보다 더 많이 알기 전에 문제에 뛰어들지 말거나, 반대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을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도록 열심히 물어보라는 것이다. 말이 복잡한 듯하니 다시 한번 설명해 보자. 만일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화나게 하는 말을 했을 때, 당신은 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지 말고 그의 말이 왜 옳은가를 입증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왜 그런 말을 하시죠?”하는 종류의 질문으로.
그래도 또다시 어리석은 소리를 계속하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하고 물어라. 다음과 같은 질문을 계속해라.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어떻게 그것을 아셨죠?”그가 계속 설명을 하는 동안은 듣기만 하라. 그러다 보면 결국 주제가 바뀔 것이다. 언쟁하지 마라. 그렇게 계속하면 상대방은 성급하게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케네디와 존슨 미국 대통령 재직시에 국방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어떤 문제가 제시될 때마다 상대방에게 물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죠?”그는 상대방의 제안에 반대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문제에 대한 사실을 하나라도 더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혹시 자기 자신에게 잘못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 그 제안에 동의하고 있더라도, 제안자의 체면과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서였다.
언쟁 때문에 간단한 문제가 복잡하게 되고 나아가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언쟁하지 않고 자기의 뜻을 구현한다. 언쟁으로는 요점을 알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언쟁은 적들만 양산할 뿐이니, 언쟁하지 말고 질문을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 싶다.

작은 것과 큰 것

한의학을 전공한 사람이 지은 책에 이런 꾸민 이야기가 있다.
어떤 남자가 한평생 동안을 정신없이 일하며 돈을 모았다. 누구보다도 억척스레 일한 덕분에, 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도 가리지 않고 뛰어든 덕분에, 그는 드디어 수백 억의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신의 장난은 야속했다. 3년 전부터 눈이 튀어나오고 목이 퉁퉁 붓는 괴질병에 시달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곳 저곳 유명하다는 의사를 찾아가 진찰을 받아보았다. 편도선 때문이라는 의사의 말대로 편도선도 떼어보고, 허파가 이상해서 그렇다니 수술도 받아보고, 콩팥도, 위장도, 쓸개도 수술해 보았지만 병세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정신병원을 찾았다. 그랬더니 의사 왈“사장님! 그렇게 애쓰고 번 돈 실컷 써보기나 하십시오. 그렇게 질병에 시달리며 괴로워할 바에는 이제부터라도 실컷 먹고 쓰시며 사십시오!”하는 것이었다.
그랬다. 그동안 그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단 하나의 신념으로만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와이셔츠 한 벌로 5년을 입었고, 양복 한 벌로 10년을 입으며 남에게는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인색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바꾸고 싶었다. 건강이 나쁜데 돈은 무슨 소용이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초고급 레스토랑으로 달려가 평소에 그토록 먹고 싶었던 음식을 마음껏 먹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와이셔츠 가게로 달려갔다.
가게 주인은 이 고객의 몸매를 열심히 재면서 종업원에게 치수를 불러주었다. 목의 치수를 재던 주인은 “16인치”하고 말했다. 그는 놀랐다.
“이보시오, 주인양반! 나는 5년동안 14인치의 와이셔츠를 입었던 사람인데 무슨 16인치란 말이오.”가게 주인은 이 말을 듣고 다시 그의 치수를 재더니 다음과 같이 조용히 말했다.
“사장님! 당신은 정말 5년 동안 14인치의 와이셔츠를 입으셨습니까? 나는 와이셔츠로 30년을 일해 왔습니다. 의사는 아니지만 나는 잘 압니다. 당신같이 16인치 옷을 입으실 분이 14인치의 옷을 입게 되면 혈관이 조여들어 눈이 튀어나오고 목이 붓는 괴질에 걸릴 수가 있다는 사실을…….”
사장의 귀에 더 이상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우리 모두 이 사장처럼 작은 것에 매달려 큰 것을 놓지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심한 배려

호기심 많은 한 소년이 평소에 보지 못하던 풀 한 포기를 발견하고 선생님에게 그 풀의 이름과 특징을 물었다. 선생님은 그 풀을 유심히 관찰했지만 끝내 고개를 흔들고 모른다고 말했다.
“참, 너의 아버지는 유명한 식물학자 아니냐? 너의 아버지에게 물어 보렴.”
소년의 아버지는 식물학 박사로 그 분야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소년은 선생님의 모른다는 말에 실망했다. 그 선생님은 평소에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해박한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온 소년이 그 풀을 아버지에게 보이며 물었다.
“아버지! 이 풀의 이름이 무엇이에요? 또 그 특징은 무엇이고요? 아까, 학교에서 이 풀을 발견하고 선생님께 물어보았지만 선생님도 모르신다며 아버지께 여쭤 보래요.”
아버지는 소년이 준 풀을 받아 들고 유심히 관찰하더니,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구나. 내일 선생님께 다시 물어 보려므나.”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이 말에 소년은 크게 실망했다. 평소에 식물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는 아버지가 이 풀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자기의 선생님은 모르셨지만, 그래도 아버지만큼은 꼭 알고 계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아버지에 대한 커다란 실망을 안고 다음 날 학교에 갔다. 선생님이 소년에게 다가와 물었다.
“얘야, 어제의 그 풀에 대해 아버지께 물어 보았느냐?”
그러자 소년은
“아버지께서도 잘 모르시겠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소년에게 그 풀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 소년이 그렇게 궁금해하던 그 풀의 이름과 특징을.
소년은 놀랐다. 어제 선생님이 이 풀에 대해서 모른다고 말했을 때, 선생님을 무시하고 비웃었던 일이 죄스럽게 느껴졌다. 식물학자인 아버지도 모른다는 이 풀에 대해 자세히 알고 계시는 선생님이 무한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선생님의 이 자세한 설명은 아버지가 전화로 아들 몰래 알려 준 내용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직접 설명을 해주면 아들이 선생님을 무시할 것이 염려되어 그런 세심한 배려를 했던 것이다.
항간에 나타난 아버지와 아들, 선생님과 제자간의 좋지 않은 사건들에 무언가 작은 해답이 될 것 같아 적어본 얘기다. 우리 모두 자기의 손실을 감수하며, 남의 입장을 세워 주는 이런 세심한 배려 뒤에는 인간으로서의 신뢰가 회복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백락과 천리마

세상에는 백락(중국 주나라 사람으로 명마 감정의 달인)이 있어야 천리마(하루에 천릿길을 달린다는 명마)가 있는 것이다. 천리마는 항상 존재하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백락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비록 명마가 있다 한들, 백락이 없으면 시시한 사육사에 의해 하찮은 말들과 무리를 이루며 길들여 지다가, 자기의 재능은 전혀 발휘하지 못한 채, 여물통과 마판 사이를 오가며 보잘것없는 달구지나 끌다가 죽게 되는 것이다.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달리는 말은, 한 끼에 겉곡식 한 섬을 먹는다. 그런데도 시시한 사육사에 의해 여느 말처럼 먹게 되니, 그 말이 비록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재능이 있다 한들, 오히려 달릴 수 있겠는가. 차라리 보통 말들과 똑같아 보려고 애를 써보지만 이 또한 이루기 어렵다.
아, 천리마가 난다 한들 알아 주지 않으니, 그 뛰어난 재주를 펼칠 수가 없구나!
그래서, 천리마가 섧게 울어 자신의 뜻을 전하려 해도, 우둔한 사육사는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채찍까지 거머쥐고 다가와 고작 한다는 소리가, ‘세상에 좋은 말이 없도다! 세상에 좋은 말이 없도다!’하고 한탄 뿐이니……
오, 슬프다. 세상에는 진정 천리마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이 없는 것인가?
이 글은 중국의 당송8대가 중에서도 제1인자로 꼽히는 한유 퇴지(768~824)의 ‘잡설’이라는 글이다. 이태백, 두보, 백락천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는 한퇴지의 이 글은 풍유문의 극치를 이룬다.
이 세상에서 소위 장(長)자와 관(官)자 붙은 제공(諸公)들이여!
“우리 부(部)에는 인재가 없어서……”
“우리 처(處)에는, 우리 실(室)에는, 우리 회사에는 인물이 없어서……”
하며 한탄만 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돌려 제공 바로 옆에 있을지도 모를 천리마를 찾으라. 그래야 제공도 백락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그 천리마와 더불어 천릿길을 신나게 달리지 않겠는가!

기름 장수의 교훈

한석봉(1543-1605)은 조선 시대의 명필가로 중국에까지 명성을 떨친 분이다. 그가 이렇게 유명해지게 된 배경에는‘그의 어머니와의 떡썰기’에 대한 일로만 알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또 하나의 얘기가 민화로 전해진다.
어머니의 각별한 정성 덕분에, 그는 남다른 노력을 했고 그래서 상당한 명성을 얻게 된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그가 시장 거리를 걷던 중, 한 소년이 기름을 사기 위해 기름병을 들고 “참기름 한 병만 주세요!”하고 말하는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은, 보통은 기름을 사려면 기름가게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소년은 가게 밖에서 2층 창문을 향해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그는 호기심이 발동해 발길을 멈추고 그 모습을 지켜 보았다.
그러자 2층의 창문이 열리면서 주인인 듯한 사람이“그래, 알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바쁘니 거기서 받아가거라.”하고 말하더니 기름이 든 항아리를 번쩍 들어 2층에서 흘리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하며한석봉은 놀랐다. 2층 항아리에서 쏟아진 기름은 마치 한 올의 실타래가 풀려나오는듯 내려오더니 소년이 들고 있는 병속으로 그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더욱더 놀라운 것은 기름병이 다 채워질 무렵에는 실이 가위에 잘리듯 딱 끊어지는데 조금도 넘치지가 않는 것이었다. 일을 마친 주인은“이제 됐으니 그만 가보아라. 돈은 다음에 가져오너라.”하고 말하니 소년은 “예, 알았어요.”하고 쪼르르 사라지는 것이었다.
석봉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참으로 놀라운 솜씨로다. 저 높은 곳에서 단 한 방울의 기름도 흘리지 않고 기름병에 넣으니 이만저만한 연습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겠구나.”
이 날부터 석봉의 노력은 남달랐다. 문을 닫아걸고 두문불출, 피나는 노력을 다시 시작했다. 소년 시절보다 몇 배의 노력과 정성을 기울였다.
훗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명필은 이렇게 얻어진 것이다.
‘어머니와의 떡썰기 교훈’과 이‘기름 장수의 교훈’이 바탕이었던 것이다.
우리 또한 한석봉의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어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뛰어난 점을 거울삼아 자신의 개발 동기로 삼는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을 조금만 눈여겨 보면 우리가 자극받을 수 있는 요소는 너무도 많은 것이다. 눈여겨 주위를 관찰하여 발전의 계기로 삼자.

충격의 반사 이익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어느 날 무척 아팠다. 40℃를 오르내리는 고열과 관절의 통증 때문이었다. 오늘도 그는 3층 다락방에서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어야만 했다. 의사 친구가 매일 왕진해서 치료를 했지만 이렇다 할 차도는 없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왕진시간이 꽤 지났건만 그는 오지 않았다. ‘친구가 이렇게 아픈데도 꽤 무심하구나’하는 서운한 생각도 들었다.
그 때, 저 밑의 계단을 급히 오르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이제 오는군. 한 마디 해 주어야지.’하고 쇼는 생각했다. 과연 그였다. 그런데 그 친구는 3층까지의 빠른 걸음과는 달리 힘없이 문을 열더니 숨을 크게 몰아쉬고는 그 자리에서 푹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쇼는 친구의 쓰러지는 모습을 보자 놀랐다. 급히 침대에서 뛰어 일어나 그를 안고 자기의 침대에 눕히고 가슴을 헤치고, 귀를 대보고, 눈을 뒤집어 보고, 혁대를 끄르고, 옷과 신발을 벗기고 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정신없이 밟아갔다. 친구가 눈을 떴다. 쇼는 참으로 기뻤다. “야, 드디어 깨어났구나”하며 환성을 질렀다. 자기가 의사를 살렸다는 기쁨에 더욱 신이났다. 그러나 친구는 벌떡 일어나더니 왕진가방을 챙기며“이제 나는 가겠네. 자네의 병은 이제 다 나았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야, 이 친구! 자네는 방금 전에 문 앞에서 쓰러지지 않았나. 그리고 나를 진찰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다 나았다는 게 말이 되는가?”하고 반문했다. 그러자 친구는 빙그레 웃으며, “조금 전 자네는 아주 정상적인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았는가. 그건 관절에 이상이 없다는 걸세. 열도 사라졌을 걸세. 사실, 자네의 병은 마음의 병이 더 컸다네. 자네가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어서 내가 충격요법을 사용한 걸세. 인간의 무한한 능력도 각자의 마음가짐에 따라 무용한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 명심하게. 어쨌든 치료비나 두둑히 내게.”하고 말했다 한다.
우리는 최근에 상상도 못할 충격적인 사건들을 겪었는데, 충격의 아픔만 느끼고 충격의 반사 이익은 놓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가 아무리 고통스러운 것이라 하더라도, 더욱 소중한 것은 우리의 내일과 우리의 후손인 것이다.

상황 파악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에 시씨 형제가 있었다. 형은 학문을 좋아했고 아우는 병법을 좋아했다. 그래서 형은 제나라로 가서 왕에게 인의도덕으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권유했다. 제나라 왕이 매우 만족해서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병법을 좋아한 아우는 초나라로 가서 왕에게 자신의 전략과 전술을 알려 주었다. 초나라 왕은 기뻐하며 그에게 장군의 벼슬을 주었다.
같은 마을에 맹씨 형제가 있었다. 시씨네와 마찬가지로 형은 학문을 좋아했고 아우는 병볍을 좋아했다. 시씨 형제의 성공담을 듣고 시씨 집에 가서 그 방법을 배웠다.
그래서 학문을 좋아한 형은 진나라로 가서 인의도덕으로 정치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러자 진나라 왕은 그 말을 듣고 화를 내며 말했다. “각국이 지금 저마다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식량을 마련하고 있는데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 너는 진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이곳에 온 첩자로구나!”하고 꾸짖으며 그를 궁형에 처하고 쫓아버렸다.
또 아우는 위나라로 가서 왕에게 자신의 전략과 병법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위나라 왕은 크게 화를 내며, “위나라는 주변 강대국에 끼여 있는 작은 나라라서 큰 나라에는 순응하고 작은 나라와는 서로 협조해야 그나마 안전을 유지할 것인데 무슨 전쟁 운운이냐. 너는 위나라를 멸망시키려 왔구나!”하며 그의 두 발을 잘라버렸다. 그가 다른 나라로 가서 똑같은 말을 한다면 위나라에 전쟁이 일어날 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맹씨 형제는 이렇게 쫓겨난 후 집에 돌아와 시씨 형제를 원망했다. 시씨형제가 이 사실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상황 파악이 중요합니다. 어떤 일이고 상황에 맞는 일은 성공하고, 상황에 맞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당신들이 실패한 이유는, 전쟁이 필요한 곳과 인의도덕이 필요한 곳을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일은 항상 일정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유용한 것도 저기서는 무용한 것이 될 수 있으며, 어제 필요했던 것도 오늘은 불필요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분별하지 못하면 누구나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명쾌한 설명이다. 세상일은 불변이 아니다. 상황은 시간과 공간을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참다운 지식을 가져야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편견이 주는 교훈

우리는 우화나 자연계를 통하여 많은 지혜와 교훈을 터득할 수도 있지만, 때때로 과학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오류나 편견으로부터도 그것을 터득할 수 있다.
18세기 화학자들이 신봉했던 ‘플로지스톤(phlogiston)에 의한 연소이론’도 그 예가 될 것이다. 이 이론은, 물체가 연소하는 까닭은 물체 속에 들어 있는 플로지스톤이라는 별도의 특수한 물질이 물체와 분리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연소는 물질이 산소와 반응하는 산화반응 때문이라는 것쯤은 지금의 중학생도 아는 것이지만, 당시의 모든 과학자들은 플로지스톤 설만을 신봉하며 다른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플로지스톤이라는 물질을 찾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다.
1774년 영국의 프리스를리는 산화 제 2수은을 가열하던 중 새로운 기체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기체는 무색 무취였으나 그 기체에 촛불을 대니 더욱 오래 타는 성질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것이 산소라고 생각하지 않고‘탈 플로지스톤 공기’라고 명명하는 우를 범했다.
또, 1776년에 영국의 캐번디시는 아연 조각을 염산에다 넣으면 아연에서 기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당시의 많은 화학자들은 이것이 플로지스톤이라고 흥분해 하기도 하였다. 이 때 발생한 기체는 수소로써, 산소와 결합하면 연소되어 물이 발생하는 것이다.
산소와 수소가 발견되기 이전에 당시 최고 석학들도 이런 정도의 수준이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 플라지스톤설은 결국 1777년 프랑스의 라부아지에가 산소를 발표함으로써 종지부를 찍었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프리스를리를 비롯한 당시의 최고의 석학들도 편견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릇된 이론에만 집착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진리에 도달되는 데는 편견이 무지보다 더 멀다’라는 교훈이 실감나는 이야기이다. 프리스를리가 진리를 눈앞에 두고 잡을 수 없었던 것은 자기 앞에 나타난 엄연한 사실에 대한‘비판적 사고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우리도 우리 앞에 나타난 현상을 자기만의 편견으로 해석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볼 일이다.

시간 살림꾼

웰링턴 공작만큼‘시간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갖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그가 갖고 있었던 시간 개념을 알아 보자.
어느 날 그가 런던 시의 고위 관리와 만나기로 약속하고 그 곳에 정확히 도착했으나 상대방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가 도착한 시간은 5분이 지나서였다. 이에 웰링턴은 그에게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는 5분 늦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러자 관리가 변명하듯이 대답했다
“예, 좀 늦었습니다. 그렇지만 겨우 5분입니다.”
“겨우 5분이라고? 5분이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시간일세. 전쟁 중에 군대가 5분 늦게 출동하면 패배할 수도 있는 것이네.”
웰링턴이 이렇게 엄중히 나무랐다. 이렇게 질책을 당한 관리는 그 다음 약속 시간에는 5분 일찍 약속 장소로 가서 기다렸다. 그리고는 웰링턴이 정각에 나타나자 자랑스럽게 말했다.
“각하, 어떻습니까? 이번 약속에는 제가 5분 일찍 나와서 각하를 기다렸습니다.”
이에 웰링턴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자네는 시간의 가치를 정말 모르는 사람이군. 나는 자네와 약속한 정각에 왔는데 자네는 5분 일찍 왔으니, 그 5분은 아무 소용 없는 시간의 낭비가 아닌가! 전번에는 5분 늦게 나와서 나의 시간을 낭비시키더니, 이번에는 5분 일찍 나와서 자네의 시간을 낭비했으니 말이네.”
낭비란 헛되이 쓴다는 뜻이다. 우리는 돈이나 물건 등의 낭비는 몹시 애석해하면서도 의외로 시간의 낭비에는 너그러운 경향이 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관찰해 보면 돈이나 물건의 낭비에 대한 손실은 다시 회복이 가능하지만, 시간의 낭비는 결코 회복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한평생을 살면서 우리 앞에 주어진 시간은 그야말로 앞방향만 보고 달리는 일방통행의 (그러나 내릴 수도 없는) 열차가 아닌가!
다시 되돌리지 못하는 인생의 주어진 시간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황금 같은 유산이라고 생각하며, 낭비하지 말고 알뜰하게 관리 잘하는 시간 살림꾼이 되어야겠다.

여섯번째

대화술의 중요성

‘문제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들이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다는 뜻일 것이다. <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부모들의 이야기>라는 책에는 이런 문제 부모의 예를, 자녀들과의 대화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순지: 엄마! 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서 엉망이야, 창피해서 학교에도 못 가겠어.
어머니: 괜찮아. 산뜻해서 보기에 아주 좋고 예쁜데.
순지: 뭐가 예뻐! 엄마 수준으로 보면 예쁘겠지만 그렇지 않단 말이야!
어머니: 엄마 수준이 어때서 그러니? 학생은 공부만 하면 되는 거야, 외모에 신경 쓰지 마!
순지: 엄마는 공부 빼고는 할 말이 그렇게도 없어. 공부! 공부! 공부! 정말 지겨워!(휙 가버린다)

이번에는 같은 주제지만 달라진 대화 내용이다.
순지: 엄마! 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서 엉망이야. 창피해서 학교에도 못 가겠어.
어머니: 머리가 네 맘에 들지 않아서 속상한가 보구나. 그런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도 싫고.
순지: 그래요, 엄마! 내일 학교에 어떻게 가지?
어머니: 그래, 학교에 갈 일이 걱정이구나. 도중에 남자 친구라도 만나면 어쩌지?
순지: (잠시 침묵이 흐르다, 조용히 웃으며) 사실 가끔 초등학교 때 짝을 만나기도 해.
어머니: 그러면 난처하겠네. 어떡하지?
순지: (머뭇거리다) 할 수 없지 뭐. 며칠 동안 아침 일찍 학교에 다는 수밖에 없지 뭐.
첫 번째 경우는 대화의 방향이 빗나가 상처 받은 자녀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 경우이고, 두 번째 경우는 어머니가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스스로 풀도록 유도한 경우이다. 이 두 번째 경우를 체험했던 어머니는 자기 문제에 대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낸 딸이 대견스럽고, 또 초등학교 때의 짝을 이성으로 느끼고 있는 순지의 숨겨진 사연도 알게 되어 딸의 성장까지도 실감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와 같이 문제 없는 부모들의 대화가 이어진다면, 우리 사회도 문제 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

3할6푼7리의 성공

유대인의 사업가 한 사람이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성직자인 랍비를 찾아갔다. 그는 자기 사업의 애로를 이야기하며 이런 부탁의 말씀을 전했다.
“선생님, 저는 실패자입니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너무도 많은 실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공이 때때로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의 실패도 항상 따랐습니다. 구태여 말하자면, 그저 반 정도는 성공하고 반 정도는 실패한 듯합니다. 어떻게 하면 정말 성공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종 알려 주십시오.” 랍비가 말했다.
“아, 그러세요?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도서관으로 가서 1970년도 뉴욕타임즈 연감의 930쪽을 펼쳐 읽어 보세요. 그러면 당신은 마음의 평화를 얻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그 사람이 물러나와 도서관으로 갔다.
그런데 그 뉴욕타임즈의 930쪽에는 미국 역대 야구 선수의 일평생 평균 타율이 적혀 있었다. 역대 최강타자인 타이 콥의 일평생 타율이 0.367이라는 것을 필두로, 야구왕 베이브 루드와 조 디마지오 등 유명선수들의 기록이 적혀 있었다. 이 내용을 확인한 그 남자가 자기의 사업과 관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랍비를 찾아가 물었다.
“선생님께서 일러 주신 곳을 조사해 보니 야구 이야기뿐입니다. 혹시 쪽수를 잘못 말씀해 주신 것은 아닙니까?”
그러자 랍비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내가 당신에게 읽어 보라고 한 내용은 바로 그 야구 이야기입니다. 거기에는 역대 최고 타자로 불리우는 타이 콥의 일평생 평균 타율이 3할6푼7리라고 적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최고 타자라는 타이 콥도 3번 타석에 들어서서야 겨우 한 번의 안타를 쳤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절반인 5할의 성공을 거두고서도 자신의 일생을 실패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는 일평생을 살아가는 도중에 많은 실패를 맛보게 된다. 누구라도 언제나 성공만 하는 것이 아닌데, 지나친 기대나 과욕으로 우리가 이미 잡은 5할의 성공도 성공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미루어 보건데, 성공이란 어쩌면 감정 관리의 승리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타이 콥의 일평생 평균 타율인 3할6푼7리는, 100점 만점에 36.7점이라는 낙제 점수인데도 역대 최고 타자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그가 한 번의 안타을 치며 기쁘게 달려나가 데는 이미 두 번의 깊은 좌절을 씹으며 방망이를 들고힘없이 물러나야 했던 그 쓰라림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독서의 의미

“그들은 단결을 내세우면서도 흩어지고, 용단을 말하면서도 우유부단하고, 철석같은 결의를 해 놓고도 행동이 없으니, 무능한 면으로 전능하다.”
“전쟁에 있어서 착한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일은 바로 올바른 행동뿐입니다.”
“당신이라고 해서 그 법에 전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당신에게 불편한 법만을 반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항상 재치 있고 예리한 말로 많은 일화를 남긴 윈스턴 처칠(1874~1965)의 몇 가지 빼어난 이야기들이다.
그의 이 예리한 표현들은 그가 문제를 보는 높은 안목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그 높은 안목은 그의 풍부한 독서량에 기인된 듯하다. 풍부한 독서열만큼 위대한 스승을 만나는 방법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는 책에 대한 마음 가짐을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책을 잡으십시오. 설사 당신이 가지고 있는 책 전부를 읽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단 손에 잡으십시오.
잡아서 만져 보고, 들여 보십시오. 아무 페이지라도 펼쳐서 눈에 띄는 문장부터 읽으십시오. 자기 손으로 책을 책장에 꽂고, 설사 책에 무엇이 씌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책이 어디에 꽂혀 있는 가를 알 수 있도록 정리해 놓으십시오. 언젠가는 그 책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요. 책을 당신의 친구라고 생각하십시오. 어떻게라도 그의 친구가 되겠다는 노력을 하십시오.”
이런 훌륭한 설명의 말을 남긴 그는, 어떤 청소년 모임에서 독서에 임하는 자세를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몸이 심심하지 않기 위해서 책을 읽는 사람과, 마음이 심심하지 않기 위해서 책을 읽는 사람과의 차이는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큰 간격이 있다.”
누구라도 책을 읽으라 말을 하지만, 책의 의미와 독서의 의미를 강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가 매일 책을 읽으면서도 책을 읽은 의미를 모르고 읽은 사람이 있다면, 우선 처칠의 이 말이라도 수십 번 읽어야 할 것이다.

서애 유성룡

“내 평생에 세 가지 한이 있다. 그 첫째는 국가와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 것이요, 둘째는 벼슬이 지나치게 높건만 일찌감치 물러나지 못하여 국록을 축낸 일이요, 셋째는 망령되이 학문에 뜻을 두고도 이룬 바가 없음이다.”
이는 조선조 선조 때의 명재상 서애 유성룡(1542∼1607)이 그의 말년에 술회한 말이다.
공은 일찌기 일본의 침략을 예감하고 일본의 국정을 탐색함이 좋겠다고 임금께 건의하였고, 국민개병(國民皆兵: 국민 전부가 병역 의무를 지는 일)의 자주국방을 부르짖었던 분이다.
또한 그는 임진왜란 7년 동안 전시체제를 이끌며 국난 극복을 위해 온갖 지혜와 능력을 다 짜내며 국가를 위해 몸바쳐 일한 분이다. 남달리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일찌기 퇴계의 문하에 들어가 독실히 공부했다. 그는 학문에 임해서도, 사색을 하지 않고 남의 말대로 따르기만 하면 천박한 학문이 된다는 일가견도 소유하였다. 일본의 침공을 내다보고, 방어력구축을 서둘면서 당시 형조 정랑(정5품)으로 있던 권율을 의주 목사(정3품)로, 정읍 현감(종6품)이라는 낮은 자리에 있던 이순신을 일약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정3품)로 천거할 정도로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분이다. 그 명석한 판단과 기민한 행동이 인정이 되어, 왕은 피난길에 그를 영의정에 봉직시켰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반대파의 모함에 걸려 삭탈관직 되는 비운을 격기도 했다.
글 서두에 말한 세 가지 한은 그의 높은 인격에서 나온 겸손의 말씀이고, 국가와 부모에 대한 뜨거운 보은의 정신, 은퇴 후 끼니를 거를 만큼 가난했으니 얼마나 결백한 분인가를 알 수 있다. 또한 공은 <서애집> <징비록>등을 포합한 10여권의 저서와 <운암잡기> <포은집> <퇴계집>등의 편서 10여권이 있다 하니 학자로서의 업적도 손색이 전혀 없는 것이다. 선생의 높은 인격과 품격을 우리 모두 받들어야 할 것이다.

중산왕의 한탄

중국의 전국책(戰國策)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진다. 전국책은 혼란했던 전국 시대에 세객•책사•종횡가 등의 활동가들이 난국타개와 위기극복을 해쳐나가면서 겪은 온갖 지혜와 비책을 수록한 책이다.
그 시대에 중산국이란 작은 나라가 있어서, 어느 날 왕이 사대부들을 불러 향연을 베풀었다. 이 사대부중에 사마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자기에게 양고기 국을 주지 않았다 하여 앙심을 품고, 초나라로 탈출하여 초나라 왕을 설득시킨 후 중산국으로 쳐들어 왔다. 중산국 왕은 초나라 군사를 막지 못해 도망을 쳤다. 한참을 도망가는데 뒤에서 창을 비껴들고 따라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왕이 그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나를 따르는가?”
“예, 저희들은 형제이온데, 저희 아버지가 옛날에 가난하여 굶어죽을 지경에 처했을 때 대왕께서 도시락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임종 때 저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약 중산국에 변고가 생기거든 너희들의 목숨을 바쳐라’하셨기에 지금 저희들은 대왕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자 따라나선 것입니다.”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우러러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그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처지가 곤궁했을 때이어야 효과가 있구나. 또한, 상대에게 원한을 사는 것도 나의 행위의 깊고 얕음에서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상처를 주기 때문이로구나. 나는 한 그릇의 고깃국 때문에 나라를 버리고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도시락 하나로 두 명의 훌륭한 선비를 얻었으니 참으로 모를 일이 세상사로다.”
중산왕의 이 탄식은 우리에게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세상을 문제없이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 역시 이웃들과 살아가면서 별 생각없이 한 한마디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하고 감동을 주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상대방을 무시하고 말했을 때에 상처를 받는 것이고, 우리가 그의 처지를 동정하고 격려할 때에는 그가 감동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취할 태도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고깃국 한 그릇에 나라에 운명이 달려 있고, 도시락 하나에 선비 두 명이 달려 있다는 이 이야기의 결론이 그것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계통적 사고방식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저지를 수 있는 흔한 실수 중에 하나는‘문제의 본질’을 깊이 관찰하지 못하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다가 결국은 낭패를 보거나 훌륭한 답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문용어로 이것을‘계통적 사고방식의 결핍’이라고 부른다.
프러시아 제국의 프리드리히 국왕은 앵두를 즐겨 먹었다. 그래서 정원에 앵두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탐스런 앵두가 열리자 참새떼가 몰려와 그 열매를 마구 먹어대는 것을 알았다. 이에 국왕은 전국에 참새 소탕령을 내려, 참새를 많이 잡는 사람에게 포상까지 내렸다. 이에 사람들은 너도 나도 몰려다니며 참새를 잡았고 드디어 참새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듬해 앵두가 열렸다. 그러나 기대에 부풀었던 국왕은 다시 실망하고 말았다. 소망대로 참새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벌레가 극성을 부리며 앵두를 먹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참새가 앵두를 먹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참새가 역시 앵두를 먹는 벌레도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왕은 결국 참새 소탕령을 취소하고 말았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왕이 생각했던 ‘앵두와 참새’ 문제가 사실은 ‘앵두와 참새와 벌레’의 문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챨스 다윈(1809-1882)의 다음이야기는 생태계의 오묘한 조화를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소를 잘 키우고 싶으면 고양이를 많이 길러라! 왜냐하면 소를 키우려면 달구지풀이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달구지풀은 벌이 꽃가루를 많이 옮겨 주어야 무성하게 번식한다. 그런데 벌은 꿀을 먹어야 활동을 잘할 수 있고, 이 꿀을 들쥐들이 훔쳐먹으니 들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필요하지 않겠는가.”하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위대한 과학자의 이 말은 과장된 표현으로 들리지만, 생태계의‘먹이사슬’관계를 이해한다면 굳이 부정할 수도 없다.
우리는, 현실이라는 절박한 상황하에서 선•악,정•사, 미•추, 가•부 중에서 하나만을 강요받거나 강요하기도 한다. 이러한 최종 결정을 함에 있어, 상식적인 인식이 바뀌거나, 그 중간을 취하거나, 때로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도 있는데, 이러한 융통성과 신축성은 외면하고 어느 한쪽의 절대적인 선택만을 요구하는 ‘흑백논리’에 빠져 있지나 않은가 생각해 볼 일이다. 소를 키우고 싶으면 고양이를 키워야한다는 계통적 사고방식의 지혜를 터득하자.

어머니의 편지

사랑하는 내 딸아!
얼마 전 내가 저녁때 집에 돌아와 보니 네가 잔뜩 움추린 채 소파에 누워 있었지. 이유를 알고 보니 내일 시험이 걱정되어서 그런 것이었지. 시험 범위는 넓고 모르는 것은 많으니 심리적으로 불안했던 네가 아니었더냐?
그러나 한두 시간 나와 같이 공부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은 분명해지지 않았느냐? 네가 몰라서 불안해했던 것보다는 네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더 많았다는 사실을. 그래서 너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도 실제로 해보면 최소한 얼마쯤은 가능해지는 것이고, 그 나머지에 대해서도 대책이 생겨난다는 것을 배운 것이란다. 결국, 너는 행동을 개시함으로써 자신감이 생기고, 해내고야 말겠다는 목표의식도 얻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행동이야말로 어떤 일에 대한 불안감을 제거시키고 구체적인 대안을 찾게 해주는 것이란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무력감을 보이면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고통스러운 시간만 늘어난단다. 무력감에 빠져들면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이나 ‘나는 가망이 없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지게 되는 거란다.
자신감을 갖고 행동으로 옮겨라!
사실, 너희들의 앞날에는 생각만 해도 기가 질릴 만큼 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단다. 직장에서도, 애정 문제에서도, 자녀 교육에서도 ……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고 해도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과 행동력을 갖추고 있다면 전혀 두려울 것이 없단다. 이때, 어려움을 피하려고만 하는 자세에 길들어져 있다면, 뭐든지 못하겠다고 죽는 소리만 한다면, 하찮은 문제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게 되는것이다.
사랑하는 내 딸아!
상식도 신중함도 모두 내팽개쳐 버리라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문제를 분석할 때, 상식과 신중함은 없어서는 안될 요소란다. 용기의 가장 좋은 반려자는 신중함임을 잊지 말아라. 너무 많은 부탁이 있어 혼란스러울지 모르지만 현명한 너는 잘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이 글은 어머니가 딸에게 주는 편지 내용이다. 우리 모든 어머니가 이와 같이 자식에게 사랑이 깃든 의미있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해서 골라본 내용이다.

아버지의 말씀 한 마디

아버지의 한 마디 말씀이 자식에게 평생의 교훈이 된 이야기다.
“……<전략> 남들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자식들을 고생시키는 것’이 곧 아버님의 자식교육이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 아버님께서는 자식에게 고생을 통해 깨달음을 주신 것같다.
아버님은 장사를 하신 분이다. 새벽에 일어나 과천에서 인천까지 가서 해산물을 구입해 다시 과천으로 돌아와 그 해산물을 파시는 것이 아버님의 일이었다. 과천에서 안양까지 20리, 다시 인천까지 80리, 도합 100리에 달하는 먼 길이었으니, 이 길을 날이 새기 전에 왕복한다는 것은 보통 부지런함으로는 엄두도 못낼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버님께서는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자 이 일에 나를 동참시켰다. 남들은 아직 꿈나라에 있을 그 시각에, 아버님과 나는 어김없이 일어나 그 먼길을 냄새나는 해산물을 등에 지고 함께 왕복했어야 했는데, 이 일은 당시 나에겐 끔찍이도 고통스런 일이었다.
어느 몹시도 무더운 여름날, 그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해산물이 가득한 지게를 지고 걷다가 잠시 나무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이 때 아버님은 길가의 짓이겨진 잡초를 가르키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 풀을 봐라. 저 풀은 사람의 발길에 짓눌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단련이 되어 뽑히지도 않는단다.’
실제로 나는 그 풀을 뽑아보려고 양손에 힘을 주어 잡아당겨 보기까지 하였지만, 정말로 뽑히지가 않았다. 무수한 발길에 짓눌리면서 특유의 생명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중략>
이러한 아버님의 가르침은 지금도 나의 가슴 속에 깊이 간직되어 있다.
편안한 출세길이 보장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서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글이름 보급운동에 참가하며, 나는 수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오히려 보람으로 알고 이것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아버님의 이 한 마디 말씀이 내게 큰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 글은 한글이름 보급협회 회장으로 계시는 배우리 님의‘삶의 기둥이 된 아버지의 한 마디’라는 책에 실린 글 중 일부 내용이다.
‘아버지의 역할’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이 글을 통해 많은 훌륭한 아버지를 기대해 본다.

모자르트의 성공 비결

“배고픈 사자만이 먹이를 열심히 찾는다.”라는 서양격언에 해당되는 얘기가 있어 적어 본다.
위대한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는 불과 35년의 짧은 생을 산 사람이다. 그는 그의 생애 마지막 10여 년 동안을 극빈하게 살았는데, 그때에 오히려 <후궁으로부터의 유괴>(1782), <피가로의결혼>(1786), <돈 조바니>(1787), <주피터>(1788), <마적>(1791) 등의 불후의 대작을 많이 남겼다.
그가 벌인 사업은 신통치 못해서 많은 부채를 지게 되었는데, 그의 아내는 낭비벽이 심해서 부채는 나날이 늘어나기만 했다. 그는 이러한 부채를 감당하기 위해서 작곡을 계속해야만 했고, 이러다 보니 때로는 작품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연주되는 경우도 있었다 한다.
그가 이렇게 부지런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돈을 번 사람은 매니저였고, 그는 얼마되지 않는 적은 돈밖에 벌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에게 닥친 궁핍이 그를 일하게 했고, 그래서 그가 불후의 대작을 남겼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람들은 이것을 일컬어‘가난이 그를 성공시켰다’고까지 말하는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사실, 모차르트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자기 앞에 주어진 역경과 시련 때문에 오히려 성공한 예는 너무도 많다. 그래서 그들은‘위기는 곧 기회요, 시련은 곧 스승이다’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것이다.
인간은 참으로 묘한 측면이 있다. 자기 앞에 어려움이 크게 느껴지면 의외의 놀라운 투혼을 발휘하여 이를 쉽게 극복하는가 하면, 반면에 아무런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으면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걱정거리가 없으면, 현실에 안주하려는 타성 때문에 긴장감도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의지적 성공은 두 가지로 진행된다 한다. 하나는, 주위의 상황에 관계없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목적을 달성하는 형이고, 다른 하나는 긴급히 돈이 필요하다, 사회적인 지위가 필요하다, 인정을 받고 싶다 등의 어떤 동기부여가 주어질 때 비로소 의지를 세워 이루는 경우인데, 후자에 의한 성공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배고픈 사자가 먹이사냥을 열심히 한다는 논리인데, 모차르트는 그 대표적인경우라 하겠다.
우리도 매일매일을 쫓기며 무심히 살지만 말고, 이것을 오히려 기회로 삼는 의지를 내세워야겠다.

벤자민 플랭클린(1)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은 그가 보여준 실제 업적과 사고방식으로 인하여 ‘미국인의 전형’,‘양키의 아버지’라고 불리운다.
그가 살다 간 84년간의 발자취는 실로 놀라운 것으로서, 인쇄업자•언론인•정치인•사회사업가•교육자•과학자•발명가•독립운동가•저술가였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하겠다.
그의 족적을 요약해 보면 12세에 인쇄소 직공으로 입사하여 신문에 익명으로 기고, 23세에 신문사 발행인,26세에 근면•절약의 교훈을 속담식으로 적은 달력 생산, 도로포장과 청소법 개정, 가로등 개선, 소방조합 조직, 회원제 대출도서관 설립, 미국철학협회 설립, 빈민구제병원 및 펜실바니아대학 설립 등의 활동을 보이다가, 30~45세 식민지의회 서기, 45~58세 의원, 31~47세 필라델피아 우체국장, 48~68세 식민지 체신부장관도 역임하는 정치적인 역량도 보였다. 그러한 중에도 36세부터는 오픈 난로의 발명, 지진의 원인 연구, 북동풍의 기원 연구, 해류의 연구, 번개와 피뢰침의 발명등 과학적 분야에서도 성가를 드높인 것이다. 말년에는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71세에 독립선언의 기초위원, 76세에 미•불 동맹조약 대표로 활동하였고, 후손을 위한 자서전을 발행했다 하니 그의 왕성한 열정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받은 정규교육이라는 것은 고작 국민학교 1학년 중퇴가 전부였다. 집안이 가난해서 그의 학비를 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비누와 양초를 만드는 직공이었기에 그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를 도와양초에 심을 박거나, 촛물을 부어 초를 만들거나 하는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그의 선배 집을 방문했는데, 그는 여기서 평생의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 집은 문이 너무 작아서 프랭클린은 들어가다가 그만 머리를 찧고 말았는데, 이 때 선배는 이런 말을 했다. “아프지. 그렇지만 너는 오늘 참으로 큰 것을 배운 것이다. 네가 머리를 낮추지 않으면 다치게 된다는 사실을.”
그 후 프랭클린은 이 말을 명심하며 늘 겸손하려고 애를 썼고, 20세가 되어서 그는 수첩에 ‘13훈’이라는 좌우명을 적어 실천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그 13훈은‘절제, 침묵, 규율, 결단, 절약, 근면, 성실, 공정, 중용, 청결, 평정, 순결, 겸손’이라는 내용인데, 이 내용은 다음 호에 자세히 기술하기로 한다.

걸어온길

1991년에는 대학교수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을 위하여 생활정보지인 (주)수원교차로를 창업하여, 1995년까지 대표이사로서 회사를 성장시켜 왔다. 1995년부터는 칼럼니스트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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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글긴여운

황필상박사가 우리의 이웃과 후손을 위해 남기신 컬럼을 실었습니다. 고인의 평소 바램대로 우리는 모두가 훌륭한 인격체로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튼실한 기둥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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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년동안 수원 시민들을 대상으로한 창의력개발과 자기계발을 위한 특별강좌가 있었습니다. 이 특별강좌를 통해 황필상박사의 평소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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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에 대한 강렬한 열정과 잠재역량을 가지고 있으며 발전가능성이 보이는 학생들 중에서 우리 재단의 Vision에 공감하며 차세대 지도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학생을 본 재단에서 지정한 대학교를 통해 장학금 수혜자로 매 학기 선발합니다. 장학사업은 재단 설립자인 황필상 박사의 “대한민국의 미래 棟梁之材 양성” 이라는 큰 뜻을 실천하는 것으로서 본 재단의 핵심 사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