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여운 – 황필상박사의 생전 컬럼 19-24

황필상박사가 우리의 이웃과 후손을 위해 남기신 컬럼을 실었습니다. 고인의 평소 바램대로 우리는 모두가 훌륭한 인격체로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튼실한 기둥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구원장학재단은 고인이 되신 황필상박사님의 뜻을 계승하여 우리의 젊은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지지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열아홉번째

계승(!)의 세계

계승(!)의 세계
필자는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배운 계승(階乘;factorial)의 기호 ‘!’를 잊지 못한다.
<순열>을 배울 때 나오는 이 기호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자연수의 끝에 붙여 사용하는 특수한 곱셈 기호이다. 일반형을 ‘n!’로 표시하며, 그 뜻은 ‘n에서 1까지의 자연수의 곱’을 의미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3!=3x2x1’로써 ‘6’을 뜻하며, ‘4!=4x3x2x1’로써 ‘24’를 뜻한다. 마찬가지로, ‘5!=5x4x3x2x1=120’, ‘6!=720’,…… 등의 값을 갖게 된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계승의 앞에 있는 자연수가 단 하나만 증가하여도 그 값이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선생님께서는 계승의 정의를 설명하시곤 우리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학생 여러분, 이 계승의 의미를 잘 기억해 두십시오! 여러분이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 계승이 주는 의미를 살리기만 한다면 놀라운 성공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식이라는 정보를 늘려가며 그것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보를 활용함에 있어, 덧셈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계승적으로 활용한다면 그 차이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커지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겠습니다. 여기 이미 획득된 3개의 정보가 있다고 할 때, 덧셈으로만 활용하는 사람은 독립된 3개의 정보만 활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계승을 아는 사람은, ‘3!’, 즉, 6개의 정보로 늘려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같은 3개의 정보로 두 배의 차이를 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정보량이 4개라면 ‘4’와 ‘24’로 무려 6배의 차이가 나고, 5개라면 ‘5:120’으로 무려 24배의 차이가 납니다. 같은 계승에서도 ‘4!’과 ‘5!’과는 ‘24:120’으로 5배의 차이가 난다는 사실도 놓치지 마십시오!
학생 여러분! 덧셈과 계승의 차이를 꼭 이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같은 정보로도 그 ‘이용 방법’에 따라 엄청나게 차이를 낼 수 있다는 사실과, ‘정보 하나의 차이가 갖는 의미’가 단순히 하나 차이가 아니라는 사실도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사회에서 계승적으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성공은 의외로 쉬운 것이 됩니다. 그것은 결코 요령을 익히자는 것이 아닙니다. 방법론이 중요하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 70년 인생이 짧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덧셈의 계산에서 그런 것이고, 계승의 계산 즉 ‘70!=1.2×10100’이라는 천문학적 수치를 알고 난다면 놀랍도록 길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같은 세월을 살면서도 이렇게 방법론을 달리 한다면, 우리 모두 엄청난 세월을 살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여러분 모두도 ‘계승(!)의 세계’를 잊지 말았으면 한다.

소진의 탄식

소진의 탄식
노인들은 세상에서 말 잘하는 사람을 소진•장의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이 두 사람이 워낙 뛰어난 달변가들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중국의 전국 시대 말기 사람으로, 당시의 막강한 힘을 과시하던 진나라와 그밖의 여섯 나라가 팽팽히 맞서고 있을 때, 소진(?~BC 317)은 여섯 나라의 왕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하여 합종책이라는 6국 연합국을 구축한 끝에 ‘6국 겸임 재상’이 된 사람이고, 장의(?~BC 309)는 그와 반대로 연형계라는 책략을 구사하여 6국 연합을 깨고 진나라의 통일을 가져온,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달변가들이었다.
그런 달변의 대가 중 한 사람인 소진이 ‘6국 겸임 재상’이 되어 고향 땅을 지날 때였다. 한 나라도 아닌 여섯 나라의 겸임 재상에 오른 그의 행차이니 그 화려함이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호위하는 병사는 줄을 이었고, 각국에서 받은 재물과 보화는 언제나 말 그대로 산더미였다.
그러나 그런 소진도 옛날에 스승인 귀곡자 곁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무도 반겨 주는 이가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오히려 많은 멸시와 수모만이 그를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아내는 그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베틀에서 내려오지도 않았고, 형수는 밥상도 차려 주지 않았으며, 동네 사람들도 냉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주변의 그런 멸시에 분노를 느낀 소진이 ‘어디 두고 보자!’라는 감정으로 각고의 노력을 하였고, 마침내 지금과 같이 대성공하여 금의환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6국 재상이 되어 돌아오는 이번의 귀향길은 전의 상황과는 너무나 달랐다. 아내와 형수는 물론 이웃 사람들도 인파를 이루며 몰려와 소진을 환대하며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이들의 이런 변화에 소진이 혼자 탄식했다.
‘아! 같은 사람이라도 부귀를 누리면 친척도 고개를 숙이게 되고, 빈궁에 빠지면 업신여김을 당하게 되는구나. 친척이 이러한데 남이야 오죽하겠는가. 하기야 그 때 내가 낙양 한 구석에 전답이라도 백여 평 갖고 있었다면 마음이 느긋해져서 오늘과 같은 성공을 할 수 있었겠나.
아서라! 어찌 보면 지난날의 빈곤과 냉대가 오늘의 성공을 있게 해 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이들이 나의 은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친척과 이웃들에게 많은 재물을 나누어 주고 마을을 떠났다 한다.
세상에 그 누구보다 말 잘하는 소진도 세상 인심의 천박함에 넋을 놓고 말았다는 이 이야기에서, ‘그러니까 악착같이 출세해야 한다!’는 저차원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보다, ‘그러니까 이만큼 된 것도 감사해하며 가진 것을 베풀어야겠다!’라는 고차원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앞 마차의 뒤집힌 자국은

앞 마차의 뒤집힌 자국은
중국의 전국 시대, 위나라의 문후가 어느 날 공승불인이라는 말단 관리에게 술자리를 주선토록 해서 중신들에게 주연을 베풀었다.
“그저 마시기만 하면 재미가 없으니, 이제부터는 맛을 보지 않고 마시는 자에게는 벌주로써 큰 잔을 돌리도록 하세.”
문후의 이 제안에 모든 사람이 찬성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처음으로 위반한 사람이 바로 문후 자신이었다. 그러자 공승불인이 당장 큰 잔에 술을 따르고 문후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문후는 그것을 바라보기만 할 뿐 마시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공승불인이 권하자 중신들이 꾸짖었다.
“어지간히 해 두렴. 주군께 너무 무례하구나.”
그러자 공승불인이 이렇게 말했다.
“앞 마차의 뒤집힌 자국은 뒷 마차에게 교훈이 됩니다. 전례가 좋지 않으니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신하가 되는 것도, 주군이 되는 것도 모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 주군께서 법을 만드시고 그 법을 처음부터 지키지 않으신다면, 누가 주군의 말을 믿고 따르겠습니까? 장래가 걱정되어 술잔을 드리는 것입니다.”
문후가 이 말을 듣고 지당한 말이라 생각하여 깨끗이 큰 잔을 받아 마셨다.
‘앞 마차의 뒤집힌 자국은 뒷 마차에게 교훈이 된다’는 얘기는 참으로 명언 중 명언이다. 그런데도 이 세상에는 같은 자리에서 계속 뒤집히는 일을 반복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말 그대로 아스팔트 위에 그려진 무수한 사고 흔적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 자리에서 발생하는 사고가 그렇고, 연일 신문 지상을 오르내리는 공무원의 비리 사건이 그렇고, 회사의 도산이 그렇고, 부실 공사가 그렇고, 마약 복용이 그렇고…….
이러한 사실들만 가지고 논한다면, ‘과연 우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일 수 있을까?’라는 의문까지 생겨난다. 못 배워서 그런 것도 아니고, 소위 똑똑하고 배웠다는 사람들이 그 정도밖에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남보다 능력이 있어서 자동차도 몰았을 것이고, 요직에도 올랐을 것이고, 사업도 했을 것인데, 어째서 앞 마차의 뒤집힌 자국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여전히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뒤집히고 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제라도 앞 마차의 뒤집힌 자국에서 교훈을 얻어 내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뒤집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것은 안전 운행을 하고, 성실히 일하고, 내용 있는 경영을 하고, 설계대로 시공하고, 유혹을 이기고 하는 등등의, 너무도 당연한 사항들을 말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선물과 뇌물

선물과 뇌물
중국 노나라에 공손의라는 사람이 생선 요리를 몹시 좋아했다. 어느 날 그가 벼슬길에 오르니 사람들이 그에게 싱싱한 생선을 몇 마리 보내 왔다. 그러나 공손의는 이 생선을 받아들이지 않고 모두 돌려 보냈다.
이것을 본 아우가 그까짓 생선 몇 마리를 가지고 무얼 그러냐고 말했을 때, 공손의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까짓 생선 몇 마리라지만 참으로 중요한 일과 연결되니 잘 들어 보아라. 너도 알다시피 나는 생선 요리를 특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가 만약 사람들이 보내온 생선을 거절하지 않고 그대로 받게 되면, 사람들은 생선을 계속해서 가져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그 사람들에게 신세를 진 것이고, 그로써 반드시 갚아야 하는 빚이 남게 된다.
그리고 그 빚 때문에 나중에 내가 그 생선을 보내온 사람을 심판하게 될 때가 오거나, 그 사람이 청탁을 해 오게 될 때, 그 사람에게 유리한 법 집행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법 집행은 공평성과 형평성을 잃어 기강이 문란해질 것이고, 그로써 나는 책임자의 소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좇겨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생선 몇 마리로 시작되는 일이 아니겠느냐!
또한 내가 자리에서 쫓겨나면, 그 때는 아무도 내게 생선을 선물하지 않을 것이니 나는 생선을 마음놓고 먹지도 못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내가 그 생선을 사양하면, 모든 사람들을 법대로 다스릴 수 있어 자리에서 쫓겨날 일도 생겨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내가 받는 봉급으로 원하는 생선을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다.”
생선 몇 마리로 인하여 장차 생겨날 수 있는 일들을 공손의는 이렇게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크든 작든 외부인으로부터 물품이나 금전을 받는 행위는 끝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결국은 그 선물이 마음의 부담으로 남아 끝내 자신을 파멸시키고 만다는 것을 그는 이렇게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지당한 말씀이다.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수뢰 사건도 따지고 보면 이렇게 작은 선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급기야 큰 뇌물로까지 발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선물과 뇌물을 구별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다음과 같은 어느 정도의 기준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이 전달될 때 공개될 수 있는 것이냐, 상대방이 그 선물에 직접적인 시간과 정성을 바쳤느냐, 그 선물을 받음으로써 상대방이 이권을 얻게 되었느냐, 받는 사람이 그 선물을 재산 축적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냐, 하는 등등이 바로 그 기준일 수 있을 것이다.
뇌물을 보내는 사람도 그것을 뇌물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기에 상응하는 기대 심리와 기대치는 반드시 내재되어 있게 마련이다. 월급으로 생선을 계속 사 먹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짜 생선을 받아먹다가 끝내는 목에 가시가 걸려 병원에 가는 사람을 자주 보면서, 공손의의 깊은 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아까운 능력

1887년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다.
어느 날 나이 지긋한 노신사가 식료품점에서 채소를 고른 후 여점원에게 20달러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여점원은 마침 물 묻은 다른 채소를 만지고 있었기 때문에 손이 젖어 있었다. 신사에게서 지폐를 받아 들고 계산대로 가던 여점원은 그 지폐에서 물감이 묻어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점원은 노신사가 준 이 지폐가 위조라는 사실을 금방 눈치챘다.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이 지폐를 가져온 손님은 낯선 사람이 아닌 바로 이웃에 사는 임마누엘 닝거 씨로서, 이 식료품점의 단골손님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점원은 아무 말 없이 닝거 씨에게 잔돈을 내어 주었다.
닝거 씨가 떠나간 후, 여주인은 망설임 끝에 경찰을 불렀다.
한 경찰은 그 지폐가 진짜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만큼 정교하게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경찰은 잉크가 묻어 나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느냐며, 마침내 수색영장을 발부 받아 닝거 씨의 집을 샅샅이 뒤졌다. 그들은 닝거의 골방에서 20달러짜리 위조 지폐를 만드는 기구와 미완성된 20달러짜리 위조 지폐를 한 장 발견했다. 또, 임마누엘 닝거가 직접 그린 3장의 초상화도 함께 발견했다.
닝거는 화가였다. 그것도 매우 재능 있는 화가였다. 그는 솜씨가 너무도 뛰어나 20달러짜리 지폐를 진짜와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그릴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가 체포된 후, 그가 그린 초상화 3장은 16,000달러에 공매되었다. 즉, 1장당 5,000달러 이상의 고가에 팔린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 두어야 할 점은, 닝거가 20달러짜리 가짜 지폐 한 장을 그리기 위해서 소비했던 시간이나 5,000달러 가치의 초상화 한 장을 그리는데 보냈던 시간이 거의 같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 아까운 능력을 범죄 행위에 사용함으로써 자신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가 자신의 타고난 재주로 그림에만 몰두했다면 인간 사회에 큰 기쁨과 공헌을 할 위대한 화가로 기억될 수도 있었을 텐데, 참으로 어리석은 길을 택했기 때문에 겨우 20달러 짜리 위조 지폐를 그리다가 자신의 타고난 재주와 능력을 사장시키고 말았으니 말이다.
우리 역시, 닝거처럼 위조 지폐를 만들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잘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생산적이고 진취적이고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우리의 아까운 능력을 사장시킨다면, 어쩌면 우리 역시 자신을 정말 사랑하지 않은 또 하나의 죄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둑의 또 다른 의미를 ‘남의 재산을 훔치는 사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재능을 훔치고 없애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던 성공학자 지그 지글라의 말이 새삼스럽게 귓가에 남는다.

미결 서류가 문제?

미결 서류가 문제?
유명한 생리학자 윌리엄 엘 사드리 박사에게 어느 날 대기업의 고급 간부가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았다.
“박사님, 저는 아주 골치 아픈 문제로 갈등에 싸여 있습니다. 밤낮없는 서류 때문에 신경과민이 될 지경입니다. ”
사드리 박사가 충고했다.
“어떤 일이 맡겨지면 그것을 즉시 처리하십시오. 그것을 미결 상태로 남겨 놓으면 큰 병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 간부는 고개를 돌려 사드리 박사의 책상 위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책상 위에는 이렇다 할 서류나 책이 보이지 않았다. 그 간부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렇게 물었다.
“박사님, 죄송하지만 책상 서랍을 좀 보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드리 박사는 그 뜻을 알겠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책상 서랍을 열어 보였다. 그러나 책상 안에는 약간의 필기 도구와 메모지만 있을 뿐 어떤 서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 간부가 다시 물었다.
“평소에 미결 서류는 어디에 보관해 두십니까?”
“제게는 미결 서류가 없습니다. 서류가 오면 즉시 그 자리에서 해결해 버립니다. 시간을 요하는 서류는 이렇게 간단히 메모를 해서 처리가 끝날 때까지 매일매일 해결해 나갑니다. 편지를 받아도 비서를 통해 즉석에서 회답을 보냅니다.”
그로부터 6주일이 지났을 때, 그 간부는 사드리 박사를 자신의 사무실로 초청했다. 그리고는 자기 책상 서랍에도 미결 서류가 없다는 것을 자랑하며 이렇게 말했다.
“6주일 전 박사님을 뵙기 전만 해도 저는 두 곳 사무실의 세 개 책상에 수많은 서류를 쌓아 놓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박사님의 말씀대로 즉석에서 해결해 버리기 때문에 미결 서류가 하나도 없습니다. 막상 그때 그때 미루지 않고 처리하니 어려운 일도 의외로 쉽게 해결된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저의 건강도 매우 좋아졌다는 사실입니다. 걱정과 고민이 사라지니 매일매일이 기쁘고 즐거워 행복하기까지 합니다.”
책상 앞에 산더미 같은 서류를 쌓아 놓고 오늘도 밤늦도록 야근에 시달리며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드리 박사의 이 ‘즉시 해결•미결 전무’ 작전을 배워보면 어떨지…….
‘남의 사정 모르는 너무도 편한 말’이라는 야유도, 일단 힘껏 시행해 본 사람에게서나 들었으면 좋겠다.

멋진관리

멋진 관리
어느 날 참봉 홍기섭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홍 참봉의 집이 벼슬깨나 하는 양반의 집인지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의외로 훔쳐갈만한 물건이 없자 실망했다. 귀중품은커녕 세간살이도 변변한 것이 없었다. 오직 낡은 선반 위에 책만 가득할 뿐이었다. 부엌에 있는 헌 솥단지 하나가 그래도 유일한 재산이라면 재산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로구나. 벼슬깨나 하는 양반이 어쩌면 이렇게 가진 것이 없을까?’
이렇게 생각한 도둑은 물건을 집어가기는커녕 오히려 가지고 있던 돈 꾸러미를 솥 속에 넣고 그냥 빈털터리가 되어 그 집을 나오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부인이 솥뚜껑을 열어 보니 돈이 들어 있지 않은가. 그녀는 급히 홍 참봉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영감, 솥 안에 이 돈이 들어 있었어요. 마침 식량과 땔감이 모두 떨어졌으니, 이 돈으로 그것들을 장만해서 당장의 궁색함을 모면할까 합니다.”
부인의 이 말에 홍 참봉이 단호히 말했다.
“무슨 소리요! 이 돈이 어찌 우리 돈이란 말이오! 누가 우리를 동정해서 갖다 놓은 모양이니 주인을 찾아 돌려 주어야 마땅하오.”
그리고는 즉시 “돈 주인은 놓고 간 돈을 찾아가시오!”라는 방을 대문에 써 붙였다.
도둑이 뒷일이 궁금하여 살피러 왔다가 그 방을 보고 이웃 사람들에게 까닭을 물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세한 얘기를 듣고는 감동했다. 그는 즉시 홍 참봉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고 자백했다.
“그 돈을 놓고 간 사람은 바로 소인입니다. 소인이 어젯밤 물건을 훔치러 선비님 댁에 들어왔다가 너무도 빈곤해 보여 솥 속에 돈을 놓고 갔습니다. 오늘 와서 이처럼 훌륭하신 선비님의 거울 같은 양심을 보니 소인의 지나간 행적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앞으로 소인도 이 도둑 세계에서 손을 씻고 새사람이 되겠습니다.”
홍 참봉은 도둑에게 용기가 될 수 있는 좋은 말을 들려 주며 돌려 보냈다.
이런 멋진 관리들을 우리는 원한다. 당장의 편리함보다는 영원한 명예를 추구하고, 명분 없는 물질보다는 스스로에게 결백하기를 원하는 관리라면, 우리는 언제라도 머리 숙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깊이 고개 숙이고 더 많은 존경심을 보낼 것이다. 그런 멋진 관리는 지금 어디 있는가?

초가집과 기와집

초가집과 기와집
이른 새벽길에 노인과 청년이 우연히 함께 걸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막 넘으니 초가집 한 채와 기와집 한 채가 보였다. 그런데 기와집 굴뚝에서는 파란 연기가 힘차게 솟아올랐으며 일꾼들의 일하는 모습도 분주했는데, 초가집 쪽에서는 연기도 없었고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이 모습을 본 노인이 혼자 중얼거렸다.
‘음, 저 두 집 중에는 기와집 쪽이 더 잘 살겠군.’
청년이 이 소리를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아니, 기와집 쪽이 초가집 쪽보다 잘 사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인데, 그런 당연한 말을 무엇 때문에 하는가.’
두 사람은 하루 종일 함께 걸었다. 이제 주위에는 어둠이 찾아와 잠시 후면 걷기도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그들은 하룻밤 머물 곳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그들이 고개 하나를 막 넘자, 이번에도 초가집 한 채와 기와집 한 채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초가집 굴뚝에서 힘차게 연기가 솟아올랐고 기와집 쪽이 조용했다. 노인이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
“젊은이, 이제 밤도 깊었으니 이쯤에서 하룻밤 묵어 갑시다. 그런데 이왕이면 부잣집 쪽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소? 그러니 저 초가집으로 갑시다.”
“아니, 부잣집을 찾으시면서 어째서 초가집으로 가자고 말씀하십니까? 어째서 초가집이 기와집보다 더 부잣집이라는 겁니까?”
청년이 노인의 말에 이해가 되지 않아 이렇게 따지듯 물었다. 이에 노인이 대답했다.
“그야 물론 언뜻 보면 기와집이 더 부잣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소. 그러나 옛부터 내려오는 말에, 한 집안의 잘 되고 못 됨을 알려면 그 집의 식사 시간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았소. 흥할 집안의 아침 식사는 이르고 저녁 식사는 늦은 법이오. 일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오. 그러나 망하는 집안은 그 반대로 일하는 시간은 적고 잠자는 시간은 많게 되지요.”
노인의 설명을 듣고 그제야 청년이 알아들었다. 그리고는 새삼스럽게 옷깃을 여미고 노인에게 이렇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어르신, 고맙습니다. 제게 집안 일으키는 방법을 가르쳐 주셔서.”
당장은 뜨는 해같이 보여도 게으름과 나태함을 일삼으면 지는 해가 되고, 당장은 보잘것 없어도 열심히 일하면 곧 번성하게 될 것이라는 이 이야기는, 옛부터 내려오는 명심보감(수양과 윤리•도덕 및 처세 등에 관한 글을 수록한 책으로, 옛날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학습 교재였다.)의 한 구절을 해석한 내용이다. 직접 풀어 보면 이렇다.
“아침•저녁 식사의 이르고 늦음을 봄으로써, 그 집이 잘 되고 못 됨을 알 수 있다.”<경행록>

작은 계획은 세우지도 마라!

작은 계획은 세우지도 마라 !
소년 시절 내가 일했던 식료품점 옆에는 땅콩을 파는 조 아저씨가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땅콩 냄새를 맡고 그의 땅콩을 제법 샀다. 땅콩을 탄불로 구워 작은 봉지에 일일이 담아 한 봉지에 1니켈씩에 팔았는데, 그에게는 이상한 습관이 하나 있었다. 봉지에 땅콩을 다 채우면, 각각의 봉지에서 다시 두 개씩의 땅콩을 빼내어 새로운 봉지에 담는 것이 그것이었다. 조 아저씨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이렇게 일생 동안 땅콩만 팔며 가난하게 살다가 마침내 죽었다. 그는 땅콩에 대해서 누구보다 많이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크로머스라는 또 한 명의 땅콩 장사도 알고 있다. 어느 날 나는 길을 걷다가 조그마한 간판이 걸려 있는 이상한 가게를 목격했다. 그 간판에는 ‘마을에서 가장 나쁜 땅콩’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순간 웃음을 참지 못했고 호기심을 억제하지 못하여 그 까닭을 알아보았다.
그는 조그만 간판으로부터 자신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 간판을 볼 때마다 웃었고,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의 땅콩을 자주 샀던 것이다. 얼마 후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이번에는 땅콩 자루에까지 그 글자를 써 넣었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웃었고 그만큼 땅콩도 더 많이 팔려 나갔다. 마침내 크로스머 씨는 수많은 사람들을 고용하는 사장 자리에 올라,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지역 체육회에서 땅콩을 팔 수 있는 권리까지 얻어 내어 명성과 부를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크로머스 씨, 그도 역시 땅콩이라면 누구보다 많이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똑같은 지역에서 똑같은 재료인 땅콩으로 똑같이 땅콩만을 생각하며 한평생을 살았지만, 한 사람은 몹시도 가난한 봉지 땅콩 장사로 일생을 마쳐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부유한 땅콩 장사가 되어 땅콩 기업까지 이룩했던 것이다.
같은 쇠막대지만 그것을 그대로 팔면 1달러의 가치밖에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불에 달구어 말 편자로 가공하면 5달러의 가치를 얻을 수 있고, 다시 그것을 초정밀 가공하여 고급 시계의 부속품으로 만들면 수만 달러의 가치까지도 창출해 낼 수가 있다.
크로머스 씨는 이러한 원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에 같은 땅콩이었지만 그것을 응용하여 조 아저씨보다 몇십•몇백•몇천•몇만•몇억 배의 놀라운 효과를 올렸던 것이다.
“작은 계획은 세우지도 마라!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자극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어느 현자가 말했다.
우리는 이 말을 믿어도 좋을 것이다. 꿈이 작으면 그만큼 성공 가능성도 작아지기 때문이다.

백만장자 연구

백만장자 연구
미국의 백만장자는 세대별로는 1백 세대당 한 세대, 즉 1%에 해당된다고 한다. 이들 백만장자의 모든 것을 추적해 온 일단의 연구 보고서가 나온 적이 있는데, 앞으로 백만장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기에 여기에 요약해 보았다.
첫째, 이들은 독립심이 강했다. 이들 중 80%는 노동자층이거나 중산층 출신의 자녀들로서 부모의 특별한 유산 없이 자수성가한 사람들이었다. 이를테면 저 유명한 전기 기구 메이커인 더브르는 구두 수선을 하는 자기 아버지의 가게 2층 구석방에서 전기 기구 수선공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억만장자인 윌마트는 연쇄백화점의 잡화상에서, 샘 월튼은 겨우 몇 천 달러짜리 잡화상에서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부모 유산만으로 백만장자가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다.
둘째, 이들은 남달리 부지런했다. 이들은 하루 평균 10~12시간씩 1주일에 6일간 일했는데, 빠른 사람은 이렇게 해서 30년만에 백만장자의 대열에 들어섰다고 한다. 이들의 90%가 60대 이후에 백만장자가 되었다는 사실로 보아, 일확천금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다른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있어야 백만장자가 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셋째, 이들은 절약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한 낭비가 전혀 없었다. 이를테면 택시 한 번 타야 할 경우에도 한 번쯤은 망설이는 것이 보통이며, 어느 백만장자는 한 벌의 옷을 40년이나 입기도 했다. 고급 시계인 롤렉스를 차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고, 앞에서 얘기한 샘 윌튼은 지금도 아침을 도너츠 가게에서 때우고 손수 픽업 화물차를 몰며 연쇄점에 물건을 배달하고 있다. 이들의 연간 평균 생활비는 4~5만 달러, 근검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이다.
넷째, 학력과는 무관했다. 이들 중 15%가 고등학교 이하의 학벌이었으니 교육 정도와 백만장자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섯째, 이들은 가정적이었다. 그들의 가정 생활은 본받을 만했다. 이혼이 성행하는 미국이라지만 이들 대부분은 처음 결혼한 조강지처와 함께 살고 있으며, 아내들은 일체 집 밖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돈이 많아도 치맛바람이 없다는 얘기가 우리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 외에도, 자식에게 유산을 남기겠다는 백만장자는 5%에 불과했으며, 일생에 소원으로는 한 달 동안 바닷가에서 푹 쉬고 싶다는 따위의 소박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백만장자를 꿈꾸는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독립심•부지런함•성실함•절약 정신•건전한 생활 등을 준비하고, 이것을 그대로 실천해야 그 꿈이 실현될 것이다.

스무번째

애국의 선택

애국의 선택
민족의 지도자 도산 안창호 선생(1878~1938)께서는 일찍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은 물건을 잘 팔면 되고, 김을 매는 사람은 호미로 열심히 일하면 되고, 나무하는 사람은 도끼로 열심히 일하면 되는 것입니다.”
거창하고 요란한 구호를 외쳐대며 말만 하는 것이 애국이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각자의 일을 열심히 행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말씀이다. 나라가 궁지에 몰려 있다 해도 불안에 떨지 말고, 각자 자기의 일에 충실하면서 때를 기다리라는 얘기다.
당시 이 말은 나라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던 대다수의 평범한 국민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었을 것이고 뿌듯한 자긍심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이 말에 따라, 선생은 강단에서, 학생은 교실에서, 상인은 시장에서, 농부는 논밭에서 각자 자기의 일에 충실하면 모두 애국자가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참으로 훌륭한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보충 설명이 있다면 애국의 뜻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로베레 장군>이라는 영화 내용 중에는 이에 대한 훌륭한 설명이 나온다.
“무엇이 애국인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자신에게 더 힘들고 더 어려운 길을 택하라!”
영화에서 주인공은 이 말을 감옥의 담벽에 적어 놓고 독일군에 의해 사형장으로 끌려간다. 그는 원래 프랑스의 일개 평민으로 사기꾼이었다. 그러나 그의 용모가 당시의 레지스탕스 지도자인 로베레 장군과 비슷하다 하여 독일군의 회유 대상이 된다. 독일군은 그를 이용해서 레지스탕스 조직을 분쇄하려 했다.
그는 독일군에 협조하면 자신과 가족의 안락한 생활을 보장 받을 수 있고, 거부하면 그는 물론 가족도 죽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 배운 것도 없는 사기꾼 출신의 그였지만, 그는 그래도 무엇이 바른 길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 순간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는 여기서 어렵고 힘든 길을 택하며 죽었다. 가족과 자신의 안위보다는 조국의 안위를 생각하며 어렵고 힘든 길을 택하며 죽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도 가짜 로베레처럼 두 개의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 어제처럼 편안히 그래서 오늘을 무사안일하게 살아갈 것이냐, 아니면 어렵고 힘든 노력을 보태어 자신은 물론 국가에 더 많이 이바지할 것이냐의 선택이 바로 그것이다.
스스로도 발전하고, 사회도 발전하고, 국가도 발전할 수 있는 후자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면 당연히 지금보다는 힘들겠지만, 그만큼 우리 후손은 더 많은 혜택을 받을 것이다.

상길이와 박 서방

상길이와 박 서방
옛날 박상길이라는 상놈이 푸줏간을 열었다. 그러자 그를 아는 양반 두 사람이 장에 들렀다가 이 푸줏간을 찾아왔다.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얘, 상길아! 고기 한 근만 다오.”
“예, 알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박상길은 그 양반이 주문한 대로 고기 한 근을 베어 그의 앞에 내놓았다. 두 번째 양반 역시 고기 한 근을 주문하려다가, 박상길의 나이가 꽤 든 것 같은지라 말을 높혔다.
“박 서방, 나도 고기 한 근 주시오.”
“예, 알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한 박상길은 아까보다 훨씬 많은 양의 고기를 베어 두 번째 양반 앞에 내놓았다. 먼저 것보다 족히 두 배는 되는 양이었다. 그러자 첫 번째 양반이 역정을 내며 말했다.
“아니, 이놈아! 같은 한 근을 주문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난단 말이냐!”
“예, 그거야 앞의 고기는 상길이가 잘랐고, 뒤의 고기는 박 서방이 잘라서 그렇습니다.”
박상길이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니, 앞의 양반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상길이와 박 서방은 이렇게 다른 사람이다. 아니, 나의 말 한 마디에 따라 상대방은 상길이도 되고 박 서방도 된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가 프랑스 말을 처음 배울 때의 일이다. 프랑스 말에도 우리말처럼 존대말과 반말이 있고, 단수형과 복수형이 있다. 또 우리처럼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반말을 한다. 그런데 반말의 단수형은 별도로 있지만(예:‘너’), 반말의 복수형은 존대말의 복수형과 표현이 같다(즉, ‘너희들’=‘당신들’). 이 과정에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아, 어린아이라 해도 두 명 이상이 되면 어른과 같은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는 뜻인가 보다.’ 물론 이 생각은 지나친 생각일 것이다. 또 근거도 없이 남의 것을 그토록 좋게만 해석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두 어린이 이상은 어른과 같다.’라는 필자의 당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물론 한 어린아이라도 그래야 하겠지만).
사람을 신분이나 나이는 물론, 계급이나 생김새로 구분해서 차별하면 안 된다. 또한 입은 옷이나 소유한 재산,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종류로 구분해서도 안 된다. 말 한 마디에 따라 상길이와 박 서방이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처럼, 인간은 감정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의 실패 이유 중 그 80%가 인간 관계의 실패 때문이라는 어느 보고서의 결론도, 알고 보면 사람과 사람간의 대화술의 실패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잘못된 제도 하나가

‘잘못된 제도 하나가……’
‘QWERTYUIOP, ASDFGHJKL, ZXCVBNM’
위의 글자들은 컴퓨터 키보드(또는 타자기) 자판의 영문 글자를 좌에서 우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의 순서대로 나열한 것들이다.
‘자판의 배열은 왜 이렇게 난해한 형태로 되어 있을까? 어째서 이런 배열이 필요한 것일까?’
타자기나 컴퓨터의 자판기를 처음 접해 본 사람이라면, 그 무질서한 글자 배열 때문에 모두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알기 쉬운 알파벳 순서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배열해 놓은 것 같지도 않은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느 정도 실용성을 갖춘 타자기는 미국의 인쇄기술자 C.L. 쇼울즈(1819~1890)에 의해 1873년에 만들어졌는데, 처음에는 어느 정도 알파벳 순서로 배열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배열은 실용상에서 큰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타자를 치는 속도에 비례해 타이프바가 자주 엉킨다는 것이 그것이었다(옛날에는 전부 타자기로 글자를 쳤으며, 그 타자기는 글자가 붙어 있는 타이프바가 올라오는 수동식이었음.).
이래서는 판매하기 어렵다 생각한 쇼울즈는 수학자이자 교사인 처남에게 의뢰해 지금의 난해한 배열을 고안해 내게 되었는데, 그 숨은 뜻은 타자를 치는 사람에게 일부러 혼란을 주어 적게나마 시간차가 생기도록 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이 문자 배열판을 대중들에게 선뜻 내놓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 배열이야말로 손 동작을 고려한 가장 능률적인 배열입니다.”라는 기만적인 선전을 해 버렸다. (물론, 바가 엉켜 일부러 어렵게 배열했다거나, 그의 처남이 자주 쓰던 글자들을 중앙에 놓았다거나, 타자수들의 손가락 운동이 많아졌다는 것 등은 일체 밝히지 않았다.)
이렇게 위장된 그의 선전은 즉시 권위 있는 타자기 전문가들에 의해 ‘희대의 사기’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 말에 따르지 않고 혼란스런 그 배열에 적응해 버렸다. 그 후에도 새롭고 빠른 과학적인 배열의 타자기들이 수없이 나타났지만 역시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더구나 이제는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타자기 시대에서 컴퓨터 시대로까지 변하여 일부러 타자 속도를 늦출 이유가 전혀 없건만, 잘못 길든 제도와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작금의 수억•수십억 명의 컴퓨터 이용자들이 그 혼란스러운 경험을 거쳤고 또 거치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수백•수천억 컴퓨터 인구 역시 이 혼란스런 경험을 필수 과정으로 거쳐 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잘못된 제도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또 심각한 피해를 주는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제도 하나, 습관 하나를 결정할 때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바람직한 해답

바람직한 해답
고전음악 좰신세계좱로 유명한 A. 드보르자크(1841~1904)는 협주곡•교향곡•교향시•피아노곡•오라토리오•칸타타•합창곡•가곡 등의 분야에서 훌륭한 작품을 수없이 발표한 다작의 천재 작곡가이다. 그러나 그는 16세라는 나이로 그 분야에서는 상당히 뒤늦게 출발한 사람이었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 근교 작은 마을에서 정육점과 여관을 경영하는 아버지의 1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스스로 작곡을 하는 등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지만, 장남은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완고함 때문에 그는 하고 싶은 음악 공부를 하지 못하고 역시 정육점을 하는 큰아버지 밑에서 정육 업무에만 매달려야 했다. 그래도 그는 아버지의 말씀에 잘 순종해서 정육업 면허까지 취득하는 성의를 보였다.
그러던 중, 마을 성당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던 사람이 그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그에게 음악 공부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이에 그는 음악 공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완고한 아버지보다는 융통성 있는 큰아버지에게 자신의 음악에 대한 열망을 얘기했다. 큰아버지는 조카의 이 열망을 확인하고 완고한 동생을 설득했으며, 그래서 드보르자크는 뒤늦게나마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 그가 음악 공부에 얼마나 열심이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위대한 작곡가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드보르자크의 이 뒤늦은 출발 얘기를 들으면, 현실에 순응하면서 자신의 이상을 구현한다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또 위험하기까지 한 일인지를 알 수 있다. 그래도 그는 큰아버지 덕분에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고서도 대성할 수 있었지만, 공부가 조금만 더 늦어졌더라면 우리는 천재 작곡가 한 명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세상에는 이와 비슷한 이유로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따분하게 세상을 살다 간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드보르자크의 경우와는 달리, 이상론과 개혁론을 앞세우며 과감하게 문제에 부딪치며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현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하며, 인간으로서의 최고•최상의 목표를 지향한다. 소위 이상주의자 또는 개혁주의자들이 바로 이들이다. 사실, 이들의 획기적인 발상과 과감한 행동력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자극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수반되는 초현실성과 과격성은 현실주의자 또는 온건주의자들과 마찰의 대상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현실과 이상•순응과 혁신•순종과 개혁을 논한다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어느 하나의 장점 속에는 그만큼의 단점을 동시에 포함하는 모순론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같은 문제라도,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관점에 따라,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그 선택이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드보르자크가 찾아낸 ‘현실 속의 이상’ 또는 ‘온건 속의 개혁’ 방안은 우리가 찾아 낼 수 있는 하나의 ‘바람직한 해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무시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의 세계를 인정했으면서도,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이상의 세계로 신나게 날개를 펴고 날아갔으니 말이다.

의지

의 지
“성공하는 사람들은 선천적인 조건을 갖고 태어나는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가?”
문제랄 것도 없는 이 문제에 너무도 당연한 해답인 ‘후천적으로 만들어진다’를 얘기하지 않고, 오답인 ‘선천적으로 태어난다’를 자꾸만 얘기하는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이 문제의 해답을 찾으면서, 성공의 원인을 조사하여 ‘의지’라는 후천적인 정답을 찾지 않고, 성공이라는 결과에서 거꾸로 ‘운명’이라는 오답을 찾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는가? 그리고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이의 미래를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는가? 단순한 이 질문들로부터도 그 해답은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말이다.
어느 나라에 천재 노인이 있어 사람들이 묻는 까다로운 질문에 모두 다 정확하게 대답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소년이 손 안에 새 한 마리를 쥐고 이 노인을 찾아와, 이 새가 잠시 후에 죽을 것인지 아니면 살 것인지를 물었다. 해박하기 이를 데 없는 천재 노인이었지만,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내가 산다고 말하면 손에 힘을 주어 그 새를 죽일 것이고, 죽는다고 말하면 그 새를 살려 줄 것이 아니겠느냐? 네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을 어째서 내게 묻는단 말이냐?”
그렇다. 그 새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은 천재 노인의 재능이 아니라 어린 소년의 의지다. 아무리 천재 노인이라 해도, 그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새가 죽을 것인지 살 것인지의 50% 확률을 놓고 예측하는 일 뿐이다. 또한 노인의 예측조차 맞게 하느냐 틀리게 하느냐 하는 것도 순전히 소년의 의지에 달려 있다. 우리는 새의 운명도, 노인의 예측도, 모두 소년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의 성공도 이와 다를 게 없다. 그 어떤 우수한 점쟁이도 우리의 성공을 예언할 수는 있어도 결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예언을 맞게 하느냐, 틀리게 하느냐 하는 것도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다.
“세상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성공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악조건 하에서도 열심히 일할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이 이야기는,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고, 나아가 강인한 의지가 자신에게 주어지는 어떤 어려움이나 악조건을 극복하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성공할 자격이야 원래부터 누구나 다 갖고 있었지만, 의지라는 토양을 만나지 못해서 성공하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은 곧 글 첫머리에 소개된 문제의 해답이, 즉 성공한 사람들은 의지라는 후천적 요소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말해 주는 확실한 해답인 것이다.

청출어람

청출어람(靑出於藍)
청출어람의 뜻은, ‘쪽이라는 식물에서 나온 물감의 색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더 훌륭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우리 동양인들은 경로 사상이 워낙 투철해 이 말하는 것을 삼가는 실정이지만, 사실 이 말은 어느 때•어느 곳에서도 많이 울려 퍼져야 좋은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하는 말이다.
만일, 제자•후배•자식들이 스승•선배•부모보다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학문도 정체되고, 사회 발전도 없고, 집안도 붕괴될 것이다. 그런데도 이 말하기를 삼가야 한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연히 제자는 스승보다 훌륭해야 하고, 후배는 선배를 능가해야 하고, 자식은 부모보다 나아야 한다. 그래야 학문도 발전하고, 국가도 발전하고, 집안도 발전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스승•선배•부모의 벽을 뛰어넘는 것을 의무로 알아야 하고, 나아가 우리의 제자•후배•자식들이 우리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뛰어넘는 제자나 후배(자식은 예외인 듯하다.)에게 용기나 격려는 고사하고 시기심이나 보이고 방해나 한다면, 이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소아적인 행동이란 말인가.
물론, 무조건 양보해야 된다는 뜻이 아니다. 마치, 달리기 경주에서 그들이 추월하도록 그냥 서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후배에게 더 많은 자극과 분발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힘껏 달려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바람직한 청출어람이기 때문이다.
스승•선배•부모는 체력에의 열세를 딛고 그 동안 쌓인 관록과 노련미를 앞세울 수 있다. 반면에, 제자•후배•자식들은 모자라는 관록과 노련미를 패기와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관록과 패기의 대결이고 노련미와 체력의 대결이니 얼마나 흥미진진한 승부 요소란 말인가.
스승•선배•부모는 제자•후배•자식들의 열정과 체력과 패기를 보면서 한층 더 높은 경륜과 관록과 노련미를 쌓을 수 있다. 제자•후배•자식들은 스승•선배•부모들의 이 경륜과 관록과 노련미를 보면서 소모적인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경쟁이고 절묘한 협동일 것이다.
이렇게 하여 제자•후배•자식들도 후에 스승•선배•부모가 되면, 자신들이 겪었던 청출어람의 무대보다 더 높은 수준의 새로운 청출어람 무대를 자신들의 제자•후배•자식들에게 마련해 줄 것이다. 이런 청출어람인데 어찌 말하기를 삼가할쏜가!

소문과 진실

소문과 진실
편작은 중국의 전국 시대 노나라 명의로 천하에 이름을 떨친 사람이다. 그에게는 두 명의 형이 있었는데 이들 역시 뛰어난 의술을 지닌 의원이었다. 편작이 어느 날 위나라 임금과 이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대 3형제 모두가 의원이라고 들었는데, 그 중에서 누구의 의술이 가장 훌륭한고?”
편작이 대답했다.
“예, 큰형님 의술이 가장 훌륭하옵고, 다음이 작은형님 그리고 마지막이 저이옵니다.”
“어허, 그런데 어찌하여 그대 형님들은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는고?”
“예, 제 큰형님은 환자가 아픔을 직접 느껴 보기도 전에 얼굴빛으로 이미 그 환자에게 닥쳐올 큰 병을 알고 치료해 버립니다. 그러니 환자는 병을 앓아 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큰형님이 자신의 큰 병을 치료해 주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제 큰형님이 명의로 세상에 이름을 내지 못했습니다.또 제 작은형님은 환자의 병세가 약하게 나타나면 그 때 벌써 큰 병을 알아보고 치료를 해 버립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제 작은형님이 자신의 대수롭지 않은 병이나 고쳐 주었지 큰 병까지 고쳐 주었다는 사실은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역시 작은형님도 세상에 이름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환자를 치료하여 왔는고?”
“예, 저는 제 두 형님과는 달리, 환자의 병이 밖으로 크게 나타나고 고통을 심하게 느낄 때에야 비로소
큰 병임을 알아봅니다. 병세가 심각하므로 맥을 짚어 보고 신비한 약도 먹이고 살을 파내는 수술까지 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 때 저의 그런 행위를 직접 보았으므로 제가 자신들의 큰 병을 고쳐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부끄럽게도 저만이 명의라는 소문을 얻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떠도는 소문과 진실에는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일 때가 많다. 그것들 중 상당수는 소문이 요란할수록 진실과는 반대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포장과 꾸밈이 심할수록 그 내용물은 보잘것 없는 것이 많고, 플래카드와 아치가 요란한 구호일수록 실천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이런 것들은 마치, 빈 수레가 짐을 실은 수레보다 요란한 것과 같고,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강물 흐르는 소리보다 더 시끄러운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소문과 진실을 정확히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떠도는 소문과 풍문을 걷어 내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진실에의 실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소문난 편작보다 소문 안 난 편작의 큰형님•작은형님이 훨씬 더 위대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운명을 바꾼다

운명을 바꾼다
옛날에 싸울 때마다 뛰어난 지략을 구사하여 매번 승리만 하는 유능한 장군이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열 배도 넘는 적군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감에 넘쳐 이번 싸움에서도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지만, 워낙 상대가 상대인지라 참모들과 부하들은 내심 불안에 떨고 있었다. 장군은 바로 그 점을 염려하고 있었다.
장군의 군대가 전쟁터로 향하던 중 한 사당 앞을 지날 때였다. 장군이 잠시 참배를 드리겠다며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경건하게 참배를 드리고 나서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어 참모와 병사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방금 전에 우리의 신에게 이렇게 빌었다.
‘내가 들고 있는 이 동전을 하늘 높이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신이 우리의 편이 되어 우리를 승리하게 해 주시는 것으로 믿을 것이며, 뒷면이 나오면 적군의 편이 되어 우리를 패배하게 하는 것으로 믿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신께서는 우리가 승리할 것이냐, 아니면 패배할 것이냐를 결정해 주실 것이다.”
이렇게 말하며 장군이 하늘 높이 동전을 던지자 참모들과 부하들은 몹시 긴장했다. 자신들의 앞으로의 운명이 이 동전 하나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앞면이었다. 그 순간 모든 참모들과 부하들은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마치 전쟁에서 이미 이기기나 한 것처럼 즐거워했다.
“우와, 앞면이다! 우리가 이긴다!”
“신이 우리의 승리를 점쳐 주셨다! 빨리 가서 적군을 무찌르자!”
이렇게 사기가 충천한 참모들과 병사들은 곧바로 전쟁터로 달려가, 그야말로 신들린듯 싸워 1대 10이라는 절대적 열세를 딛고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다. 참으로 대단한 활약이었고 놀라운 투혼이었다. 싸움이 끝난 후 참모 한 명이 장군을 찾아와 말했다.
“역시 신의 예시는 정확했습니다. 누구도 신이 내려준 운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나 봅니다.”
그러자 장군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그 참모의 손에 쥐어 주었다. 참모가 그 동전의 앞뒤를 조사하니 양면이 모두 앞면 뿐이었다.
자신감은 정말 중요하다! 이긴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이기는 방법을 찾게 마련이고 그래서 결국 이기게 된다. 그들은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이기는 방법은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며, 그래서 그에 꼭 알맞는 방법을 생각해 낸다. 그렇게 되면 여기 이 이야기처럼 1대 10이라는 숫적 절대 열세도 쉽게 극복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쯤은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운명을 믿지 않으며, 오히려 운명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붉은 대나무

붉은 대나무
세 명의 학승이 일 주일 동안 좌선을 하기로 하면서 서로 무슨 일이 있어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처음 시작한 날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말이 없으니 고요함 속에 좌선의 효과도 무척 좋았고 그만큼 보람도 컸다. 그런데 한밤중이 되자 등잔불이 깜빡거리며 기름이 다 됐다는 신호가 왔다. 이에 한 학승이 동자를 불러 말했다.
“여기 기름 좀 넣어 다오!”
그러자 옆에 있던 학승이 그 학승에게 말했다.
“어떤 말도 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이번에는 또 다른 학승이 말했다.
“이 사람들아! 무슨 말이 그리 많나!”
사람들은 흔히 남의 잘못을 지적하지만, 바로 그 지적 속에 자기 자신의 잘못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떤 사람이 화가를 초청해서 대나무 그림을 그리게 했다. 주인이 그림을 받아 보니 썩 잘 그린 그림이었지만 붉은 색으로 그린 대나무였다. 주인이 화가에게 물었다.
“그림이 아주 훌륭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붉은 색으로 대나무를 그렸습니까?”
그러자 화가가 되물었다.
“그럼 어떤 색으로 그려야 합니까?”
“그야 물론 검은 색으로 그려야겠지요.”
이에 화가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아직까지 검은 잎의 대나무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소.”
따지고 보면 우리의 상식에는 이런 헛점이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받아들여진 잘못된 제도와 지식이 고정관념화되어 진실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세상에는 붉은 대나무도 없지만, 우리가 그림에서 흔히 보는 그런 검은 대나무도 또한 없다.
따라서 남의 잘못을 지적할 때는 특히, 이렇게 잘못 인식된 지식과 상식에서 출발되는 것은 아닌지 미리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오류와 편견에서 벗어나는 길은, 폭넓은 지식의 획득과 타인의 비평까지도 수용할 줄 아는 개방된 마음을 갖는 일이다.

제왕학과 민초학

제왕학과 민초학
제왕학이란 만인의 우두머리인 임금이 갖추어야 할 품위와 능력을 배우는 학문이다. 만인의 최정상에서 수많은 사람을 문제 없이 통솔하려다 보면 보다 많은 능력이 요구될 것인데, 우리는 그 좋은 예를 역시 백수의 제왕인 사자에게서 찾아볼 수가 있다.
어미 사자가 새끼 사자에게 먹이 사냥을 교육시키기 위해 새끼 사자를 사냥터로 데리고 나오면, 우선 어떻게 사냥하는가를 구경만 한다. 그것은 ‘혼자 문제를 풀어 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다가 새끼 사자가 먹이를 발견하고 쫓아갈 때 그 먹이가 새끼 사자의 체구보다 작은 짐승이면, 당장 달려가 뒷발질로 새끼 사자를 걷어차 버린다. 장차 제왕이 될 사자가 ‘어찌 그렇게 치사하냐’는 뜻일 것이다. 또 새끼 사자들은 가끔 하이에나와 같은 무리들에게 포위되어 위기를 맞기도 하는데, 그 때도 어미 사자는 새끼 사자를 전혀 도와 주지 않는다.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나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다가 하이에나 떼를 물리치고 상처투성이로 돌아오게 되면, 어미 사자가 달려가 앞다리로 새끼 사자를 강타해 버린다. 사자로서 ‘어찌 그리 나약하냐’고 꾸짖는 뜻일 것이다.
새끼 사자는 어릴 때부터 이렇게 확실한 제왕학 교육을 받으며, 마침내 품위와 능력을 갖춘 백수의 제왕이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수준 높은 제왕학 교육이란 말인가. 앞으로 제왕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사자의 이 제왕학 교육 내용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제왕만 필요하고 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대다수 민중이 있어야 제왕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들 민중에게는 제왕과 같은 무소불위의 권위나 탁월한 지도력은 없지만, 그래도 제왕에게도 없는 처세술과 지혜는 갖추어져 있다. 우리는 이들 민중을 민초라 즐겨 부르니만큼, 이들의 처세술을 민초학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민초의 대명사는 잡초다. 잡초는 말 그대로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잡스럽게 피는 풀이다. 무수한 생명체에 밟히고 짓눌리고 뜯기며 일방적으로 당하지만, 그래도 특유의 적응력과 끈질긴 생명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이어 나간다.
먹히면서도 살아남고, 주면서도 얻고, 당하면서도 승리하는, 그 처세술이 민초학의 전부이자 백미이다. 어떤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신비한 적응력과, 어떤 악조건하에서도 생존하는 끈질긴 생명력 속에는 제왕도 감히 넘보지 못할 깊은 지혜가 들어 있다.
이들의 온순함은 무능함이 아니고, 이들의 부드러움은 나약함이 아니다. 그것은 강풍에 꺾어지는 것이 풀이 아니고 나무라는 사실에서, 이는 빠져도 혀는 남는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사납고 거센 불에 타 죽는 사람보다 온순하고 조용한 듯한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서 거듭 입증이 된다. 제왕학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깊고도 오묘하고도 신비한 민초학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스물한번째

촉매

촉 매
아라비아의 한 노인이 숨을 거두면서 세 아들에게 유언했다.
“내 재산은 오로지 낙타 17마리 뿐인데, 큰아들은 그것의 반을, 둘째 아들은 그것의 3분의 1을, 그리고 막내아들은 그것의 9분의 1을 갖도록 해라!”
아버지가 죽자 세 아들은 낙타 17마리를 아버지의 유언대로 나누려 했다. 그런데 그 계산이 그리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큰아들의 몫인 절반은 ‘17×1/2=8.5’로 8마리 하고도 반이니, 8마리에 다시 반을 보태자면 산 낙타 한 마리를 반으로 잘라야 했고, 둘째 아들은, ‘17×1/3=5.666……’, 셋째 아들은 ‘17×1/9=1.888……’로써 도무지 계산 자체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세 아들은 마을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노인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노인이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빙그레 웃더니, 자신의 낙타 한 마리를 가져와 계산을 시작했다.
“자, 이제부터 자네들 아버지의 유언을 집행하겠네. 큰아들의 몫은 절반이라 했으니 여기 이 18마리 중 9마리를 갖게. 그리고 둘째 아들은 3분의 1인 6마리를 갖고, 막내아들은 9분의 1인 2마리를 갖도록 하게. 그러면 17마리가 되어 한 마리가 남으니, 그것은 원래의 주인인 내가 도로 가져가겠네.”
노인의 이 해결책에 세 아들이 무릎을 쳤다.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었고, 또 원래의 자기 할당량보다 더 많은 양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노인이 낙타 한 마리를 더 가져와 세 아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다시 한 마리를 도로 가져간 이 해결 방법은 참으로 특이한 해결 방법이다. 노인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았으면서, 세 아들의 고민을 풀어 준 획기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노인이 가져온 이 낙타 한 마리는 화학 반응에서 배웠던 촉매의 역할과 같다. 자신은 결과적으로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으면서, 다른 물질의 반응을 촉진시켜 주거나 지연시키게 해 주는 그 물질이 촉매의 정의였으니 말이다.
혹자는 이 문제에서 근본적인 수학적 모순을 지적할 것이다. 즉, ‘1/2+1/3+1/9=17/18’이니 원천적으로 문제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문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핵심이 ‘촉매’라는 특수한 영역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이 촉매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포함시킨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한계를 크게 넓히면서, 보다 훌륭하고, 보다 완전하고, 보다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철공 대통령

최고의 권위와 책임을 갖고 나랏일을 맡고 있는 사람을 대통령이라 부른다면, 자기가 종사하고 있는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와 책임을 갖고 그 일에 임하는 사람들 역시 그 분야의 대통령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면, 철강 부문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고 일한다면 철강 대통령, 전자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고 일한다면 전자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카네기가 철강업에 한창 열정을 쏟을 때였다. 어떤 기술자가 일도 열심히 하는 데다가 책임감 있게 일처리를 하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에 카네기가 그를 고급 관리직에 임용시키려고 불렀다.
“당신은 책임감도 크고 능력도 높으니 이제부터는 관리직 업무를 맡아 주시오!”
그런데 기술자가 그 직책을 사양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사장님, 저는 철공 이외의 다른 일에는 완전히 문외한입니다. 평생 다른 일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습니다. 물론 철공 일이야 대통령이죠. 하지만 다른 일에는 깡통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카네기가 자기의 생각을 즉석에서 바꾸며 말했다.
“정말 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관리직에 임명하려 했던 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소. 그러나 당신이야말로 철공 분야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사람이니, 이제부터는 당신의 월급을 대통령 월급으로 주겠소.”
그리하여 그 기술자는 카네기 회사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사람이 되었다.
카네기가 그 기술자에게 대통령 월급을 준 사실은, 그가 전문가와 기술자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내용이다. 그것이 어떤 분야이건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 있다면, 당연히 최고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카네기의 생각은 정말 옳은 생각이다.
최고란 그 분야에서 누구보다도 땀을 많이 흘린 사람이다. 누구보다도 그 일에 대해 많이 생각한 사람이고, 누구보다도 그 일에 정성을 쏟은 사람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존경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이런 위치에 도달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내와 고통을 감수해 왔는지를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각 분야에서의 최고 사람을 이렇게 인정해서, 그래서 앞으로는 산소용접 대통령•기계제작 대통령•전자조립 대통령•컴퓨터 대통령•운전기사 대통령•영업업무 대통령•판매 대통령 등등의 각종 대통령이 수없이 탄생해서 진짜 대통령과 같은 대접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저마다 최고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느끼고 즐겁게 살 것이기에, 굳이 골치 아픈 정치 대통령은 하려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이란 말인가!

천사와 악마

천사와 악마
어떤 장군이 유명한 신부를 찾아가 물었다.
“천사와 악마가 정말 있습니까?”
신부가 장군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며 되물었다.
“당신은 무얼하는 사람입니까?”
“예, 나는 장군입니다.”
그러자 신부가 깔깔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어떤 멍청이가 당신 같은 사람을 장군으로 보겠소? 내가 보기에는 바보 같은데!”
신부의 이 소리에 장군이 치미는 분노를 참지 못하며 화난 얼굴로 옆구리에 찬 권총을 뽑아들었다. 그러자 신부가 말했다.
“당신의 지금 모습이 바로 악마의 모습이오!”
장군이 즉시 깨달았다. 그는 총을 꽂으며 자신의 경솔함을 빌었다.
“죄송합니다. 저의 경솔한 행동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자 신부가 다시 말했다.
“지금의 당신 모습이 바로 천사의 모습이오.”
사람들은 천사와 악마 같은 것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천사와 악마의 모습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차라리 그들 천사와 악마의 행위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 함께 존재하는 선과 악의 감정 중, 어느 것이 밖으로 나오느냐에 따라 천사도 될 수 있고 악마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한 행위를 하면 천사가 되는 것이고, 악한 행위를 하면 악마가 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극소수 사람들은 일생 동안 천사로만 살아가는가 하면, 또 그만큼의 다른 사람은 악마로만 살아간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어느 때는 천사였다가 다시 어느 때는 악마가 되는 두 가지 모습을 모두 갖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실제 모습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아직도 세상의 그 어떤 천사보다도 더 착한 천사가 될 수 있는 희망적인 존재이기도 하고, 그 반대로 세상의 그 어떤 악마보다도 더 악한 악마도 될 수 있는 위험한 존재들이기도 한 것이다. 분노심에 총을 뽑았다가 악마 장군이 되었고, 금방 이성을 되찾아 천사 장군으로 변했다는 앞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 우리가 잠시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까지도 말해 주고 있다. 특히, 순간적으로 치미는 분노심과 증오심을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안자의 냉소

안자의 냉소
중국의 제나라 경공이 우산이라는 곳에 놀러 갔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되어 이렇게 한탄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참으로 아름다운 나의 조국이로다! 식물과 자연은 이렇듯 무성하여 오래 사는데, 나는 어찌하여 오래도록 살지 못하고 죽어야만 하는가? 옛날부터 죽지 않은 사람이 없다 했지만, 과인은 이 곳을 떠나 과연 어디로 가 있을 것인가!”
경공이 이렇게 한탄하는데, 곁에 있던 두 신하도 함께 따라 울면서 이런 말을 했다.
“부족한 저희들도 임금님의 높은 은총으로 남보다 배불리 먹고 수레까지 얻어 타는 행복함이 있기에 그래서 조금도 죽고 싶지 않거늘, 하물며 임금께서야 오죽하시겠습니까?”
그러자 곁에서 이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안자라는 신하가 왕과 신하들에게 냉소 어린 표정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에 경공이 눈물을 닦으며 화난 얼굴로 안자에게 따졌다.
“과인이 오늘의 나들이가 슬퍼서 신하들과 함께 우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냉소를 보내는가?”
안자가 대답했다.
“임금이시여! 옛부터 현인들이 죽지 않고 이 나라를 지켰다면 태공이 지금껏 나라를 지킬 것이 아닙니까? 용감한 자가 이 나라를 지켰다면 장공이 지킬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임금께서는 아마 지금쯤 도롱이 입고 삿갓 쓰고 밭이랑 사이를 오가며 오직 농사일에나 열중하고 계실지 누가 알겠습니까? 어떻게 임금이 되어 지금처럼 죽음 따위나 걱정하고 계실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시대를 따라 임금 자리를 서로 번갈아 오르고 또 떠났기에 임금의 차례까지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도 임금께서는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이나 걱정하시며 눈물이나 흘리시니, 이 얼마나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십니까? 현명하지 못한 임금과 이에 동조하는 신하들을 보며 신이 기가 막혀 웃었습니다.”
안자의 이 말에 경공이 자신의 어리석었던 생각과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며 스스로 술잔을 들어 벌주 한 잔을 마셨다. 신하들은 두 잔의 벌주를 따라 마셨다.
천하가 전부 자기 것이고 만인을 마음대로 호령하는 제왕이라 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돈깨나 있다고 권력깨나 잡았다고 보약이나 장수약을 찾아다니며 온갖 추태를 부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에게 안자처럼 다시 한번 냉소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오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신은 위대하다

신은 위대하다
어느 날 태풍이 불어 와 박 씨의 집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나 그 이웃에 사는 친구 정 씨의 집은 아무 일이 없었다.
이 사실이 박 씨에게 준 충격은 대단했다. 왜냐하면 그는 열렬한 신자였고 그 동안 불쌍한 사람들에게 누구보다도 많은 선심과 선행을 베풀었기에, 유독 자기에게만 찾아온 이 불행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정 씨는 신앙도 없는 사람이어서 더욱 그랬다.
며칠을 고민하던 그는 마침내 ‘이 세상에 신은 없다!’라고 외치며, 전에 없던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의 불행을 딱하게 여긴 이웃 사람들이 도움을 자청해 왔지만, 그는 그런 이웃들의 호의도 마다하고 세상사의 불공평함과 자신의 불행을 원망하기만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이번에는 정 씨의 외아들이 물에 빠져 죽는 일이 발생했다. 박 씨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이제 정 씨의 외아들이 죽었으니 얼마만큼은 보상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는 이런 마음을 숨기고 정 씨를 위문하러 갔다.
“자네의 불행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네.”
박 씨가 이렇게 마음에도 없는 위로를 건내자 정 씨가 대답했다.
“아비라한들 자식의 불행을 어찌 막을 수 있겠나? 다 하늘의 뜻이라 생각할 뿐이네. 세상을 살다 보면 기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알 것만 같네.”
정 씨의 이 말에 박 씨는 크게 놀랐다. 자신은 태풍에 집이 무너졌다고 세상을 한없이 원망했지만, 정 씨는 그보다 더한 외아들을 잃고도 이렇듯 의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어리석고 치졸한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 동안의 못난 행동을 후회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나쁜 일이 더 많이 일어난다고 해야 옳은 표현인지 모른다. 박 씨처럼 태풍에 집이 부서지는 일도, 정 씨처럼 외아들이 물에 빠져 죽는 일도 실제 자주 목격되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길을 걷다가 정말 재수 없이 다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벼락이나 지진 같은 천재지변을 당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런 원치 않는 불행이 자신에게 찾아왔을 때 그 다음에 취하는 우리들의 태도이다. 박 씨처럼 감정으로 대응할 수도 있겠지만, 정 씨처럼 의연하게 대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두 개의 해답 중에서 어느 것이 정말 좋은 해답인지를 잘 알고 있다.
신을 믿는 사람들 중에는 신이 자기만 특별히 더 사랑해 줄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신이 어째서 위대한가를 먼저 알고 그런 편협한 생각을 버려야 할 것이다. 신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조차 차별 없는 사랑을 베푸는 너그러운 분이기에, 그래서 위대하다는 사실을 꼭 알아야 할 것이다.

즐겁게일하자

즐겁게 일하자
영국의 수필가 찰스 램(1775~1834)은 인도에 있는 한 회사에서 월급쟁이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밤에 글을 써서 대작을 많이 발표했다. 그러나 이렇게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다 보니 항상 시간이 부족했고, 그래서 그는 그것이 늘 불만이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 갖기를 진심으로 소망했다.
세월이 흘러 찰스 램이 드디어 월급쟁이 생활에서 해방되는 날이 찾아왔다. 명예로운 정년 퇴직일을 맞게 된 것이다. 마지막 출근을 하는 날, 찰스 램은 너무도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출근했다.
“선생님의 명예로운 정년 퇴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찰스 램의 평소 생각을 잘 알고 있던 여사무원이 이렇게 인사를 해 왔다.
“고마워요, 아가씨.”
“이제 선생님께서는 밤에만 쓰시던 작품을 낮에도 쓰시게 되었으니 작품이 더욱 빛나겠군요.”
“그렇지. 밤에 별빛 아래서 쓰는 글보다 낮에 햇빛 아래서 쓰는 글이 당연히 더 빛나겠지.”
그는 이렇게 여유를 부리며 즐거워했다. 사장실로 들어가는 그의 발걸음도 마냥 가볍기만 했다.
‘아, 이 얼마나 기다렸던 자유의 몸이냐! 구속 받던 월급쟁이 생활이 끝나고, 이제야말로 정녕 하고 싶은 글쓰기에만 몰두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큰 행복이란 말인가!’
그는 이렇게 즐거움의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후, 찰스 램이 그 여사무원에게 보낸 편지 내용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사람이 하는 일 없이 한가하다는 것이 일이 너무 많아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것보다 얼마나 못 견딜 노릇인가를 이제야 알게 되었소. 할 일 없이 빈둥대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학대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그건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소.
아가씨는 나의 이 말을 부디 가슴에 잘 새겨 언제나 보람 있는 바쁜 나날을 보내기 바라오. 찰스 램으로부터” 사람들은 일이 많다고 불평하지만, 사실 그 일에서 해방된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이 사라짐으로써 불행해진다. 죽은 사람에게는 할 일이 없다는 사실과, 일이 즐거우면 극락에서 사는 사람이고 일이 괴로우면 지옥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에서, 일이 많다고 불평할 수 있는 것조차 행복으로 알고 즐겁게 일에 임했으면 한다

이항로의 항상심

이항로의 항상심
조선조 후기 학자인 이항로(1792~1868)는 조선조 순조 8년(1808)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시험에 부정이 있었다 하여 스스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은 사람이다.
그 후 그는 고향에서 학문에만 전념하며 후진들을 양성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급작스럽게 금부도사와 포졸들이 들이닥쳐 제자들을 교육 중이던 그를 체포했다. 영문도 모르는 가족들과 제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크게 놀라 울음을 터뜨리며 금부도사에게 매달려 통사정을 했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이 분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놀라서 애원하는데, 정작 본인인 이항로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태연한 태도로 집안 사람들을 오히려 꾸짖는 것이었다.
“어찌 이런 소란을 피우는가! 글깨나 읽은 사람들이 이런 못난 행동을 해서야 되겠는가! 내가 지금 잡혀간다 해도 죄가 있으면 죽을 것이고 죄가 없으면 풀려날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이항로는 옥에 갇혀 심문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원래 죄가 없었던 그였는지라 심문 도중에 무죄임이 밝혀졌다. 그러자 그를 흠모하던 옥졸들이 상부의 명이 하달되기도 전에 그의 목에 씌워진 칼을 벗기려 했다. 그러자 이항로가 이렇게 말했다.
“석방한다는 글을 보기 전에는 칼을 벗을 수 없다.”
마침내 출옥하여 집으로 되돌아오자, 이항로는 즉시 제자들을 불러 교육을 계속하자고 했다. 이에 제자가 물었다.
“방금 옥고를 치르고 나오셨는데, 포박되시기 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저희들을 가르치려 하시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금부도사에게 잡혀갈 때나 지금이나 내 마음이 어찌 달라졌겠는가.”
제자가 다시 물었다.
“갑자기 환란을 당했을 때, 선생님처럼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항상 살얼음을 밟는 기분으로 자신을 단속하며 가볍게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훌륭한 사람들의 철학과 행동을 볼 때마다 경탄과 존경을 금치 못한다. 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닥치든 우리처럼 쉽게 기뻐하지도 않고 쉽게 슬퍼하지도 않는 항상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항상심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하루하루 생활에 쫓기는 우리들이야말로 이런 항상심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다. 일도 많고 사건도 많아 잠시도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여, 그때 그때마다 웃었다 울었다 하는 우리들이야말로 이런 분들에게 항상심을 열심히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항상 살얼음을 밟는 기분으로 자신을 단속하며 가볍게 행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못생긴 얼굴

못생긴 얼굴
“나이 40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말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아브라함 링컨(1809~1865)의 말이다. 그러나 사실은 링컨 자신도 남에게 책임질 만큼 잘 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그것을 오히려 자신의 장점으로 만드는 탁월한 능력은 있었다.
그가 어떤 모임에 참석했다가 갑자기 짧은 연설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다. 그는 이런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언젠가 저는 숲 속에서 말을 타고 가는 아름다운 부인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분의 요청을 갑자기 받고 보니, 그 때 그 부인을 만난 생각이 나서 여러분에게 죄송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저는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링컨이 이렇게 말하자 사람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 그러자 링컨이 싱긋이 웃으며 다시 말을 계속했다.
“그 때 저는 그 부인과 마주치자 그 부인에게 길을 비켜 주려고 멈추어 섰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도 말을 멈추어 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더니 한참 동안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하는 말이, 자기는 지금 자기가 본 세상 사람 중에서 가장 못생긴 사람을 보고 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면전에서 가장 못생겼다는 말을 듣고 기분 상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항의를 했죠.
‘부인, 제가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만, 그거야 전들 어쩔 도리가 없잖습니까?’
그러자 그 부인이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못생긴 거야 어쩔 도리가 없겠지요. 그걸 당신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도 없겠지요. 그러나 당신이 집안에 쳐박혀 있는 거야 왜 못합니까? 당신이 밖으로 나돌아 다니니까 사람들이 당신의 그 못생긴 얼굴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제가 아까 이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씀드렸던 것도, 보여서는 안 될 제 얼굴을 여러분에게 보이게 되어서 죄송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것으로 제 연설을 대신하겠습니다.”
링컨의 이 이야기가 끝나자 좌중의 모든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리며 박수를 보냈다.
자신의 못생긴 얼굴을 오히려 적극 활용할 줄 알았던 링컨이었기에, 그 못생긴 얼굴에도 나이 40이면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자신 있는 얘기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미남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못생긴 사람들이여! 바로 그것이 당신의 자랑거리이자 재산이니, 오히려 그것을 적극 활용해 보시라.

유학가기 전에

유학가기 전에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나의 유학 첫 해는 난관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별것 아니겠지!’하고 들어간 수업은 몇 달이 지나도 무슨 내용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고, 교수의 강의 내용은 물론 말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칠판의 글씨도 알아볼 수 없었고, 복사한 친구들의 강의 노트 또한 읽을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 동안 키워왔던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매일매일의 긴장과 스트레스에 시달려 건강도 악화되어 신경성 소화불량 증세까지 심하게 나타났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배가 아파 도저히 할 수 없는 괴로운 나날이 계속되었고, 이렇게 쌓여가는 심신의 고통은 이루 다 형언하기 어려웠다. 자신감이라는 단어가 나의 몸을 빠져나가고 좌절이라는 글자가 자꾸만 다가왔다. ‘내 인생 여기서 실패로구나!’ 하는 생각에 괴로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중도에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경쟁에서 져본 적은 있지만 낙오된 적은 없는 사람이었다. 대학 입시에 실패했지만 다시 도전하여 영광을 얻어 낸 사람이었다. 나는 이제라도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새로운 마음을 먹고, 아침에는 조깅으로 몸을 단련하고 학교까지 매일 뛰었다. 같은 학과 친구들의 필기체를 배워 강의 노트를 다시 정리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첫 번째 세미나 발표를 멋지게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완벽에 가까운 준비 덕분이었다.
세미나 발표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교수님과 주위의 시선이 달라졌고, 그리하여 나는 잃어 버린 자신감을 회복할 수가 있었다. 정신적인 고통이 사라지자 건강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미나였다.
이 글은 국내에서 명문 대학과 대학원에서 학•석사 과정을 이수하고 프랑스에 유학하여 다시 석사 과정부터 공부를 시작한 어느 유학생의 이야기이다. 그 후 그는 석사 과정은 물론 박사 과정도 훌륭하게 이수하여, 현재는 대학에서 교수로 맹활약 중이다. 유학 생활의 어려움을 들어 보라면, 이 교수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밖에 들을 것이 없을 것이다.
외국 유학을 꿈꾸는 한국의 많은 학생들이나 그것을 권하는 부모님들은 이 교수가 겪었던 심신의 고통을 십분 음미해야 할 것이다. 특히, 그가 국내에서 명문 대학원까지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 이런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유학을 꿈꾸는 학생은 물론 학부모들까지도 이와 같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의 다짐을 단단히 준비해 두어야 할 것이다. 마음을 그렇게 먹는다면, 사실 유학도 생각처럼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정신적 유산

정신적 유산
우물물을 다 퍼 쓰면 모래만 남고, 님이 가면 나 혼자만 남고
정이 다하면 회상만 남고, 새 것이 다하면 잔영만 남나니
나의 후손들은 부디 공명 탐내지 말고, 부지런히 근본대로 행진하라!
수원(讐怨)을 막결(莫結)하라! 노봉 협처(虜峰狹處)에는 난회피(難回避)니라(원수될 일과 원한 맺을 일을 하지 마라! 급할 때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는 적의 반격은 피하기 어려운 것이니라.).
굽은 나무가 수명을 온전히 보존하는 것처럼, 인간도 굴곡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드럽고 순한 것이 수명이 길다(외유 내강을 강조하는 교훈적인 얘기.).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은 후회가 있다(인격과 품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출세는 위험하다는 뜻.).
세 번 팔뚝을 꺽어뜨리면 훌륭한 의사가 된다(실패를 딛고 이겨 나가야 성공한다는 뜻.).
고생은 성공의 기초이다(고생을 통해 일의 어려움이나 남의 어려움을 알게 되고, 그래야 진짜 성공을 한다는 뜻.).
때는 얻기 어렵고 잃기는 쉬운 것이다. 한 번 놓치면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 없다.
작은 냇물이 모이지 않으면 장강 대해(長江大海)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문도 계속하여 쌓아올리지 않으면 훌륭한 인격을 이룰 수 없다.
숨은 덕을 쌓고 가벼운 행동을 삼가라.
회오리바람은 아침에 일어나지 아니하고, 소낙비는 하루 종일 오지 아니한다(궂은 일에는 이유가 있고, 그 궂은 일도 오래 계속되지는 않으니 참고 견디라는 뜻.).
인생의 근본으로는 근면함을 삼아야 한다.
치천하(治天下)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세상을 다스리려면, 먼저 마음과 몸을 닦고 집안을 다스려야 한다. 그러면 나라를 잘 다스리고 온 세상을 평화롭게 할 수 있다.)
천릿길도 한 발자국에서 시작된다.
위의 의미 있는 경구들은 어떤 노인이 스스로 공부하시다가 남긴 기록들이다. 그 자식들은 노인이 남긴 이 기록들을 책으로 엮었는데 여기 그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이 노인은 노년의 한가한 시간을 독서하는 모습으로 자식들 앞에서 모범을 보이셨고, 이책 저책에서 고귀한 명언들과 명문장들을 기록해 자식들에게 참으로 의미 있는 유산을 남기셨다. 물론, 물질적 유산이 아닌 정신적 유산을 말하는 것이다. 이 정신적 유산은 앞으로 자식들에게 아주 유용하게 작용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노인의 7남매 자녀들 모두 잘 성장해서 사회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새해를 맞아, 모든 노인들에게 비교적 많을 여가 시간을 이렇게 의미 있게 보내는 새로운 전통이 집집마다 생겨났으면 좋겠다.

스물두번째

70 대 1

70 대 1
10년 전, 나는 모교인 오사카의 기다노고등학교 창립 90주년 기념식 때 도쿄 대표로 이사회의에 참석했다. 이사회의의 의제는 90주년 기념 사업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원안은 도서관을 건립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 의견에 강력히 반대했다.
“이사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도서관은 옛날 명치유신 시절부터 문맹을 퇴치하려고 시작한 사업인데 이제 새삼스럽게 또 도서관을 지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입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이익금이 많이 나오는 자동차 운전교습장을 만들어 학교에 기증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표결 결과는 70 대 1의 부결이었다. 나는 제2안으로 볼링장을 만들어 학교에 기증하자고 말했다. 나이를 먹어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전한 운동은 볼링 뿐이라고 말하고, 나도 2천만 엔을 현찰로 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제안 역시 70 대 1로 부결되었다. 나는 분연히 퇴장하여 도쿄로 돌아왔다. 어쩌면 그렇게 선견지명이 없는지 한탄이 나왔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이번에는 모교 1백 주년 기념사업을 벌인다는 것이었다. 또다시 이사회의가 열리면서 누가 말을 꺼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10년 전 도쿄에서 왔던 그 미친놈을 불러야 한다기에 나는 비행기를 타고 다시 오사카로 갔다.
“10년 전 당신이 얘기한 대로 자동차 운전교습장을 만들어 두었더라면 좋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당신의 얘기대로 자동차 운전교습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담당 이사가 내게 이렇게 말해 왔을 때,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거 보시오. 세상일은 언제나 선수를 쳐야지 그렇게 후수를 두어서야 무엇이 되겠소? 자동차 연습장이라구요? 이젠 차가 너무 많아서 야단인데 연습장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오?”
“그렇다면 무엇이 좋겠습니까?”
“글쎄요. 1백 주년 사업이라면 전교생을 세계 여행 보내는 것이 좋겠군요. 전교생 1천2백 명에게 두 달 동안 세계 여행을 시킨다면, 졸업생 2만 명이 한 사람씩 1만5천 엔만 내면 가능할 겁니다. 학생 1천2백 명이 고등학생 때 세계 여행을 한다면 대단한 재산이 될 겁니다. 서른 살이 지나 여행하는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요. 젊을 때 해야 재산이 됩니다.”
나의 이 제안에 그 이사는 아무런 흥미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로 우리 일본인은 스케일이 작다. 유대인이라면 아마 나의 이 웅대한 구상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이다.
이 글은 후지다 텐이라는 일본 사람이 쓴 《유대인의 상술》이라는 책에서 발췌한 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1/70의 의견에 얼마나 동의하며, 또 그것을 얼마나 행동에 옮길 수 있겠는가?

하나의 민족

하나의 민족
어느 유대인이 도쿄에 있는 유대인 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자신이 일하는 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사장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부당한 대우를 받아 왔으니 퇴직 수당을 지불해 주시오.”
그러나 사장은 그의 요구에 동의하지 않았다.
“당신은 너무 태만하게 근무했소. 그래서 퇴직 수당을 줄 수 없소.”
그러자 그 사람은 며칠 뒤 회사 금고에서 돈과 기밀 서류를 꺼내 외국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로부터 얼마 후 우연히 그 사람을 발견한 다른 사람이 그 사실을 사장에게 알렸고, 사장은 랍비인 나를 찾아와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 도시로 가서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일이야 법정에서 해결한다 해도, 나로서는 같은 민족끼리 싸운다는 사실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나의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나는 그 사장에게 너무도 억울한 대우를 받았소. 나는 내 권리를 지킨 것 뿐이니 당신은 상관하지 마시오.”
나는 그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 하더라도 그 행동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어떤 사람이 자기 자리에 구멍을 뚫는다면 그는 물론 모든 사람도 죽지 않겠소? 우리 모두 같은 유대인인데 어떻게 내가 상관하지 않을 수 있겠소? 한 사람의 유대인 문제지만 회사의 돈과 서류를 빼내어 도망친 사건은 우리 모든 유대인의 문제가 되는 것이오.”
그는 나의 이 끈질긴 반복적 설득에 마침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고, 회사에서 가져온 돈과 서류를 내게 넘겨 주었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도쿄로 돌아와 사장을 만났다. 만일 사장이 옳다면 나는 그 돈과 서류를 그에게 넘겨 줄 작정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사장도 그의 요구를 들어 주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이 사건은 아주 원만히 해결되었다.
유대인 랍비의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지금의 우리나라 노동조합 단체와 사용자 단체 그리고 정부간의 팽팽한 실력 대결 현장을 생각해 보았다.
국민의 한 사람인 필자는 이 일의 원만한 해결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서로간의 입장이 달라 부득이 대결을 벌이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대명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민족으로 적이 아닌 동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경지교의 교훈

문경지교(刎頸之交)의 교훈
춘추 전국 시대, 조나라에 염파라는 용감 무쌍한 장군 출신의 재상이 있었다. 그러나 염파의 윗자리에는 인상여라는 문인 출신의 재상이 조나라 왕을 보필하고 있었다. 염파는 이 인상여가 몹시 못마땅하여 공공연하게 비난하며 다녔다.
“나는 조나라의 장수로서 목숨을 걸고 싸움터에서 큰 공을 세워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인상여는 세 치 혀만을 잘 놀려 나보다 높은 지위에 올랐다. 또한, 그는 비천한 가문 출신인데 내가 어찌 그의 밑에서 일할 수 있단 말인가. 언젠가 그와 별도로 만나게 된다면 이 사실을 알려 그에게 수치심을 안겨 주겠다!”
그러나 인상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 말을 전해 듣고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염파와 만나기를 꺼려 하며 그와 만나지 않으려고 각별히 노력을 했다. 조정 회의를 마치고서도 항상 자리를 일찍 떴고, 외출 중에도 염파를 보면 일부러 피해 다니며 숨기까지 했다. 이에 참다 못한 부하 한 명이 인상여에게 따졌다.
“염파 장군이 공공연히 승상을 욕하면서 다니는데 승상께서는 어째서 그를 두려워하며 피하기만 하십니까? 이것이 지체 높으신 승상께서 취하실 수 있는 일입니까?”
그러자 인상여가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내 아무리 못났다고 해도 어찌 염파 장군을 두려워 피하겠느냐? 그러나 지금 나라의 외부 정세를 살펴 볼 때, 저 강대한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노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진나라가 우리를 감히 침범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 나라에 염파 장군과 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둘이 싸워 서로에게 해를 입히게 되면 이 나라는 어찌 되겠느냐? 내가 염파 장군을 피하는 이유는 국가의 이익을 으뜸으로 생각하고 사사로은 자존심은 뒤로 돌리기 때문이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염파가 심히 부끄러워하며 스스로 옷을 벗고 가시나무 회초리를 등에 지고 인상여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리고는 마루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빌었다.
“타고난 천박한 마음으로 승상의 그 깊고 높은 뜻을 몰랐으니 마음껏 때려 주십시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화해했고, 그 후 서로를 한없이 존경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들의 관계를 문경지교(刎頸之交:서로 상대를 위해 목을 베어도 아깝지 않다는 뜻으로 아주 친밀한 관계를 이르는 말.)라 부르며 칭송했으며, 그로써 조나라는 더욱 막강해지게 되었다.
사사로운 개인 감정을 뒤로 하고 나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 인상여의 이 깊은 지혜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앞에도 선진국들과 경쟁국들의 높은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그렇게 운신의 폭이 넓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더 생각할 때다.

두 배의 급여에는

두 배의 급여에는
1976년 미국과 소련이 첨예하게 첩보전을 벌이고 있을 때, 미국의 고성능 첩보기 U-2기가 소련 영공에 들어갔다가 격추된 일이 있었다. 조종사 파워즈 소령은 다행히 비상 탈출에는 성공했지만, 소련 당국의 재판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소련 배심원의 심문이 시작되었다.
“당신은 어째서 다른 비행기보다 위험한 U-2기를 타게 되었는가?”
“U-2기 조종사는 다른 조종사에 비해 두 배의 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다면 당신은 오로지 돈 때문에 위험한 일을 자원했단 말인가?”
“그렇다.”
돈 때문이라는 말에 소련 사회주의 배심원들은 자본주의의 속물 근성을 비웃으며 다시 물었다.
“돈만을 위해서였다면 고공 비행이나 하면서 최소한의 일이나 할 것이지, 어째서 위험한 저공 비행까지 하면서 죽음을 감수했는가?”
파워즈 소령이 대답했다.
“나의 급여가 다른 사람의 두 배라는 것은 그 임무도 두 배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나는 내가 받는 만큼의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다.”
‘두 배의 급여에 두 배의 임무가 포함되어 있다’라는 표현은 아주 의미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 말은 다시, ‘두 배의 급여에는 두 배의 임무가 포함되어 있고, 두 배의 임무에는 두 배의 위험도 포함되어 있다’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높은 급여에는 그만큼 많은 상대방의 요구도 포함되어 있게 마련이다. 물론, 그 전까지의 높은 기여도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안일하게 대응하다가는 뜻하지 않는 기습을 받기 십상일 것이다. 사실, 작년에 사회적으로 거세게 불었던 명예퇴직 바람도 알고 보면 높은 급여가 문제였을 것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급여가 올라간다고 무조건 좋아할 수만도 없는 ‘딱한 월급쟁이 신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조적인 한탄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럴수록 우리는 위험을 감수하며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던 파워즈 소령의 적극적인 대응 자세처럼 자신의 임무에 더 충실히 임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부단한 노력 끝에 얻어 낼 수 있는 ‘끝없는 자기 성장’과 ‘성취에 의한 진정한 기쁨’까지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인생’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두 배의 급여에는 두 배의 임무와 두 배의 위험만 들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두 배의 기쁨도 함께 들어 있었다’는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을 알면서 정말 기뻐할 것이다.

부모의 현장 교육

아들과 단 둘이 어렵게 사는 한 유대 여인이 거리에서 헌 외투를 하나 사서 집에 돌아와 보니 주머니 속에 보석이 들어 있었다. 이 여인은 랍비인 나를 찾아와,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지를 물었다. 나는 이야기 하나를 여인에게 들려 주었다.
「옛날에 어느 랍비가 나무장수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산과 읍내의 왕복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자 시장에 나가 아랍 상인으로부터 당나귀 한 마리를 샀다. 그의 제자들은 랍비의 나뭇짐 나르는 시간이 단축되었음을 기뻐하며 당나귀를 물가에 끌고 가 갈기를 빗질해 주었는데, 그 속에서 다이아몬드가 나왔다. 제자들은 이제 이 다이아몬드를 처분하면 랍비의 가난까지도 사라진다며 기뻐했다. 그러나 랍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산 것은 오직 당나귀 뿐이었으므로 이 다이아몬드는 주인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그리고는 말을 판 아랍 상인을 찾아가 사실대로 말하고 다이아몬드를 되돌려 주었다. 그러자 아랍 상인도 그 다이아몬드 받기를 사양했다.
“당신은 이 당나귀를 샀고, 당나귀가 이 다이아몬드를 갖고 있었으니 이것은 당신 것이 됩니다.”
“그래도 우리 유대교에서는 산 물건 이외의 것을 가져서는 안 되니 이것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아랍 상인이 그의 정직성에 놀라 칭찬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당신들의 하나님은 정말 훌륭하십니다.”」
나의 이 이야기를 들은 여인도 외투에서 나온 보석을 백화점에 되돌려 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이런 말을 덧붙여 주었다.
“그 반지를 되돌려 주러 갈 때에 당신의 아들도 꼭 데리고 가십시오. 그래서 자기의 어머니가 얼마나 정직한 사람인지를 직접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아들은 일생 동안 어머니의 이 행동을 잊지 않을 겁니다.”
필자는 유대인 랍비의 이 이야기 속에서 특히 마지막 구절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부모의 정직성을 자식들 앞에서 직접 보여 줌으로써, 그들 자신은 물론 자식들에게도 ‘정직의 정신을 대대로 계승’시키는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부모의 자식 사랑은 유난히 각별해서, 유명 학원이나 쪽집게 과외 선생을 찾아다니며 수백만 원의 고액을 서슴치 않고 내놓는다. 그러나 부모의 정직성을 현장 교육시키는 것이야말로 이보다 몇백 배 더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되면 자식이 부모를 존경하게 되고, 또한 그 일을 기억하면서 자식 역시 일생 동안 정직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도 함께 찾아가 자식들에게 부모의 이웃 사랑도 보여 준다면 더욱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스스로의 의지로

스스로의 의지로
강기슭 우거진 숲 속에서 토끼들이 한가롭게 낮잠을 자던 중 어디선가 ‘풍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결에 이 소리를 들은 토끼가 깜짝 놀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여우가 토끼에게 물었다.
“얘들아, 어디를 그렇게 급히 달려가니?”
“큰일났어요. 큰 짐승들이 쳐들어오고 있나 봐요.”
놀란 토끼들이 헐떡거리며 이렇게 말하자 여우 또한 놀랐다.
“뭐, 큰 짐승이?”
그리고는 토끼 뒤를 함께 달렸다. 이것을 본 노루도 뛰었다. 사슴도, 기린도, 늑대도, 곰도, 코끼리도, 심지어 호랑이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구 뛰었다. 숲 속은 갑자기 온 동물들의 경주장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뭔지도 모르고 맨 끝에서 뛰던 호랑이가 앞의 코끼리에게 물었다.
“얘들아, 너희들은 지금 왜 뛰는 거니?”
“모르겠소, 앞의 곰이 뛰길래 나도 뛰는 거요.”
“난 늑대가 뛰길래요.”
“난 사슴이 뛰어서요.”
“난……. ”
전부 이렇게 자기 앞에서 뛰는 동물을 얘기했고, 그 맨 앞에서 뛰던 토끼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자고 있는데 강물에서 무슨 큰 소리가 났어요. 그래서 재빨리 도망쳤던 거예요,”
바로 그 때, 강물 위에 다시 ‘풍덩!’ 하는 소리가 들리며 야자 열매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모든 동물들이 그제서야 영문도 모르고 뛴 자신들의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었다.
불교 설화집에 나오는 이 우화는 생각 없이 남들의 행동이나 답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빗대어 꾸민 이야기이다. 사실, 우리 주위에도 이렇게 귀가 얇아 무턱대고 남들의 행동을 따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다음의 이야기를 깊이 음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자기라고 생각한 것이 자기가 아닐 때가 많다. 삶을 돌이켜도 보고, 생각도 해 보고, 반성도 해 보는 일이야말로 참된 자기를 찾는 길이다.”
“자기 확인 및 신뢰가 바로 성공의 첫째 비결이다.”
“과실을 고치지 않는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과실이다.”
이런 명언들을 생각하며, 이제라도 스스로의 의지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습관을 저마다 가져야 할 것이다.

오십보 백보

오십보 백보
중국 위나라 양혜왕이 맹자에게 말했다.
“나는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예를 들어, 하내 지방에 흉년이 들면 백성들을 하동 지방으로 옮겨 하동의 식량으로 먹고 살게 하고, 하동 지방이 흉년이 들 경우에는 역시 그 반대의 정책을 펴 왔습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 왕들을 보면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나보다 못한데도, 그들 나라의 백성들이 줄지도 않고 내 나라 백성들이 늘지도 않으니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에 비유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쟁 상황이 최고조에 올라 양측의 군사들이 창과 칼로 맞대고 혈전을 벌이던 중, 전세가 불리해진 쪽의 한 병사가 갑옷과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어떤 병사는 백 보를 간 뒤에 멈추었고, 어떤 병사는 오십 보를 간 뒤에 멈추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십 보를 도망친 자가 백 보를 도망친 자를 보고 겁쟁이라고 비웃는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안 되지요. 그도 백 보가 아닐 뿐이지 도망친 것은 마찬가지이니까요.”
“이제 왕께서 그 원리를 아셨다면 양나라 백성이 이웃 나라보다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농민들의 농사짓는 일을 전쟁으로 방해하지 않는다면 양식은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풍족해질 것이고, 물고기를 잡을 때 어린 새끼까지 몽땅 잡지 않는다면 백성들이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불어날 것이며, 나무를 벌채할 때도 일정한 시기를 정해서 하게 한다면 다 쓸 수 없을 만큼 늘어날 것입니다.
백성들의 양식과 어류와 목재가 이렇게 다 쓸 수 없을 만큼 풍족해진다면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이처럼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왕도 정치로 백성이 늘어나게 되는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오십보 백보’란 말은 바로 이 내용에서 유래된 말이다. 평소에는 백성을 혹사시키다가 흉년이 들어서야 겨우 굶어 죽지 않을 대책을 마련하던 위나라 양혜왕이, 그런 정도를 인의의 정치라 자부하며 이웃 나라의 악정을 비웃는 것을 맹자가 이렇게 날카롭게 지적했던 것이다. 맹자의 눈에는 양혜왕의 그러한 행위도 결국 오십보 백보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위정자들도 백성들을 정말 편안하게 살도록 해 주어야겠지만, 우리 역시 자기 일에 최선을 마다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역시 오십보 백보의 처지가 될 것이다.

죽은 말 사기, 산 말 빼앗기

죽은 말 사기, 산 말 빼앗기
옛날 국경을 마주한 두 나라가 있어서 서로 사이가 나빴다. 그리하여 서로간의 이해 상관이 얽히고 설켜 두 나라는 사사건건 대립했고, 결국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 대기 상태가 되고 말았다.
두 나라는 전쟁 준비를 시작했다. 무기도 많이 필요했지만 무엇보다 기동력이 되는 말의 확보가 큰 문제였다. 그래서 두 나라는 이런 특별 정책까지 세우게 되었다.
‘갑’ 나라가 취한 정책은 사마매상책(死馬買上策)이었다. 즉 백성들로부터 살아 있는 말은 물론, 병든 말에 심지어 죽은 말까지도 사겠다는 정책이었다. 이 정책이 발표되자 백성들은 지도자를 칭송하면서 죽은 말까지 산다는데 산 말은 얼마나 많이 사겠느냐며 저마다 열심히 말을 키웠다. 말을 키우지 않는 집이 하나도 없을 정도여서, 결국, ‘갑’ 나라는 많은 말을 확보하게 되었다.
‘을’ 나라가 취한 정책은 생마강징책(生馬强徵策)이었다. 즉 백성들로부터 강제로 말을 빼앗는 정책이었다. 나라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으니 백성들이 말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자 명분이었다. 산 말을 강제로 빼앗긴 백성들은 지도자를 원망했고 너나없이 키우던 말까지 없애 버렸다. 말을 공짜로 빼앗기게 되니 더 이상 키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을’ 나라는 말을 많이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드디어 전쟁이 일어났다. ‘갑’ 나라의 병사들은 힘차고 날쌘 말을 앞세워 ‘을’ 나라의 진지를 마구 유린했다. 그러나 기동력에서 밀리는 ‘을’ 나라의 병사들은 그저 바라보기만 하며 애만 태울 뿐이었다. 전쟁은 당연히 ‘갑’ 나라의 압승으로 끝났고 ‘을’ 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죽은 말까지 사겠다는 사마매상책은 산 말을 강제로 빼앗는 생마강징책보다 시간과 비용 그리고 인내를 요구하는 어렵고 힘든 정책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당장은 쉽고 편한 생마강징책을 이기고도 남는 정책이다. 더욱이 백성과 지도자 모두 함께 즐거워할 수 있기에 최선•최고의 방법이 된다.
각 분야의 모든 지도자들은 이런 방법을 찾아내도록 힘써야 한다. 당장에 쉽다는 이유로 생마강징책에만 매달리지 말고, 너와 나 함께 기뻐하며 발전할 수 있는 사마매상책을 찾아 내야 한다. 국가 정책과 회사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서 그렇고, 가정과 개인의 계획 수립에서도 또한 그렇다.
‘1년 계획이라면 곡식을 심고, 10년 계획이라면 나무를 심고, 평생 계획이라면 사람을 심으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도 결국에는 결과가 나빠지는 생마강징책이 아닌, 결국은 결과까지 좋아지는 사마매상책이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공사와 고사

공사와 고사
한 건설업자가 어떤 회사의 공사를 맡으며 고사를 지내려 했다. 그러자 회사 사장이 그 이유를 물었다.
“어째서 고사를 지내려 합니까?”
“예, 고사를 지내면 공사 중에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사장이 단호히 말했다.
“그렇다면 고사를 지내지 말고 공사에 착수하시오! 만일 고사를 지내지 않아서 공사 중에 안전을 기하기 어렵다면 아예 이 공사에서 손을 떼시오!”
사장의 이 단호한 말에 건설업자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공사에 착수했다. 공사는 아무런 사고 없이 잘 끝났다.
그런데 이 건설업자가 얼마 후 다른 공사를 벌이다가 오른손을 크게 다쳐 못 쓰게 되었다는 사고 소식이 사장의 귀에 들려 왔다. 사장이 병원으로 찾아가 그를 위문했다.
“내가 듣기로는 이 공사를 하기 전에 고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어째서 이런 사고가 일어났소?”
“예, 사장님의 공사를 할 때는 고사를 못 지냈기 때문에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고 미리미리 조심을 했는데, 이번 공사는 고사를 지냈기 때문에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방심했기 때문입니다.”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위로했다.
“그럴 것도 같군요. 사고란 항상 방심에서 오는 것이니 말이오. 어쨌든 당신은 이번 사고로 귀중한 오른손을 잃었소. 그러나 그렇게 실망하지 마시오. 이제부터 당신은 손이 아닌 머리를 써서 일하는 방법을 찾도록 하시오. 만일 당신이 사장이 된다면, 손이 필요한 일은 사원에게 맡겨도 되지 않겠소?”
사장의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겨들은 건설업자는 그 후 힘껏 노력하여 정말 머리로 일하는 사장이 되었다. 공사장에서 고사 지내는 일을 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하나의 당연한 절차라고 생각하여 저마다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사와 고사가 과연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공사에 필요한 사항은 기본 설계대로의 ‘착실한 시공’과 방심하지 않는 ‘안전 수칙의 준수’이다. 그것을 위해서 일꾼들의 사기를 올리고자 하는 것이 숨은 이유라면, 차라리 일을 잘해 달라고 특별히 자리를 마련하면 될 것이다.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학력을 자랑하는 우리가, 아직도 잘못 끼워진 단추 하나를 바로잡지 못하여 어리석은 행동을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1류 촌장과 1류 장군

1류 촌장과 1류 장군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영어명:시저, 기원 전100~기원 전44)가 스페인 지사로 임명되어 각 고을을 순시하던 중, 인구 50여 명의 작은 마을 촌장과 만났다.
“촌장께서 마을 사람을 통치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시지요?”
카이사르의 이 말에 촌장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뭘요, 장군님과 똑같죠. 제가 이 마을 하나를 위해 애쓰는 거나 장군님이 로마제국을 위해 애쓰는 것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다같이 로마제국을 위해 하는 일이니 똑같은 거죠.”
“옳으신 말씀입니다.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애쓰는 일이나, 만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애쓰는 일이 알고 보면 똑같은 거지요.”
카이사르가 이렇게 겸손하게 대답하는데, 옆에 있던 장교 하나가 촌장의 태도를 보고 비웃었다.
“아니, 저 촌장은 겨우 인구 50여 명의 작은 마을 하나를 다스리면서 어찌 대로마제국의 1류 장군과 비교한단 말인가. 참으로 가소로운 촌장이로다.”
카이사르가 장교의 이 말을 듣고 즉시 반박했다.
“무슨 말이냐! 저 분은 그래 뵈도 50여 명이 있는 이 마을에서 1류 촌장이시다. 내가 만일 로마제국에서 1류 장군이 되지 못했다면, 나 역시 이 마을에서 1류 촌장되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카이사르의 이 질책에 장교가 고개를 푹 숙였다.
1류 대학과 1류 기업만을 고집하는 1류 지상주의자들은 어쩌면 이 이야기에서 위안을 받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의 참뜻을 오해한 것이다. 1류 대학에 입학하고 1류 기업에 취직하라는 말이 아니고, 지금의 2류•3류 대학이나 기업을 앞으로 1류 대학이나 1류 기업으로 만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 수 있는 1류 인간이 되라는 뜻인 것이다.
도대체, ‘지금의 1류란 무엇을 뜻하고 있단 말인가?’ 그것은 처음부터 1류가 아니었고, 한때는 2류•3류였지만 부단히 노력하여 마침내 1류가 되었다는 뜻인 것이다. 대학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인생 또한 그렇다. 결국, 지금의 1류도 노력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2류가 되고 다시 3류와 4류로 추락하고 말 것이고, 반면에 지금의 2류•3류도 노력한다면 1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1류를 원한다면 먼저 1류 인간이 되어야 하고, 그 1류 인간은 용기와 신념과 행동력과 실력을 갖출 때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카이사르와 촌장, 그들도 알고 보면 처음에는 2류•3류의 인간이었다가 노력 끝에 마침내 1류 촌장과 1류 장군이 되었던 사람들이었다.

스물세번째

'아, 사람다운 사람은 없고'

‘아, 사람다운 사람은 없고’
어느 유명하다는 정신과 의사가 자신을 처음 찾아온 환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지금 몹시 바쁩니다. 그래서 지금 당신과 함께 마주 앉아 상담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도 오늘이 첫 만남인지라 다행입니다. 첫 만남에서는 내가 할 이야기는 별로 없고 오직 당신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되니 말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여기 이 녹음기에 녹음해 주십시오. 어떤 이야기라도 좋고 가능한 많이 할수록 좋습니다. 나중에 내가 그녹음기를 틀어 보고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의사가 이렇게 말하자 환자가 즐겁게 대답했다.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이 바쁜 세상에 서로 시간을 아껴야죠.”
그래서 의사는 환자 앞에 녹음기를 틀어 놓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2분이 채 안 되어 그 환자도 밖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의사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물었다.
“아니, 왜 벌써 나왔죠? 녹음은 모두 끝났나요? 그렇다면 너무 짧은데요. 얘기가 길어야 치료에 도움이 될 텐데요.”
그러자 환자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바쁘듯이 나 역시 바쁜 사람입니다. 나는 지금 다른 의사 선생님과 상담 약속이 있어 급히 그 곳으로 가 봐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녹음기 옆에 내 녹음기를 틀어 놓았습니다. 지금 녹음이 되고 있을 테니 나중에 틀어 보십시오.”
이 우스운 이야기 속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의 웃지 못할 비애가 들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아 다정히 대화할 장소에 오직 기계와 기계가 만나고 있다는 것이 그렇고, 기계에 의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우리의 오늘날 현실이 또한 그렇다.
사실, 편리하다는 이유로 만든 기계에 의해 오히려 많은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기계에만 너무 의존하다가 인간끼리의 대화 부족과 인정의 고갈과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무서운 결과에 직면해 있다.
기계는 실제로 유용하고 필수적인 것이어서 누구라도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성능 하나만 뛰어나면 최고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기계이다. 우리 인간도 이렇게 기계처럼 능력 하나만 뛰어나다고 최고로 인정 받게 된다면, 세상은 결국 비정하기 이를 데 없는 삭막한 전쟁터가 될 것이다. 결국 ‘인정’과 ‘다정’과 ‘인간성’이라는 낱말은 사라지고, ‘유능’과 ‘성능’과 ‘효율’의 낱말들만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위대한 사람은 없고 똑똑한 기계와 똑똑한 사람만 있는 세상에서, 이런 한탄조의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아, 사람다운 사람은 없고, 기계 같은 사람만 있구나!’

참지식, 참사랑

참지식, 참사람
옛날 어떤 스승이 임종을 앞두고 제자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제자 하나하나와 얘기를 나눈 스승은 마지막으로 수제자를 불러, 한 권의 책을 특별히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이 그 수제자에게 한없는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었다. 방금 전에 넘겨 준 그 책 때문이었다.
사실, 그 책은 이상한 책이었다. 스승 자신이 그 동안 그렇게 열심히 읽으면서도 그 내용만큼은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은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스승은 그 책을 자주 읽었는데, 책을 읽는 도중에 제자들이 들어오면 슬며시 덮어 버리며 숨기기까지 했었다. 이에 제자들은 더욱더 많은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어떤 제자는 문틈으로 기회를 엿보면서까지 책 내용을 몰래 보려 했지만, 스승은 그 기회조차 전혀 주지 않았던 것이다. 어디를 갈 때는 궤짝 속에 그 책을 집어넣고 자물쇠로 꼭꼭 잠구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소중히 취급되던 책이 드디어 수제자의 손에 넘어갔기에 다른 제자들이 그토록 부러워했던 것이다. 스승이 수제자에게 말했다.
“이 책에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다. 그 동안 내가 말한 내용과 또 아직 내가 말하지 못한 내용도 들어 있다.”
스승이 이렇게 말하며 그 책을 수제자에게 넘겨 주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그 수제자가 스승으로부터 책을 받자마자 펴 보지도 않고 즉석에서 화롯불에 던져 버리니 말이다.
‘아니, 스승께서 그토록 아끼시던 책을 펴 보지도 않고 화롯불에 던져 버리다니…….’
다른 제자들이 모두 이렇게 놀라는데, 스승은 오히려 껄껄 웃으며 만족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너야말로 모든 것을 깨달았구나. 그렇다, 그 책은 네게 아무 소용이 없다. 사실, 그 책 속에는 아무런 글도 쓰여져 있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그 빈 책을 바라보며 오직 내 마음의 글을 써 왔을 뿐이다. 너도 이제부터는 네 스스로 깨우친 네 마음의 글을 쓰면 된다.”
이에 다른 제자들도 스승의 말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삶이란 따지고 보면 외부로부터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우는 과정이다. 그러는 도중에 지식도 쌓이고, 다시 그 지식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외부에서 획득된 지식들이 자신의 내부 세계에 쌓여진 지식들과 공명될 수 있도록 힘껏 애써야 한다. 이렇게 해서 얻은 지식이 진정한 의미의 ‘참지식’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타인의 지식을 무조건 외워 읊조린다면, 오히려 그 지식으로부터 해로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참지식의 자기 책 한 권을 쓰는 사람 그가 곧 인생의 승리자인 ‘참사람’이니, 우리 모두 이런 참사람이 되도록 진지하게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3개월과 3백 년

3개월과 3백 년
한 학생이 책 읽기를 워낙 좋아한다는 허 교수의 방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께서 책 읽기를 워낙 좋아하신다기에 책 얘기를 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잘 왔네. 그런데 무슨 책 이야기인가?”
“교수님께서는 이 책 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렇게 말한 학생이 손에 쥐고 있던 한 권의 책을 허 교수 앞에 내놓았는데, 사실 이 학생은 허 교수가 얼마나 책을 많이 읽는지 시험도 해 보고, 또 자기가 책을 많이 읽는다는 사실을 은근히 자랑하기 위해서 이렇게 허 교수를 찾아왔던 것이다. 허 교수가 그 책의 내용을 살핀 뒤 말했다.
“이 책에 대해서 내가 들려 줄 이야기는 전혀 없는 걸. 나는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했거든.”
허 교수의 이 말에 학생이 다소 놀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교수님같이 책을 많이 읽으시는 분이 아직 이 유명한 책을 읽지 않았다니요?”
“왜 그게 그렇게도 이상한가?”
“그럼요. 이 책은 나온 지 벌써 3개월이나 된 책으로 지금 시중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베스트셀러인데, 교수님같이 책을 많이 읽으시는 분이 아직 안 읽었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아요?”
허 교수가 이 말에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학생이 찾아온 참뜻을 알아내고는 이렇게 되물었다.
“학생은 서포 김만중(1637~1692)의《사씨남정기》를 읽어 보았나?”
“아직 못 읽었습니다.”
그러자 허 교수가 학생에게 조용히 말했다.
“우리의 고전《사씨남정기》를 읽지 않았다니 자네도 어지간하군. 나는 나온 지 3개월밖에 안 된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학생에게 핀잔을 받았지만, 학생은 나온 지 300년도 더 된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았으니 나보다 더 많은 핀잔을 받아야 되겠는 걸.”
허 교수의 이 말에 학생이 무안해하자, 허 교수는 학생의 손에 살며시《사씨남정기》를 쥐어 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새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래된 고전도 그만큼 중요하니 앞으로는 고전도 많이 읽게.”
우리는 책을 열심히, 그리고 많이 읽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3개월된 베스트셀러 위주로 일관되는 것이라면 참다운 독서라 말할 수 없다. 30년이나 300년 동안 읽혀온 우리의 고전은 3개월의 베스트셀러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어려움이 닥치면 기뻐했다

어려움이 닥치면 기뻐했다
어떤 부자가 절친한 친구의 병문안을 가면서 상아로 만든 관음불상을 들고 갔다.
“자네가 무신론자인 줄은 잘 알고 있지만, 살다 보면 지금처럼 병상에 눕거나 어려움에 처할 때가 더러 있게 마련이네. 그럴 때 이 관음께 무사 해결을 빌어 보게나. 별시리 도움이 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마음의 위안은 다소 받을 걸세.”
그러자 환자가 단호히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런 목적이라면 이 관음불상을 도로 가져가게. 나는 어려움에 처했다고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사람일세.”
부자가 자신의 성의를 몰라 주는 환자 친구에게 역정을 내며 말했다.
“이 녀석아! 세상에 곤경 안 당해 본 사람이 어디 있냐? 곤경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곤경이 닥치면 누구나 마음의 위안을 구하려는 것인데, 이렇게 친구의 호의를 무시하는 것이 도리란 말인가!”
“여보게, 자네는 나를 설득하려 하지만 어쨌든 내 사전에 어려움이란 낱말이 없다는 것은 알아 두게.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내게도 어려움은 많았었네. 그러나 그 때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왔네.
‘도대체 어려움이 왜 내게 찾아왔나?’
이렇게 생각하면 해답도 저절로 나오더군.
‘그것은 내가 그 동안 다른 일에 신경을 쓰다가 그 일에는 정성을 쏟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어쨌든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그 동안 제대로 신경쓰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그 때부터 온갖 지혜와 용기를 동원하여 전력투구한다네. 그러면 얼마 후 결과가 좋아지더군. 그래서 이제 나는 어려움이 닥치면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네.
물론, 나도 사람이니까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 순간은 당황해하기도 하고 걱정도 하네. 그러나 방금 말한대로 그 때마다 새롭게 태어나서 정말 열심히 사네. 마치 골이 깊어야 산이 높아지는 것처럼, 어려움을 한 번씩 겪고 나야 기쁨도 그만큼 커진다고나 할까? 그런데 어찌 내가 어려움이 닥쳐왔다고 누구에게 빌 수 있겠는가!”
지금, 당신이 어려움이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생각된다면, 이 글을 한 번이 아니라 아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할 것이다. 사실, 위기 다음에는‘상승’과 ‘추락’이라는 두 개의 극단적인 결과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여 분발하면 상승이라는 국면을 맞게 되지만, 그것에 굴복당하여 좌절하면 추락하고 말기 때문이다. 어느 길•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는 바로 당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당신은 마땅히 전자를 택하여, 그리하여 그 위기와 어려움조차도 오히려 고맙게 느꼈으면 한다.

고집과 지조

고집과 지조
젊은 아버지가 아들의 생일날 병아리 한 마리를 구해 와 아내에게 주며 말했다.
“여보, 이 암평아리를 우리 아이의 생일 잔치에 씁시다.”
“좋은 생각이에요. 그렇지만 이건 암평아리가 아니고 수평아리인데요."
“무슨 소리? 그게 어째서 수평아리야. 암평아리지!”
“아니에요, 이건 확실히 수평아리에요!”
이렇게 시작된 부부간의 대화는 조금씩 빗나가더니 마침내는 격렬한 부부 싸움으로까지 확대되고 말았다. 한참을 떠들고 난 이들은 이제 자신들이 왜 싸워야 하는지도 잊은 채 밤을 새워가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에 이르렀다. 결국 아들의 생일 잔치는 엉망이 되었고, 집안에는 싸늘한 냉기만 흐르고 말았다.
몇 주일이 지나서야 이들 부부는 겨우 분이 풀려 화해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다시 아들의 생일이 돌아왔을 때, 아내가 남편에게 웃으며 말을 건냈다.
“여보, 작년에는 우리가 병아리 때문에 큰 싸움을 벌여 아이의 생일 잔치를 망쳤잖아요? 그러니 이번에는 잘 차려 주어야겠어요.”
“그래야지. 그 때 당신이 암평아리를 수평아리라고 우기는 바람에 큰 싸움이 벌어졌지. 당신 고집도 정말 대단하던군.”
“아니 그럼, 당신은 아직도 그게 암평아리라 생각하고 있단 말이에요?”
“아니, 그럼 당신도……?”
이렇게 시작된 말다툼은 또다시 작년보다 더 심한 부부 싸움을 유발했고, 그들은 작년보다 더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들 부부는 이로부터 해마다 똑같은 연례행사를 치루었는데, 그것은 무려 30년이나 지속되는 그들의 일평생 사업이 되고 말았다. 이제 두 사람은 완전히 늙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고, 아들은 자기의 생일 때마다 이렇게 싸우는 부모를 원망하다 못해 저주까지 하고 있었다.
중요하지도 않은 사안을 놓고 고집을 부려서는 안 된다. 고집은 지조가 아니고 오직 고집이다. 똑같은 ‘굽히지 않는 자기 주장’을 의미하지만, 고집에는 옳다는 근거가 없다. 그것은 대체적으로 착각에서 시작되다가, 결국은 융통성•참을성•다양성•합리성의 결핍과 과도한 자존심•자격지심•허세•만용 등으로 본질을 왜곡시키고 사건을 확대시키기에 이르른다.
고집이 센 사람들은 그것을 자랑으로 삼지 말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바로 그 고집 때문에 자신은 물론 가정과 이웃까지 상처 받고 고통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루 빨리 이성적으로 현명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내면에서 느끼는 감동

내면에서 느끼는 감동
소설가•작가•언론인으로 유명했던 선우휘(1922~1986) 선생의 학창 시절 이야기이다.
당시에는 국가 전반에 걸친 가난의 그림자로 인하여 학생들이 학교에 도시락을 가져오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선우휘의 한 친구가 도시락은 매번 가져오면서도 이상하게 그의 도시락 속에는 긴 머리카락이 한두 개씩 꼭 들어 있었다. 그러면 이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것을 살며시 잡아 빼어 휴지통에 버리고는 즐겁게 식사를 했다.
밥도 사람이 하는 것인지라 머리카락이 들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친구의 경우는 그 빈도가 너무 심해서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으려니 생각했던 선우휘도 점차 마음이 멀어지게 되었다. 친구 어머니의 무성의가 못마땅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친구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는 없어서 차마 대어 놓고 말하지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자기 집으로 놀러 가자고 청했다. 선우휘는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거절하기도 어려워 그 친구의 집으로 함께 갔다. 집에 도착한 친구가 입구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어머니, 오늘은 제 친구 선우휘와 함께 왔어요.”
그러자 방문을 열고 친구 어머니가 나오셨다.
“오, 네가 항상 말하던 친구 휘가 왔단 말이냐? 그래, 이리 가까이 오너라, 어디 얼굴 좀 만져 보자!”
선우휘가 친구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니 앞을 더듬고 계셨다. 늙으신 몸에 시력마져 떨어지셨는데,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옮기시며 선우휘에게 다가오고 계셨다.
친구 어머니의 이 모습을 본 선우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그 동안 자신이 얼마나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알았다. 그는 자신의 그런 잘못된 생각에 대해 몹시 후회했다. 앞도 잘 못 보시는 분이 손을 더듬으며 싸 준 도시락인데, 그 속에 머리카락이 아니라 돌이 들어 있은들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선우휘는 그 동안 친구 어머니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시락을 싸 주었다는 사실과, 또 친구의 의젓했던 태도를 생각하며 ‘모자간의 깊은 사랑’을 새삼 느꼈다. 그 후 선우휘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그 내면에 들어 있는 진실도 함께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실수다. 그래서 이 짧은 이야기에 특별한 감동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이제라도 눈에 보이는 외부 현상으로만 쉽게 판단하지 말고, 그 내면 속에 숨어 있는 진실도 함께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보다 깊은 삶의 의미와 더불어, 또 하나의 특별한 감동을 체험할지도 모른다.

승률 50%의 승부

승률 50%의 승부
‘기업의 인수 및 경영’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이고 있는 어느 사장에게 기자가 찾아가 물었다.
“사장님의 기업 인수를 통한 성공 비결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예, 제가 다른 회사를 인수하고자 할 때에는, 우선 그 분야의 전문가 다수와 비전문가 한두 분을 찾아가 의견을 묻습니다. 여기서 비전문가에게도 의견을 묻는 이유는 전문가가 가질 수 있는 편견을 없애고자 함입니다. 전문가들은 그 분야의 전문 지식은 많지만, 그것이 오히려 사업의 객관성•보편성•공정성을 잃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 모든 사람이 기업 인수를 반대하면 물론 저는 인수 안 합니다. 또 모두가 한결같이 찬성해도 역시 인수 안 합니다. 오직 찬성과 반대가 반반 정도일 경우에만 인수합니다.”
“그거 재미있군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 열 사람 모두가 반대하는 사업이라면 누가 그 사업을 한다 해도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되기에 당연히 인수하지 않습니다. 또 열 사람 모두 찬성하는 사업은 언뜻 생각하면 매우 좋은 조건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누가 보아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만큼 경쟁자가 많아져 역시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설혹,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성공했다 해도 희생과 상처가 큽니다. 그래서 이 두 개의 극단적인 경우는 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반이 찬성하고 절반이 반대하는 경우라면 누구라도 그 사업에 쉽게 뛰어들지 못합니다. 즉, 50%의 성공 확률이기에 아무나 쉽게 뛰어들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사업 성공의 가능성이 적은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사업의 세계란 이윤이 창출되어야 존재할 수 있는 엄격한 세계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기업 윤리를 얘기하지만, 이윤 창출이 없는 기업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적법한 조건에서 끊임없는 품질 향상으로 구매자의 욕구를 맞추어야 하고, 근로 조건•인사•세무 등에서 경영합리화를 추구하며 이윤을 창출하는 일은 이론처럼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이 때 경쟁자가 많아지면 그 어려움이 더욱 가중됩니다.
그래서 저는 경쟁자가 별로 없는 이 경우를 택합니다. 또 이 경우야말로 운보다는 실력(경영 능력)이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그래서 내 자신의 능력에 의해 기업이 발전된다는 기쁨과 보람을 더 많이 느낍니다.”
승률 50%라는 절묘한 지점을 찾아 내어 승부를 거는 이 사장이야말로, 누구보다 많은 경영 지식과 지혜를 가진 진짜 경영인일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이렇게 남다른 자부심까지 느끼며 성공을 엮어 내고 있을 것이다. 사장이 승률 50%인 이 곳을 절묘한 기회로 포착하여 성공을 엮어 내듯이, 우리 또한 이런 사각지대를 또 하나 발견해 낸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죽을 때 가지고 갈 재산은?

죽을 때 가지고 갈 재산은?
불굴의 개척 정신과 뜨거운 열정으로 엄청난 재산을 축적한 한 사업가가 어느 날 자신의 옛 스승을 초청해 이렇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선생님, 저기를 좀 보십시오. 저기 저 큰 공장과 토지가 다 제 것입니다. 저는 30년 전 무일푼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많은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종업원도 수백 명이고 매출액도 수백억 원에 이릅니다.”
“……”
재벌의 이 말에 스승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자 제자가 다시 자랑을 계속했다.
“저는 그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 때마다 용기를 내어 모두 잘 해결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런 거대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
스승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이 식탁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는 도중에도 제자는 연신 자신의 성공담을 늘어놓았지만, 스승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두 사람이 작별할 시간이 되었을 때 스승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자네는 참으로 많은 재산을 모았네. 정말 놀라운 성공이야. 그렇지만 내가 자네에게 한 가지만 묻겠네. 자네의 그 많은 재산 중에서 자네가 저승으로 갈 때 함께 가지고 갈 재산은 얼마나 되는가?”
“……”
스승의 이 질문에 재벌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스승이 이렇게 충고했다.
“이보게, 자네의 성공은 정말 대단한 것이 틀림없네. 자네의 근면성과 뜨거운 열정도 놀랍기 그지없네. 그러나 나는 자네에게 좀더 겸손해지라고 충고해 주고 싶네. 주위에 있는 훌륭한 사람을 찾아가 열심히 배우고, 책도 많이 읽어 인격 함양에도 힘쓰라고 말해 주고 싶네.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네.”
‘삼척동자가 다 아는 사실도 80 노인이 그것을 행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물질이 행복의 척도가 못 된다는 것은 그 누구라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행동까지 그렇게 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인격에 넘치는 부를 축적하다가 그것으로 많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위화감이나 혐오감을 주고, 마침내는 자신도 파멸하고 마는 예가 적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인가.
그런 사람들은 이제라도 정말, 죽을 때 저승으로 함께 가지고 갈 재산이 얼마인지를 계산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물질보다는 인격 함양이 우선이라는 올바른 계산서를 작성해야 할 것이다.

패배와 반성

패배와 반성
조 루이스(1914~1981)는 20세 나이에 프로 세계에 뛰어든 권투 선수였다. 그는 데뷔 전부터 KO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하여, 2년 동안 26승 무패에 22KO승이라는 화려한 전적을 올린 일명 ‘갈색 폭격기’였다. 그러던 중 전세계 챔피언인 독일의 막스 슈멜링이라는 강자와 대결하게 되었다.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큰 소리를 치고 있었다.
“이제 슈멜링은 링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날 두 사람은 링에 올라 대결을 벌였다. 그런데 그 시합 결과는 놀랍게도 루이스의 12회 KO패였다. 슈멜링의 노련미와 투혼에 루이스의 파괴력이 맥을 추지 못하고 무너졌던 것이다.
시합이 끝난 후 휴게실에서, 그는 난생 처음 맛본 패배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는 조금씩 시합의 악몽을 기억해 내다가, 매니저에게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내가 시합 도중에 슈멜링에게 반칙을 범하지는 않았던가요?”
시합이 워낙 격렬했던지라 그는 시합 중에 자신이 한 행동도 다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매니저가 대답했다.
“유감스럽게도, 자네는 시합 도중 슈멜링의 벨트라인 아래를 두 번이나 쳤다네.”
매니저의 이 말에 루이스가 부끄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크게 자책했다.
‘오, 내가 그런 짓까지 했다니! 그렇다면 나는 정말 형편 없는 사람이로구나.’
그 후 루이스는 다시 자만에 빠져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부단히 자신을 단속했다. 그리하여 1년 후 당시 세계 챔피언이었던 J. 브러도크에게 KO승을 거두며 헤비급 세계 챔피언에 올랐고, 다시 1년 후 벌어진 슈멜링과의 재대결에서는 1회 KO승으로 간단히 설욕했다.
이런 반성이 있는 패배는 패배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항상 승리하다 보면 자만하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패배라는 과정을 또한 밟기 마련인데, 이 때의 패배를 통해서 그 동안 나타났던 자신의 약점과 문제점을 발견하여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승리에는 자신감이라는 좋은 친구가 따라와 힘을 배가시켜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자만이라는 나쁜 친구도 함께 따라와 사람을 교만스럽게 만든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자신감이라는 좋은 친구는 깊이 사귀되, 자만감이라는 나쁜 친구는 멀리 해야 한다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찾아 낼 수 있다.
패배와 실수는 누구나 겪는 일이기에 그것을 그렇게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단, 그 패배와 실수를 통하여 그 동안 자신에게 나타났던 안일함•나태함•교만함 등을 떨쳐 버린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 패배와 실수에도 반성이 따르지 않는다면 당연히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실수와 패배에 익숙해져, 끝내는 영원한 실패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한숨

아버지의 한숨
세 명의 아들을 둔 자상한 아버지가 있었다. 이 아버지는 자식들의 어려움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모두 해결해 주는 정말 좋은 아버지였다. 연말이 되자 아버지가 세 아들을 불러 말했다.
“벌써 한 해가 다 갔구나. 그 동안 너희들은 어떻게 한 해를 보냈는지 말해 보아라.”
아버지의 이 말에 첫째 아들이 우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대답했다.
“예, 저는 한 해 동안 사업이 내내 부진하여 많은 돈을 잃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여유 있게 말했다.
“얘야, 그런 일이라면 우울해할 필요가 없다. 네가 잃은 돈은 이 아비가 다 회복시켜 줄 테니 자신감을 잃지 마라!”
둘째 아들이 대답했다.
“예, 저는 연초에 직장 상사와 서로 오해하여 크게 다투었다가, 지금은 미움을 받아 한직에서 힘들게 근무하고 있습니다.”
“얘야, 사람이 살다 보면 그렇게 일이 잘 안 풀릴 때도 있단다. 그것도 그렇게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네 직장 상사를 찾아가 너에 대한 오해를 풀어 달라고 얘기해 보겠다.”
끝으로 셋째 아들이 대답했다.
“예, 저는 1년 동안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연초부터 무언가를 해 보려고 생각은 많이 했으면서도 아직까지 시작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한 해가 다 지나고 보니 아무런 결실도 없어 그저 세월이 아까울 뿐입니다.”
셋째 아들의 이 말에 아버지는 앞의 두 아들에서 보여 주었던 여유 있는 태도와는 달리, 몹시 침통한 표정이 되더니 깊은 한숨까지 내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너는 정말 한 해를 잘못 보냈구나!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값지고 소중한 시간을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냈으니 말이다. 이 아비도 그것만큼은 도무지 보상해 줄 방법이 없구나!”
첫째 아들이 잃어 버린 것은 ‘물질’이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쉽게 회복시켜 줄 수 있는 것이었다. 둘째 아들이 잃어 버린 것은 ‘명예’였다. 그것도 조금 힘들기는 해도 회복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셋째 아들이 잃어 버린 ‘시간’은 아무리 인자한 아버지라 해도 도저히 회복시켜 줄 수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아니라 천하의 그 누가, 그 무엇으로도 회복시켜 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자상한 이 아버지의 안타까운 한숨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시간만큼은 절대적이고 또 필연적인 것이어서, 한번 사용되면 도저히 회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황금이나 명예보다 열배 백배 더 소중히 사용해야 할 것이다.

스물네번째

사업이 순조롭지 못할 때

사업이 순조롭지 못할 때
‘유태인의 상술이 유명하다’는 말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잘 알려진 것 같지 않다. 그들의 사업 준비 과정과 시작하는 과정, 그리고 생각처럼 사업이 잘 진행되지 않을 때 그만두는 과정을 잠시 살펴 보자.
그들은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철저한 준비 작업과 사전 조사를 한다. 사업의 성공 여부를 면밀히 조사하여, 1개월 후와 2개월 후 그리고 3개월 후의 예상치도 미리 작성해 둔다. 그런 후에 자금과 인력을 일제히 투입하여 사업을 시작하는데, 1개월이 지나서 실제 나타난 결과가 예상치와 크게 다르더라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미리 준비해 둔 예비비를 투입하며 사업을 강화해 나간다. 2개월이 지났을 때에도 마찬가지여서 여전히 투자와 강화를 계속한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났을 때에는 이와 전혀 다르다. 그렇게 열심히 투자했음에도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으면, 그들은 이 때 아무 미련 없이 사업을 포기해 버린다.
그것은 지금까지 투입한 자금과 노력을 일소에 포기한다는 뜻이지만, 그들은 이제 사업을 포기해서 근심도 사라졌다며 오히려 밝은 표정을 짓는다. 그 동안 잃은 돈은 이미 예상했던 것으로, 미련 없이 한 판 승부를 벌였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해한다. 그렇다면 이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여기까지 어떻게 끌고 왔는데 이제 그만둘 수 있나.’
‘사업에는 끈기가 있어야 한다니, 일단 버티고 보자.’
이렇게 생각하며 사업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사업에서도 이성보다는 감정을, 결단보다는 끈기를 앞세우는 경향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가 더 깊은 수렁에 빠져 영원히 재기하지 못하는 데도 말이다.
“사업은 하나의 전쟁이고, 사업가는 그 전쟁에 나선 군인과 같다.”
사업가들이 자주 인용하는 이 말에는, 사업가에게도 군인처럼 수많은 결단이 필요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실제로 전쟁터에서, 공격과, 방어와, 후퇴를 놓고 지도자는 한없이 고뇌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높은 결단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함부로 병력을 움직였다가는 엄청난 희생을 맞게 되고, 우물쭈물했다가는 영영 기회를 놓치고 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결정 하나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뒤바뀐 예는 너무나도 많다. 사업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나아가고 물러서고 지키는 일이 분명해야 한다. 함부로 투자를 계속했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고, 우물쭈물했다가는 영원히 기회를 잃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런 승리나 패배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설혹 지금 패배를 당했더라도, 그 패배를 영원한 패배로 남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지금의 승리나 패배보다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고 그래도 진행이 순조롭지 못할 때 재빨리 포기해 버리는 이 유태인의 방법은, 비록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다음을 기약하겠다는 아주 희망적인 대안인 것이다. 우리 사업가들도 이 점을 꼭 배워서, 그리하여 마침내 승리자의 이름으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고정관념

고정관념
한 젊은이가 노인에게 물었다.
“진리란 무엇입니까?”
“깨달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오.”
노인이 이렇게 대답하자 젊은이가 못미더운 표정으로 또 물었다.
“그러면 깨달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눈 뜬 사람이오.”
노인의 이 대답에 젊은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말씀이 모두 애매하군요. 뭔가 멋진 대답을 기대했는데요.”
젊은이가 이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노인이 한 권의 책을 펼쳐 보였다.
“그 말은 내 말이 아니고 성자의 말씀이오. 여기 그렇게 쓰여 있잖소?”
그러자 젊은이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아, 그렇군요. 어쩐지 훌륭한 것 같긴 하더라구요.”
노인이 젊은이의 이 급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점잖게 한 마디 했다.
“젊은이는 어째서 성자의 말씀이라니까 그렇게 쉽게 태도를 바꾸시오? 앞으로 젊은이가 발전하기를 원한다면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할 거요.”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고정관념을 갖고 있고, 또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자기가 생각하는 그 이상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의 틀에서 벗어나면 다시 새로운 틀이 형성되기 때문에, 당장에는 과거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여도 이내 다시 새로운 고정관념의 틀에 갇히는 현상 때문이다. 예로써, 초등학교를 졸업해서 형성된 고정관념은 중학교라는 과정에서 새로운 고정관념으로 바뀌지만, 다시 고등학교 과정에서 또다시 새로운 고정관념으로 바뀌는 것과 같다. 그때 그때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는 하지만, 언제나 다음 단계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결론 하나를 찾아 낼 수가 있다. 그것은 과거의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순간에는 발전이 따르고, 그렇지 못하면 발전이 정지된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사실 사람이 발전하고 성공한다는 것도, 알고 보면 자신의 과거 고정관념의 틀을 타파해 낸 하나의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발전하고 성공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에게 끝없이 형성되는 고정관념을 계속 타파해 나가야 할 것이다. 때로는 여행으로 새로운 환경을 접해 보거나, 독서로 위인들의 발자취를 음미하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고쳐 보거나, 새로운 생활 계획표를 세워 구습에서 벗어나 보는 것도 기존의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고정관념을 타파할 의지를 갖고 끝없이 노력해 나간다면, 우리도 마침내 깨달아 눈까지 뜰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항해를 시작하라!

항해를 시작하라!
여러분은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확실한 목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나의 확신이다. 길을 가는 젊은이 100명을 붙잡고 이런 질문을 해 보라.
“당신은 왜 실패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무슨 소리요? 내가 실패의 길을 가고 있다니? 나는 지금 성공하기 위해 길을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확실한 목표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계에 의하면, 이들 100명 중 오직 5명만이 경제적 안정을 누리고 단 1명만이 부를 축적한다고 한다. 이렇듯 많은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확실한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성공할 기회는 얼마든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그들은 왜 목표를 세우고 행동에 옮기지 않을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두려움 때문이다. 목표 달성을 하지 못할까 봐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실패자라고 말할까 봐, 미리 겁을 먹고 아예 아무런 목표 설정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으면 아무런 실패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되고, 그래서 그런 주위의 조소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잘못된 사고 방식이고, 또 얼마나 큰 실패란 말인가. 세상에 실패 없이 성공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얘기는 받아들이지 않고, 구태여 남들의 조소에나 신경을 쓰며 한평생을 살아가니 말이다.
배는 바다 위를 항해하는 것보다는 항구에 정박해 있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정박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목표를 정하지 않고, 또 목표를 정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다면, 이 경우와 무엇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이렇게 한평생을 보내야 한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확실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당신이 태어난 목적은 우선은 당신 자신을 세우고, 그 다음에는 인류에게도 기여할 당신의 공헌을 남기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학자 지그 지글라가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진심 어린 충고다. 자신과 인류를 위해 기여할 능력을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난 젊은이가, 두려움 때문에 확실한 목표를 세우지 못하여 실패의 길을 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 이야기에 공감하는 젊은이들이라면, 이제라도 과감히 항구에 묶여져 있는 끈을 스스로 끊고, 새로운 목적지를 향하여 힘차게 항해를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자신과의 철저한 약속 이행

자신과의 철저한 약속 이행
“여러분!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결국 성공합니다. 나는 밥 먹는 시간에도 오직 밥만 먹은 적이 없습니다. 나는 그 시간이 아까워 책을 보든가 신문을 보든가 했지 그냥 밥만 먹으며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밥을 먹을 때까지도 책을 본다고 하면, 밥 하나도 편히 먹지 못하고 살아야 하느냐고 그렇게 비참하게까지 살아야 하느냐고 반문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있어서 습관이라는 것은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내가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보는 것은 단지 그 시간에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 하나 때문만은 아닙니다. 적은 시간도 소중히 생각하고 함부로 낭비하지 않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 때문입니다. 밥 먹는 시간도 아끼겠다는 생각이라면 그 어떤 시간도 그냥 흘려 보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재미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는 김미혜 씨가 쓴 《나는 언제나 한국인》이라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UCLA 법과 대학원 교수가 학생들에게 이 정도로 공부해야 되지 않느냐고 한 말인데, 김미혜 씨 역시 그 말에 따라 행동에 옮겼더니 놀라운 성과를 얻었다고 한다.
“나는 하루 종일 공부만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사용한 시간을 면밀히 점검해 보니 그 동안 낭비하고 있는 시간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차츰 줄여 나갔더니 마지막에는 일 주일 168시간 중에서 132시간(하루에 약 19시간)까지 공부할 수 있었다. 나머지 36시간으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모든 사생활을 해결했다. 학교에서 사 먹는 식사 외에 집에서 음식을 먹어야 할 때에는 냉동 식품을 이용해 시간을 최대한 줄였고 그 먹는 시간에도 책을 보았다. 이제는 남과의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과의 경쟁을 하고 있었다.
학기말 마지막 시험이 있던 어느 날, 밤 10시가 되어서야 강의실을 나와 교정을 혼자 걸으며 돌아오고 있었을 때 싸늘한 바람이 불어와 나는 목덜미에 한기를 느꼈지만, 그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김미혜, 너는 최선을 다한 거야.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상황까지 네 자신을 몰고 가면서도 잘도 참았어. 김미혜, 너는 정말 대단해!’”
위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의 성공이 밖으로 나타나기까지에는 그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열정이 그 안에 숨어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처절하기까지 한 것이지만, 사실 그것이야말로 ‘뜨거운 인간 승리’와 ‘완벽한 자기 승리’를 이끌어 내는 원동력이기도 한 것이다.
성공한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과의 철저한 약속 이행’을 통해서, 남다른 ‘자기 신뢰’와 ‘자신감’을 가졌던 것이다.

우리가 더 행복하다

우리가 더 행복하다

영국의 현 국왕 엘리자베스 2세(1926~)는 여왕으로 즉위하기 5년 전인 1947년 에든버러공 필립과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처음 5년 동안은, 즉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으로 즉위하기 전까지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다정한 잉꼬 부부였으나, 그 후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어 불행한 부부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특히 필립 공의 경우는, 타인 앞에서 아내를 폐하라 불러야 했고, 회의 석상에서 고개 숙여 큰절을 해야 했고, 그밖의 공식 행사장에서도 나란히 걷지조차 못하고 아내의 좌측 3보 뒤로 물러나 걸어야 하는 등, 전에 없는 행동을 강요 받아야 했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못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결재할 때에도 근처에 갈 수 없었고, 정책을 결정할 때도 아무런 의견도 내세울 수 없었던 그는 심한 모멸감과 자괴감에 빠져 이런 독백을 자주 했다곤 한다.
“나의 존재란 단지 인간의 피가 흐르는 아메바에 불과하다.”
그는 이렇게 괴로워하며 때로는 혼자만의 여행으로 때로는 혼자만의 음주로 울분을 달래었는데, 늦은 시각 그가 즐겨 먹는 야식도 왕실의 까다로운 절차가 싫다 하여 침실 옆에 별도의 주방과 식탁을 설치해 자주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내인 여왕은 남편에게 상당히 엄격하기만 했다는 것이다. 국내외의 공무 수행에서는 뚜렷한 업적을 쌓은 여왕이었지만, 적어도 남편에게는 만족스런 아내가 되지 못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초상화를 스케치할 때, 필립 공이 포즈 취하기가 힘들어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여왕이 이런 명령을 내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꼼짝하지 말고 서 있어요!”
이들 부부를 잘 아는 어느 여인은 이들 부부는 서로를 증오하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이들의 자녀인 찰스•앤드루•에드워드 왕자와 외동딸 앤 공주의 결혼 생활이 모두 순탄치 못하게 된 것도 순전히 이들 부부의 불화가 그 원인이라고까지 말했다. 냉엄하고 자조적인 아버지와 따뜻함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었기에 그렇게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해 낼 수가 있다. 그것은 남다른 권력과 부귀를 가진 사람이라 해도 그들이 결코 우리보다 더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국 왕실의 예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그 자녀들의 경우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를 볼 수 있으니, 이 말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왕도 아니고 왕자도 못 되었다고 아쉬워하며 그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억지로 남에게 위엄을 보일 필요도 없이, 그저 자유롭게 하루하루를 솔직하고 순수하게 살 수 있는 우리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그렇다. 그런 우리는 정말 복받은 사람들이다.

인물을 보는 조건

인물을 보는 조건
“평소에 어떤 사람과 친교를 맺고 있는가?”, “남에게 얼마나 많이 베풀었는가?”, “나쁜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는가?”, “남에게 부정한 물품이나 금품을 받지 않았는가?” 그리고 “어떤 인물을 추천했는가?”
이상의 다섯 가지 사항은, 중국의 이극이라는 신하가 인물을 보는 조건으로 임금에게 들려 준 얘기들이다. 이런 조건들을 충족시키면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니, 우리의 젊은이들이 특히 명심해 둘 필요가 있다.
‘평소에 어떤 친구와 사귀는가를 보라’는 얘기는 그 사람의 수준과 품성과 장래성을 보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수준이란 친구들 수준의 평균값인 것이며, 또한 그 친구들을 통해 선의의 경쟁을 하며 발전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경쟁력 있는 좋은 친구가 많이 필요한 것이다.
‘남에게 얼마나 많이 베풀었고, 나쁜 유혹에 넘어갔고, 또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정한 물품을 받았는가’를 보라는 항목들은 그 사람의 물질욕에 대한 요모조모를 두루 관찰하고자 함이다. 인성과 품성과 결백성 같은 고도의 인격도 물질 앞에서 쉽게 변질될 수 있다는 인간의 약점을 자세히 파악해 보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물질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와는 반대로 물질이 너무 없어서 문제가 된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사실은 물질이 인간에게 주는 시련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과 더불어, 인간이 물질에 얼마나 약하다는 사실까지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물질이 많음에도 남에게 베풀지 못하는 이유는 물질의 노예가 되어 끝없는 물질의 목표 수정만 당하기 때문이고, 물질이 없어서 나쁜 유혹에 빠지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부정한 물품을 받는 이유는 물질의 포로가 되어 이성이 마비되고 양심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들 모두의 결과는 당연히 파멸일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물질이 넘쳐도 또한 부족해도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저마다 ‘물질에 대한 자족과 절제’의 기술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사심 없이 사람을 추천했는가’라는 항목에서도 우리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을 추천한 사람에게서는 높은 도덕성과, 진정한 용기와, 고매한 인격을 배울 수 있으며, 더불어 이러한 행위를 통해 국가와 민족도 발전한다는 사실까지도 배울 수 있다.
이러한 위의 다섯 가지 조건에 완전히 적합한 사람이 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신뢰가 쌓이고 나라도 발전한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젊은 시절부터 건전한 마음가짐과 올바른 몸가짐을 갖고 이러한 사항들을 유의해서 실천해 나간다면, 정말 이 나라의 앞날은 한없이 밝을 것이다.

오늘의 의미

오늘의 의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 하루인가는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의 특별한 ‘시간 체험’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우리에게 《죄와 벌》•《백치》•《카라마조프의 형제》 등으로 널리 알려진 천재 작가이다.
그는 28세 때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언도 받고 형장으로 끌려가 기둥에 묶인 적이 있다. 이제 5분 후면 총살형이 집행되고, 그러면 그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는 그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이 마지막 5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리하여 형장에서 자신과 함께 사라질 동지들과의 작별 시간으로 2분, 지금까지의 28년 인생을 정리하는데 2분, 그리고 오늘까지 발을 붙이고 살아온 대자연에 마지막 1분을 바치기로 했다.
처음 2분 동안 동지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28년 인생을 정리하려는 순간이 되자, 그는 갑자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후회의 감정이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나온 28년 세월을 자신이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자책 때문이었다. 그는 그러한 삶을 진실로 후회하며 아쉬워했다.
‘아, 시간이란 정말 한 번 사용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귀중한 것이었구나! 이제라도 내가 세상을 더 살 수만 있다면 누구보다도 시간을 아끼며 열심히 살아갈 텐데…….’
그런데 그 순간, 저 멀리서 병사 한 명이 급히 달려와 황제의 특별 감형을 알리며 사형 집행을 중지시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죽음 직전에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 그가 그렇게 예리한 수많은 대작들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이 특별했던 그만의 ‘시간 체험’ 덕분이었을 것이다.
아침에 눈만 뜨면 우리에게 이미 찾아와 있는 것이 시간이다. 그것은 너무도 공평하고 너무도 규칙적이어서 누구에게나 똑같은 하루 24시간으로 분배되며 일정한 속도로 흘러간다. 우리는 시간이 갖는 이러한 ‘공평성’과 ‘일정성’ 때문에 오히려 시간의 중요성을 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한한 생명체인 우리는 그 흐르는 시간에 무한정 따라 흘러갈 수도 없고, 또 역류할 수도 없다는 사실마져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우리는 시간을 정말 귀하게 여기고 정성들여 사용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맞고 있는 이 무심한 오늘도, 어제 막 숨을 거둔 사람에게는 그렇게도 살고 싶었던 고귀한 그 날이고,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사형장에서 느꼈던 그 절박했던 ‘2분+2분+1분’의 288배나 되는 어마어마한 시간의 집합인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오늘 하루는 그렇게 고귀하고, 어마어마하고, 엄숙한 날이다.

벼슬길에 나아가려면

벼슬길에 나아가려면
어느 날 장자가 낚시를 하고 있을 때 초나라의 사신이 찾아왔다.
“군왕께서 선생의 어지심을 듣고 국정을 맡기고자 초빙하오니 저와 함께 가시지요.”
그러나 장자는 낚싯대를 잡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초나라에는 죽은 지 3천 년이나 되는 신통한 거북이 있어, 임금이 그것을 묘당에 정중히 모시고 있다는데 사실입니까?”
“예, 사실입니다.”
사신이 공손히 대답했다. 그러자 장자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 거북은 죽어서 뼈를 묘당에 머물게 하고 정중히 제사 지내 주기를 바라겠습니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을 마음껏 돌아다니고 싶어하겠습니까?”
“그야 물론 진흙 속을 마음껏 돌아다니고 싶어하겠지요.”
사신이 이렇게 대답하자 장자가 여유 있게 대답했다.
“그러니 돌아가시오. 나도 거북처럼 진흙 속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살고 싶으니까요.”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 있는 방법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이 주관적 입장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적극 개척해 나가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객관적 입장이 되어 인생을 옆에서 바라보며 즐기는 방법이다. 전자는 서양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고, 후자는 동양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어서 인생을 창조하고 생산해 내는 즐거움은 있으나 너무 각박한 감을 지울 수 없고, 후자의 경우는 여유롭고 넉넉해서 달관의 기쁨은 있으나 허무적이고 비생산적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필자는 이 두 가지 방법 중에서 평소 전자의 장점을 많이 얘기해 온 사람이다. 생명은 단 하나 뿐으로 너무도 고귀한 것이니, 그래서 보다 적극적으로 뜻있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해 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욕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희생과 봉사라는 정신을 가졌다는 가정 하에서 한 말이지, 이번의 한보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증인들과 같이 희생과 봉사 정신과는 거리가 멀고 사욕만 앞세워 수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도 좋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런 자리에 올라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바에는, 차라리 진흙 바닥이나 돌아다니며 거북처럼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라도 뜻을 품고 벼슬길에 나아가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보다 확실한 자신과의 맹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사심 없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것과, 그 어떠한 고난에도 변심하지 않고 깨끗히 몸을 보전하겠다는 그런 의지의 맹세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맹세도 없이 무턱대고 벼슬길에 나아가다가는, 역시 청문회의 증인들과 같은 또 하나의 불행한 앞날을 맞을 것이다.

유비무환

유비무환(有備無患)
어떤 양반집 주인이 일꾼을 구하려고 대문에 방을 붙였는데, 때마침 농번기인지라 며칠이 지나서야 겨우 한 명의 젊은이가 나타났다. 주인이 젊은이에게 물었다.
“그래, 그대는 무엇을 잘 하는고?”
“예, 저는 폭풍우 치는 날에 잠을 잘 잡니다.”
주인은 ‘별 대답도 다 있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마땅히 다른 사람도 없어 그 젊은이를 채용했다. 그런데 그 젊은이가 예상 외로 일을 잘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천둥 번개가 심하게 몰아치며 장대비가 쏟아졌다. 주인이 천둥 소리에 놀라 잠을 깨어 일꾼을 찾으니 일꾼은 천하태평으로 잠만 자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장대비가 쏟아지는데 잠만 자다니…….’
주인은 일꾼의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그래도 우선 집안을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둘러보니 집안의 어느 한 군데도 허술한 곳이 없었다. 외양간에는 소와 돼지들이 편히 자고 있었고, 개도 닭들도 자기 집에서 마음 놓고 자고 있었다. 장작과 땔감도 처마 밑에 단단히 묶여져 비에 젖지 않았고, 창고의 문도 굳게 잠겨 물이 새지 않았다. 주인은 그제서야 일꾼이 자신에게 처음 말했던 그 말이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 후 일꾼을 굳게 신임하게 되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즉 미리 준비하고 있으면 환란을 당해도 근심할 것이 없다는 뜻의 이 말은 우리 귀에 이미 익은 말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환란을 많이 당해 왔던 나라였다. 그래서 그 어떤 교훈보다도 이 유비무환의 교훈이 많이 강조되어 왔고, 또 그만큼 의미 있게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그 말뜻의 중요성과는 달리 이상하게도 실천은 크게 미치고 못하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정책의 부재와 부패 현상을 연달아 드러내며 똑같은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근간에 지속되고 있는 경기 불황도, 한보 부도사태도, 고속철도 부실시공도, 사실은 전에 수없이 일어났던 일들과 동일한 종류의 것들로써, 그에 대한 충분한 대비책이 없어서 발생한 사건들이다.
우리는 변해야 한다! 이제라도 우리는 정말 변해야 한다!
그래야만 끝없이 반복되는 시행착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라의 일꾼이라는 지도자들도 변해야 하겠지만, 나라의 주인인 국민도 또한 변해야 한다. 사치와 허영과 과소비와 낭비를 없애서 경기 불황에 맞서고, 일을 잘못하는 일꾼들에게는 야무진 질책과 엄정한 선거 심판을 내려 다시는 그런 인물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유비무환인 것이다.
편안히 지낼 때 어려움을 생각하고, 어려움을 당해서는 편안함을 생각하는 그 유비무환의 지혜, 그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우리에게 지나치지 않는 말이다.

고언과 감언

고언과 감언
조선조 숙종 시대, 문신 이관명(1661~1733)이 암행어사의 임무로 경상도 지방을 다녀왔다. 숙종이 이관명에게 물었다.
“그 동안 수고가 많았소. 그래, 그 곳 상황은 어떻던가요?”
“예, 다른 곳은 아무런 문제가 없사오나, 통영 지방에 섬 하나를 소유한 후궁이 백성들을 수탈하여 원성이 자자하옵니다.”
이관명의 이 대답에 숙종이 갑자기 노여워하며 철여의를 들어 책상을 내리쳤다.
“아니, 이 나라의 임금인 과인이 후궁에게 조그마한 섬 하나 준 것을 가지고 그렇게 문제 삼는단 말이오!”
숙종이 이렇게 노여워하는데도 이관명은 주저하지 않았다.
“폐하, 소신이 폐하를 가까이 모실 때는 이러지 않으셨는데, 1년 동안 밖에 나갔다 돌아와 보니 폐하의 과격하심이 심해졌습니다. 이는 곧 상감께 바른 말하는 신하가 없었다는 뜻이오니, 모든 신하들을 파직시켜야 마땅할 줄 아옵니다.”
이관명의 이 말에 숙종이 당장에 승지를 불러 전교를 받아쓰라고 명령했다.
“어사 이관명에게 부제학을 제수한다.”
대신들은 깜짝 놀랐다. 이관명이 임금의 진노를 샀기에 크게 벌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벌이 아니라 오히려 일계급 승진이라는 상이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숙종이 다시 전교를 내렸다.
“부제학 이관명에게 홍문관 제학을 제수한다.”
“홍문관 제학 이관명에게 호조판서를 제수한다.”
이렇게 이관명을 그 자리에서 연달아 3계급이나 특진을 시켰다. 그런 후 숙종이 이관명에게 조용히 말했다.
“경의 바른 말이 과인의 잘못을 깨닫게 해 주었소. 경은 앞으로도 바른 말로 과인의 잘못을 깨닫게 하여 주고, 나라의 관리도 잘 단속해 주오.”
모든 신하들이 이관명의 충성심과 숙종의 넓은 도량에 크게 감탄했다.
고언(苦言)이란 듣기에는 거슬리지만 유익한 충고의 말이다. 반면에, 감언(甘言)은 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듣기 좋게 하는 달콤한 말이다. 사람들은 이 두 가지 말 중에서 고언 듣기를 싫어하고 감언 듣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듯이, 듣기 싫은 고언이 자신에게 유익한 말이 된다. 특히, 아랫사람이 자신의 위치에서 받을 불이익을 감수하며 전해 오는 그 고언에는, 자신에 대한 순수한 염려•희생 그리고 사랑이 포함되어 있는 명약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걸어온길

1991년에는 대학교수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을 위하여 생활정보지인 (주)수원교차로를 창업하여, 1995년까지 대표이사로서 회사를 성장시켜 왔다. 1995년부터는 칼럼니스트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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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글긴여운

황필상박사가 우리의 이웃과 후손을 위해 남기신 컬럼을 실었습니다. 고인의 평소 바램대로 우리는 모두가 훌륭한 인격체로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튼실한 기둥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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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년동안 수원 시민들을 대상으로한 창의력개발과 자기계발을 위한 특별강좌가 있었습니다. 이 특별강좌를 통해 황필상박사의 평소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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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에 대한 강렬한 열정과 잠재역량을 가지고 있으며 발전가능성이 보이는 학생들 중에서 우리 재단의 Vision에 공감하며 차세대 지도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학생을 본 재단에서 지정한 대학교를 통해 장학금 수혜자로 매 학기 선발합니다. 장학사업은 재단 설립자인 황필상 박사의 “대한민국의 미래 棟梁之材 양성” 이라는 큰 뜻을 실천하는 것으로서 본 재단의 핵심 사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