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여운 – 황필상박사의 생전 컬럼 7-12

황필상박사가 우리의 이웃과 후손을 위해 남기신 컬럼을 실었습니다. 고인의 평소 바램대로 우리는 모두가 훌륭한 인격체로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튼실한 기둥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구원장학재단은 고인이 되신 황필상박사님의 뜻을 계승하여 우리의 젊은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지지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일곱번쩨

벤자민 플랭클린(2)

전 호에서 얘기한 벤자민 프랭클린의 13훈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이러하다.
(1) 절제: 심신이 둔해질 때까지 먹지 말라. 취할 때까지 마시지 말라.
(2) 침묵: 자기와 남에게 무익한 말은 하지 말라.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
(3) 규율: 모든 물건은 일정한 장소에 두고, 모든 일은 규칙적으로 하라.
(4) 결단: 하고자 하는 일에 과감하라. 일단 결심한 일은 꼭 실천하라.
(5) 절약: 자기나 남에게 무익한 일에 돈을 쓰지 말라.
(6) 근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항상 유익한 일을 행하고 무익한 일은 삼가라.
(7) 성실: 거짓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어지러운 마음을 버리고 공정히 생각하고, 그 생각을 표현하라.
(8) 공정: 해로운 일로 남을 해치지 말라. 해야 할 의무를 게을리함으로써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9) 중용: 무슨 일이건 극단을 피하라. 당연히 분격해야 할 일이거나 또 해를 입더라도 참아라.
(10)청결: 신체나 의복, 주거의 불결은 참지 말라.
(11)평정: 사소한 일, 또 피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마음의 평정을 잃어서는 안된다.
(12)순결: 성에 탐닉함으로써 신체를 허약하게 하거나, 자기와 남의 평정이나 평판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유념하라.
(13)겸손: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으라.
이 정도의 덕목을 모두 가지고 있다면, 과연 세상에 못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밴자민 프랭클린은 인쇄업자•정치인•사회사업가•교육자•과학자•발명가•독립운동가•저술가로서 모두 성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위의 내용을 수첩에 기록하여, 페이지에 일•월•화……라고 쓰면서, 매일 1훈씩 순서대로 실행에 옮겼다 하니 그가 얼마나 성실한 삶을 살았고, 그래서 그가 성공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역시 이러한 내용을 수첩에 정리해서 실천에 힘쓴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큰 일을 해내지 않을까 한다. 실행의 어려움이 적지 않겠지만, “막 태어난 아기가 도대체 무슨 목적을 갖고 태어났겠습니까?”하는그의 말을 믿고 우선 시작은 하고 볼일이다.

군자와 소인

군자지교 담여수 (君子之交淡如水)
소인지교 감여밀 (小人之交甘如蜜)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기 물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기 꿀 같다. 사람들의 사귐이 향락적이고 감흥적임을 경계하는 옛 고전《소학》의 한 구절이다. 이 문장의 의미를 좀더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논어》에 나와 있는 ‘군자와 소인’에 대하여 알아보자.
‘군자는 자기의 인격과 수양에 힘쓰나 소인은 편하게 지낼 곳만 찾는다.’
‘군자는 혹시라도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여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나 않을까 조심을 하는데, 소인은 누가 내게 특별한 호의나 베풀지 않을까 기대만 한다.
‘군자는 정의를 위하여 묵숨을 바치는데, 소인은 자기의 이익과 영달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
‘군자는 자기가 할 일만을 힘써 할 뿐 그 밖의 것은 자연과 운명에 맡기고 태연자약한데, 소인은 한 가지 욕심을 이루면 또 다른 것을 탐내고 애써 얻은 다음에는 그것을 잃을까 조바심하며 불안해 한다.’
‘군자는 태연하고 교만하지 않으나, 소인은 교만하고 태연하지 못하다.’
‘군자는 뜻대로 안되는 일에 대해서도 그것을 자기의 탓으로 돌리어 반성하고 노력하는데, 소인은 남의 탓으로 돌리며 원망하고 조바심한다.’
‘군자는 세부적인 사항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지 아니하고 중요한 문제의 본질이나 사명, 전체적인 일을 잘 하는데, 소인은 작은 일에만 관심을 기울여 공연한 마찰이나 압력만을 일삼는다.’
대개 이런 내용으로 군자와 소인을 설명하고 있다. 컴퓨터니 첨단과학이니 하고 최신문명을 자랑하는 지금, 2500년 전 사람들이 말하던 군자와 소인의 이야기를 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젊은이들도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시대가 빠르게 변한다
해서 꿀같이 달콤한 행동이 물같이 무거운 행동을 앞설 수는 없기에, 이렇게 옛 현인들의 군자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군자보다 소인이 많은 모양이지만, 그래서 소인보다 군자의 필요성은 강조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책을 읽고 잔치를 열자

마빈 토케이어는《F학점의 철학자》라는 책을 쓴 사람이다. 책에 나와 있는 그의 약력은 이렇다.
1928년 뉴욕 출생, 에시바대학 탈무드학교 졸업, 한타대학 대학원에서 교육석사학위 받음, 1955년 랍비 자격취득, 텐블대학에서 그리스도교 전공, 브리지포드 성심대학에서 정신분석학 박사학위 받음, 1962~1964년 한국에서 미군으로 근무, 1968~1976년 일본에서 유태문학 강의,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거주, 이렇게 약력을 소개하는 이유는 그가 한국과 일본에서 직접 살아서 동양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그가 쓴 ‘책의 민족 유태인’이라는 내용의 글은 이러하다.
「유대인이 살고 있는 곳이면 어디든‘책의 민족’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아침 통근차 안에서도 탈무드를 공부하고 저녁 전차 속에서도 또 탈무드를 배운다. 일생 동안 읽어도 다 못 읽을 탈무드이므로 한 권만 독파하고 나면 유태인으로서는 더 없는 기쁜 일이기에 친척이나 이웃들을 불러 파티를 연다.
이러한 환경에 비하면, 동양인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책을 보지 않는 것은 이상하게 느껴진다. 동양에서는 배움이란 것이 결혼이나 직업을 갖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10년을 보내다 학교에서배운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배움과는 거리가 먼 생각없는 부모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래서야 어찌 자식 교육의 모델이 될 수 있겠는가.
유태인의 전통에 따르면,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배우는 것과 일치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20년을 배웠더라도 2년이면 잊혀진다고 한다. 부모가 매일 배움에 열중함으로써 자녀의 교육도 되는 것이다.
탈무드에는‘돈을 빌려 주지 않아도 되지만, 책은 빌려 준다’는 말도 있다. 돈은 개인의 소유물이고 책은 만인의 공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_
이 글에서 필자는 책 한권을 독파하면 파티를 연다는 대목이 마음에 든다. 우리도 집들이다 아기 백일이다 해서 잔치를 열 것이 아니라, 책 한권을 독파한 후에 이웃들과 잔치를 벌이는 전통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상과 현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문제 중에는 대립적인 관계에서 꼭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이상이냐 현실이냐’하는 문제도 그 경우다.
그러나 이 두 개의 반대논리는 어느 하나의 일방적인 배제하에서 성립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상’이 없는 사람은 현실이라는 두터운 껍질 속에서 한평생을 보내는 불행한 사람인 것이고, ‘현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상이라는 환상만을 좇는 방랑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두 개의 반대논리를 조화시킬 수 있는 지혜는 필연적인 것이라 하겠다. 여기 현실에서 이상을 실현한 실화를 소개한다.
미국 죠지아 주의 어느 시골학교에 마르다 베리라라는 착한 여선생이 있었다. 그녀는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시설이 부족함을 느끼고, 당시 미국 최고의 부자인 자동차왕 헨리 포드에게 아이들의 정서교육용 피아노를 구입하겠으니 1,000불만 보내 달라는 간곡한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로부터 회답이 왔는데 뜯어보니 이것이 웬일인가? 회답 속에는 단 한개의 다임(10센트)만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보통사람 같으면 심한 모멸감에 적개심을 나타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선생은 달랐다. 단 10센트의 동전으로 땅콩을 사서 땅콩 농사를 시작했다. 농사는 잘 되었고 해마다 농사의 규모도 커졌다. 그녀는 해마다 수확량의 일부를 포드에게 보내면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렇게 해서 5년 후, 그녀는 드디어 그녀가 최초에 이상으로 삼았던 피아노를 구입하게 되었다. 후에 이 사실에 감동한 포드는 선생이 처음에 요구했던 금액의 10배인 10,000불을 보냈다고 한다. 현실이라는 두터운 벽에서 끝까지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다가, 끝내는 그 이상을 실현한 마르다 베리라선생의 의지에 찬사를 보낸다.

영감은 어떻게 얻는가?

시 쓰기를 아주 좋아해서 열심히 써보았지만 좋은 시를 써내지 못하는 러시아의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자기에게는 영감(또는 직관)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한탄하곤 했다. 어느 날, 그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위대한 시인 마야코프스키를 만나자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 영감이 넘쳐 흐르는 것이 보이는데, 어째서 저는 그런 영감이 나타나지 않는가요?”그러자 마야코프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다. “아마 영감이 게으름뱅이와는 친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우리는 영감이 비약적인 사고로 까닭없이 갑자기 생겨난다고 믿는다.
이렇게 갑자기 비약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이 타고난 천부적인 재능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사실‘영감은 집념어린 노력과 실천끝에 얻는 결과물’인 것이다.
독일의 대화학자 케큘레는 벤젠의 분자 구조식을 고리 모양으로 발표(1865)한 학자다. 그가 제안한 고리모양의 구조식은 당시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기에 많은 화학자들은 허를 찔린 듯 감명을 받았고 저마다 칭송하기를 마지 않았다.
“케큘레는 정말 천재입니다. 그의 기발한 이 구조식은 누구도 생각해 낼 수 없는 천재적인 작품입니다.”
그러나, 그가 독일화학회 창립 25주년(1890) 기념식에서 회원들에게 답한 사연을 들어보면 그렇게 천재적인 재능으로 얻어진 우연한 작품만은 아니다.
“그 때 런던에 있던 나는 밤낮없이 자나깨나 분자 구조식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몇 달 동안을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풀리지 않았고 이러한 헛고생과 무수확으로 노심초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만 고단한 몸을 이기지 못하고 마차 안에서 잠이 들었고 이내 꿈을 꾸게 되었는데, 그 꿈속에서도 나는 벤젠의 구조식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꿈속의 내 앞에 뱀이 나타나더니 자기의 꼬리를 입으로 물면서 원을 그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으로 몇 달동안의 고민이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케큘레의 이 말을 들어 보면 그가 결코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히려 ‘지성이면 감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속담이, 그리고 ‘영감은 우아하게 손을 흔드는 사람에게 찾아가는 것이아니고, 무지막지한 황소처럼 돌진하며 밀어 부치는 사람에게 찾아간다’고 말한 차이코프스키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가 지금 못풀어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꿈속에까지 나타나게 할 수 있는 그‘집념’이 바로 천재가 되는 지름길인 것이다.

알기도 어렵고 행하기도 어렵다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물리적인 고통에는 잘 참아왔으나, 정신적인 고통에는 매우 약한 일면이 있다. 그 증거(?) 중에 하나를 지적해 본다면, 우리가 빈번히 사용하는 말 중에서 ‘골치 아프다’라는 말을 쉽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의 얘기도 어쩌면 골치 아플 수 있는 얘기가 아닌가 한다.
“알기는 쉽고 행하기는 어렵다”라는 말은 《서경》과《좌전》에 실려 있는 말이다. 또 많은 현인들이 이 말에 동조하고 있으며, 우리 역시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공감하는 사항이다.
그런데 이와 반대의 뜻도 이치에 전혀 어긋난 말이 아닌 것이다.
즉, “아는 것은 어렵고 행하기는 쉽다.”가 바로 그것이다. 중국 혁명의 아버지라 칭송되는 손문이 자신의 참모들과 식사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대개의 사람은 비타민이나 칼로리에 대한 것은 모르고 그저 먹거나 마시기만 하는데, 이것은 알기는 어렵고 행하기는 쉽다는 뜻이 아니겠는가?”하면서 웃었다는 것이다.
동물원에 가거나 서커스를 보게 되면 이런 느낌을 더욱 가지게 된다. 각종 동물들이 나와서 여러 가지 신기한 재주를 보여 주는데 동물이 그 의미를 알고 재주를 부리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동물 뿐만이 아니다. 인간 역시 산다는 의미를 모르면서 덮어 놓고 하루하루 사는 사람이 많다. 참으로 ‘행하기는 쉬워도 알기는 어렵다’는 말도 맞는 말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하겠다.
비슷한 예는 무수히 많다. 체력단련을 위해 생겨난 운동시합이 어느 사이에 그 목적은 사라지고 시합 자체가 목적이 된 경우도 그러하다. 교통 정리를 위해 생겨난 교통 경찰이 교통의 흐름보다는 위반자의 적발에만 몰두하고 있는 사실도 마찬가지 경우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인정했던 “알기는 쉽지만 행하기는 어렵다”의 반대 뜻인“알기는 어렵지만 행하기는 쉽다”역시 성립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우리를 골치 아프게 한다. 결국 우리는이 두 가지 사실을 모두 인정해야 되겠는데, 그러면 그 뜻은 “알기도 어렵고, 행하기도 어렵다”이니 참으로 쉽지 않은 인생길이고, 그래서 더욱 정성껏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로부터의 행복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가졌다는 것은 물질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같이 포함된다.
옛날, 어떤 사람이 가난과 고생을 딛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재상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그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마당에 있는 기왓장을 뒤뜰로 옮겨놓았다가 저녁이면 돌아와 그것을 다시 마당으로 옮겨놓곤 했다. 이 소문을 듣고 친구가 까닭을 물었다.
“이렇게 힘든 일을 함으로써 나의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으려는 걸세. 지금의 편안한 생활에 빠져버린다면 어찌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겠나. 대체로 인간이 불행하게 되는 이유는, 지식의 부족이나 경험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어려운 시절을 잊는 오만함 때문인 것이네.”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은 옛날의 어렵고 힘든 시절을 생각하며 감사할 줄 모르고 과욕을 부리는 경우를 일컫는 속담이다. 사람의 어리석은 행동중에 하나는 자기가 어려움에 놓여 있을때는 어려움을 잘 알다가 자기의 환경이 바뀌어지면 쉽게 잊고 만다는 것이다. 그때 겪은 고통을 평생 간직할 수만 있다면 사람은 누구나 행복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주부의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은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나는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의 행복이 과분하고 고마울 뿐이다. 남편의 봉급이 과분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과분하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이 과분하고, 이 모든 것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행복하다.”
과거의 어려움을 생각하며 현재에 만족함을 느끼는 것, 이것도 또한 값진 행복이고, 이런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야말로 극락과 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유머 감각이 필요하다

화술에 관한 책을 보면 유머 감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예가 많다. 팽팽하던 긴장감을 깨뜨리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사실 유머 자체를 떠나서 감정 관리에 있어서도 대단히 유익한 일이다. 다음의 유머도 그 경우에 해당된다 할 것이다.
헐리우드에 사는 어느 변호사의 부인은 미녀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과 절친한 사이였다. 어느 날, 버그만은 세금 문제로 변호사의 부인과 함께 사무실을 찾았다. 상담이 끝나고 그녀들이 돌아간 뒤에 변호사는 급사에게 넌지시 물었다.
“여보게, 지금 내 처와 함께 나간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가? 바로 그 유명한 미녀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이라네.”
그러자 급사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네? 그 유명한 잉그리드 버그만이라구요? 그럼 어느 쪽이 버그만이었습니까?”
그러자 변호사가 싱긋이 미소를 지으며,
“자네는 참으로 기막힌 재능을 가졌군. 남을 기분 좋게 하는 재능 말일세.”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모르기는 해도 이 말을 들은 변호사는 정말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나이 지긋한 어떤 소설가가 어느 주점에 들러서 해물 잡탕을 시켰는데, 종업원이 잘못 알아듣고 다른 것을 가져왔다. 이에 소설가는 종업원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 박았는데, 그 종업원이 너무 아팠던지 비명을 지르며,
“왜 때려요?”
하고 항의를 했다. 자칫하면 소년에게 봉변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소설가는 순간적인 재치를 발휘하여,
“허, 그놈 생기기는 남진이 같이 잘 생긴 놈이 어른한테 덤비다니.”
하고 말했다. 그러자 소년이 금방 얼굴색을 바꾸더니, 이내 그 소설가에게 공손히 대했다는 것이다. 남진을 당시 국내 최고 미남 가수로 명성을 날렸던 사람이었다.
물론, 기교보다는 원리가 당연히 앞선다. 그러나 지나친 원리 추구는 교조주의에 빠지기 쉽다. 적당하고 상황에 맞는 유머는 분위기를 일신시키고 대화를 부드럽게 한다. TV토론이나 좌담회를 보면 우리의 대화는 너무도 진지해서 듣기에 아주 힘이 든다.
대체로 우리 동양인은 서양인에 비해 유머 감각이 떨어지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융통성 없는 딱딱한 대화 분위기를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더라도 유머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 기분 좋은 대화 분위기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융통성과 평등

유럽의 준법정신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얘기되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어느 날, 한국인 유학생 한 명이 거주지 경찰서장으로부터 한 통의 통신문을 받았다. 그 내용은 모년 모월 모시에, 당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앞에 주차했던 무슨 형 무슨 색의 차번호 xxxx 승용차를 몰고 온 외부인사를 아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에도 똑같은 내용의 통신문을 3번이나 더 받았다. 그는 ‘정말 할 일 없는 경찰이로구나’라고 생각하며, 마침내 그것은 나의 차라는 회신을 보냈다. 그런데 다음 날 교통경찰이 찾아왔다. “이 회신은 당신이 보낸 것입니까?” 경찰이 물었다. 그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경찰은 벌금통지서를 내밀었다. 무슨 이유 때문이냐는 그의 물음에, 경찰은 모년 모월 모시에 그가 아파트 앞에서 무단주차를 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가 사는 곳은 비좁은 도심지가 아닌 비교적 한적한 곳이다. 따라서 직접 교통을 방해했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주차금지 구역에 주차를 한, 말 그대로 법 자체를 어겼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구체적 설명이었다.
“당신들은 내가 유색인종이라고 차별대우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가 이렇게 정중히 항의하자 경찰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파트 주민이 신고를 해서 알았습니다. 당신이 외국인인지라 말씀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이 나라에서 편안히 사는 방법은 이 나라의 법을 지키시는 겁니다. 언제 어디서고 당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비록 한 가지 예에 불과하지만 이게 바로 유럽 사회의 모습이다. 이들의 법적용은 너무도 융통성이 없다는 결점은 있지만, 예외가 원칙을 능가할 수 없다는 원칙은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법을 적용함에 있어서 ‘융통성과 평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쫓아야 하는 경계선은 참으로 난해하다.
우리 동양인은 지나친 융통성으로 인하여 오늘도 파란 신호등을 보고도 마음 놓고 길을 건너지 못하고 있는데, 그들은 평등을 내세워 오늘도 수많은 눈길을 의식하며 감옥(?)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파란 신호등을 마음 놓고 건너고, 이웃의 다정한 눈길을 받는 그런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터졌다. 빨리 피하라!”

코난 도일(1859-1930)은 영국이 배출해 낸 추리소설 작가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자는 실존 인물인 코난 도일보다 그가 만들어 낸 가공 인물, 샬록 홈즈에 대하여 오히려 더 많이 알 것이다.
각종 지능 범죄자에 대항하는 그의 뛰어난 추리력, 독특한 용모, 이상한 성격, 가는 매부리코, 날카로운 눈매, 183㎝ 정도의 후리후리한 키, 그리고 권투, 검술, 봉술 실력까지도 상당히 갖춘 명탐정 샬록 홈즈 말이다 이런 것을 보면, 단조로워 보이는 현실 세계보다는 극적요소를 삽입하는 가공의 세계가 독자에게는 훨씬 더 어필되나 보다.
그런데 코난 도일은 샬록 홈즈의 지혜를 실제 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그의 엉뚱한 생각과 장난 때문에 진땀을 흘리며 당황하기 일쑤였다.
어느 날, 코난 도일은 사회적으로 신분이 제법 높아진 몇 명의 친구들에게 이런 전보를 보낸 적이 있다.
“탄로가 났으니 즉시 도망가라!”
그리고 그 다음 날 전보를 보낸 친구들의 집과 사무실을 코난 도일이 직접 방문해 보니 이게 웬일인가. 아무도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어디를 갔느냐고 물었지만, 어제 저녁부터 갑자기 무슨 일이 있다며 나가서 지금까지 아무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코난 도일은 사회적으로 저명한 친구들이 의외로 죄를 많이 짓고 산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실망했다.
이것은 100년 전 코난 도일의 얘기지만, 지금 우리는 이와 똑같은 일을 보고 있다.
다름 아닌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자, 해당 구청 담당자들이 모두 일시에 사라졌다는 것이 그것이다. 얼마나 죄를 많이 졌길래 남보다 오히려 빨리 달려가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그들이 일시에 줄행랑을 놓았는가, 참으로 어이없다.
사실, 삼풍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그 동안 우리는 사건이 터졌다 하면 담당자들이 한결같이 도망가 버리는 예를 자주 보아 왔다. 정말 이래서는 안 된다. 사건이 터지면 오히려 남보다 앞장서서 달려가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 도망갈 담당자들이라면 우리 곁에서 모두 사라져야 한다.
우리 모두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코난 도일의 지혜를 잠시 빌려, 전국의 모든 담당자들에게 이런 전보라도 일시에 보내야만 할 것 같다.
“터졌다. 빨리 피하라! 이건 진짜다.”

여덟번째

까다롭게 따지자!

버나드 코로거라는 사람은, 미국 신시내티 시에서 조그만 식료품 가게 하나로 시작하여 끝내는 미국 전역에 3,600여 점포까지 연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를 대하는 상인들은 그가 매우 까다롭다고 불평을 하곤 했다. 어느 날 그는 많은 상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관한 얘기를 하게 되었다.
“상인 여러분, 제가 남들보다 유난히 까다롭다는 얘기를 듣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좋은 물건을 값싸게 구입해서 고객들에게 헐하게 넘겨 주려고 하다 보니까 자연히 그런 소리를 듣게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보이겠습니다. 여기 이 통조림에는 아주 예쁜 상표가 붙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 가게에서 팔아 달라고 이 분이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겉이 아름답다고 무조건 물건을 팔아 주지는 않습니다. 뜯어서 맛을 보고 고객의 호응이 좋아야 팝니다.”
그러자 그 통조림 외판원이 얼굴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코로거 씨, 그렇게 까다롭게 따진다면 우리 같은 사람은 어디 장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
우선 믿고 팔아 주셔야죠.”
그러자 코로거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당신의 말씀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도대체 누가 그렇게 우선 사고 봅니까?
화가가 그림 그리는 붓 하나를 살 때도 굉장히 까다롭게 따집니다. 작가가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낱말 하나, 말 한 마디에도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아십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음식 만드는 요리사도 양념 하나 넣을 때마다 대강 넣지는 않습니다. 고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값싼 물건 하나를 고를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렇게 따지지 않는다면 훌륭한 그림, 감동을 주는 글, 맛있는 요리, 실용적인 물건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제가 까다롭다는 말을 많이 듣는 것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말을 코로거는 하고 있다. 까다롭다는 말은 나쁜 말이 아니다, 근본 지향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뜻이다. 따지지 않고 대충대충 살아온 우리 앞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성수대교 붕괴, 대구 가스 폭발, 삼풍백화점 붕괴 등이 모두 이 따지지 않는 습성 때문에 생긴 인재가 아니겠는가.
이제부터라도 따지자! 따져도 보통 따져서는 안된다. 아주 까다롭게 따져야 한다!

도의 경지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걷다가 숲속에서 매미를 잡고 있는 구루자라는 꼽추를 만났다.
그의 모습은, 목은 어깨 안으로 들어갔고, 등은 낙타봉처럼 우뚝 솟았는데, 허리는 굽어져 펴지도 못하는 심한 불구자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모습과는 달리, 그의 매미 잡는 솜씨는 그야말로 귀신 같아서 백발백중으로 한 마리도 놓치는 일이 없었다. 마치 땅에 떨어진 물건 줍 듯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공자가 신기한 듯 물었다.
“참으로 매미를 잘 잡는구려. 그렇게 잘 잡는 무슨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이에 구루자가 대답했다.
“예, 있습지요. 어느 것인들 도 없이 제대로 되는 것이 있겠습니까? 도는 훈련으로 얻어지는 바, 매미를 제법 잡으려면 긴 장대 끝에 동그란 흙덩이 두 개를 올려놓고 걸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흙덩이가 세 개가 되면 매미 열 마리 중 아홉 마리를 잡을 수 있고, 흙덩이가 다섯 개면 열 마리 모두 잡을 수 있게 됩니다.”
구루자가 이렇게 대답하는데, 그 동안에도 그의 매미잡이는 계속되었고 동작에도 아무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것을 보고 공자가 제자들에게 일렀다.
“보라! 자기가 하고 있으면서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경지에 이름은, 저 구루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저 정도 도의 경지에 이름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공자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무슨 일에서나 경지에 오르기까지에는 많은 대가와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훈련이라는 과정은 없고 성공이라는 열매에만 집착하고 있는 요즈음의 사람들을 바라보면 적지 않은 걱정이 된다.
어느 길로도 도의 경지에 이를 수가 있다. 그것이 무슨 일이든 자기 하는 일에 몰두하여 전심전력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매미 잡는 작은 일에서조차 도의 경지에 오른 구루자가, 위대한 성인 공자와 대등한 대화를 했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질그릇에 담긴 술

로마의 어떤 공주가 얼굴이 아주 못생긴 유대인 랍비를 만났다.
공주는 뛰어난 용모를 가졌지만 교만스러워서 랍비의 훌륭한 말을 들으며 감탄을 연발하면서도 못생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
“지극히 총명한 지혜가 아주 못생긴 그릇에 담겨 있군요.”
랍비가 이 말을 듣고 공주의 교만심을 고쳐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주님은 임금님이 마시는 술을 어디다 담아 놓나요?”
“그야 물론 항아리나 단지에 담아 놓지요.”
공주가 대답했다. 공주의 이 말에 랍비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 로마 제국의 황제인 위대한 임금님께서 금이나 은으로 된 그릇은 제쳐두고, 어째서 그런 보잘것 없는 질그릇에 담긴 술을 마신단 말입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도 그렇군요.”
이렇게 대답한 공주는 즉시 금그릇 은그릇에 술을 담아 놓도록 명령했다.
다음 날, 신하들과 잔치를 벌이며 술을 마시던 임금은 술맛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신하를 추궁했다.
“예, 공주님의 분부대로 술을 금그릇 은그릇에 모두 담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신하가 이렇게 대답하자 임금은 즉시 공주를 불렀다.
“너는 어찌하여 술을 금그릇 은그릇에 담았단 말이냐! 술이 금그릇 은그릇에 담겨 있으면 술맛이 변한다는 것을 몰랐단 말이냐!”
호되게 야단을 맞은 공주가 분한 마음에 랍비를 찾아가 따지자, 랍비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공주님, 이제는 아시겠습니까? 금그릇 은그릇이 아무리 좋아도 질그릇만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을. 가장 귀중한 것이 가장 귀중한 그릇에 담겨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을 외모로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또한 소유한 재산으로 평가해서도 안된다. 평가되어야 할 것은 그 속에 든 인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우를 자주 범한다. 단 몇 마디의 말로도 그의 인격을 알아낼 수 있는데, 그의 말보다는 겉치장에만 시선를 보내기 때문이다.
평범한 복장에 비범한 언사와 행동, 그런 것이 대우 받는 사회가 믿음직한 사회이다.

올바른 평가

어느 중년의 화가가 영국의 처칠 수상을 찾아가 의견을 물었다.
“저는 화가인데 얼마 전 전시회에 작품을 하나 출품했습니다. 기대를 품고 열정을 다해 그림을 그렸습니다만, 그만 낙선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평생 동안 그림 한 장 그려 보지 않은 사람이 번번이 심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각하께서는 과연 그들이 그림을 심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화가의 얘기가 끝나자 처칠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당신의 얘기를 듣고 보니 딱하군요. 그러나 심사위원이 그림 한 장 그려 보지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저도 이만한 나이가 되기까지 달걀 하나 낳아본 일이 없지만, 그 달걀이 싱싱한지 상했는지는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말한 처칠은 다음과 같은 격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입니다. 앞으로 불평만 하지 마시고, 더 많은 노력으로 성공의 문턱에 오르도록 하십시오.”
참으로 훌륭한 비유이다.
우리는 흔히 전문가들이나 비평가들에 대하여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만이 그 분야의 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 말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그들은, 그들만이 알고 있는 너무도 세세하고 작은 지식으로 인하여, 오히려 문제 전체를 보는 안목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만큼 편견을 갖는다는 말이다. 마치 나무 하나하나의 특성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거기에 숲이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같이.
한국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한국인만은 아니다. 지금 막 처음으로 한국땅을 밟거나, 한국에서 수 년을 살고 있는 외국인일 수도 있고, 해외동포일 수도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뚜렷한 강점이 있다. 우리를 보는 신선한 감각과, 자기들 나름대로의 확실한 비교치가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사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그들이 우리의 문제를 찾아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비록 나무 하나하나의 특성은 못 보고 있겠지만, 거기 숲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보다 더 잘 아는 것이다.
우리는 줄 곳 이곳에서만 살아왔기에, 그래서 불편함과 문제점까지도 이미 익숙해져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들으면서 끝없는 자기 변신을 꾀할 때만이, 우리는 대내•대외적으로 똑같은 올바른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멋진 뿔, 가는 다리

아주 멋진 뿔을 가진 사슴이 숲 속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사슴은 연못에서 물을 마시다 연못에 비친 자기의 멋진 뿔을 보았다. 그 어떤 아름다운 왕관보다 훌륭하기만 했다.
“내 뿔은 정말 멋지구나. 그 어떤 동물의 뿔이 나의 이 뿔처럼 아름답단 말인가!”
사슴은 이렇게 스스로 감탄해하면서 깊은 행복에 젖어들었다. 그리고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몸매 전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시선이 다리에 이르자 못마땅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다리는 가늘고 길기만 해서 멋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찌 내 다리는 이리도 못생겼단 말인가. 이 못생긴 다리는 나의 멋진 뿔과 너무도 안 어울리지 않은가. 아무래도 하느님이 실수하신 것 같구나.”
사슴은 이렇게 불평을 하고 있었다.
이 때 어디선가 사자가 불쑥 나타났다. 사슴은 놀라 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먹이를 발견한 사자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사자는 쫓고 사슴은 쫓기는 숨막히는 순간이 시작되었다. 사슴은 가늘고 긴 다리로 날렵하게 달렸다. 사자도 맹렬히 쫓았지만 사슴의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쉽게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그런데 그 때, 사슴의 뿔이 그만 나뭇가지에 덜컥 걸리는 것이었다. 사슴은 온 힘을 다해 나뭇가지에 걸린 뿔을 빼내려고 했지만 쉽게 빠지지 않았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사자가 뒤에서 헐떡이며 달려와 사슴의 목을 덥석 물고 말았다. 사슴은 죽어가면서 슬프게 울부짖었다.
“아! 내가 잘못 알았구나. 가늘고 긴 이 멋없는 다리가 나를 살리는 은인이었고, 화려하고 멋진 이 뿔이 나를 해치는 원수였구나!”
사람도 마찬가지다.
거의 맹목적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들만 추구하려 하고, 수수하고 멋없지만 그래도 실용적인 것은 무시하려 한다. 그러나 모양이 예쁜 것일수록 위험요소는 더 많이 숨어 있는 법이다. 예쁜 얼굴 속에 교만심이 들어 있고, 매끄러운 달변 속에는 음모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평범하고 수수한 복장이 더욱 믿음직하고, 투박하지만 꾸밈없는 언행이 더욱 가치 있는 것이다. 예쁘고 멋진 뿔 때문에 생명을 잃고 만 사슴의 유언을 너나없이 깊이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큰 나무와 큰 사람

하느님을 열심히 믿고 따르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하느님이 자신의 기도 만큼은 틀림없이 들어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고 동네에 물이 들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트럭을 몰고 빨리 피하라고 소리를 쳤는데 이 젊은이는 꿈쩍하지 않았다. 하느님이 자기를 특별히 보호해 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물은 점점 불어났고 집과 집 사이로 배가 다니며 미쳐 피하지 못한 사람들을 실어날랐지만 그는 여전히 하느님만 의지하며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나처럼 신앙이 돈독한 사람을 버릴 하느님이 아니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집은 물 속에 잠기게 되었고 그는 물에서 허우적거렸다. 이번에는 핼리콥터가 사다리를 내려주며 올라오라고 했는데 그래도 그는 행동 없는 기도만 하다가 결국은 물에 빠져 죽었다.
하늘나라에 올라간 그가 하느님에게 항의했다.
“제가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데 이렇게 됩니까?”
하느님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을 했다.
“내가 너에게 트럭도 보냈고 배도 보냈으며 핼리콥터까지 보냈느니라.”
유대인의 교과서라 불리우는 탈무드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소망은 인간의 발전을 약속하는 매우 바람직한 것이지만, 그것에 행동이 없으면 오직 공염불일 뿐이다라는 것이 이 글의 내용이다.
그래서, 행동의 중요성을 익히 아는 우리가, 남다른 노력이나 신념으로 위대한 족적을 남긴 위인이나 성인들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흉내를 내면서까지 애를 써 보았지만, 역시 행동은 어렵다는 것만 느끼고 있지나 않는지…….
여기 좋은 말이 있으니, 그래도 멈추지 말고 행동을 계속해 보자.
목장지하패(木長之下敗)
인장지하승(人長之下勝)
큰 나무 밑에 있는 작은 나무는 큰 나무에 가려 큰 나무가 되지 못하지만, 큰 사람 밑에서 자라는 사람은 큰 사람의 흉내를 내다가 끝내는 큰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이 멋진 표현에 위안을 받으며, 끝없이 그들을 흉내내며 계속 따라가 보자. 그러면 그들이 될 수 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전시에 나폴레옹이 후방 막사에서 곤히 자고 있는데, 부관 한 명이 급히 달려와 그를 깨웠다.
“무슨 일이냐?”
잠에서 깨어난 나폴레옹이 물었다.
“예, 방금 전방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우리 프랑스 군대가 적군을 크게 물리쳤답니다.”
나폴레옹은 승전했다는 소식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부관을 향해 짜증을 내며 말했다.
“이봐, 부관. 그게 무슨 급한 보고라고 잠을 깨우나.”
“예? 무슨 말씀이신지요?”
부관이 영문을 몰라 물었다.
“부관, 잠을 깨워야 할 정도의 급한 보고는 우리 아군이 적군에게 패했을 때라네. 그 때는 긴급히 지원해야 하거든. 만일 그 때 긴급히 지원하지 않으면 병사들의 피해도 커지고 사기도 떨어져 다음 전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지만, 승전시에는 병사들의 사기도 높아서 문제가 없는 것이네. 중요한 건 패전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게.”
이렇게 말한 나폴레옹은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한다.
전쟁에서, 승전이나 패전은 그 어느 것 모두 증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폴레옹이 이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문제의 깊이와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부관에게, 승전보다는 패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 준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관례적으로 행하고 있는 몇 가지 행동을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배가 출항하게 되면 성대히 환송식을 해주지만, 입항할 때는 별로 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이상한 일이다. 떠나는 배는 그 미래를 알 수 없는 것이고, 입항하는 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딪고 무사히 도착하는 것인데 말이다. 시작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인생도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상습적으로 아기가 태어나면 축복을 해준다. 그러나 이제 막 태어난 아기는 떠나가는 배처럼 아직 한 일이 없다. 기나긴 항해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반면에 지금 막 숨을 거둔 사람은 귀항한 배와 같다. 목적지에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본질을 벗어난 허상만 쫓지 말고 진짜 중요한 본질을 과감히 추구해 보자.

학력의 참뜻

자동차왕이라 불리우는 헨리 포드는 인사관리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어느 날, 채용된지 얼마 되지 않은 사원 하나가 포드의 방을 찾아왔다.
“무슨 일로 왔나?”
포드가 물었다.
“사장님께 저의 불만을 한 가지 말씀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좋아, 말해 보게.”
포드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말을 시작했다.
“예,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이 회사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않은 사람과 똑같은 일을 한다는데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음, 그 점이 불만이어서 내게 따지러 왔단 말이군.”
“예, 그렇습니다.”
“좋아, 입사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입사원이 내게 불만을 털어 놓으니 그 뱃장이 마음에 드는군. 그럼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얘기해 주지. 회사에서 자네를 채용한 이유는, 자네가 소유한 대학 졸업장이 아니고 바로 자네가 소유한 능력일세. 아무리 자네가 대학을 졸업했다 해도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보다 더 나은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하면 무엇이 그들과 다르다고 말하겠나? 그러니 자네가 더 좋은 자리를 원하거든 학력에 신경쓰지 말고 오늘부터라도 그들보다 더 훌륭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게.”
당연한 말이다. 학벌과 지식의 필요성이 무엇인지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말이다.
학벌을 능력에 바로 적용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더 배웠으니 더 가능성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가능성은 오직 가능성일 뿐이다. 대학은 지식을 배우는 곳이다. 그러나 지식의 증가량이 능력의 증가량과 일치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식은 대학 아닌 곳에서도 늘릴 수 있고, 능력도 또한 그렇다. 따라서 누가 더 능력이 있느냐의 문제는 누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더 높은 효율을 올리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물론, 대학의 목적은 지식의 획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의 함양에도 높은 비중을 두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인격함양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학교 아닌 곳에서 함양시킬 수 있다. 인격함양은 실천학문이지 이론학문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대학을 다닌 사람은 졸업장 하나의 의미만을 내세워서는 안된다. 지식도 인격도 한 수 위라는 것을 직접 보여 주어야 한다. 그렇게 보여 줄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졸업장의 참뜻이 아니겠는가?

물 한통의 기적

어느 병사가 소대원과 더불어 진지방어의 임무를 띄고 치열한 전투를 치루다 총탄에 맞아 많은 피를 흘리고 애타게 물을 찾았다.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병사들은 물을 많이 마시게 되어 물이 바닥났기 때문이었다. 이에 소대장은 만일을 대비해서 조금이나마 남겨둔 자신의 물통을 꺼내어 그 병사에게 건네 주었다.
급하게 물통을 받아든 병사가 물을 막 마시려는 순간, 소대원 전부가 자신이 들고 있는 물통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 역시 심한 갈증에 목이 말랐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 병사는 물통을 거꾸로 세워 꿀꺽꿀꺽 맛있게 마셨고, 남은 물통의 물을 옆의 병사에게 건네 주었다. 그러자 그 물통을 받아든 병사도 똑같은 동작으로 그것을 꿀꺽꿀꺽 마시더니 다시 그 옆의 병사에게……, 이렇게 일순배하며 저 끝에 있던 신병에게까지 그 물통이 인계되었다. 물통을 받아든 신병은 깜짝 놀랐다. 원래 물이 많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아직도 물이 제법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전 소대원은 마시는 시늉만 하고는, 실제로 아무도 마시지 않았던 것이다. 그 신병도 역시 앞의 고참 병사와 같이 시늉만 하고 물통을 소대장에게 바쳤다.
소대장은 의연하게 말했다.
“소대원 여러분, 우리는 피를 나눈 형제애보다 더 뜨거운 전우애를 갖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진지를 지킬 것이다.”
그리고 그 진지는 잘 지켜졌으며, 부상당한 그 병사도 쉽게 회복되었다.
전우애란 이런 것이다. 아니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 남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 희생이 곧 사랑이고, 이러한 사랑 위에서 기적도 생겨나는 것이다.
“먼저 주어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이것은 어리석고 순진한 사람의 얘기가 아니고, 사랑의 실체를 아는 사람의 말인 것이다.

결정하자!

청소년과 기성세대와의 차이점의 하나는, 청소년들은 그들 앞에 다가올 (미래에 대한) 무언가에 대해서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는 반면에,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미래에 대한 기대는 두려움 뿐이고 오직 현실이라는 관습적인 틀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라고 말한 리처드 바크의 말은 기성세대도 잊지 말아야 할 명언인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꿈이 하나씩 무너지면서 좌절을 배웠고 관습의 벽에 갇혀 버렸다. ‘오늘이 정녕 내 인생 최후의 날이라 해도 즐겁게 맞이할 수 있을 만큼 자신있게 살고 있는가?’라고 스스로 진지하게 반문해야 한다.
우리가 느끼고 있는 좌절이나 혼란은, 사실은 어떤 일에 대하여 그 동안 소신있는 결정을 해오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어떤 중요한 순간에도 스스로 결정을 하지 못하고, 타인의 의견이나 주변의 대세에만 따르다 보니 그런 결과가 찾아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어느 장군의 말은 명언 중 명언이라 하겠다.
“결정하라! 비록 그것이 잘못된 결정이라 하더라도 우선 결정을 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전혀 결정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라는 그 장군의 말 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결정하는 버릇을 가지라고 적극 권해야 한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왜 내가 이 학과를 공부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일터에 나선 젊은이들도 왜 자기가 그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내린 결정이라면 본인이 책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내려준 결정에 대해서는 책임지려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야 그것에 대한 만족의 크기도 최대가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자기가 직접 결정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결정은 응집력을 낳는다. 그 응집력이야말로 인간이 갖추어야 할 절대적인 요소인 것이다.
아미엘의 다음 말에 위안을 받으며 결정의 본질을 이해해 보자.
“결정하기 전에 완전히 알고자 하는 사람은 결정할 수 없다!”

아홉번째

시작하자!

“우리 마음의 어딘가 저편에서는,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서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실제로 행동이 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무겁고 힘든 시간이 시시각각으로 흘러가고 있다.”
여러분도 이런 경험을 했는가.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그것을 시작해야 한다.
할 일을 미룬다 해서 저절로 그것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힘차게 직접 그것을 시작하는 길밖에 없다. 만일 그렇게 시작하기만 한다면, 전에는 아득하고 멀게만 보였던 그 일이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있고, 안개처럼 넓게 퍼져 우리의 시야를 흐리게 했던 불안의 실체도 실상은 별것이 아니라도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도시의 7블럭을 덮은 짙은 안개도 물 한 잔에 불과하다고 한다. 불안의 실체도 이와 같은 허구적 속성을 갖는다. 직장에서 5배의 월급을 받는 사람이 일도 (양적으로) 5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만 10∼20% 정도의 더 깊은 생각과 행동만으로 그런 대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시작하라!
시작이 반이요,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은 시작의 중요성과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미지의 천릿길 첫 여행을 앞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얼마의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지만, 그 반대급부도 또한 가질 수 있다. 미지의 땅에 대한 호기심과, 무언가 새로운 일이 성취될 것이라는 희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일의 시작은 여행길에 오르는 것과 같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사실도 배운다.
우리와 다르게 살아도 그들 나름대로 불편이 없다는 사실로부터, 그들의 환경과 역사도 배운다. 그 외에도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운다. 더욱이 이렇게 쌓여가는 축적된 경험은 지혜의 눈을 뜨게 한다.
그렇게 어렵게 시작했어도 실패할 수가 있다.
만일 그렇다면, 그 다음에 잘하면 된다. 또 그런 실패는 실패도 아니다. 왜냐하면 진짜 실패란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실패가 아니라 실패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현인들은 말하고 있지 않은가. 실패하기 위해서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사고 방식, 이것이 바로 실패를 피하는 대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 마음 속 어디에선가 원하는 그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해 보자.

따끔한 야유

I. 뉴턴(1642-1727)을 모르는 과학도는 없다. 만유인력으로 대변되는 그의 업적은 운동의 법칙, 미적분학, 스펙트럼 등등 일일이 열거하려 해도 끝이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런 위대한 업적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문제를 보는 안목이 높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문제의 본질적 원리 추구’에 강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가 이렇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사실 그는 어렸을 때 그렇게까지 주목받는 대상은 아니었다. 약간의 재주는 있었다지만 학교 성적도 좋지 못해서 반 아이들의 놀림을 받기까지 했다. 어느 날 어린 뉴턴은 장난감 물레방아를 만들어 반 아이들에게 자랑을 했다. 반 아이들은 뉴턴이 만든 장난감 물레방아가 훌륭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뉴턴의 자랑하는 모습이 눈에 거슬러 시비를 걸었다.
“그래, 네가 똑똑해서 이 장난감을 만들었단 말이지. 그럼 이 물레방아가 도는 이치를 설명해 주겠니?”
“이치라니?”
“야, 넌 이치도 모르니? 그 물레방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것을 설명해 보란 말이야!”
한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물었지만 어린 뉴턴은 사실 그 이유를 몰랐다. 그는 그저 생각나는대로 만들었던 것이다. 뉴턴이 우물쭈물 대답을 못하자, 방금 전의 아이가 말했다.
“자기가 만들고도 이치를 모르니 너는 목수와 같아. 목수는 과학자가 아니지만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거든. 그런 건 머리보다는 손재주만 있으면 되는 거야.” 하고 핀잔을 주었다.
뉴턴은 그 핀잔을 이기지 못하고 그 아이와 심하게 싸웠다. 그러나 몸집이 큰 그 친구를 이길 수 없어서 오히려 매만 실컷 맞았다.
그 후로 뉴턴은 공부를 못하면 업신여김을 당한다는 사실과, 이치를 모르면 소용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항상 문제의 본질을 파헤치려고 애를 써서 끝내는 불후의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다. 그는 어릴 때 이 사건을 놓고 이렇게 회상했다.
“그 때 그 친구의 따끔한 야유가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인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위대한 과학자는 물론, 그러한 과학자를 배출하게 만든 어린 친구에게도 깊이 감사 드려야겠다.

패기와 용기 그리고 너그러움

F. 난센(1861-1930)과 R. 아문센(1872-1920)은 노르웨이가 배출한 세계적 극지 탐험가들이다.
난센은 1882년 그린란드 해역에 도달하여 동해안, 서해안을 탐험하였고, 1895년에는 북극탐험에 나서 개썰매와 카약으로 당시 최고의 북위점인 북위 86。13、6〃 지점까지 도달해서 명성을 날렸다. 그 후에도 대학에서 동물학 해양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제1차 세계대전중에는 포로송환 난민구제 및 전후의 평화처리 군축문제 등, 평화주의 활동을 한 사람이다.
한편 아문센은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지만 북극탐험에 관심을 가지고 지자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난센에 이어 미국의 R.E. 피어리가 1909년 북극점을 정복하자, 방향을 남극으로 돌려 1911년 12월 14일에 드디어 남극점을 최초로 정복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문센이 남극을 정복함에 있어서 난센과 이런 숨은 얘기가 있다.
어느 날, 난센의 집에 건장하게 생긴 젊은이가 찾아왔다. 난센이 응접실로 데려와 누구냐고 물으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 저는 아문센이라는 사람입니다. 선생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아문센의 당돌하면서도 용기 있어 보이는 행동이 난센의 마음에 들었다.
“무슨 부탁이요? 어서 말해 보구려.”
“예, 선생님께서는 이미 북극을 탐험하시고, 지금은 남극탐험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제게 양보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양보?”
난센이 궁금한듯 물었다.
“예, 선생님께서는 젊은 저를 위해 남극탐험을 단념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를 도와 주십시오!”
아문센이 이렇게 씩씩하게 말했다. 난센은 젊은 아문센의 패기 있는 행동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쾌히 승낙을 했고 아문센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남극탐험에 성공했다. 두 사람의 뜻깊은 만남이 남극탐험의 성공적인 결실을 가져온 것이다.
이 이야기는 마치 우리의 고전소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을 연상시킨다.
책만 읽으며 끼니를 연명하던 선비 허생이 당시 한양 제1의 부자인 변 부자를 찾아가 1만 냥을 꾸자고 당돌하게 말하니, 변부자가 흔쾌히 내주었다는 내용 말이다. 물론 이 두 사람도 생면부지의 사람이었다. 패기와 용기 그리고 너그러움이 엮어낸 이 두 이야기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성공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의 흔적

지혜로운 어머니가 한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의 기대와는 달리 온갖 못된 짓을 일삼았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수없이 타일렀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깊은 수심에 잠겼던 어머니가 아들을 불러 진지하게 말했다.
“여기 망치와 못이 있다. 이제 내가 유언이라고 해도 좋을 부탁을 하나 하겠다. 네가 옳지 못한 일을 했다고 생각되면 그 때마다 이 기둥에 못을 하나씩 박아라!”
어머니의 너무도 엄숙한 말씀이기에 말썽꾸러기 아들이었지만 차마 거절을 하지 못했다.
그 날부터 못이 하나 둘 박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니 기둥에는 무수히 많은 못이 박히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또 하나의 못을 박다가 이미 기둥에 못이 빽빽하게 박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아니, 그 날부터 내가 이토록 나쁜 짓을 많이 했단 말인가!”
아들은 갑자기 부끄러움이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는 급히 어머니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고 애절하게 말했다.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야 기둥에 못을 박으라는 어머니의 깊은 뜻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다시는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고맙다, 내 아들아! 너는 과연 나의 자랑스런 아들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니 이제부터는 열심히 살아라. 그리고 이제는 네가 착한 일을 할 때마다 기둥에 박힌 못을 하나씩 뽑도록 해라!”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이 날부터 아들은 새로운 사람이 되어 남의 어려운 일, 궂은 일에 몸을 아끼지 않고 도왔다.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친절했기에 온 동네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드디어 기둥의 못은 모두 뽑혔다. 그러나 못은 다 뽑혔어도 못자국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아들은 그 흔적을 볼 때마다 과거의 시간은 사라져도 시간의 흔적은 남는다는 교훈을 알게 되었다. 특히, 잘못 보낸 시간의 흔적은 그것이 뒤늦게 고쳐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남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뿌린대로 거둔다

어느 마을에 지혜로운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 노인은 덕망이 높아, 마을 사람들이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노인에게 자문을 받았고 그 때마다 노인은 현명한 조언을 해주었다.
어느 날 이 마을에 두 사람이 동시에 이사를 왔다. 마을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두 사람이 노인을 찾아왔다. 한 사람이 노인에게 물었다.
“이 마을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나직한 어조로 이렇게 반문했다.
“당신이 이사오기 전에 살았던 마을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까?”
“예, 참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 친절하고 다정했으니까요.”
“그렇다면 당신은 이 마을에서도 역시 똑같은 좋은 사람과 다정한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이 노인에게 똑같이 물었다. 노인도 똑같은 질문으로 반문했다.
“예, 아주 나쁜 사람들이었습니다. 서로 헐뜯고 다투는 아주 못된 사람들이었으니까요. 마을 사람들이 서로 욕하고 비평만 하면서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마을에서도 똑같은 나쁜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먼저 주어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라는 말뜻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는 이 노인의 얘기에 모두 여러분은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이런 의문은 생긴다.
‘내가 좋게 대하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나에게 좋게 대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도 계속 그에게 양보만 하고 좋게 대해야만 하는가?’가 바로 그 의문이다. 그 답은 ‘그렇다!’이다.
우리가 남에게 좋게 대한다는 뜻에는 간단히 몇 번만 잘해 준다는 것이 아니고 무한대로 잘해 주어서 끝까지 그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것은 마음을 비운다는 뜻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기대심리를 모두 없애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값진 일일 것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먼저 자기 자신을 바꾸어라”라는 말은 ‘철저히’ 자기 자신을 바꾸어야 원하는대로 세상이 바뀐다는 뜻인 것이다.

유명한 것, 훌륭한 것

엔리코 카루소(1873-1921)는 이탈리아 출신의 테너 가수이다. 감미로운 목소리를 가진 그는 많은 노력으로 폭넓은 음성영역을 구축하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만 607회나 출연하는 진기록을 보유하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초대형 가수이다. 그런데도 그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곳에서나 꺼리낌 없이 노래를 불러 사람들은 그를 자존심 없는 사람이라고 놀리기까지 했다.
어느 날 그가 시내를 걷다가 옛 친구를 만났다. 두 사람은 어느 음식점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이미 많은 손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두 사람이 음식을 청할 때 종업원이 그를 알아보고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요리사 아저씨! 테너 가수 카루소 선생님이 오셨어요.”
종업원의 말이 떨어지자 요리사가 즉시 달려왔다. 그리고는 아주 공손한 태도로 인사를 했다.
“선생님을 이곳에서 뵈올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평소에 선생님의 노래를 직접 듣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하고 요리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이곳에서 들려드리지요.”
카루소가 아주 쉽게 말했다.
“정말입니까? 선생님과 같은 세계적인 가수의 노래를 이렇게 쉽게 들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저는 지금 요리복을 입고 있는데 어쩌지요?”
그가 매우 미안해하며 말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카루소는 그를 위안시키고 즉시 노래를 시작했다.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식당 홀 안에 가득히 울려퍼졌다. 노래가 끝났을 때, 모든 손님들은 그가 카루소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의 아름다운 선율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요리사는 더욱 감격해했다.
잠시 후 식사가 시작되어 친구가 카루소에게 왜 아무곳에서나 그렇게 노래를 부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나의 노래를 듣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네. 더욱이 저 요리사도 요리를 맛있게 해서 남들을 기쁘게 해주는 예술가가 아닌가. 예술가가 예술가를 위해 노래 한곡 하는데 그렇게 인색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유명하다는 것과 훌륭하다는 것은 다르다!
자기의 재능을 발휘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은 유명한 것이지만, 어렵고 딱한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행위는 훌륭한 일인 것이다. 카루소의 폭넓은 인간존중 정신을 소위 유명하다는 사람 모두가 본받아야 할 것이다.

죽어가는 시간

파부슨이란 통계학 교수가 있어, 지난 100년간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업적을 통계적으로 조사하였다. 그의 연구가 끝날 때쯤 되어 제자 한 명이 찾아왔다. 서로간의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화제는 자연히 파부슨 교수의 연구 내용으로 옮겨갔다. 제자가 물었다.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의 특징은 하루 24시간 중 오후 6시부터 밤 10시까지의 4시간 동안을 남들과 다르게 알뜰하게 보냈다는 것이네.”
“예? 무슨 말씀인지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좋아, 자세히 말해 주지. 그러니까 직장에서 일이 끝나는 오후 6시부터 잠자리에 드는 밤 10시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성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갈림길이라는 말일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4시간 동안을 생산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네. 그런데 만일 이 4시간 동안을 자기에게 필요한 지식을 얻는데 사용한다면 누구나 성공을 할 수 있다는 말일세.
예를 들어, 은행원이라면 저축을 늘리는 방법을 생각하고, 생산 기술자라면 같은 조건에서 더 많은 생산품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하고, 선생이라면 교수법을 연구하는 것이 되겠지.
이렇게 매일 계속한다면 1년이면 1,460시간이 될 것이네. 대학에서 한 학기에 한 과목 강의 시간이 대체로 48시간 정도인 것에 비해 보면 이 1,460시간은 무려 그것의 30배나 되는 어마어마한 시간이라네. 더욱이 10년 동안을 이렇게 지낸다면 누구라도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어 성공하지 않겠나.
내가 확신하네. 자네도 내 말대로 그대로 해보게. 꼭 성공할 걸세.”
누구나 성공, 성공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타난 결과이고 그에 이르는 과정, 즉 성공의 과정을 파부슨 교수는 이렇게 매일 조금씩 목표를 잃지 않고 실천하는 것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그래서 죽어가는 저녁 6시부터 밤 10시까지의 시간을 살려보라는 것이다. 새겨둘 얘기다. 귀담아 들을 얘기다.

가득 채운 방

아들 셋을 둔 사업가 아버지가 있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자식에게 사업을 물려주려고 생각하다가 궁리 끝에 세 아들을 불러 각각 30센트씩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각각 30센트를 받았다. 시장이든 어디든 가서 이 방을 가득 채울 수 있다고 생각되는 물건을 사 오너라. 가장 부피가 크고 훌륭한 것을 사오는 사람에게 사업을 물려주겠다.”
첫째 아들은 장에 가서 건초 파는 사람을 만났다. 그래서 건초 한 짐을 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방의 3분의 1도 채우지 못했다.
둘째 아들은 몇 뭉치의 솜을 갖고 들어왔다. 역시 방의 3분의 2를 채우지 못했다.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며 셋째 아들을 기다렸다. 어둠이 깔리고 늦게서야 셋째 아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의 손에는 가느다란 양초 한 자루가 고작이었다. 아버지가 실망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셋째야, 그래 너는 무엇을 가져왔느냐?”
셋째 아들이 조용히 말했다.
“예, 방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저는 아버지께서 주신 30센트를 가지고 시장에 갔는데 불쌍한 거지를 만나 10센트를 주었습니다. 곧이어 배고파 우는 어린 아이를 만나 빵을 사 주었으며, 나머지 돈으로 이 초 한 자루를 샀습니다.”
이렇게 말한 셋째 아들은 성냥을 그어 촛불을 밝혔다. 방안은 어둠이 걷히고 환한 불빛으로 채워졌다.
“그렇구나! 이렇게 촛불을 켜니 방안에 빛이 가득 찼구나.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며 기뻐했다. 사업은 말할 것도 없이 셋째 아들에게 인계되었다.
방이라는 일정한 공간을 채우는 문제에서 상식적인 방법으로 대응했던 두 형들과는 달리, 무한 전파의 성질을 가진 빛으로 대응한 셋째 아들의 방법이 돋보인다. 이것은 문제해결에 있어서 상식을 뛰어넘는 비상한 방법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명 ‘유레카’ 라고도 부른다.
사실 우리 삶도 문제의 연속일 뿐이고, 그래서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의 문제 해결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양질의 삶을 원하거나 내용있는 해결책을 창출함에 있어서, 앞에서 보여준 셋째 아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비상한 생각(이 이야기에서처럼 비용도 적게 들 수가 있다.)도 반드시 해 보아야 되지 않겠는가.

그냥 한 번 웃어보자

싱겁고 재미있는 우스갯소리를 해볼까 한다.
한 장학관이 어느 작은 마을의 초등학교를 시찰하게 되었다. 장학관은 학교장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학교 시설과 학습 현장을 둘러 보았다. 어떤 교실에 들어가니 마침 과학 시간이었다. 교탁 위에는 선생의 교육 자료로 지구의가 놓여져 있었다. 장학관이 한 학생에게 물었다.
“이 지구의는 왜 기울어졌나요?”
이에 질문을 받은 어린 학생이 얼굴이 빨개지더니 대들듯 대답하는 것이었다.
“예, 제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학생의 전혀 엉뚱한 대답에 장학관은 어이가 없어서 옆에 서 있던 선생에게 따졌다.
“아니,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런 대답이 나옵니까?”
그러자 선생도 얼굴을 붉히며 더듬더듬 말했다.
“이 지구의는 사올 때부터 원래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선생의 이 대답에 장학관은 정말 놀랐다. 당장 교장을 불러 호령을 했다.
“아니, 교장은 선생이 수업할 때 참관도 안하오. 어떻게 선생이 저렇게 말한단 말이오.”
그러자 교장은 선생을 향해 호통을 쳤다.
“선생, 내가 그래서 많이 얘기했잖소? 물건을 살 때는 제대로 된 것을 사 오라고. 이게 뭐요! 이렇게 삐뚤어진 것을 사오니까 장학관에게 나까지 야단을 맞는 게 아니오. 당장 바꿔 오시오!” 참으로 재미있는 얘기다. 지면이 남으니 하나만 더 해 보자.
유대인 한 사람이 랍비를 찾아가 어려운 질문을 했다.
“랍비님, 사람이 술을 마시면 취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 그건 몸속에는 착함과 악함이 있는데 술이 들어가면 이 두 개가 뒤섞여 뒤죽박죽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물이 들어갈 때는 왜 뒤섞이지 않나요.”
이 말에 랍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당신은 물을 마시고 취하는 사람을 봤소? 당신이 처음 내게 물어본 건 술이지 않소? 술을 마시면 취하니까 그렇게 섞이는 거지. 마셔도 취하지 않는 물은 특별히 설명할 게 뭐가 있겠소.”
참 재미있는 얘기 같아서 골라 보았다. 답답한 세상에서 가끔씩은 이렇게 생각 없이 웃어
보았으면 좋겠다.

조금씩 조금씩…

아모스 로렌스는 미국의 자선사업가다.
그가 젊어서 어떤 가게의 점원으로 있을 때, 사장은 점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술자리를 자주 마련했다. 그러나 워낙 성실한 로렌스는 단 한 잔의 술도 마시지 않고 항상 사양했다.
그래도 술자리가 자주 마련되다 보니 사장과 친구들은 로렌스를 유혹하고 싶어졌다.
“더는 권하지 않을 테니 딱 한 잔만 마셔 보게. 그 다음부터는 자네의 뜻에 맡기겠네.” 하도 사람들이 조르기에 로렌스는 잔을 들고 마셨다. 로렌스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처음 본 사장과 친구들은 모두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래, 지금은 사실 술맛을 모를 거야. 그렇지만 앞으로 자꾸 마시다 보면 술맛을 알게 되지. 적당한 분량은 몸에도 좋은 것이라네.”
사장과 친구들이 이렇게 말했다. 그 후로 이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로렌스는 술을 조금씩 마시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술맛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로렌스는 갑자기 술 마시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는 자기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몹시 놀랐다.
‘아니, 내가 술 마시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나다니…… . 이렇게 자꾸 마시다 보면 결국 중독이 되는 거로구나. 큰일 나겠다. 이제부터라도 술을 끊어야겠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고 그 후로는 일체 술을 마시지 않았다.
상당수가 이미 로렌스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을 것이다. 그것이 술이냐, 담배냐, 마약이냐, 노름이냐 하는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중독은 갑자기 찾아오는 현상이 아니다. 조금씩 조금씩 가느다란 신호음을 보내며 우리 몸속으로 몰래 침투해 들어오는 불청객인 것이다. 그리고는 끝내 손님이 아닌 주인이 되어 우리를 노예처럼 부리고 마는 것이다.
그 신호음을 듣느냐 못듣느냐는 우리의 관찰력에 달려 있고, 그 신호음을 듣고 순응하느냐 역행하느냐는 우리의 의지력에 달려 있다.
다른 일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그것이 생각나면, 아모스 로렌스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이 위험 신호인 것이다. 그러니 중독에 의한 파멸을 피하기 위해서는 오직 관찰력이라는 예민한 청진기와 의지력이라는 강력한 마이신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열번째

촛불 하나의 의미

미국의 대부호였던 존 모레이는 단 한 푼의 돈도 헛되이 쓰지 않은 절약과 검소의 생활로 유명한 사람이다. 모레이의 절약 정신과 봉사 정신을 대표하는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저녁, 그가 응접실에서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예, 존 모레이 선생님을 뵙고자 해서 찾아왔는데요.”
“제가 바로 존 모레이입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존 모레이는 이렇게 말하고 할머니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자 그는 응접실 탁자 위에 켜져 있던 두 개의 촛불 중에서 하나를 껐다. 할머니는 이 모습을 보고 차마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렇게 늦게 찾아와 미안해요.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께 기부금을 좀 부탁드리려고 왔어요”
“어떤 기부금입니까?”
“예, 얼마 전에 세운 이 동네 학교가 지금 심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어요.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왔어요. 금액에 상관마시고 얼마라도 좋으니 도와 주세요.”
“알겠습니다. 5만 불을 드리겠습니다.”
“예? 5만 불이라고요?”
할머니는 5만 불이나 되는 거금을 선뜻 내놓는 모레이에게 크게 놀랐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정말 훌륭하시군요. 제가 잠시나마 선생님을 의심했던 것을 용서해 주세요. 제가 이 응접실에 들어왔을 때, 선생님께서 촛불 하나를 끄셨어요. 그 순간 저는 선생님이 인색한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5만 불이나 되는 거금을 단번에 희사하셨으니 저의 짧은 생각이 부끄러워집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할머니께서 아이들을 위해 이렇게 늦게까지 모금운동을 하시는데 제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제가 아까 촛불 하나를 끈 사연은 촛값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책을 읽을 때는 작은 글자를 읽기 때문에 두 개의 초가 필요하지만, 그냥 얘기할 때는 하나라도 충분해서 불을 껐던 것입니다. 저는 이런 절약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할머니는 이 말을 듣고 모레이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대부호의 근검 절약하는 모습을 본받아, 우리도 허영과 허세의 탈을 벗어 던져야 하지 않겠는가!

가장 귀한 예물

조선 초기의 의학자 유효통의 아들과 정승 황보인의 딸이 서로 혼인하게 되어 유 대감은 황정승 댁으로 함을 보냈다. 유 대감이 부자인지라 황 정승 댁에서는 기대를 많이 했는데, 함에서 나온 것은 채단이나 보석이 아니고 책만 가득 들어 있었다. 황 정승은 크게 실망했으나 결혼예물이고 보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후에 황 정승이 유 대감을 만나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유 대감이 대답하기를 “금은보화가 아무리 많아도 훌륭한 책 한 권만 못하지 않습니까? 인간의 도리를 깨우쳐 주는 책보다 귀한 것이 있겠습니까? 이런 훌륭한 책을 함 속에 넣었으니 자식들은 가장 값진 예물을 받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유 대감의 이 의미있는 결혼 예물 이야기는 탈무드의 명언과 궤를 같이 한다.
“현명한 부모는 자식에게 물고기를 잡아주지 않고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라는 그 의미 깊은 명언을 말이다.
자식의 배고파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부모의 마음은 괴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죽은 후에도 자식의 배를 직접 채워줄 방법은 없는 일이다. 그래서 물고기를 많이 잡아놓고 가려 하지만, 단 3일을 버티지 못하고 썩으니 그럴 수도 없다. 아니 물고기를 배불리 먹기는커녕, 파리떼와 병균으로 오히려 생고생을 시킬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할 것이다. 그래서 현명한 부모는, 그 때마다 냇가에 나가 언제나 싱싱한 물고기로 배를 채울 수 있는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자 했던 것이다.
어찌 물고기 뿐이겠는가? 곡식도 그렇고 금은보화도 그렇다. 창고에 가득 채워 놓은 곡식도 1년이 지나면 썩는다. 금은보화가 썩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허영심과 나쁜 친구들을 끌어들이는 계기만 될 뿐이다. 도둑들의 탈취 대상이 되어 불안에 떨 뿐이다. 참으로 난감했던 것이다.
그래서 책이 필요하고 책이 훌륭한 것이다.
책은 소비재가 아니고 생산재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책 속에 물고기는 없어도 물고기 잡는 방법이 있고, 곡식과 금은보화는 없어도 그것을 얻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유형적인 물질 뿐만 아니라 무형적인 인격, 인간의 도리, 진리까지도 얻을 수 있다. 참으로 못하는 것이 없고 못 구하는 것이 없으니 책보다 값진 것은 없는 것이다. 그래도 결정적인 결점이 하나 있으니, 우리가 책을 부르지 않는 한 그가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훌륭한 책을 우리가 먼저 찾아 나서야 할 수밖에 없다. 유 대감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돈독한 신뢰

제2차 세계 대전 때다. 영국군 특공대 1개 분대가 중대한 임무를 띠고 적진 깊숙히 침투하게 되었다. 임무가 끝나면 정해진 장소로 다시 모이기로 했는데, 시간이 지났는데 한 명의 병사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분대장과 분대원은 초조한 마음으로 얼마를 더 기다렸는데도 그 병사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분대장은 적진에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되어 분대원에게 철수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한 명의 병사가 나서더니 분대장에게 그 돌아오지 않는 병사를 찾으러 가겠다고 말했다. 분대장은 그 병사마저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병사들의 사기를 생각하여 마지못해 허락하고 분대원을 이끌고 본대로 돌아갔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본대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분대장과 분대원 앞에 드디어 실종된 병사를 찾겠다던 병사가 돌아왔다. 그는 혼자였고 그 분대원의 표정도 그리 밝지 않았다. 이에 분대장이 상황을 잠작하고 말했다.
“그것 보라구. 가망이 없는 일이었어. 우리는 괜히 자네마저 못 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무척 염려했다네. 자네라도 무사히 돌아와 주어 다행이야.”
이 말에 그 병사는 또렷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되돌아가서 그를 발견했을 때 그는 크게 부상을 당한 몸이었지만 그래도 살아 있었습니다. 저를 보더니 꼭 찾으러올 줄 알았다면서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그리고 그
는 품에서 이것을 꺼내어 제게 주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며 그를 안아 일으켰을 때 그는 곧 운명하고 말았습니다. 분대장님과 여러 분대원의 행복을 기원하면서요. 참으로 애통했습니다만 더 이상 어쩔 수도 없어서 그를 묻어주고 이제야 돌아오는 길입니다.” 이렇게 말한 그 병사는 죽은 병사가 주었다는 문서를 분대장에게 넘겨 주었다. 병사의 이 말을 들은 분대장과 분대원은 죽은 병사를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생사를 뛰어넘은 두 병사간의 돈독한 신뢰를 우리도 가슴 깊이 담아두자.

정직의 응답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살아가는 청년이 있었다.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었기에 어린 동생을 위해 남보다 열심히 일해야 했다. 청년은 매일 시장에 나가 무거운 짐을 대신 져주고 얼마의 품삯을 받았다.
어느 날 청년은 어린 동생을 생각하며 품삯으로 특별히 떡을 샀다. 동생은 형이 준 떡을 아주 맛있게 먹었고 형은 동생의 그 귀여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 때 동생이 갑자기 “아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왜 그러니? 떡 속에 돌이라도 있니?”
형이 이렇게 묻고 나서 동생의 입안을 보니 놀랍게도 동생의 입 속에는 작은 황금 한 닢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청년은 그 돈을 가지고 떡집으로 갔다.
“주인 어른, 아까 산 떡 속에서 이 돈이 나왔습니다. 돈을 잃고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까?”
청년은 이렇게 말하면서 그 황금 한 닢을 내놓고 돌아섰다. 이 때 주인이 황급히 청년을 부르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젊은이, 이 돈은 젊은이 거요.”
“아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떡을 샀지 그 안의 돈을 산 것은 아닙니다.”
청년이 가볍게 사양했다.
“내 말을 들어보시오. 젊은이! 그 동안 나는 당신같은 사람을 찾기 위하여 얼마나 많이 이런 행동을 했는지 모른다오. 그러나 아무도 동전을 되돌려 주는 사람은 없었소. 이제는 낙심이 되어 지쳐 있었는데 이제야 당신 같은 정직한 사람을 만나게 된 거요.”
주인은 이렇게 말하고 그를 의자에 앉히더니 이런 얘기를 계속했다.
“나는 이제 늙어서 얼마를 더 살지 모르오. 내게는 아내도 자식도 없소. 그래서 이 떡집을 물려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었소. 이제 당신 같은 정직한 사람을 만났으니 당신이 이 떡집을 맡아 주시오.”
떡집 주인은 믿음직한 후계자를 만났다는 듯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꾸민 얘기니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고 간단히 취급받을지도 모르겠지만, 물질만능화 된 이 시대에 정직을 생활 신조로 삼는 풍토가 아쉬워 소개했다.
모든 잘못을 환경의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환경을 자기에 맞게 끌어당길 수 있는 정직함을 내세우면, 그 때에는 반드시 행운까지 다가오는 것이다. 그 때의 행운은 사실 행운이랄 수 없는 당연한 결실인 것이다. 즉, 정직의 응답은 바로 행운이라는 얘기다.

빛과 어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겨울 저녁, 눈이 그치고 밝은 햇살이 잠시 찾아오자 거리는 온통 은빛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방안에서 명상에 잠겨 있던 목사가, 명상에서 깨어나 창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밖 거리 풍경은 아름다웠고, 아이들은 무리지어 즐겁게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목사는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보냈다.
곧 이어 어둠이 찾아오자, 아이들은 놀이를 그치고 아쉬운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음, 아이들은 빛을 즐기고 어둠을 싫어하는구나!”
목사가 아쉽게 말했다.
얼마 전까지 아이들이 노닐던 그 거리에, 이제는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그러자 어둠 속에
서 어른들의 모습이 하나 둘 나타났다. 곧이어, 목사의 집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
사가 달려가 대문을 여니 초라한 복장의 한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은 매우 비굴한 표정으
로 이렇게 말했다.
“저, 죄송합니다만……, 제가 오늘 밤에 파티에 초청을 받았는데 마땅한 옷이 없어서…….”
“예, 알겠습니다. 마침 제게 양복이 있으니 입고 가시지요.”
노인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화려한 복장의 멋쟁이 아가씨가 찾아왔다.
“목사님, 돈 1만 원만 빌려 주실래요? 애인과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교통비가 없어서요.”
“그럽시다. 마침 제게 그만한 돈이 있습니다.”
그녀의 뻔뻔스러운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사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주었다.
그녀도 떠나간 뒤, 목사는 다시 창가로 걸어갔다.
이제 밤거리에는, 온통 5색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있었고, 그 앞으로 수많은 어른
들의 행렬이 그치지 않았다. 목사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음, 어른들은 햇빛을 싫어하고, 어둠을 즐기는구나!”
그리고는 또 이렇게 말했다.
“어른들도 옛날에는 모두 아이들이었을텐데, 언제부터 햇빛을 싫어하고 어둠을 즐기게 되었
을까?”

“이제 그만 내려가자!”

소아마비로 다리를 몹시 저는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있었다. 자신의 다리 저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한 아들은 소극적이었고 신경질적이었다. 이러한 아들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아버지가, 어느 화창한 휴일에 아들을 달래어 함께 등산길에 올랐다.
아버지의 솔깃한 얘기에 이끌려 막상 산에는 올랐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돌길에 채이며 자꾸만 넘어졌다. 그 때마다 아들은 신경질과 투정을 마구 부렸고, 아버지는 계속 토닥이며 갈길을 재촉했다.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다. 여기서 정상이 그리 멀지 않단다.”
아들은 이 말에 힘을 얻으며 걷고 또 걸었다. 그래도 정상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온몸에 시퍼런 멍까지 생기고 말았다. 이제 아들의 마음은 온통 오기 뿐이었다.
“오냐, 좋다. 내 기어이 정상을 밟으리라.”
아들은 이렇게 맹세하며 이를 악물고 걸었다.
드디어 정상이 눈 앞에 나타났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정상을 본 아들은 갑자기 온몸에 힘이 솟았다.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고, 드디어 정상 몇 발자국 앞에까지 이르렀다.
이 때, 부지런히 걷고 있는 아들의 발걸음을 아버지가 막았다.
“얘야, 이제 그만 내려가자!”
아들은 놀랐다. 아니 기가 막혔다. 여지껏 고생하며 올라왔는데 지금 여기서 돌아가자니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아니, 아버지! 정상이 바로 조기 아닙니까? 그런데 여기서 돌아가자니요? 제가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아시잖아요?”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에 가득한 땀방울을 닦아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얘야, 우리는 산에 오른 것이지 정상에 오른 것은 아니란다. 지금 네가 원하는 정상은 언제고 너 혼자 와서 밟으렴. 중요한 것은, 네가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과 그 용기야! 네가 원하기만 하면 너는 언제고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확인하지 않았느냐? 사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도 정상에 올라있는 너의 모습이 아니라, 오르겠다는 너의 의지였어. 그 동안 너는 너무 의지가 약했었거든.”
아들은 아버지의 이 말에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 품에 안겼다. 아버지의 깊은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상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지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또 오르더라도 그 과정이 깨끗해야 한다. 정상에 오르기에 앞서,‘정상은 누구에게도 정복되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알고, 우선 인격연마에 힘쓸 일이다.

‘같아요’병

어느 한국어에 능통한 외국인(그는 바이어로서 한국 여인과 결혼해서 한국에서만 10년을 넘게 살아온, 그래서 한국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다)이 한국에서 느낀 얘기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실수를 하고 있는데, 그가 그 중에 하나를 지적했다. 그 것은 무슨 말끝에 ‘같아요’나 ‘같습니다’라는 말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우리는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이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아이들의 경우는 더욱 그런 것 같다.(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표현이냐만)
그는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한다.
‘……맛있는 것 같아요, ……예쁜 것 같아요, ……불쌍한 것 같아요.’라는 말은 자기의 주관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말인데도 ‘같아요’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있다.
심지어 이런 예도 있다. 어느 회사 부장이 경쟁사의 상품을 분석하고 대안을 내놓았는데 사장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우리 회사가 이번에 이 신상품을 개발해서 시판하게 되면 경쟁사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 같아요.”
‘심각하다’는 강한 표현에 ‘같아요’라는 약한 논조를 갖다 붙이니 사장으로서는 듣기 거북했을 것이다.
“같긴 뭐가 같단 말이오! 말끝마다 ‘같아요’이니 그래 부장의 생각은 개발하자는 거요, 말자는 거요!”
사장은 고함을 치고 말았다.
이렇게 지적을 받고 보니 우리의 ‘같아요’ 표현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부장이
“예, 개발해야 합니다. 그러면 경쟁사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라는 힘찬 대답을 했다던가, 아니면,
“신제품을 개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투자비에 비해 얻는 소득은 지극히 미미하니까요.”라는 소신있는 답변을 했다면 그의 고함 소리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고 저렇게도 말할 수 있는 ‘같아요’라는 말꼬리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해 보려는 엉터리 성공학에 사장은 철퇴를 가한 것이다.
눈치와 요령으로 간에도 붙고 쓸개에도 붙고자 하는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도 있었겠지만, 지금과 같은 ‘같아요’ 병이 확산된다면 이 땅에서 자기 주장의 목소리는 영영 사라
지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하기 어려운 세 가지 말

나는 모릅니다.
나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 잘못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 말은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말들이라 한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말하기 더욱 어렵고, 직책이 높아지면서 말하기 더욱 어렵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말하기 특히 어렵고, 선생이 학생들에게 말하기 특히 어렵고, 상사가 부하들에게 말하기 특히 어렵고,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에게 말하기 특히 어렵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모릅니다. : 수많은 사람들이 이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은 이 말을 함으로써 자신이 못난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염려하고 있는데, 나는 오히려 이러한 사실에 놀란다.
나는 이 말을 20년 전에도 사용했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당시보다 분명히 더 많이 알고 있겠지만 여전히 “나는 모릅니다.”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 사람들은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 자신의 부족함이나, 자신이 하는 일에 부적합함을 노출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이 말하기를 꺼리고 있다.
그러나 세상사의 이치는 어떠한가?
서로 부족하기 때문에 도움을 청하고, 또 도움을 받도록 되어 있지 않은가. 그 누구도 남의 도움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다. 도움을 청하지 않은 행위야말로 근시안적의 편협한 생각인 것이다.
내 잘못이었습니다. : 사람들, 특히 권위를 갖고자 하는 사람들(경영자, 고급 간부, 완벽주의자 등등)은 어떤 일에 실수가 생기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 하는 일에 실수가 없다고 유능한 사람인가? 항상 발전없는 제자리 걸음으로 같은 일만 되풀이한다는 뜻은 아닌가?
발전에는 항상 새로운 도전이 따르기 마련일 것이고, 그러다 보면 실수는 필연적인 과정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실수가 없는 것이 아니고, 그 실수에 대한 “내 잘못이었습니다.”라고 솔직히 시인하는 태도와 그에 대한 처리와 대응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이 말하기 어렵다는 이 세 가지 말을 들어 보았는데, 알고 보니 이 말들은 그렇게 두려워할 말들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마음 속의 억압된 감정을 숨기지 말고 마음껏 발산하여 정신의 안정과 균형을 찾는 카타르시스를 구축해 보자. 이 세 가지 말을 지적한 사람은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쳐 주지 않은 것들?이란 책의 저자인 마크 H. 맥코맥이다.

박사학위보다 값진 것

사람들이 그토록 갖고자 하는 것 중의 하나로 박사학위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그 박사학위를 취득한 어느 유학생은 그보다 값진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나는 독일로 유학을 가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연구실과 하숙집만을 오가던 끝에 드디어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되었다. 청운의 부품 꿈이 성취되었고, 교수직도 보장되어 있는 터라서 마냥 기쁘기만 했다.
출국에 앞서 짐을 꾸려 놓고 나는 여기저기 작별인사를 다녔고, 마지막으로 그 동안 정든 하숙집 할머니에게 작별인사를 고할 때, 할머니는 나에게 잘 포장된 예쁜 선물 꾸러미를 주셨다.
“귀국해서 이 선물을 풀어 봐요. 쓸모가 있을 거예요.”
나는 감사히 그 선물을 받았고, 그것을 가방 속에 넣었다. 드디어 비행기에 오르니 만감이 교차하면서 지나간 유학생활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그러다가 문득 할머니의 선물이 생각났다. 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포장을 뜯었다.
그리고 나는 놀랐다. 아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안에 보이는 것은, 그 동안 내가 신다
버린 헌 양말이었으니 말이다. 그것들은 깨끗이 빨아져 있었고 또 잘 꿰매져 있었다. 메모도 한 장 보였다.
“부모님이 보내 주신 이 양말들을 쉽게 버리면 쓰나요? 잘사는 비결은 얼마나 버느냐가 아니고 어떻게 절약하느냐라고 생각되요. 아껴 쓰고 열심히 저축하면, 개인이나 국가나 모두 발전할 거예요.”
나는 크게 깨달았다. 할머니의 그 진정어린 충고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렇다! 나는 할머니 한 분을 통하여, 사실은 박사학위보다 값진 것을 배운 것이다. 그들의 기적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미래를 보게 되었다.
우리도 이래야 한다. 그들은 경제대국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기회 있을 때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힘주어 말하고 있다.
필자도 독일에서 1년간을 체류한 적이 있다. 상황은 별로 다르지 않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어느 집 대문 앞에 잘 정돈된 옷가지가 보여 저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 대답은 이랬다.
“아기 옷인데, 이제 그 집 아기는 다 커서 입을 수 없으니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라는 뜻이다.”
필자도 놀랐다. 그들이 그렇게 살았기에 통일도 이룬 것이고, G7의 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며, 나아가 유엔의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까지 발돋음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이런 정신은 ‘꼭’ 배워야 한다!

‘대통령을 보통사람처럼’

요즈음의 신문기사는 온통 전직 대통령 비자금 얘기로 채워져 있다. 이런 어이없는 내용을 읽으면서 필자는, ‘그가 평소에 말하던 보통사람처럼 행동했거나, 주변 인물들이라도 대통령을 보통사람처럼 대했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고, 이내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자신이 치매증 환자라고 밝힌 미국의 레이건(1911~)이 대통령 재직시 한 정신병자의 총탄을 맞고 급히 대학병원으로 수송된 적이 있다. 신분도 대통령에다가 70이 넘은 노구의 몸에 총탄이 박혔으니 그 수행원들이 얼마나 놀라고 당황했겠는가. 그런데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이 당황해하고 있을 때, 대통령의 주치의인 다니엘 루기가 보인 냉정함과 탁월한 판단력은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그는 경호원과 함께,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는 대통령을 신속히 병원으로 옮겼다. 남은 경호원, 경찰, 보도진들이 그 뒤를 따랐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당황한 측은 병원 의사들이었다. 가슴에 총을 맞아 피를 흘리는 대통령, 그리고 수십 명의 경호원, 경찰, 보도진들이 들이닥치니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 다니엘 루기가 침착하게 말했다.
“당황해하지 마시오. 환자를 대통령이라고 생각지 마시고, 보통의 총맞은 시민이라고 생각하시오.”
그제서야 의사들은 대통령을 응급실로 옮겨 놓고 치료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가 수술하느냐를 놓고 우왕좌왕했다.
“병원 측이 맡으시오. 이곳 시설은 당신들이 더 잘 알지 않소.”
역시 다니엘 루기의 말이었다. 이렇게 해서 대통령은 수술을 받게 되었고, 수술도 성공해서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대통령도 사람인데, 그것을 너무 의식하고 부담감을 갖는다면 오히려 문제가 생기게 된다.
상황이 긴박할수록 더욱 그렇다. 작은 실수나 부주의라도 있게 되면 영영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다니엘 루기는 이것을 염려하여 ‘대통령을 보통사람처럼’ 대하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긴급한 상황 뿐만이 아니라 평상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누구를 존경하는 문제에서도, 평소처럼 꾸밈없이 대하면서, 그가 가진 높은 뜻을 따라 배우고, 그의 훌륭한 행동을 본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에게 맹종(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시키는 대로 무턱대고 따름.)하거나 지나치게 꾸미는 것은, 오히려 그를 파괴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니엘 루기와 우리의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열한번째

두 인생

아더 배리는 도둑이다.
도둑치고는 유능한 도둑이어서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은 도둑이다. 그의 전문 분야는 한 밤중에 보석을 터는 것이다.
그런 아더 배리가 어느 집에서 보석을 털다가 3발의 총알을 맞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온몸에서 피가 흐르고 통증이 심했지만 그런 위기일발의 상황에서도 그는 기적적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그는 그 날의 악운과 고통을 생각하며 이렇게 맹세했다.
“나는 이제 다시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
그러나 너무 늦은 맹세였다. 이웃집 여자의 고발로 결국은 쇠고랑을 차고야 말았고, 장장 18년의 기나긴 감옥살이를 마치고서야 풀려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아주 성실하게 살았다. 그렇게 모범적으로 살았기에, 끝내는 훌륭한 시민으로 인정을 받아 지역의 재향군인회 회장까지 되는 지도자급 인물이 되었다.
어느 날 기자들이 찾아와 인터뷰를 청했다. 많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히 아더 배리가 왕년에 했던 도둑질 얘기로 옮겨갔다.
“회장님, 회장님이 옛날에 했던 도둑질 중에서 누구의 재산을 제일 많이 훔쳤습니까?”
아더 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단호히 말했다.
“예, 그건 아더 배리, 제 자신의 재산을 제일 많이 훔쳤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자신의 양심을 훔쳤고, 능력을 훔쳤고, 18년이라는 시간을 훔쳤으니까요. 만일 그 때 제가 양심을 지키고 능력을 믿어 열심히 일했더라면 사회에 큰 일꾼이 되어 많은 일을 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18년이라는 세월을 잃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멋진 설명이다. 남의 재산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양심’과 ‘능력’과 시간’을 훔쳤다는 얘기는 인생을 어떻게 살았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뼈아픈 경험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물질은 잃어버리더라도 다시 회복이 가능한 것들이지만, 한 번 잃어버린 양심과 능력과 시간은 다시 회복이 쉽지 않다는 것을 그는 느낀 것이다.
우리의 마음 속 내부 세계를 들여다 보면, 항상 ‘좋은 자기와 나쁜자기’, ‘착한 자기와 악한 자기’, ‘유능한 자기와 무능한 자기’가 짝을 이루며 존재하고 또 싸우고 있는 것이다. 전자의 것들이 이기면 훌륭한 시민 아더 배리가 되는 것이지만, 후자의 것들이 이기면 도둑 아더 배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의 결과를, 아더 배리가 살아온 두 인생을 통해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의 씨앗

헬렌 켈러(1880-1968), 우리는 그녀를 잘 알고 있다.
생후 19개월의 어린 몸으로 급성 뇌염에 걸려 장님•귀머거리•벙어리까지 되는 3중고의 비운을 맞았지만, 불굴의 의지력으로 그런 장애를 극복하여 대학까지 우등으로 졸업하였고, 그 후에도 세계 방방곡곡을 돌며 장애인들을 위해 한평생을 바친 그녀의 일생은 누구에게도 감동을 느끼게 하니 말이다.덧붙여, 그녀 곁을 그림자처럼 따르며 돕던 결정적인 공로자 설리번 선생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후에 영국 여왕이 헬렌에게 최고의 훈장을 주면서, “당신은 어떻게 그런 몸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저에게는 설리번 선생님이 계셨습니다.”라고까지 말했던 그 설리번 선생,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해서 헬렌 켈러를 위해 49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도울 수 있었는가?’ 궁금하기만 하다.
사실 그녀는 헬렌 켈러만을 그렇게 도와준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불행한 사람들을 도와주었던 것이다.
헬렌이 태어나기 수 년 전, 매사추세츠에 있는 어느 유명한 정신 병원에 ‘꼬마 애니’라 불리우는 소녀가 입원했다. 그러나 검사를 끝낸 의사들의 진단 결과는 ‘회복될 가망성이 전혀 없다.’라는 절망적인 것이었다. 즉, 모든 의사들이 그녀를 포기했던 것이다.
그 병원에는 인정 많은 늙은 간호원이 있었다. 그녀는 꼬마 애니를 포기하지 않았다. 꼬마 애니의 가련한 생명체에 사랑과 정성의 기름을 쏟아부었다. 식사를 나르고 자신도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기적이 일어났다. 유명한 의사들이 포기한 꼬마 애니가 한 간호원의 극진한 사랑 끝에 완전히 회복된 것이다.
그러나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자신의 꺼져버린 생명체를 간호원이 살려냈듯이 자신도 불행한 환자들을 돌보며 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일평생을 그런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던 것이다. 그 많은 불행한 사람 중에 하나가 바로 헬렌 켈러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 숨은 얘기를 들으면서, 사랑의 위력은 물론 사랑의 전파력까지도 느끼게 된다. 오늘날 ‘천사의 빛’이요, ‘장애자의 희망’이라고 칭송받는 헬렌 켈러도, 따지고 보면 그 늙은 간호원의 극진한 사랑의 씨앗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지금 선행이라는 씨앗을 던져 보면 어떻겠는가. 무수히 많은 열매가 맺어질 것이다.

도사의 충고

옛날 어느 절에 신령하다는 나무 불상이 있어 주지승은 그 나무 불상을 끔찍이도 곱게 모셨다.
어느 추운 겨울날, 길을 가던 늙은 도사가 이 절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다. 주지승은 도사의 행색이 누추한지라 마지못해 맞이하면서 구석방으로 안내했다. 구석방은 냉랭하기 이를데 없었는데 요도 이불도 주지 않았다.
도사가 잠시 누워 보니 견딜 수가 없었다. 어린 행자승을 불러 사연을 말하고 나무 한 다발을 청했는데 행자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에 도사는 대뜸 법당으로 달려가더니 그 신령하다는 나무 불상을 들고 가 뒷마당에서 도끼로 찍어 버렸다. 그리고는 그 불상 조각들을 집어 자기 방의 아궁이에 넣고 불을 지피는 것이었다.
나무가 바짝 말라 있으니 오죽 잘 타겠는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도사가 중얼거렸다.
“허, 참 잘도 타는구나. 역시 소문대로 신령하구나. 마지막까지도 나 같은 불쌍한 중생 하나를 구하려고 저렇게 애를 쓰시니 말이다.”
워낙 순식간에 진행된 일이라 얼떨결에 바라보고만 있던 행자승이 급히 달려가 주지승에게 고했다. 주지승이 대노하여 몽둥이를 들고 달려왔다. 이 때 도사는 아궁이의 잿더미를 뒤적이면서 한가롭게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이 나무 불상은 가짜 아니야? 진짜 그토록 신령하다면 사리가 좀 나올 텐데…….”
주지승은 깜짝 놀랐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이내 깨달은 것이다. 주지승은 들고 있던 몽둥이를 집어 던지고 무릎을 꿇었다.
‘나무 불상은 오직 나무 토막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주지승이라는 사람이 나무 토막 모시기는 신주처럼 모시면서 불쌍한 중생은 외면했으니 큰 잘못을 저질렀구나!’이렇게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나무 토막이든, 쇠붙이든, 종이 조각이든, 하잘것 없는 물건들이나 붙잡고 연연해하는 사람이 이 사회에는 의외로 많다.
‘미신을 믿으면 안된다’는 사람조차도 그 원인분석은 외면하고 징크스니, 아킬레스니 하며 유식한 척 떠들고 있고, 길일이다 윤달이다 하며 사회의 흐름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아직까지 사람들로부터 남자 아기와 여자 아기를 낳았다는 애기를 들은 적은 있어도, 의사, 변호사, 예술가, 학자를 낳았다는 애기를 들은 적은 없다! 그렇지만 의사, 변호사, 예술가, 학자들이 죽었다는 애기를 들은 적은 많다.”이 말이 무엇이겠는가?
운명의 노예가 되어 끌려다니지 말고, 운명을 개척해서 만들어 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사청사우

“개었다가 비가 오고 비 오다가 다시 개네.
날씨조차 이렇거든 세상인심 어떠하리.
나 좋다 하던 사람 나를 문득 미워하고
공명 싫다 하던 사람 공명 찾아 헤매누나.
꽃이야 피건말건 봄철은 말이 없고
구름이야 오든가든 산은 서로 다툼없네.
여보게, 사람들아! 새겨두고 잊지 말게.
평생토록 누릴 부귀 어드메도 없다는 걸.”

조선조 초기 단종의 폐위(1455) 소식을 듣고 세상을 비관하여 초야에 묻혔던 생육신의 한사람,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사청사우(乍晴乍雨: 개었다가 비가 오고)’라는 한시의풀이 내용이다.
세상인심이란 권력과 금력을 따라다니며 부단히 변하는 것이라 사람이 안심하고 누릴 부귀영화는 아무 곳에도 없다는, 다소는 냉소적이고 다소는 허무적인 시이다.
그가 이렇게 된 이유는, 어린 조카의 임금 자리를 찬탈한 수양대군의 부도덕한 행위와 그로인해 발생한 충신 사육신의 죽음, 그리고 그때 그때 권력에 영합하는 세상의 인심을 바라보면서 허무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매월당의 ‘사청사우’를, 서양 역사의 기록으로 확실하게 보여 주는 예가 있어 여기 소개한다.
독자들도 잘 아시다시피, 나폴레옹은 끝없는 야망으로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라 전 유럽을 정복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도 결국은 동맹군의 세력을 꺾지 못하고 엘바 섬으로 귀양을 가게 되어야만 했다.
와신상담을 꿈꾸던 그가 유배 생활 1년만에 엘바 섬을 탈출하여 파리를 향하여 진격해 들어왔다. 그 때 파리에서 발행된 <모니루으르>지에 실린 머리기사 내용은 ‘사청사우’ 그대로다.
5월 9일자: 악마, 유배지에서 탈출 5월 12일자 : 코르시카 출신의 식인종, 쥬앙에 상륙
5월 20일자 : 나폴레옹 내일 파리 도착
5월 21일자 : 황제 나풀레옹, 퐁텐블로에 계시다
5월 22일자 : 황제 페하, 어젯밤 궁전에 도착하시다
13일만에 악마에서 황제 폐하로 바뀌는 모습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셈이다.
그 신문은 그 후에도 그랬다. 그의 백일천하가 마감되었을 때 다시 그는 악마로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조변석개 같은 세상인심을 냉소적으로 바라본 ‘사청사우’를, 굳센 의지의 한국인들이 오히려 냉소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은 이 하늘 아래에는 없는가 묻고 싶다.

아버지와 아들

제 337호
아버지와 아들

훌륭한 아버지 밑에서 훌륭한 자식이 나온다는 말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여기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육군 모 부대는 동부전선을 지키는 전방 부대다. 그 날, 권영주 소위는 1주일 동안의 전차훈련을 마치고 부대원 일행과 함께 본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해는 져서 주위는 캄캄했고 길은 험했다.
그러던 중 권 소위 일행이 탄 전차가 다리 난간을 받으며 3미터 아래의 강변으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순간 권 소위 일행은 중심을 잃고 전차 안에서 딩구르다가 의식을 잃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배선도 끊겨 실내는 캄캄해졌고 어디선가 유독가스도 스며들었다.
급히 정신을 차린 권 소위는, 의식을 잃은 부하들을 일깨워 하나 둘 밖으로 밀어냈다. 마지막으로 가스에 질식되어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리고 있는 포수까지 밖으로 밀어 내었을 때는, 그도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가스에 질식된 채 쓰러지고 말았다. 이를 본 구조원이 뛰어드는 순간, 전차는 ‘펑!’ 소리와 함께 불길에 휩싸였고, 권 소위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충남대학교 기계공학과 출신의 ROTC 17기 장교였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났기에 대학을 다닐 때까지 노동과 가정교사를 하면서 열심히 살아온 대한의 훌륭한 청년이었다.
장례식날, 그의 아버지가 보인 행동은 더욱 감동적이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의연하게 장례식을 마친 아버지는 아들의 관 위에 이런 글을 올려놓았다.
“권영주 소위!
저 나라에 가서도 국가를 잊지 말고 굳건히 지켜라! 아버지도 너의 뒤를 따르겠다!” 그리고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미안해하는 부대원들에게,
“미련한 소대장 때문에 자네들이 욕봤네.”하며 오히려 부대원들을 위로하니, 모든 장병들이 가슴이 북받쳐 엉엉 울었다 한다.
참으로 훌륭한 아버지와 훌륭한 아들이다. 권 소위의 명복을 뒤늦게나마 빌어본다.

법대로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사회기강이 문란할 때, 이것들을 잠재우는 방법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법대로’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법대로’의 적용에 지나친 융통성과 예외를 많이 적용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법대로’의 정신에는 ‘만인 평등’의 정신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프랑스 포크리얀스 자로가크 왕은 백성들의 풍기가 문란해지자 이런 방을 붙였다.“누구든 풍기를 문란시키는 자는 그 벌로 두 눈을 빼겠다!”
워낙 살벌한 형벌인지라 범죄자는 급격히 줄었다. 그런데 자로가크 왕의 단 하나밖에 없는 왕자가 그 법을 위반했다. 왕은 이 사실을 알고 즉시 왕자를 불러 무릎을 꿇리고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왕자가 법을 어겼으니 당장 눈을 뽑아라!”
추상 같은 왕의 명령이 떨어졌지만 신하들은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폐하, 왕자께서는 나라의 대를 이을 유일한 분이옵니다. 어찌 장님이 나라를 통치할 수 있겠사옵니까? 명령을 거두어 주옵소서!”
그러나 왕은 물러서지 않았다.
“내게도 다 생각이 있으니 그리 걱정하지 마시오, 당장 왕자의 눈을 하나 뽑으시오.” 신하들은 어쩔수 없이 왕자의 한쪽 눈을 뽑았다. 왕이 이것을 보고 말했다.
“왕자의 눈을 다 뽑으면 장님이 되어 다음에 국정을 살필 수 없을 것이니, 자식을 잘못 교육시킨 아비의 죄로 나머지 하나는 나의 눈을 뽑겠소.”하면서, 왕은 자신의 눈 하나를 뽑아 버렸다.
“망하는 나라에는 반드시 기강이 무너져 있다. 왕자라 해서 법적용을 하지 않는다면 어찌 나라의 기강을 세우겠느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자로가크 왕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듣기에도 너무 참혹하고 비정한 이 이야기는 ‘법대로’의 집행이 얼마나 엄격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좋은 예인 것이다. 누가 그렇게 하고 싶었겠는가? 법을 어기지 않으면 이렇게 되지 않을 것이 아닌가.

“제가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여러분이 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한다면 다음 이야기들에 특별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저명한 바이올린 연주가에게 어느 부인이 찾아와서 말했다.
“선생님처럼 연주할 수만 있다면, 내 인생의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수하겠어요.”바이올니스트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예, 제가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이 얼마나 간단명료하고 의미심장한 말인가. 또 하나의 얘기를 들어 보자.
개리 플레이어는 왕년의 명골프 선수로 국제적인 시합에서 수많은 우승을 했던 사람이다. 그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번번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처럼 공을 잘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개리 플레이어는 웃고 말았지만, 어느 날 그가 몹씨 울적해 있는데 또 그런 말이 들렸다. 평소에 사람 좋기로 이름난 그였지만 그 날만은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경솔하게 그런 말을 하시면 안됩니다.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매일 아침 5시에 필드로 나가 골프 공 1천 개를 쳐보십시오. 손에 물집이 생기고 그것이 터져 피가 흘러 나옵니다. 그러면 클럽하우스에 가서 피를 닦고 붕대를 감고 또 다시 필드로 돌아와 1천 개의 공을 치는 연습을 되풀이합니다. 저만큼 되려면 그런 고통을 감수해야 되고, 또 당신도 그렇게 하면 저처럼 되는 겁니다.”
앞의 이야기의 “제가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라는 아주 간단한 얘기의 뜻을, 개리 플레이어는 이렇게 설명했던 것이다.
성공한 사람 누구의 얘기를 들어도 아마 거의 똑같은 대답을 들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차마 다 말하기 어려운 고통과 시련이 있었으리라는 것쯤은 의심의 여지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의 수고와 노력은 외면하고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당신같은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무슨 대가라도 치룰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 다할 것이다.”
“……뭐든지 다 줄 수 있다.”
“……죽어도 좋다.”
이제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의외로 간단해서, “무슨 일이든 다하겠다.”, “뭐든지 주겠다.”,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 “죽어도 좋다.”라는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느냐 못 옮겼느냐의 차이였던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행동에 옮긴다면 누구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직의 권위

일반적으로 운동 경기중 심판이 한 번 내린 판정은 번복되지 않는다. 올바른 판정의 중요성 만큼 경기에서의 재판관이라고 할 수 있는 심판의 권위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록 어린이 야구 시합이었지만, 어떤 정직한 소년 때문에 한 심판이 두 번씩이나 자신의 판정을 번복했다는 이상한(?) 이야기가 있어 여기 실어본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7세 소년인 테너 먼시라는 어린이인데 그는 팀의 1루를 맡고 있었다. 공식 학교대항전에서 그가 수비를 하고 있을 때다. 상대팀의 주자가 이미 1루에 있는 상황에서 다음 타자가 친 공이 먼시에게 굴러 왔다. 그는 그 공을 잡아 2루로 달려가고 있는 선행 주자를 태그했다.
심판을 맡고 있던 로라 벤슨은 이 상황을 보고 주자에게 아웃을 선언했다. 그러자 그 아웃된 주자가 항의하기도 전에 먼시가 심판에게 달려가 자신은 주자를 태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먼시의 이런 솔직한 태도에 심판은 자신의 판정을 번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합이 끝나고 먼시는 코치로부터 정직의 대가로 선물을 받았다.
2주 후, 또 다른 시합에서도 먼시는 역시 1루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전번과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가 재빨리 공을 잡아 달리는 주자를 태그했는데 심판은 주자를 태그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세이프를 선언했다. 이 때의 심판도 마침 로라 벤슨이었다.
그러자 먼시는 심판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글러브 안에 있는 공을 꺼내어 투수에게 던지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먼시의 행동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벤슨이 주자를 태그했었느냐고 물었다. 먼시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벤슨은 뒤늦게 자신의 판정을 번복하고 주자에게 아웃을 명령했다.
이에 상대팀 코치가 즉시 달려와 심하게 항의했다. 이에 벤슨이 그 코치에게 지난번의 일을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정직한 어린이에게 어른들이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권위를 내세우는 심판이더라도 두 번이 아니라 이십 번이라도 번복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심판의 권위보다는 정직의 권위가 훨씬 높고도 값질 테니까 말이다.

장한 어머니 이원숙 여사

「나는 아이들이 음악을 하면서 자칫 빠지기 쉬운 지나친 경쟁심과 우월감, 또는 열등감,
각박함, 여유없는 마음 등으로 자신들이 지닌 가장 큰 가치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각별
히 유념했다. 음악을 아무리 잘하면 무엇하겠는가?
교만한 마음은 교만한 음악을 낳고, 교만한 음악은 더이상 발전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른 음
악에 불과한데, 겸손과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의 미래에 무슨 성취가 있을 수 있겠는가?
“너희들이 세계 콩쿨에 입상했다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한두 번의
입상이 중요하다고는 볼 수 없다. 너희들이 세계 음악계에 이름이 조금 알려졌다고 그것으
로 모든 것이 종결된 것도 결코 아니다. 현재의 명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부디, 한
두 번의 성공으로 교만한 마음 갖지 않기 바란다.
중요한 것은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금부터의 길은 더욱더 험난한 가
시밭 길이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그 길에는 바로 나태해지려는 자신, 교만해지려는 자신
과 같은 보이지 않는 자신과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의 끝에는 ‘완성된 인
격체로서의 자신’이 기다리고 있단다.
인격이란 끝없는 ‘겸양과 지향’ 속에서만 존재하는 내면의 꽃이다. 그 꽃은 피우기는 어려워
도 시들기는 쉬우며, 그 색은 화려하지 않으나 향기는 세상의 어느 것도 따를 수가 없다.
그 향기가 우러나와 음악 속에 은은히 배어나올 때 비로서 너희는 영원한 이름을 얻게 된
다.”」
이 글은 정명화(첼로), 정경화(바이올린), 정명훈(피아노, 지휘자) 3남매의 음악가와, 정명소
(신학대학 교편, 카운셀러), 정명근(호텔 경영), 정명철(경영학 교수), 정명규(의과대학 교수)라는 7남매를 모두 성공적으로 키운 장한 어머니 이원숙 여사의 ?너의 꿈을 펼쳐라?]라는 책의 일부 내용이다.
‘김영사’ 발행의 이 책은 첫 장부터 사뭇 감동적이지만, 이 글에서는 세계적으로 뚜렷히 명성을 확보한 음악가 3남매에게 그들이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설명이 필요없는 글이다.
7남매 모두가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하게 키운 이원숙 여사는, ‘이원숙 여사가 있었기에 그렇게 7남매가 모두 훌륭하게 성장했구나’라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인물 고르기

국가 경영이든 기업 경영이든, 사람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도 바로 그 뜻을 나타낸 말이다. 어느 곳이든 사람다운 사람이나 꼭 필요한 사람이 있는 곳에는 번영의 문이 열리지만, 무책임한 사람이나 부패한 사람이 있는 곳에는 잠시의 영광은 있을지언정 끝내는 파멸의 길을 면치 못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고 지도자들은 제대로 된 인물을 고르느라고 국가관, 사명감, 책임감, 실력, 능력, 인물 됨됨이 등의 기준을 설정해 놓고 저마다 부심하고 있지만 짧은 면접시간에 그것을 모두 파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그 동안 살아오면서 보여준 실적을 살피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조 9대 임금 성종의 ‘두 명의 선비 특채’ 얘기는 우리의 눈길을 당긴다.
임금은 어느 날 성균관에 모여 있는 유생들에게 갑자기 머리빗을 내보이라고 했다. 이 빗은 유생들이 지방 향시에 급제할 때 관청에서 내려준 하사품으로 유생들이 항상 소지하는 것이다.꺼내 놓은 머리빗을 살피니, 모든 유생의 빗은 때가 끼어 새까만데 유독 한 선비의 것만이 반짝반짝 윤이 났다. 임금은 그를 특채했다.
“머리빗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나라에서 내린 물품을 평소에 그렇게 소중히 다루는 것으로 보아 그의 인품을 알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얼마의 기간이 지나자 임금은 유생들에게 또 머리빗을 보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모든 유생들의 머리빗이 윤이 나고 있었는데 유독 한 사람의 머리빗만이 여전히 새까맣게 때가 끼어 있었다. 임금은 그를 특채했다.
“모든 유생의 머리빗이 윤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짐이 지난번에 검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 유생은 머리빗에 그렇게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자신의 지조를 지킨 것이다. 지조를 지키는 것 또한 선비의 도리다.”
성종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듣기에 따라 이현령 비현령하는 임금의 태도가 못마땅할 수도 있어 보이겠지만, 인물을 고름에 있어 평소의 품행으로 결정한 성종의 혜안이 돋보인다.
평소에는 생각없이 행동하다가 일의 경중을 파악하지도 않고 쉽게 지조를 바꾸는 선비들에게 일격을 가한 것이 아니겠는가.

열두번째

대학생이 되기 전에

미국의 1류 고등학교에서 전과목 성적이 A인 학생이 대학입학 자격시험에서 2등까지 한 후, 하버드대학 의학부에 무시험 입학을 지원했다.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불합격’이라는 통지서였다.그래도 그의 부모는 학교측의 무슨 행정착오가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에 총장실을 찾아와 자신있게 물었다.
“내 아들이 학교에서의 성적도 우수하고, 자격시험에서도 2등을 했는데 어째서 불합격이 되었습니까? 학교측에 무슨 행정착오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총장은 잠시 밖으로 나가 담당자를 불러 그 사연을 알아보았다. 그리고는 그 학생의 생활기록부를 가지고 돌아와 학부모에게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불합격 판정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여기 이 생활기록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이 학생의 성적은 말씀하신 대로 대단히 우수합니다. 그러나 이 학생은 학생 시절에 단 한 번도 헌혈을 한 적도 없으며 친구들과 어울려 봉사 활동을 한 적도 없습니다. 의사가 되려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희생 정신과 봉사 정신이 있어야 하는데, 저 학생은 성적만 좋을 뿐 이런 점은 지극히 미약합니다. 이것이 저희들의 불합격 판정 이유입니다. 이왕에 이렇게 오셨으니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자식을 가르침에 있어 성적에만 집착하지 마시고 취미와 독서 그리고 희생 정신과 봉사 정신도 가르치십시오.”
총장의 설명이 끝나자 그 학부모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자녀의 1류대학 입학을 꿈꾸고 있는 한국의 많은 학부모들이 새겨들어야 할 얘기다. 지금 우리의 교육 풍토는 학생들의 성적 향상에만 치우치고 있을 뿐, 인격이니 품격이니 하는 말은 관심 밖인 것처럼 보인다. 인격과 품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출세가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자녀들의 목표는 1류대학 입학이 아니라 완성된 인격이어야 한다. 한 예로, 전통적으로 우리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출세수단으로 의과대학이나 법과대학을 숭상하고 있는데, 그보다 먼저 의사가 되려면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을, 법관이 되려면 정의, 평등, 박애정신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더 먼저, 국가관, 인생관, 사명감, 책임감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대학생은 장차 국가의 동량지재로 쓰일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자신의 입신출세와 영달에만 집착한다면 국가적인 불행이기도 한 것이다.

개미와 나비

개미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먹을 것을 찾다가 작은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번데기를 보았다. 가까이 가서 안을 들여다 보니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있었다. 개미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이렇게 중얼거렸다.
“참으로 딱하구나. 나 같은 개미조차도 이렇게 자유로이 다니는데, 저 불쌍한 번데기는 좁은 껍질 안에 갇혀서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구나. 손이 있나, 발이 있나, 정말 딱한 팔자로구나!”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개미가 다시 그곳을 지나게 되어 번데기를 쳐다보니 이번에는 빈껍질만 힘없이 바람에 날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쯧쯧, 이제는 아주 말라 죽어 버렸구나.”
이렇게 중얼거리는데, 마침 화려한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
“개미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개미가 소리나는 곳을 바라보니 참으로 아름다운 나비 한 마리가 화려한 날개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 나비님! 당신은 어찌 그리도 아름답습니까? 당신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시겠어요.”
개미의 감탄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고마워요, 개미님! 그러나 개미님의 칭찬을 듣고보니 마음이 묘해지네요. 며칠 전에 당신은 내 모습을 보고 한없는 동정을 보냈었는데 말이에요?”
“뭐라구요? 당신이 며칠 전의 그 번데기라고요?”
개미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요. 그 번데기가 바로 나랍니다. 그 때 당신이 내게 보내준 동정의 대가로 나의 껍질을 당신에게 드리겠어요.”
나비는 이렇게 말하며 옆에 있는 예쁜 꽃밭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개미같이 전혀 변하지 못하는 사람과, 나비처럼 몇번의 변신을 거듭하는 사람이 그것이다.
이들 모두 각각의 장단점이 존재할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변화가 없으므로 주변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기는 하지만 자신의 능력 개발에 최선을 다했느냐 하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고, 후자의 경우는 주변사람들을 불안하게는 하지만 그래도 용기있는 행동으로 신선한 충격을 준다는 의미에서는 바람직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선택은 각자의 권한이라 강요의 대상은 아니라 해도, 더 많은 노력과 희열이 존재하는 후자의 길을 감히 추천해 본다. 괄목상대(刮目相對:남의 학식이나 재주가 놀랍도록 향상될 수 있으니, 눈을 비비고 다시 보라는 뜻.)라는 교훈도 있지 않은가.

위기 속의 신화

극단적인 한계상황에서 인간이 보여준 교훈적인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그것은 진정한 용기와 고귀한 희생정신을 보여 주는 의미있는 이야기다. 이 일이 있던 이후부터 해상에서 조난 사고가 발생하면, 영국 사람들은 침착한 태도로 옆사람의 귀에 대고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버큰헤이드 호를 기억하세요!”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 영국의 해군이 자랑하던 수송선 버큰헤이드 호가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배에 수많은 병사들과 승객들이 탑승된 채 그만 돌풍에 휘말려 암초에 걸리는 사고가 발생하였다.시각은 새벽 2시 한밤중, 드넓은 바다 위에서 병사들과 승객들은 절대절명의 위기에 놓여진 것이다. 구조선이라고는 겨우 3척의 소형배가 있을 뿐이어서 자못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것으로는 승객의 4분의 1 정도밖에 태울 수 없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령관 시드니 대령이 보여준 행동은 너무나 훌륭했다. 그는 모든 병사들을 신속히 불러 승객들을 안심시킨 후, 우선 어린이부터 노약자 그리고 부녀자의 순서대로 구조선에 태운 것이다. 이렇게 해서 3척의 구조선이 떠나게 되었는데, 이 때 사령관과 사병들 그리고 남은 승객들은 그 구조선을 향하여 일제히 부동자세를 취하며 경건하게 경례까지 보
냈던 것이다. 떠나는 승객들은, 사령관과 병사들이 보여주는 이 깊은 희생정신과 참다운 용기에 감사하며 흐르는 눈물을 닦지 못했다.
구조선이 떠나자 사령관은 병사들과 남은 승객들을 향하여 배 안에 있는 어떤 물건이라도 뜰 수 있는 것이면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각자 소유한 부유물을 들고 지체없이 뛰어내리시오.”
승객들과 병사들은 말없이 명령에 따랐다. 그러자 사령관은 가라앉는 배 안으로 들어가 사람이 없는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자신도 바다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배는 완전히 가라앉고 말았다.이것이 버큰헤이드 호에 담긴 내용이다.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사령관과 병사 그리고 승객들이 보여준 태도는, 용기, 희생, 사랑, 사명감, 책임감, 침착, 규율, 질서, 양보의 모든 것이었다.
“양초는 자신을 태워 주위를 밝힌다.”,
“겁장이는 여러 번 죽지만 용기있는 사람은 단 한 번 죽는다.”
는 얘기처럼, 우리도 불의의 사고로 이런 극한상황에 처해진다면, 당황해하지만 말고 시드니 대령이 보여준 훌륭한 행동처럼 침착하게 행동해서 우리만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해 내야 할 것이다.

맑을 확률 80%

당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당신의 삶이 성공적인 결실을 맺게 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로 이어진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같은 문제와 같은 상황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오늘 하루의 생활이 즐겁고 기쁠 수도 있는가 하면, 반대로 가장 슬픈 나날들로 이어지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공자가, 어느 날 관리로 있는 조카 공멸을 만나 물었다.
“네가 그 자리를 맡아 일하면서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이에 공멸이 힘들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예, 얻은 것은 하나도 없사오며 오직 잃은 것만 세 가지 있을 뿐입니다. 일이 많아 공부를 하지 못하는 것이 그 첫째이오며, 보수가 적어 부모님과 친척들을 제대로 봉양하지 못하는 것이 그 둘째이오며, 공무에 쫓겨 시간이 없다 보니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여 친구들을 잃는 것이 그 셋째이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후 공자는 공멸과 같은 직위의 제자 자천을 만나 똑같은 질문을 해 보았다.
“예, 잃은 것은 하나도 없사오며 세 가지를 얻었습니다. 옛날에 책을 통해 배운 것을 직접 실행해 봄으로써 하나하나 깨닫게 되는 것이 그 첫째이오며, 보수를 절약해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정성껏 봉양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그 둘째이오며, 공무 이외의 시간을 이용하여 친구들과 교분하여 우정이 더욱 두터워지는 것이 그 셋째이옵니다.”
공멸과 자천, 그들은 똑같은 직위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이렇듯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비관론과 낙관론, 현실 부정과 현실 긍정이라는 미묘한 차이가 슬픈 인생과 기쁜 인생, 실패자와 성공자라는 상반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인생은 마음먹기라는 말은 수많은 선각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그것은 의학적으로도 입증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질 때, 체내에서는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나와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주지만,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면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이 나와서 가능한 일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스컴의 일기예보도 아드레날린이 생길 수 있는 비올 확률 20%라기보다는 엔돌핀이 많이 생기는 맑을 확률 80%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나무 다루기

옛날 중국 당나라에 곽탁타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려서 곱추가 된 그의 모습이 낙타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훌륭한 기술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심은 나무는 무슨 나무든 잘 자라고 열매도 많이 맺는 기술이었다. 즉 나무에 관해서는 박사요 도사였던 것이다. 몇몇 과수 제배자들이 그에게 찾아와 자기들의 나무에도 열매가 많이 맺게 되는 비결을 알려 달라고 물었다. 이에 곽탁타가 대답했다.
“저라고 무슨 비결이 있겠습니까? 제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그저 나무의 성격과 능력, 그리고 토양과 기후를 살피어 그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 뿐입니다. 뿌리 하나만 생각하더라도, 원래 뿌리는 자유롭게 뻗어 나가기를 바라고 흙과 더불어 성장하다 끝내는 흙과 같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니 만큼, 나무가 좋아하는 흙을 찾아서 심어주고 나무를 심은 후에는 흙을 알맞게 다져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심은 다음에 자식 키우듯 정성껏 보살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무의 능력이 최고로 말휘되어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곽탁타의 설명이 끝나자 모든 사람이 수긍하는데 한 사람이 말했다.
“정치도 그렇게 한다면 썩 잘 되겠군요.”
이에 곽탁타가 다시 말했다.
“나는 나무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왕에 말이 나왔으니 한 말씀 드리면 이렇습니다. 우리 마을 다스리는 사람을 보면 백성들에게 명령 내리기만 좋아할 뿐 백성들의 성격이나 능력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고 서두르며 결과에만 욕심을 냅니다. 그들의 그러한 행동은 백성을 사랑하고 생각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백성들에게 근심과 화만 안겨 주게 됩니다.다스리는 자의 성급한 명령에만 복종하다 보면, 백성 각자의 타고난 성품과 능력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고 결국은 게을러지거나 체념상태가 되어 좌절하고 맙니다. 그러니 나무의 성격을 살피어 그 나무의 능력을 키워 주듯이, 백성의 성품을 살피어 백성의 능력을 키워 준다면 백성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요.”
곽탁타의 설명을 들어 보면, 작은 풀잎 하나에도 저마다의 진리가 숨어있다는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겠다. 외모는 보잘것 없었어도 나무 하나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우친 곽탁타의 설명을, 소위 위정자나 경영자같은 지도자급 인사들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건강하게 사는 법

건강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건강의 가치는 높은 것이고 중요한 것일 테니 여기 이 이야기를 통하여 여러분의 건강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볼 하페라는 사람은 네델란드 출신의 명의사로 이름을 떨치다가, 1738년 70세의 나이로 인생을 마감한 사람이다. 그가 죽을 때 한 권의 책을 남겼는데, 그 책의 이름은 『건강의 유래없는 비법』이었다.
볼 하페가 워낙 유명한 의사였고 또 책 이름까지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던지라, 많은 사람들이 봉인까지 시켜 놓은 이 책에 관심을 가졌다. 어쩌면 이 책 속에는 여태까지 없었던 놀라운 수명 연장법이나 귀중한 처방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경매가 시작되었다. 책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아주 비싼 값에 낙찰되었다. 이 책을 획득한 어느 부자는 집으로 돌아와 대단히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봉인을 뜯었다. 그는 기대감에 부풀어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며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무런 글자도 없는 백지만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계속 몇 장을 넘겨 보아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차, 속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그는 책장을 재빨리 넘기기 시작했다. 여전히 백지만 보였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야 드디어 글자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단 세 개의 짧은 문장이었다.
“머리는 차게 하고 발은 따뜻하게 하라!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말고 항상 마음을 편히 가져라!
그러면 너는 모든 의사들을 비웃게 될 것이다.”
의학도가 못되는 필자의 처지에서는 첫 번째 문장에 대해서 아무런 추가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두 번째 문장 (이것도 얼마나 알겠습니까마는)에 대해서는 상당히 수긍이 간다.
필자는 이 글을 처음 접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가 말하는 『건강의 유래없는 비법』이라는 책의 내용이 수명 연장법을 적은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70세밖에 살지 못했으니까.’
어쨌든, 그가 말하는 ‘건강’이라는 것을 필자는 ‘건전하고 올바르게 사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그러면 우리도 ‘건강하게 사는 비법’을 쉽게 터득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가 동양의 고전을 읽지 못해서 책 제목에 ‘유래없는’이라는 과잉 수식어를 넣기는 했지만,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 마음 편히 살면 누구보다도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는 얘기는, 이미 우리의 선현들이 수없이 밝혔던 내용과 일치되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게 살 때 우리 모두는 볼 하페의 세 번째 말대로 모든 의사들을 비웃게 될지도 모른다.

참다운 지혜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 누구냐? –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는 사람이다(학문).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누구냐? –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극기).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누구냐? – 자기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자족).
이는 유대인의 경전에 나오는 얘기로서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는 지혜를 갈파한 말이다.
현명한 사람이란, 인간으로서의 부족함을 알고, 모든 사람에게서 또 모든 일에서 늘 배우고자 애쓰는 사람이다. 공자의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선생이 있다.)도 같은 말이다.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진정한 의욕만 있다면 만인이 나의 선생이 되고, 자연은 학교가 되고, 만물은 나의 교과서가 되는 것이다. 박식하다 해서 현인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늘 겸손하게 배우겠다는 정신을 소유한 자가 현인인 것이다.
또, 강한 사람이란, 자기 욕망과 감정의 노예가 되어 오늘도 내일도 남을 꺾어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자제히며 다스리고 지배하는 자이다. 인생의 여러 가지 승리 중에서 최대의 승리는 자기 자신의 욕망을 꺾는 승리인 것이다. 이 일에는 진정한 용기와 도덕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부유한 사람은 물질을 많이 소유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가진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 물질이 풍요로운 사람을 부자라 하지만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처럼 행복하지는 못하다. 그 이유는 행복의 문제는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자제와 자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족함과 감사함을 모르다가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례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언제나‘학문’과 ‘극기’와 ‘자족’의 참다운 지혜를 강조한 옛 선현들의 명언을 가슴깊이 간직해 두어야 할 필요성울 느끼게 된다.

형식보다 내용

형식이 중요한가 내용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포장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내용물이 보잘것 없으면 소용이 없기에 그렇고, 물건이 아무리 예뻐도 쉽게 고장나면 쓸모없기에 그렇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실용주의자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생각은 실용주의에 머므르고 있지만 행동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우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인 배우자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상대방의 인간 됨됨이보다는 학벌과 외모를 먼저 숭상하는 것이 그렇고, 삶의 의미를 살핌에 있어서도 삶의 내용보다 오래 사는 것을 우선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그렇다.
이런 얘기도 마찬가지에 속할 것이다.
명문 대학을 졸업한 어느 야심 많은 청년이 1류 회사의 취직을 마다하고 자신의 사업을 해보고자 했다. 그래서 경험 많은 할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앞으로 전망이 좋다고 생각되는 음료회사 설립을 결정했다. 일이 시작되고 한 달쯤 지나 할아버지와 손자가 어느 식당에서 만나 사업 얘기를 나누었다.
“그래, 그 동안 고객은 얼마나 확보했느냐?”
“아직은 없어요. 우선 작업에 기본이 되는 여러 가지 컴퓨터 시스템을 찾느라고 바뻤으니까요.”
“얘야, 손님을 잡기 전에 컴퓨터 시스템 같은 것은 필요없단다. 사무실도 책상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건 오직 고객 뿐이란다.”
경험 많고 성공까지 한 인생의 대선배인 할아버지의 이 충고를 받아 들여, 청년은 대학에서 배운 ‘경영 혁신’이니 ‘경영 전략’이니 하는 어려운 발상을 버리고 그 날부터 고객 확보에만 전력투구했다.
지금 그의 성공담은 하나의 미담으로 남아 있다. 전국적으로 판매망이 형성되었지만, 그는 사무실도 없고 책상도 없다. 그 이유를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그거야 책상이 물품을 사주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형식을 벗어나서 내용을 숭상한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다.
“사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에 있지만, 그 이윤은 사회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기업의 진짜 수준 높은 내용을 말이다.

성공이란 과연 무엇인가?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성공’이란 것이 과연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1923년, 미국 시카고 에즈워터 해변 호텔에서는 소위 성공했다고 자타가 인정할 수 있는 각계의 거물 9명이 모여 호화로운 회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들 9명의 구성원은 강철회사 사장, 공익사업회사 사장, 곡물협회 회장, 뉴욕 증권거래소 소장, 국무위원, 가스회사 사장, 월가의 거물, 전매회사 사장, 국제안전은행의 은행장들이었으니 이들의 성공은 너무도 확실
하다 하겠다.
당시 이들의 재산을 모두 합한 금액은 미국 재무부가 소유한 현금보다 많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9명의 25년 후 모습은 어떠한가?
강철회사 사장은 파산해서 끝내는 무일푼으로 죽었다. 공익사업회사 사장은 부정사건에 연루되어 외국으로 도망가 역시 무일푼으로 객사했다. 곡물협회 회장도 외국에서 외롭게 죽었다. 뉴욕 증권거래소 소장과 국무위원은 횡령죄로 체포되어 형무소 생활을 했다. 가스회사 사장은 사업에 시달리다 끝내는 미쳐버리고 말았다. 월가의 거물, 전매회사 사장, 국제안전
은행의 은행장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론으로 막을 내렸다.
이것이 성공했던 이들 9명의 25년 후 모습이었던 것이다. ‘파산’, ‘무일푼’, ‘객사’, ‘형무소’,‘미쳐버림’, ‘자살’ 등의 엄청난 실패로 얼룩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최근의 연이은 연예인들의 자살, 일류 기업의 부도, 기업인의 자살, 전직 대통령의 형무소 생활, 전직 각료들의 해외도피 등등,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그 내용들이, 앞에서 소개한 내용과 어찌도 그리 비슷한지…….
성공!
그것은 생각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어느 한 순간에 정점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25년을 계속 오르고 있거나, 적어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성공인 것이다. 즉, 과거형이 아니고 진행형이라는 말이다. 아니, 그것보다도 오히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마음 속에 일어나는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진짜 이룰 수 있는 일만을 이루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인 것이다. 한때 크게
성공했었지만 결국은 파멸하고 만 성공인, 아니, 실패자 9명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것을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성공을 원하기 전에, 성공의 본질부터 확실히 이해해 두는 것이 더욱 절실한 것이다.

최대 50%에서 최소 20%까지

똑같은 한평생을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누구는 큰 일을 많이 하고, 누구는 이렇다 할 일도 못하고 살아가는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혹자는 팔자니 운명이니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너무도 무책임하게 보이고, 혹자는 재주니 환경이니 하는데 그것도 쉽게 납득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재주나 환경의 열세를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도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뇌만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에 대한 또 하나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어서 관심을 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 모두는 이미 너무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그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풍족한 재산을 가진 사람이 가난하게 산다는 얘기다.그들의 구체적인 얘기를, 그 중에서도 먼저 독일의 에코노모 박사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의 대뇌는 무게가 약 1kg으로 젤리와 같은 물질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속에는 무려 136억 5천3백만 개라는 뇌세포가 존재하고 있다. 그 뇌세포 하나의 성능은 소형 트랜지스터의 성능보다도 훨씬 우수하다. 사람끼리의 뇌세포 양이나 질을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그 차이도 없을 뿐더러, 있다 해도 이미 소유한 것만으로도 넘칠 정도의 충분
한 양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간에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그 많은 뇌세포를 활용하는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에코노모 박사의 이 말뜻은 우리 모두, 뇌세포에 관한한, 하드 웨어적(기계적)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소프트웨어적(응용적) 문제만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이 말에 그리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것 같다. 모든 뇌 연구자들이 비슷한 말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노이만 박사는, 뇌세포 처리속도는 트랜지스터의 1만~10만 배라고 말하고, 헤릭 박사는 그 뇌세포의 연결선이 1에 0을 1,500만 개 붙인 숫자라고까지 말한다.
길포드 박사는 이런 말도 한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은 평생 동안 뇌세포를 2~5%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도 15%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그 동안 사장시켜 왔던 고부가 자산의 뇌세포 활용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2~5%밖에 쓰지 못한다는 뇌세포를 3~6%로 단 1%씩만 상승시킨다면, 크게는 50%, 작게는 20%라는 놀라운 성장을 이룩하여 쉽게 성공의 문턱에 쉽게 이를 수 있지 않겠는가.

걸어온길

1991년에는 대학교수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을 위하여 생활정보지인 (주)수원교차로를 창업하여, 1995년까지 대표이사로서 회사를 성장시켜 왔다. 1995년부터는 칼럼니스트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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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글긴여운

황필상박사가 우리의 이웃과 후손을 위해 남기신 컬럼을 실었습니다. 고인의 평소 바램대로 우리는 모두가 훌륭한 인격체로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튼실한 기둥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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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강좌

2007년 1년동안 수원 시민들을 대상으로한 창의력개발과 자기계발을 위한 특별강좌가 있었습니다. 이 특별강좌를 통해 황필상박사의 평소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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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에 대한 강렬한 열정과 잠재역량을 가지고 있으며 발전가능성이 보이는 학생들 중에서 우리 재단의 Vision에 공감하며 차세대 지도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학생을 본 재단에서 지정한 대학교를 통해 장학금 수혜자로 매 학기 선발합니다. 장학사업은 재단 설립자인 황필상 박사의 “대한민국의 미래 棟梁之材 양성” 이라는 큰 뜻을 실천하는 것으로서 본 재단의 핵심 사업입니다.